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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원목사 설교

말의 힘을 아는 인생 02-관계는 경청에서 시작된다

by 마이코 2023. 11. 8.

2023.08.25

ㅣ야고보서 119-21

ㅣ문대원 목사


지난주 일부터 말의 힘에 대한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고 입술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힘도 있고 하지만 또한 부정적인 힘도 있습니다.
말의 힘을 아는 사람은 절대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나의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또한 죽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지난 주간에 말의 힘에 대해서 배웠으니까 이번 주에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잘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말을 처음 배울 때 엄마의 말을 잘 듣습니다.
많이 듣습니다. 똑같은 단어 똑같은 표현을 수없이 듣고 난 이후에 그다음에 말을 따라서 하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영어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어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혀를 굴린다고 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잘 들을 수 있어야지 말을 잘할 수 있습니다.
내가 들은 만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한 만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 듣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기초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 경청하는 것에는 엄청난 파워가 있습니다.
피터 드러커와 함께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텀피러스라는 사람이 경청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타인을 만족시키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20세기가 말하는 자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경청하는 리더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20세기에는 전체주의적인 문화가 있었습니다.
어떤 공동체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전체주의적인 문화 안에는 좋은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개인의 선택을 무시하고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습니다. 전체주의 시대에서 개인주의 시대로 변했습니다.
전체주의가 다 옳은 것이 아닌 것처럼 개인주의가 다 옳은 것도 아닙니다.
가족 공동체 국가공동체와 같이 어떤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mg 세대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가 이제 일어났는데 이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강요받는 것 억압받는 것입니다.
이미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기 때문에 직장에 대한 충성도도 약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인기가 있었다면 이제는 공감할 수 있는 리더 소통을 잘하는 리더가 인기가 많습니다. mg 세대에게는 명령하면 안 되고 그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텀피로스의 말은 사실입니다.
20세기가 말하는 자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경청하는 리더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는 말은 사실입니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잘 듣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습니다.
경청은 지금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 시대에는 가장 필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공감 능력입니다.

여러분 기술적인 일은 컴퓨터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서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 챗 gpt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공감하는 능력입니다.
기계가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시대에는 이해와 공감 능력이 더욱더 중요해질 것인데 이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는 경청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경청이 왜 중요하고 듣는 것에는 어떤 힘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야고보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야고보서 하면은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흔히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조하는 그런 말씀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성경이 구약의 지혜 문헌을 아주 강조하고 또한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지혜 문헌이 바로 잠언입니다.
여러분 잠언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잠언은 짧고 간결한 문장 안에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잠언을 영어로 Proverb라고 하는데 속담 격언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러분 속담의 특징이 무엇이지? 속담은 일단 짧아야 합니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 이렇게 짧게 핵심을 이야기해야지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길게 장황하게 말하는 그런 속담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잠언 말씀은 짧고 간결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놀라운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잠언 101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아무래도 이제 말을 많이 하게 되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더라도 입술을 제어할 수 있는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놀라운 지혜를 아주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잠언입니다.

잠언의 또 다른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매우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잠언은 구약의 다른 성경 율법서나 선지서와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성경 통독을 시도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읽기 힘든 부분이 있는데 바로 선지서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을 어떤 지적하는 말씀,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이방 민족을 향한 어떤 저주와 심판의 말씀은 읽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잠언 말씀은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잠언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잠언 21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아멘 여러분 너무 크게 아멘 하시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말씀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도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잠언에는 일반 은총에 가까운 진리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고 그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티븐 커비( Stephen Richards Covey )같은 작가는

잠언을 기반으로 해서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썼습니다.

구약의 잠언과 아주 유사한 성격의 말씀이 신약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야고보서 말씀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구약의 잠언과 신약의 야고보서를 한 세트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또한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이 두 책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는 로마서 같은 어떤 교리적인 책은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아주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그 구원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신학적으로 변증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야고보는 그 구원이 우리의 실제 생활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다양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울을 통해서는 교리적인 말씀을 주셨고

