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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원목사 설교

말의 힘을 아는 인생 (1) 살리는 말 vs. 죽이는 말

by 마이코 2023. 10. 3.

2023.08.13

잠언 1820-21

ㅣ문대원 목사

 

오늘부터 한 달 동안 말의 힘을 아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설교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말을 할 때 신중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것이 뭐 가족이든 친구이든 직장 동료이든 상관없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서 악의적인 말을 해서 상처를 받았던 적이 있으십니까? 누구나 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가시돋친 말이 내 마음을, 내 감정을 상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악의적인 말에는 파괴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말에는 긍정적인 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말에 위로를 받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너무 힘든 상황이어서 포기하고 싶었는데 누군가가 따뜻한 말을 해줘서 용기를 얻었던 적이 있으십니까? 하버드 로스쿨의 최연소 교수였던 앨런 더쇼비츠는 15살이 되기까지 한 번도 똑똑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사춘기 시절에 그는 운동과 여자친구에 빠져서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의 부모님 역시 자녀 교육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그가 받았던 학점은 대부분 다 쓰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여름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곳에 자원봉사하러 온 한 대학생 선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더쇼비츠와 함께 대화를 하던 그 대학생 선배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있잖아 너 정말 똑똑하구나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말은 더쇼비츠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았던 칭찬이었습니다.


후에 그는 미래의 법률가에게라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남에게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에게 아부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 선배의 말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나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지만 그 칭찬 덕분에 나는 진짜 똑똑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대학생 선배의 말 한마디가 더쇼비츠의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는 c 학점 학생에서 a 학점 학생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28살의 나이에 하버드 로스쿨 정 교수가 되었습니다.
하버드 로스쿨 역사상 최연소 정 교수가 된 것입니다.


선배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러분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언어 능력은 정말로 놀랍습니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늘을 나는 사자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어느 누구도 하늘을 나는 사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여러분은 머릿속으로 그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언어를 사용해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언어와 상상력, 언어와 창의력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는 대로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절대로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먼저 성경에 대한 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말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4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아멘.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무에 비유하자면 마음은 뿌리이고 말은 열매인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고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습니다.
마찬가지로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선한 말을 하게 되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악한 말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살다 보면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할 때도 가끔 있습니다.
상대방을 위해서 좋은 소리를 해주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런 종류의 거짓말을 가리켜 선의의 거짓말 영어로는 와이트 라이라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사실은 이런 말을 잘합니다.
미국에서 헤어스타일을 바꾼 다음에 잘 어울리는지 물어보면 항상 똑같은 대답을 듣습니다.
너무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줍니다.


기본적으로 미국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끼리 하는 말이 있습니다.
헤어스타일을 바꾼 다음에 미국 친구에게는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맨날 똑같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칭찬만 하니까 정확한 피드백을 받고 싶으면 미국 친구가 아니라 한국 친구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마음 안에 가득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운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맨날 운동 이야기만 합니다.
주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맨날 주식 이야기만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말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그 말을 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든 말 실수는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말로 표현합니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실수는 단지 말에 의한 실수가 아니라 평소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나타나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말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말만 바꿀 수는 없습니다.
마음을 바꾸지 않고 말만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말을 바꾸려면 마음이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한 말은 선한 마음에서 나오고 악한 말은 악한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눈에 보이는 결과와 그런 성공을 추구하는 사회입니다.
모든 성공은 수치화할 수 있어야 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연봉이 얼마인지 아파트가 몇 평인지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이 성공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 성품은 우리가 수치화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성품이 얼마나 좋은지 우리가 점수로 매길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성품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성공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바로 성품에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성공을 거둔 사람이 갑자기 몰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성품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실제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모두 다 성품의 문제, 마음의 문제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말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은 뿌리이고 말은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건강하면 자동적으로 좋은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반대로 뿌리가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열매를 보고 우리가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만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말을 바꾸려면 마음이 바뀌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말에는 결과가 따라옵니다.


우리가 한 말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 그 말의 열매를 먹으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었던 본문 말씀 자문 1820절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아멘. 사람이 자기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배부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열매가 좋은 열매일 수도 있고 나쁜 열매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했던 그 말의 열매를 먹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 누구랑 결혼할 것인지 내가 결정합니다.
그리고 내가 결정한 것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제가 몇 달 전에 금요기도회에서 배우자를 위한 기도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모든 조건이 다 완벽한데 신앙이 없는 사람과 결혼하면 어떠한 삶을 살게 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실제로 보았던 후배의 케이스를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 자리에 있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이렇게 얘기해도 선택은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여러분의 부모님도 여러분의 선택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선택을 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선택에 대해서 절대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평소에 말하는 것보다 일부러 더 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배우자 선택은 그 정도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내가 한 말,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그 결과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 어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용없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내가 어떤 말을 하고 나서, 어떤 행동을 하고 나서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건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한 책임까지 다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는 모든 말에는 결과가 따라옵니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상관없습니다.
상대방을 살리는 말이든 아니면 상대방을 죽이는 말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자기 입에서 나오는 그 열매로 배부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입에서 나간 그 말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 입에서 나온 그 말의 열매를 먹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절대로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더더욱 말에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고 있는 그 모든 말을 다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낱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민족이 이제 가나안 땅을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정탐꾼들을 보냈습니다.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나서 그 성읍이 견고하고 그 땅의 거주민이 강하기 때문에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숙이 14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여러분, 이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입니다.
애굽에서 큰 고통을 받고 있어서 부르짖던 그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이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하나님은 쉽게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인간은 작은 일에도 화를 낼 수 있지만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에는 정말로 우리가 큰 잘못을 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앙에서 함부로 이렇게 이야기했을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숙이 1428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아멘.


