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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원목사 설교

"How does true change begin?"

by 마이코 2023. 7. 28.

진정한 변화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여러분은 올해가 시작될 때 세웠던 결심이 있습니까?

꼭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작은 결심을 세워서 꾸준히 실천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어차피 결심해봐야 지키지 못하니까 그냥 결심 없이 살아가십니까?

Did you have any resolutions for this year?

Even if it's not a big, do you make small resolutions and keep practicing them?

Because you can't keep it anyway, do you just live without any resolutions?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내 삶에 변화가 필요한 영역이 있는지 돌아보고, 한 두 가지 목표를 세워서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결심한 대로 노력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의지가 약해집니다.
흔히 말하는 작심 삼일이 되어서 더 이상 결심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When a new year comes, everyone makes new resolutions.

We look at areas what change is need, and start working on one or two goals.

For the first few days, we can live our resolutions.

But as time goes by, the will is getting weaker.

It is easy to give up on our resolutions and go back to the past, as it is said "작심삼일(Short-lived)".

 

이런 일을 몇 번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새해가 되어도 새로운 결심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차피 결심해 봐야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올해는 새로운 결심이 없는 게 결심이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결심한 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If it repeat this over and over again, some people don't make any resolutions for the new year.

Because they know they can't keep them.

They say, "My resolution for this year is to not make any resolutions."

I can understand their minds.

I also have many times when I can't live up to my resolutions.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결심 없이 살아가는 것은 그럼 좋은 일일까요?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100% 만족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시간과 재능, 그 기회를 100% 다 사용하면서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변해야 될 부분이 있고, 성장해야 할 부분이 있으십니까?

But is it good to live without any resolution?
Are you 100% satisfied with your life now?
Are you 100% using up the time, talent, and opportunity God has given you?
Or is there still something that needs to change and something that needs to grow?

 

당연히 변해야하고 성장해야 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를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실패한다고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작은 변화라도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합니다.
목표한 것을 100% 달성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목표의 50%만 달성해도, 아니 10%만 달성해도 이전보다 더 성장한 일이기 때문에 좋은 일입니다.

Of course, we must always change and grow.

Therefore, we cannot stop our efforts to change.

Even if we fail continue, we must not give up to make small changes our efforts and we must continue to work hard

It's okay if we don't achieve 100% of our goals.

Even if we only achieve 50% or 10% of our goals, it is a good because it's more grown than before.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더 영적으로 현실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돌아보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우리 인생에 변화가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 부분이 바뀌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Our goal is to grow more spiritually and realistically than yesterday.

However, when we see deep inside our hearts, we have two kinds of minds.

First, we have the desire for change in our lives.

We want this part that we don't like to change.

 

그런데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계속 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과거에 살던 대로 해오던 대로 그대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익숙한 방식이 있습니다.
나에게 익숙한 음식이 있고, 익숙한 공간이 있고, 익숙한 취미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익숙했던 것들과 작별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 익숙한 것과 작별하는 것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However, at the same time, we also have the desire to keep living in a way that we are familiar with.

We want to live the way we used to live.
We all have a familiar way.
I have a familiar food, space, and hobby.
Making a difference in our lives means saying goodbye to things we're used to.
Is it easy or difficult for us to break up with what we're used to?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습관적으로 야식을 먹던 사람이 그것을 끊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어려운 일일까요

어렵습니다밤만 되면 맛있는 음식이 더 생각나겠죠 정말 힘들 것입니다

내 건강을 위해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야식을 끊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오랫동안 수십 년 동안 내 삶에 자리 잡았던 생활 습관어떤 영적인 행동을 바꾸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It's hard. For example, is it easy for someone who usually eats late-night foods to stop? Or is it hard?

Maybe at night, they'll think of delicious food more. that's really hard

For my health, not for other's health someone, to stop eating late-night foods is difficult.

So, it is really difficult to change my lifestyle or spiritual behavior that has been in my life for a long time or decades

 

변화는 어렵습니다.