야고보를 통해서는 아주 실제적인 말씀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받는다고 해서 곧바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야고보서와 같이 어떤 실제적인 말씀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도 잠언과 아주 비슷한 그런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19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아멘.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잠언 말씀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이 야고보서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듣기는 빨리 듣고 말할 때는 조심히 말하라는 뜻이구나 알 수 있습니다.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듣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듣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말을 잘하는 것은 결국 잘 듣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말을 잘하는 것과 잘 듣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여러분 모든 생산적인 대화의 기초는 신뢰입니다.
날씨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쇼핑 이야기 말고 무언가 진지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우리는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잘 모르는 사람에게 중요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요즘같이 흉흉한 시대에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와 중요한 대화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신뢰를 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과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우리가 그 마음에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서로가 공감할 때 신뢰가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청은 공감으로 이어지고 공감은 신뢰로 이어집니다.
신뢰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대화, 진지한 대화를 하게 되면 그 사람을 설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은 경청입니다.
경청은 그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소극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신뢰를 쌓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아주 적극적인 행동이 바로 경청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을 할 때에는 신중하게 해야 하고 가능하면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집중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상대방은 나에게 중요한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미국 cnn의 전설적인 터크쇼 진행자 래리킹(Larry King) 을 아실 것입니다.
그는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인터뷰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단 한 번도 뻔한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명 인사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데 너무나도 탁월한 진행자였습니다.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것들, 듣고 싶은 이야기들을 너무나 잘 이끌어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래리킹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인터뷰를 잘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했을 때

그가 비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을 다해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저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 느꼈던 사람이 혹시 있으십니까? 함께 대화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세계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전문가인 레리 버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숙한 사람, 성공한 사람, 정말 많이 하는 사람들은 아무에게나 쉽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입을 여는 법이 없다.
진정으로 중요한 말은 아무나 들을 수 없다.
경청하는 사람만이 대접받는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은 정말로 사실입니다. 세계적인 대가, 정말로 놀라운 지식을 가진 사람은 함부로 입을 열지 않습니다.
내가 수십 년 동안 노력해서 얻은 지혜와 지식을 절대 아무에게나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에 집중해서 경청하는 사람에게만 이 비밀을 말해줍니다.

그 지혜와 지식의 가치를 알아보고 겸손하게 배우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말해줍니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말은 아무나 들을 수 없습니다.
오직 경청하는 사람만이 그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소중한 그러한 지혜를 얻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경청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건성건성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서 듣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을 때에 인생을 바꿀 만한 소중한 지혜를 얻는 줄로 믿습니다.
말하기는 더디 하고 듣기를 속히 하여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지혜와 지식을 잘 배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양한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지혜는 경청에서 나온다고 말씀합니다.
잠언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오 명철한 자는 지약을 얻을 것이라 아멘.
지혜로운 사람은 잘 듣는 사람입니다.
잘 들어야지 지식을 얻고 학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다른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훈계, 선생님의 가르침을 귀기울이면서 듣는 것입니다.
나보다 먼저 인생을 경험하신 분들께 겸손하게 듣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난 주일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언어의 능력을 주셨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에게 언어 능력이 있다는 것은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엄청난 능력입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좋은 것을 배우고 나쁜 것을 버릴 수 있다면 이것은 정말로 엄청난 능력입니다.

동물은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동물은 자기가 직접 경험함으로써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나쁜지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어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도 상대방의 경험을 통해서 좋은 것은 배우고 나쁜 것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것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이야기해줘도 배우지 못하고 내가 직접 그것을 경험해 봐야지 배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거짓말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난처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너무나 자동적으로 쉽게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겠죠.
거짓말하지 말아라. 거짓말한 거 금방 드러나니까 제발 거짓말 하면 안 된다라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말씀하셔도 듣지 않았겠죠

그래서 취직을 해서 회사에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한 번 두 번 하다가 금방 들통나서 경고를 받고 나중에는 해고까지 당합니다.
다른 회사에 가서도 또 거짓말한 것이 들통나서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신뢰를 잃는다는 사실을 배우기 위해서 이 사람은 직장을 잃어야 했습니다.

부모님 말씀만 잘 들어도 이런 뼈 아픈 경험을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언어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언어 능력이 있으면 뭐 하겠습니까? 부모님의 말씀, 선생님의 조언을 경청하지 않는데 그 언어 능력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간 사람들의 지혜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겸손하게 들음으로써 배울 수 있습니다.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사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우리는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르신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연로하신 장로님, 권사님들을 뵙고 그분들의 예전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분들의 말씀을 경청할 때에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 나이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그분들의 경험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은 어르신들과 대화하는 것을 꺼린다고 합니다.