하나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그대로 행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 하는 사람들은 광야에서 죽을 것이고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자라고 말한 사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믿음에 따라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말한 그 결과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의 힘, 말의 권세입니다.
말에 힘이 있는 이유는 그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든지 우리는 그 말에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함부로 말하지 마시고 입술로 범죄하지 말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인생은 믿음대로 되고 말한 대로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선한 말, 아름다운 말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힘도 있고요 또한 부정적인 힘도 있습니다.
선한 마을은 사람을 살리고 위로하는 말은 사람을 치료하기도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수술 도구로 진료하지 않습니다.
말로 치료합니다.


말에는 사람을 치료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표현과 그대로 되니라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 세상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적인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아멘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말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언어 능력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언어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동물도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침팬지도 언어를 사용할 수 있고 돌고래도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동물이 사용하는 그 언어는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동물은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 아주 기초적인 정보만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과 정반대의 상황을 가정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학교 영어 시간에 가정법 배웠죠 ef 가정법 만일 이러이러하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인간은 현재의 상황과 반대되는 상황을 가정해서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 아이디어를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오랫동안 축적한 그 지식과 정보를 말로서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인간만이 문화를 만들고 문명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언어의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언어의 능력으로 말의 능력으로 창조적으로 긍정적으로 이것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안 된다고 말할 때 할 수 있다는 소망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다 힘들다고 말할 때 조금만 더 인내하면 된다는 그런 소망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모두가 다 긍정적인 말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부정적인 말 비판적인 말을 해서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정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보면 쓴소리를 잘하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이게 잘못이다 저게 문제다 비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비판을 잘해서 대통령이 된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한 나라를 이끌어가려면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배우자를 결정할 때에도 긍정적인 말을 하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는 사람과 함께 결혼하게 됩니다.
저 사람과 함께라면 내 인생에 희망이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확신을 주기 위해서는 비난과 비판을 해서는 안 되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향한 칭찬과 격려에는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나이 드신 어머님께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예쁘세요?


내가 아는 할머니 중에서 엄마가 제일 예뻐요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근데 그 말을 들으시고 어머니께서 너무너무 행복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너 같은 딸이 있어서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질문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주고받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습니까?


이렇게 큰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 돈을 얼마나 지불했습니까? 돈 하나도 안 드리고요 하루 종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상대방을 향한 칭찬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 쓸 수 있는 영어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유메 마이 데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나의 하루를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 덕분에 나의 하루가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 유메 마데이라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이번 주에 숙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하루에 한 번씩 칭찬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칭찬의 말을 들었을 때에 당신 덕분에 제가 너무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답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확인하겠습니다.


말에는 창조적인 힘도 있지만 파괴적인 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말로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간관계가 완전히 다 끝날 수도 있습니다.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하는 그 말을 해서 부부 사이가 완전히 갈라질 수도 있습니다.
악한 말은 악한 마음에서 나와서 모든 행동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악한 말이 우리 삶 전체에 나쁜 영향을


치게 됩니다. 야고보서 36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라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아멘.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말이 타락한 세계를 반영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속의 영향을 받을 때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언어입니다.
인터넷과 tv에서 사용하는 그 언어 안에는 세속적인 가치관이 들어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언어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세속적인 가치관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tv 프로그램에서 외모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그런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키가 크네 작네, 살이 쪘네 말랐네 하면서 외모를 가지고 말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은 그 기준으로 자기의 외모를 비교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키가 작지 않은지, 혹시 나는 살이 너무 찐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서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한창 커야 하는 초등학생들이 이런 tv를 보고 나도 다이어트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고 그 언어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타락한 문화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악한 말은 지옥불에 비교되고 있습니다.
지옥불이 모든 것을 다 불태우고 파괴하는 것처럼 악한 말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다 불태우고 파괴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탈모드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험담을 일삼는 자는 시리아 땅에 있으면서도 로마에 있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시리아와 로마의 거리가 약 37,000km 떨어져 있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악의적인 그 말 험담을 통해서 시리아에 있으면서도 로마에 있는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악의적인 말에는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요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말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1916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내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내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아멘. 레위기 19장은 정말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웃을 억압하지 말고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도 억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사람을 비방하는 것은 그를 만드신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은 비방을 헬라어로 블라스페미아라고 합니다.