익숙한 것과 작별하는 것도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고 더욱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물론 그 변화가 절대로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진정한 변화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Change is hard.

Saying goodbye to familiar things is really hard too.

However, in order to become more like Jesus and live a more abundant life, we must change.

The Bible tells us that it is possible for us to change.

Of course, this change will not be easy. 

But it is possible in bible.

Today, we will look at how true change begins.

1. 변화가 어렵고 불편한 이유 (Why Change is Difficult and Uncomfortable)

오늘 본문은 지혜 있는 사람과 지혜 없는 사람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Today's passage contrasts the wise person with the foolish person.

Let's read Ephesians 5:15 together.

"Be very careful, then, how you live--not as unwise but as wise"

 

에베소서 5장은 빛 가운데 거하는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 되신 주님 안에서 우리가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사람은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고, 지혜가 없는 사람은 어두움 가운데 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둠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그 사람은 좌우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 무엇이 악한 길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삶이 어둠 가운데 거하는 삶입니다.

Ephesians chapter 5 talks about living in the light.

It says that we should live as children of the light, in the light of our Lord who is the light.

Therefore, a wise person lives in the light, while a foolish person lives in darkness. 

So, how does a person living in darkness live? 

They can't tell the difference between the left and the right.

Living in darkness means not being able to make these distinctions.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공부 많이 하고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영적인 도덕적인 능력을 뜻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올바른 기준이 필요합니다.

The wisdom mentioned in the Bible is not just about having knowledge.

Just because someone studies a lot and knows many things doesn't mean they are necessarily wise.

The wisdom the Bible talks about is the ability to make spiritually and morally right decisions.

In order for us to make the right decisions, we need the right standard.

 

올바른 기준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 지식이 많다고 해서 꼭 지혜로운 것도 아닙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길이 정말로 선하고 온전하다는 것을 체험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지혜는 지적인 깨달음과 실제적인 경험과 영적인 성숙을 포함한 아주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I believe that the right standard is not other but the Bible, the Word of God.

However, that's not all. Just having knowledge of the Scriptures doesn't automatically make us wise.

We need to obey that Word and experience firsthand that God's way is truly good and perfect.

Therefore, true wisdom is a comprehensive concept that includes intellectual understanding, practical experience, and spiritual maturity.

 

그렇게 참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종의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고,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떤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예측하고 전망할 수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다 고려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A person with true wisdom has established a system to make right decisions.

They can learn from past experiences and objectively assess their current condition.

They can also look ahead, make predictions, and have foresight.

A wise person considers the past, present, and future while following God's will.

 

반대로 지혜가 없는 사람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죠.
그런데 가장 중요하게는 올바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51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On the other hand, a person without wisdom is unable to make proper decisions.

There can be several reasons for this.

However, the most important reason is that because they don't have the right standard, they cannot make the right decisions.

Let's read Ephesians 5:17 together:

"Therefore, do not be foolish, but understand what the Lord's will is." 

 

어리석은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 않는 사람, 주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것은요 그냥 내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가장 선하고 온전한 길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

그러면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진정한 변화가 어려운 이유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르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옛 자아의 관성을 따라서 살기 때문입니다.
The fool is no one else,
Foolish people are those who do not understand the will of the Lord and do not seek the will of the Lord.
Not seeking the will of the Lord is just living my own way.

There is the best and most perfect way for us, but ignoring it and living as we please

There is the best and most perfect way for us.
But if we ignore it and live our own way, then we will not be able to make the right decisions.

The reason true change is difficult is that we do not follow the good will of God, but live according to the inertia of our old self.

 

여러분 습관의 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큽니다.
특히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왔던 우리 옛 자아의 관성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수십 년 동안 내 마음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 안에 아주 강력한 관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의학자들은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매우 크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항상성은 몸의 생리적 기능, 화학적 조성에 있어서 평형 상태가 유지되는 일정하게 유지되는 과정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서 끊임없이 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항해서 우리 신체와 호르몬의 그 내부 환경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그러한 경향성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나름의 생체 리듬, 바이오 리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우리 삶의 반복된 패턴에 의해서 형성되었습니다.