요즘만 그렇겠습니까? 시대와 상관없이 모든 시대의 젊은이들은 라떼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비슷합니다.
요즘 청년들이 취업 걱정하는 거나 예전에 어르신들께서 먹고 살 걱정하는 거나 비슷합니다.
요즘에도 가정에 문제가 많이 있듯이 예전에도 가정의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을 때에 지혜를 얻고 학식을 얻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이야기를 잘 안 듣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훈계를 듣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서 거만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거만한 사람은 훈계를 듣지 않기 때문에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31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라함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아멘.

 

거만한 사람의 특징은 훈계를 듣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이래라 저래라 조언하는 것, 귀찮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 인생의 선배가 주는 조언을 하찮게 여깁니다.
그 결과 경청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결정을 내렸는데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결정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미국 it 기업의 직원인 제이크라는 사람이 이 회사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데 자꾸 오류가 났습니다.
최근에 구입한 소프트웨어의 문제인 것 같아서 소프트웨어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상담을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상담자는 그 오류에 대해서 듣고 아마도 메모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회사 컴퓨터가 최신 기종이기 때문에 메모리에 문제가 있을 리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 상담자는 하지만 데이터에 근거해서 이 오류가 발생한 원인의 75% 확률로 메모리의 문제일 것이라고 진단했습니.
하지만 제이크는 이건 아마 서버나 네트워크 쪽의 문제인 것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상담자는 그럼 담당 기술자를 회사로 보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이크는 그것에 동의했고 기술자가 이제 와서 확인해 보니까 메모리 문제가 맞았습니다.
임시 파일이 이제 비대해져서 메모리에 이제 과부하가 걸렸던 것입니다.
기술자가 말하기를 보통 이런 문제는 전화 상담으로 가능했을 텐데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때서야 제이클은 자신이 전화 상담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했습니다.
왜냐 전화 상담은 무료이지만 기술자의 방문 서비스는 300달러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환율로 치면 약 40만 원 정도 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서 발생하는 비용이 이렇게 클 수 있습니다.
어쩌면 40만 원으로 해결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400만 원 혹은 4천만 원으로 문제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지혜는 경청해서 나옵니다.

거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지 않기 때문에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지혜보다 더 중요한 것이 경청에서 나옵니다.
바로 믿음은 또한 경청에서 나온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017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아멘.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자라나는 그 과정은 너무나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던 사람이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신다는 것을 확신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 이렇게 믿음이 자랐을까 신기할 때가 있죠 이것은 마치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과도 비슷할 것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기어다니던 아이가 올해 일어나서 걷기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초등학교 어린이 같았는데 이제 중학교에 가더니 사춘기 소녀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이 너무나도 신비로운데 믿음이 자라는 과정도 비슷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영적인 양식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 엄마 젖이 필요하고 양식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양식인 말씀을 먹으면 믿음이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빨리 자라나는 사람은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은 사람이고 믿음이 더디 자라는 사람은 사모함 없이 기대감 없이 말씀을 대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아무리 오래 다녀도 설교 시간에 졸고 성경을 읽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지 않고 묵상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왜냐?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벼름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집중해서 듣는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결정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듣는 사람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커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 은혜의 힘으로 우리가 인생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 사람은 세상을 향한 믿음이 커질 것입니다.
돈이 최고야 돈이 있어야지 무시를 안 당해 이런 말을 많이 들으면요 세상을 향한 믿음 돈을 향한 믿음이 더 커질 것입니다.
물론 돈이 있으면 인생이 편리하겠죠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차도 살 수 있고 좋은 집 좋은 옷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으로 할 수 없는 일도 정말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돈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돈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도 없고요 돈으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남편이 의사 아들이 의사 딸이 의사인 분이 계십니다.

얼마나 좋을까요? 집안에 의사가 한 명만 돼도 좋을 텐데 3명이나 의사입니다.
평생 돈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걱정해 본 적이 없는 분입니다.
얼마나 행복하게 사실까요 그런데 이분에게 고민이 있습니다.
딸의 부부 관계가 좋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아직 손주가 어린데 딸이 혹시 이혼하면 어떡해야 하나 걱정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분명히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집중해서 듣는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결정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들으면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자라납니다.
세상의 말을 집중해서 들으면 세상을 향한 믿음이 자라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말을 자주 듣습니까? 어떤 말을 집중해서 들으십니까?