영어 단어 블라스포미가 여기에서 왔습니다.
블라스포미는 신성 모독을 뜻합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 보면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을 같은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악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을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 자녀를 비방한다면 그것은 나를 비방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11절 함께 읽겠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아멘. 비방하는 말, 험담하는 말은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상대방을 향한 인격 모독은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부모의 말은 자녀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녀가 어리면 어릴수록 부모의 말 한마디가 아주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녀가 실수할 때가 있겠죠 그릇을 깨뜨린다든지 아니면 학교 숙제를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자녀가 실수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와 용납입니다.


그리고 나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그다음에 우리가 사랑으로 지도하고 조언하면 됩니다.
그런데 실수했을 때 만약에 부모가 니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니가 다 그런 놈이지라고 만약 그렇게 질책한다면 그 질책이 아이의 정체성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실패하는 것과


실패자가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실패하는 것은요 어떠한 행동의 결과이지만 실패자가 되는 것은 그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행동을 했으면요 그 행동을 고치면 됩니다.
하지만 잘못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 문제는 훨씬 더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부모나 선생님 같은 권위자가 내뱉는 말이 아이에게 잘못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에게 하는 말을 정말로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그 말 한마디가 우리 자녀에게 잘못된 정체성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은요 자기 정체성에 맞게끔 행동합니다.
왕자와 거짓 이야기해 보면 아무리 옷을 바꿔 입어도 왕자는 왕자처럼 행동하고 거지는 거짓처럼 행동합니다.
왜냐하면


옷이 사람의 정체성,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이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만이 선포되고 전달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 한마디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줄 수도 있고요 아니면 끝없는 절망을 줄 수도 있습니다.
잠언 1821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아멘.
죽고 사는 힘이 말에 달려 있다 혀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말을 하는지에 따라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좋았던 분위기를 다 망칠 수도 있고요 아니면 말 한마디로 절망적이었던 분위기를 다시 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저는 선교한국대회에 가서 말씀을 전하고 왔습니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세 차례에 걸쳐서 성경 강의를 했습니다.
정말 지금 이 시대에도 선교를 향한 열정을 가진 청년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화요일, 수요일 이제 설교를 마치고 셋째 날 목요일 설교를 하러 가는데 그때 태풍 카논이 왔습니다.
선교대회가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에서 열렸기 때문에 바다와 가까워서 바람이 아주 강했습니다.
주최 측에서 고민을 하다가 우리 참가자의 안전을 위해서 오전 모임을 온라인으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큰 집회장에서 봉사자 몇 명만 있는 상황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이나 설교자들이나 조금 낙담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상 관측 이래 최초로 한반도를 통과하는 관통하는 태풍이 오는데 하필이면 그때 이제 5년 만에 선교한국 대회를 열게 된 것입니다.
제 설교 직전에 선교한국 사무총장님이 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태풍 때문에 우리 참가자 청년들이 낙담하지 않도록 잘 격려해 주시고 권면해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이렇게 어려운 부탁을 저에게 하면 어떡하십니까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설교하러 올라갔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 가운데 성경 구절 하나를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25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내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이 말과 경주하겠느냐 내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 하겠느냐 아멘.
여러분 평안한 땅에서 잘 지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단강물이 넘칠 때,


태풍이 올 때 잘 지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간다고 해서 평안한 땅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감에도 불구하고 요단강물이 넘치고 태풍이 오는 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어려운 순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그 힘과 용기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그 믿음을 주님께서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의 삶, 선교사의 삶입니다.
제가 선교한국 참가자들에게 선교지의 현실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선교의 목표는 내가 계획한 대로 사역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계획한 사역을 완수하고 목표를 이루는 것이 선교가 아닙니다.
선교의 목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있습니다.


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같을 때도 있고 다를 때도 있습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선교의 목표입니다.
게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기도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주님께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하고 이제 설교를 시작했는데 제 안에 확신이 있고 감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을 때 태풍이 오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모든 참가자들 안에 소망이 있고 기대가 있다는 것을 제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무총장님도 큰 힘과 위로를 받으셨다고 해서 제가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진리를 선포할 때 그때 우리 안에 희망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아직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인간은 아직 일어나지 않을 그 일에 대해서 미리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의 힘, 말의 권세인 줄로 믿습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합니다.


치마를 입을지 바지를 입을지 고민합니다.
어떤 색깔의 넥타이를 고를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만큼 고민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기분대로 말을 뱉을 경우가 있습니다.
불평하는 말, 비방하는 말, 심지어 저주하는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 말에 어떠한 파괴적인 힘이 있는지 도무지 모른다 하는 것입니다.
그 말로 인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고 있는지 도무지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 말이 보이는 칼보다 더 깊은 상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그 유대의 격언에 보면요 말을 화살에 비유합니다.


칼 혹은 창 같은 무기도 많은데 왜 하필 화살의 비유를 하게 될까요? 우리가 상대방을 공격하라고 딱 칼을 꺼냈다가 마음이 누그러지고 마음이 변하면 다시 그 칼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시위를 떠난 그 화살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한 번 화살을 쏘았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 번 말을 내뱉었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말은 칼이 아니라 화살에 가까운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 비방하는 말, 저주하는 말을 끊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서 42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무릎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아멘. 우리가 어떤 말을 하든지 그 말에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말한 대로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선한 말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름다운 언어생활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 사역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