Everybody, the power of habits is much stronger than we think.

In particular, the inertia of our old self, who lived according to the desires of the flesh, is much stronger than we thought.
It remains a very strong inertia in us because we have lived on our own for decades.

Medical scientists are emphasizing that our body tends to maintain homeostasis.
Homeostasis refers to a process that maintains a constant state of equilibrium in physiological functions and chemical composition of the body.

Simply put, it means maintaining a constant internal environment of our bodies and hormones despite the constantly changing external environment.

We all have our own biological rhythm, our own circadian rhythm. 

However, this is not something that suddenly appears one day.

It has been formed through repeated patterns in our lives for many years.

 

우리 몸은 기본적으로 이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력합니다.
이 관성이 아주 강합니다. 그래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술과 담배를 즐기던 사람이 이것을 그만두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기본적으로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는데

이것을 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옛 자아의 관성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변화는 불편하고 어색합니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방식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고, 내 몸에 익숙했던 그 옛 패턴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Our bodies naturally have a strong inclination to maintain homeostasis.

This inertia is very powerful, making it difficult to bring about change.

For example, it's challenging for someone who hasn't been exercising to start exercising.

It's also very difficult for someone who used to enjoy drinking alcohol and smoking to quit.

Our bodies and minds naturally strive for homeostasis,

which can be expressed theologically as following the inertia of our old selves.

The reason is because it's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way we've been living, 

and it's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old patterns we've been accustomed to in our bodies.

 

그러면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을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옛 자아의 관성을 따르는 그 사람은 정말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사람일까요?

나의 과거, 나의 습관, 나의 패턴대로 익숙하게 그것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로 자유로운 사람일까요?

자유 의지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아주 중요한 특징입니다.

Now, I ask an important question here.

Is a person who follows the inertia of their old self truly free in the true sense?

Is someone who lives according to their past, habits, and patterns really a free person?

Free will is a significant characteristic that distinguishes humans from animals.

 

여러분, 동물에게는 자유 의지가 없고 본성만 있습니다.

동물은 자기의 본성을 따라 살 뿐이지 동물이 일주일 계획을 세워서 그 계획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일주일을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과거와 다른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그 능력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과거의 관성을 이길 수 있고 과거와 다른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Animals don't have free will; they only have instincts.

Animals simply live according to their instincts; they don't plan their week and live according to that plan.

Only humans have free will.

Only humans have the ability to plan their week and live a day different from the past.

Do you believe this fact?

You have the ability to overcome the inertia of the past and live a day different from the past.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옛 자아의 관성대로 내가 과거에 살아왔던 그 습관대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삶이 아닙니다.
과거에 얽매인 삶이고 과거의 패턴에 구속된 삶인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우리가 옛 자아와 그 관성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 시작은 방탕의 위험성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However, many people don't experience true change and continue living according to the habits of their old self.

But strictly speaking, this isn't a life that is truly free.

It's a life bound by the past, bound by patterns of the past.

So how can we overcome our old self and its inertia?

It starts with recognizing the dangers of indulgence.

 

오늘 본문에는 아주 유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에베소서 5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여러분, 이 말씀은 성령 충만을 술취함에 비유한 것이 아닙니다.

 In today's passage, a very famous saying appears.

Let's read Ephesians 5:18 together: "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Everybody, this saying is not comparing being filled with the Spirit to being drunk.

 

예전에 기독교 어린이 만화 이런 거 보면요,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을 이제 비슷하게 설명한 것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술 취하면 말이 많아지듯이 성령의 충만하면 말이 많아진다.

술 취하면 기분이 좋아지듯이 성령 충만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술취함과 성령 충만함이 비슷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술취함은 육신에 속한 그 방탕을 표현하는 옛 자아의 전형입니다.