여러분이 듣는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을 결정하고 여러분의 믿음을 결정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권면한 이후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20, 21절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아멘.

 

야고보 사도는 두 가지를 의도적으로 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온유한 것입니다.


여러분 화를 내는 것과 온유한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제가 얼마 전에 온유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온유는 목소리가 부드럽고 성격이 온화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절제된 힘을 뜻합니다.
나에게 있는 힘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에 따라서 절제해서 사용하는 것이 온유함입니다.

주인의 뜻을 잘 따르는 경주 말을 생각하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반대로 화를 내는 것은 자기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컨트롤하지 못하고 감정에 휩쓸리는 것이죠.
그렇게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면 하지 말아야 할 그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표현하지 말아야 하는 그 감정을 표현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분노의 감정입니다.

그러므로 분노와 온유함의 차이는 딱 한마디로 절제입니다.
분노는 절제를 잃은 상태이고 온유함은 절제된 상태입니다.
절제를 잃은 사람에게 우리가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화가 난 사람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는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제된 마음이 있어야지 우리가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으라 는 구절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시 내 안에 부정적인 그런 감정이 있다면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스스로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없다면 성령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평강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마음에 오셔서 온유와 절제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온유와 절제는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내 마음을 잠잠하게 한 이후에야 우리가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제 오후에 예수 생명 위딩 바이브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도 오시고 또 토요일 오후에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경을 통독하는 훈련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향한 열정과 갈망이 있는 그런 성도님들을 보면서 제가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읽기 전에 우리가 우리 마음을 먼저 온유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의 집중을 분산시키는 것, 나의 감정을 분산시키는 것을 다 정리한 이후에 우리가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배우자와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면요 공간을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tv를 끄고 휴대폰을 치워야 합니다.
시도때도 울리는 카톡 알람을 끄고 그렇게 해야지 배우자와 정말로 중요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공간을 정리해야 합니다.

산만하고 혼잡스러운 것들 다 내려놓고 우리가 잠잠한 가운데 온유함 가운데 생명의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잠시 휴대폰을 치우고 마음을 평온케 한 이후에야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으라 하는 구절의 뜻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경청에서 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일 때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자라나는 줄로 믿습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되 온유한 마음으로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관계는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좋게 됩니다.

믿음은 좋은데 관계는 잘 못한다 이 말은 사실 조금 이상한 말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듣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혹시 여러분 친구분 중에 고집이 센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 고집이 센 사람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고집이 센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안 듣습니다.
자기 소신이 있는 것과 고집이 센 것과는 좀 다른 개념이죠.
자기 주관이 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아예 듣지 않는 사람은 소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집이 센 사람입니다.

제가 여러 가지로 관찰한 결과 고집이 센 사람들에게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무섭고 권위적인 그런 관계였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관계가 아주 소원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이야기해봤자

나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꾸지람만 받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죠.
어차피 이야기해 봤자 혼나기만 할 텐데 뭐 하러 아버지께 이야기하겠습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니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듣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점점 더 고집이 센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듣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고집이 센 사람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32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아멘. 여러분 성경에서 말과 노새는 완고한 동물의 상징입니다.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그런 아주 센 고집이 있는 동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발 그렇게 고집부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경청은 겸손의 표현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배우겠다는 겸손의 표시가 바로 경청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마음을 다해서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오늘보다 내일 더 기대가 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고 배우겠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겸손한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사 시대를 마감하고 왕정 시대를 열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시대가 바뀔 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인데 바로 사무엘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과 두 번째 왕을 세웠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킹보다 중요한 게 킹 메이커인데 사무엘은 그런 킹 메이커의 역할을 너무나도 잘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사무엘이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요?


사무엘의 어떠한 점이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게 기뻤던 것일까요? 사무엘상 310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라 사무엘이라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눈과 마음이 어두워지자 하나님께서 이제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에게 배운 대로 하나님께 응답했습니다.
주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 한마디가 하나님을 너무나도 기쁘시게 한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도 이렇게 고백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고백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경청은 신뢰를 쌓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청을 통해서 우리는 지혜를 얻게 되고 또한 믿음을 얻게 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여서 날마다 아름다운 믿음의 성숙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