C.S. 루이스_순전한 기독교 25

4-4 좋은 전염

이번 장은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려 보는 것으로 시작할까 합니다.책상 위에 책이 두 권 있는 데, 한 권이 다른 책 위에 얹혀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이 때 위 책을 위에 있게 해 주 는 것 -즉 지탱해 주는 것- 은 분명 아래 책입니다.이를테면 위 책이 책상 표면에 닿지 않고 2인치쯤 위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래 책이 떠받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아래 책을 A, 위 책을 B라고 합시다.A의 위치는 B의 위치에 원인을 제공합니다. 맞습니까?그렇다며 이제 그 두 책이 원래부터 계속 있었다고 -물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의 예로서 그럴 수 있다고-상상해 봅시다.이 경우에도 B의 위치는 언제나 A의 위치에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B가 이런 위치에 있기 전에 A가 먼저 ..

4-2 삼위이신 하나님

지난 장에서 우리는 낳는 것과 만드는 것의 차이를 살펴보았습니다. 사람은 아이를 낳지만 조상 (彫像)은 만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낳으시지만 사람은 만드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한 가지 사실, 즉 '성부 하나님이 낳으신 존재는 그와 똑같은 존재, 즉 하나님' 이라는 사실만을 설명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 점에서만 보면 인간인 아버지가 아들을 낳는 일과 비슷하지요. 그러나 아주 비슷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고자 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 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즉 그들은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신비스러운 존재는 인격 이상의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새는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생각..

4-1 만드는 것과 낳은 것

모든 이들이 제4부에서 다루려는 내용은 빼는 게 좋겠다는 경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일반 독자들은 신학을 원하지 않아. 일반 독자들한테 평범하고 실제적인 종교 이야기를 해야 한다구"라고 말했지요. 저는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일반 독자들이 그렇게 우둔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탓입니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며,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명확한 개념들을 얻고 싶어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어린아이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그러나 한편으로는 왜 신학이라면 고개부터 내젓는 사람들이 있는지 이해할 만합니다. 한번은 영국 공군 부대에서 신앙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꽤 고집 있어 ..

3-12 믿음(2)

모든 사람이 주의했으면 하는 사항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그 주의사항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만약 이 장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전혀 모르겠고 궁금하지도 않은 내용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냥 건너뛰십시오. 전혀 마음 쓸 필요 없습니다. 기독교 안에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기독교 밖에 있을때에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길을 어느 정도 걷고 난 후에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도 아주 많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완전히 실제적인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여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특정한 갈림길과 장애물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 주는 지침들이므로, 그런 갈림길이나 장애물에 부딪쳐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니 기독교 서적들을 읽을 때 ..

3-11 믿음(1)

이 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Faith)'이라고 부르는것에 대해 이야기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대략 두 가지 의미 또는 차원에서 믿음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 두 가지를 차례대로 다루려 합니다. 첫째로, 믿음은 단순히 '신념 (Belief, 기독교 교리를 사실로 여기거나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야말로 간단하지요. 그러나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것 (적어도 예전에 저를 당황케 했던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첫 번째 의미의 믿음을 하나의 덕목으로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덕목이 될 수 있느냐고 묻곤 했습니다. 일련의 진술을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이 도덕, 부도덕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저는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어떤 진술을 받아들이..

3-10 소망

소망은 신학적 덕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영원한 세계를 계속 바라보는 일은 도피주의나 몽상의 한 형태 (어떤 현대인들의 생각처럼)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떠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이 세상을 위해 가장 많이 일한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다음 세상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던 이들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로 전환하는 데 토대를 놓은 사도들이나 중세를 확립한 위대한 인물들, 노예 제도를 폐지시킨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지구상에 이 모든 흔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마음이 천국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다음 세상에 대해 더..

3-9 사랑

이미 말했듯이 기독교의 덕목에는 네 가지 '기본' 덕목과 세 가지 '신학적' 덕목이 있습니다. 그 세 가지 신학적 덕목은 믿음, 소망, 사랑 (Charity)입니다. 믿음에 대해서는 다음 두 장에서 다룰 생각입니다. 사랑은 7장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었지만, 그때는 사랑 중에서도 용서라고 불리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이야기했지요. 이번에는 거기에 좀 더 덧붙일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첫째로, 이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요즘 들어 '사랑'은 단순히 '자선' (가난한 사람에게 무엇을 주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래 여기에는 더 넓은 의미가 있었습니다(이 말이 어떻게 현대에 이르러 자선을 뜻하는 말이 되었는지는 이해할 만합니다. 사랑을 가진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이 가난..

3-8 가장 큰 죄

이제 기독교 도덕 중에서 다른 도덕과 가장 날카로운 차이를 보이는 부분을 다룰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악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에게서 그것이 나타나면 누구나 혐오하는 악, 그리스도인 말고는 자신에게도그런 악이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는 악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기는 성질이 고약하다거나 여자나 술에 약하다거나 심지어 겁쟁이라고 인정하는 말은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이 악이 자신에게 있다고 고백하는 말은 지금껏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이 악이 나타날 때 조금이나마 자비를 보여주는 사람 또한 거의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보다 더 싫어하는 악이 없으..

3-7 용서

앞장에서 저는 기독교 덕목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것이 순결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말이 옳았는지 모르겠군요. 제 생각에 그보다 더 인기 없는 덕목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은 기독교 규범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로 규정되어 있는 덕목입니다. 기독교 도덕에서 '네 이웃'에는 '네 원수'가 포함되어 있기때문에, 결국 우리는 원수를 용서해야 하는 끔찍한 의무에 부닥치게 됩니다. 누구나 용서란 훌륭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전쟁 때처럼 실제로 용서해야 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그러나 정작 용서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용서라는 말만 꺼내도 화가 나서 으르렁거리게 마련입니다. 용서란 너무나 지키기 힘든 고차원적인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하기 싫은 창피스..

3-6 그리스도인의 결혼

앞장에서는 주로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의 성적 충동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에 대해서만 말했을 뿐, 그 올바른 쓰임새, 즉 그리스도인의 결혼 문제는 거의 다루지 않았지요. 제가 특히 결혼 문제를 다루고 싶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이 주제에 관한 기독교의 교리는 지극히 인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저 자신이 결혼해 본 적이 없으므로 간접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의 도덕을 이야기하면서 이 주제를 빼놓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군요.기독교의 결혼관은 남편과 아내는 하나의 단일한 유기체 -이것은 '한 몸'에 해당하는 현대어입니다-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감상적인 표현이 아닌 사실의 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