In the past, there used to be Christian children's cartoons.

There was that explained the concept in a similar way, equating being filled with the Spirit to being drunk.

For example, they said that just as people talk a lot when they're drunk, they talk a lot when they're filled with the Spirit. Just as people feel good when they're drunk, they feel good when they're filled with the Spirit.

But that's not the case. Being drunk and being filled with the Spirit are not similar. 
In the Bible, being drunk represents debauchery in the desires of the flesh, which is characteristic of the old self.

 

술 취함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방탕한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방탕이 무엇일까요? 방탕은 한마디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자고 놀고 싶은 대로 노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In the Bible, being drunk in one word, that it is debauchery.
So, what exactly is debauchery?  Debauchery is, in a word, living life according to our own desires.

It's eating what we want, sleeping when we want, and doing whatever we want for pleasure.

Is living like this a good thing or a bad thing?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자고, 놀고 싶은 대로 놀면 행복할까요?

언뜻 생각하면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루 세 끼를 제때 먹는 것이 건강에 좋을까요?

아니면 내 마음대로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 건강에 좋을까요?

제때에 식사를 하는 것이 우리 건강에 좋습니다.
Would we be happy if we ate whatever we wanted, slept whenever we wanted, and played whenever we wanted?

At first glance, it might seem that way.

But in reality, it's not the case.

For example, is it better for our health to eat meals at regular times or to eat whenever we feel like it?

Of course, eating meals at regular times is better for our health.

 

취침 시간을 정해놓고 일정한 시간에 자는 것이 건강에 좋을까요?

아니면 아무 때나, 새벽에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 것이 건강에 좋을까요?

당연히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이 일정한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Is it good for your health to set a sleeping time and go to bed at a certain time?
Or is it healthy to sleep whenever I want, at dawn, and get up when I want to?
Of course, having a consistent bedtime and wake-up time is good for your health.

 

낮과 밤이 바뀌어서 생활하는 것 우리 몸에 얼마나 안 좋은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면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죄로 인해 우리의 본성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성이 타락해서 우리의 욕구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면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지가 않습니다.

나의 욕구를 따라 살면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그래서 나의 욕구와 나의 충동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필요한데,

뇌 과학자들은 이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전두엽이라고 강조합니다.

We are aware of how detrimental it can be to our bodies when we disrupt the natural day-night cycle.

While it may seem good to live however we want, in reality, it's not.

Why? It's because our nature has been corrupted by sin.

Because our nature is corrupted, if we live according to our desires,
That's not good for us.

If I live according to my desires, I will damage my physical, mental and spiritual health.
So it is necessary to control and control my desires and my urges.
Brain scientists emphasize that the frontal lobe is responsible for this function.

 

인간의 뇌를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파충류의 뇌라고 불리는 뇌간이 있습니다.
뇌관은 호흡과 체온, 맥박을 조정하고 그래서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활동을 합니다.

두 번째로는 포유류의 뇌라고 부를 수 있는 변연계가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감정과 기억과 욕구를 주관하는 기능을 합니다.

세 번째는 영장류의 뇌라고 불리는 전두엽이 있습니다.
이 전두엽은 상황을 판단하고 예측해서 미래를 계획하는 그런 역할을 담당합니다.

The human brain can be divided into three main parts. Firstly, there is the brainstem, also known as the reptilian brain. The brainstem controls vital functions like breathing, body temperature, and heart rate, which are essential for our survival. 

Secondly, there is the limbic system, referred to as the mammalian brain. This part of the brain is responsible for our emotions, memories, and desires.

Thirdly, there is the frontal lobe, known as the primate brain.

The frontal lobe plays a role in assessing situations, making judgments, and planning for the future.

 

전두엽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에 한 가지가 충동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구와 어떤 본능, 그런 충동이 있는데 그것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두엽이 그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전두엽은 다른 뇌에 비해서, 다른 뇌 부분에 비해서 오랫동안 발달하고 성장한다고 합니다.

One of the most important functions of the frontal lobe is impulsivity control.

We all have desires, instincts, and impulsive urges, but the frontal lobe is responsible for restraining them.

Interestingly, the frontal lobe develops and grows for a longer period compared to other parts of the brain.

 

생명을 유지하는 뇌관은 엄마의 배 속에서 대부분 형성됩니다.
감정과 욕구를 주관하는 변연계는 유아기와 사춘기 때 대부분 형성이 됩니다.
그런데 전두엽은 사춘기를 지나 20대 중반까지 발달한다고 합니다.

1999년 네이처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전두엽의 발달은 20대 중반까지 계속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The brainstem, responsible for vital functions, is largely formed inside the mother's womb.

The limbic system, which governs emotions and desires, primarily develops during infancy and adolescence.

However, the frontal lobe continues to develop until the mid-20s, according to a study published in Nature in 1999.

 

그래서 10대 청소년들의 절제력이 약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청소년들은 아직 전두엽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과 이 욕구를 제대로 조절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 아이들이 새벽 3, 4시까지 게임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열정과 체력입니다.
생각 아무리 재미있어도 우리 어른들은 힘들어서 그렇게 못할 텐데

청소년들은 이 감정과 욕구가 더 앞서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이 전두엽이 완전히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충동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입니다.

This is why teenagers, in their teenage years, exhibit weaker self-control and impulsive behaviors. 

Teenagers haven't fully developed their frontal lobe, which means they struggle to regulate their emotions and desires properly.

That's why they can stay up playing games until 3 or 4 in the morning.

When you think about it, it's a remarkable level of passion and stamina.

Even adults, no matter how enjoyable the game is, can't do it.

Teenagers can do it because their emotions and desires are more dominant.

Their frontal lobe hasn't fully matured, so they struggle to control their impulses effectively.

 

그런데, 술에 취하면 이 전두엽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욕구를 절제하는 이 전두엽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술 취한 사람들이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지 폭력을 행사한다든지 아니면 성적인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술에 취해서 각종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By the way, it is said that this frontal lobe does not function properly when drunk.

The ability to make rational judgments and restrain desires, functions performed by the frontal lobe, is impaired.

That's why drunk people act impulsively.
They do things they wouldn't normally do, engage in violence, or fall into sexual temptation.
In severe cases, they become drunk and commit various crimes.

 

술에 취하면 전두엽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판단 능력이 흐려집니다.
또한 욕구와 이 충동을 절제하는 그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타락한 본능을 따라서 행동하는 그 행동을 가리켜 성경은 방종 혹은 방탕이라고 말씀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방종과 방탕은 나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건강을 해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내 건강에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롭습니다.

When you're drunk, your frontal lobes don't function properly, so your ability to judge right from wrong is blurred.
Neither does the desire and its function to restrain this urge work properly.
The Bible says that the act of acting according to such a fallen instinct is self-indulgence or debauchery.
As I said, self-indulgence and debauchery damage my physical, mental, and spiritual health.
Living as I want is not good for my health, but rather harmful.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러분 방종하기 위해서 우리가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육체의 욕구를 방치하고 그 욕구가 시키는 대로 따라 살기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퇴근 이후에 퇴근한 이후에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소파에 눕기 싫은데 내가 정말로 tv 보기 싫은데 억지로 그렇게 우리가 노력해서 하는 것이 아니지요.

또한 한밤중에 야식을 먹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밤중에 정말 야식 먹기 싫은데 억지로 노력해서 먹는 사람 없습니다.

But strangely, we don't need any special effort to be self-indulgent.
You just have to neglect the desires of the flesh and live according to the desires.

For example, after work, lying on the couch to watch TV doesn't require any special effort.

If you don't feel like lying on the couch or watching TV, no one is forcing you to do so. 

Similarly, there is no special effort required to eat late-night snacks.

If you really don't feel like eating snacks late at night, no one is forcing you to do it.

 

방종과 방탕은 아주 쉽고 편안한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로 가면 우리의 몸과 우리의 마음을 헤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막아주는 것이 바로 전두엽의 역할인데 술에 취하면 이 전두엽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한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Debauchery and recklessness are very easy and comfortable paths to take.

However, if we follow that path, it will wreak havoc on our bodies and minds.

The role of the frontal lobe is to prevent that, but when we become intoxicated, the frontal lobe fails to function properly.

The Bible simply states this fact in one sentence: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여러분 이 말씀이 하나님의 유익을 위한 말씀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유익을 위한 말씀일까요? 당연히 우리의 유익을 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서 방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 이 방탕의 위험성을 깨달아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방탕은 절제력을 잃은 것이고 그것은 자기 파괴로 이어지게 됩니다.
술 취함은 방탕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Are these words of the Bible for God's benefit? or not Is it for our benefit?

Of course, it is for our benefit.
God tells us not to be debauchery for our benefit and happiness.
Therefore, I believe that we must realize the dangers of this debauchery for true change.
Debauchery is a loss of self-control, and it leads to self-destruction.
Drunkenness is the quickest shortcut to debauchery.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스타 선수는 일본 선수 오타니 쇼웨이라는 선수입니다.
세계 최고의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와 타자를 병행해서 정말 놀라운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고등학교까지는 투수와 타자를 병행할 수 있는데

프로에 입단하면은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오타니 선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투수와 타자를 병행했고,

심지어 메이저리그에서도 병행해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투수로서 10승을 거두고 타자로서 삼십 홈런을 친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아마 야구를 아시는 분들은 이 기록이 얼마나 놀라운 기록인지 아실 것입니다.
올해가 지나면 오타니 선수의 계약이 끝나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Currently, the best star player in Major League Baseball is a Japanese player named Shohei Ohtani.

He is achieving remarkable performances as both a pitcher and a batter in the world's top baseball league.

Generally, until high school, players can engage in both pitching and batting.

However, upon entering the professional level, they have to choose one. 

But Ohtani, even in Japanese professional baseball, excelled in both pitching and batting, and he continues to do so in the Major Leagues.

He became the first player in MLB history to achieve 10 wins as a pitcher and hit 30 home runs as a batter.

Those familiar with baseball would understand how astounding these records are.

When this year is over, Ohtani's contract will come to an end.

Many experts are confident that he will secure the greatest contract in Major League Baseball history.

 

오타니 선수는 야구 실력도 실력이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프로 생활을 하면서도 단 한 건의 스캔들도 없었습니다.

술과 담배도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일본 리그에 있을 때 오타니 선수가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고 합니다.
경기 후에 얼마나 낙담했겠습니까? 운전기사가 그 선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에는 나가서 술 한 잔 해야죠?"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오타니 선수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술을 마신다고 해서 패배가 없어지지도 않고 내 일이 바뀌지도 않습니다."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정말 멋진 말이지 않습니까? 제가 이 인터뷰 기사를 보고 오타니 선수를 더 존경하게 됐습니다.
술 취하면 우리를 방탕으로 인도합니다.
내 마음대로 방탕하게 사는 것, 이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진정한 변화의 시작입니다.

Ohtani is not only known for his baseball skills, but also for his strict self-management.

He doesn't drink or smoke at all and concentrates solely on sports.
It is said that when he was in the Japanese league before, he was defeated by Ohtani.
How despondent must he have been after the match?
The driver asked the player a question.
"But on a day like today, should we go out and have a drink?" he asked.
Then Ohtani said.
"Drinking doesn't make defeat go away, and it doesn't change my job"

Isn't that an impressive statement?

As I read this interview article, my admiration for Ohtani grew even more.

Drinking leads us toward debauchery.

Living debauchedly on your own, realizing that this is dangerous is the beginning of true change.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속으로 변화될 나의 미래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변화될 그 모습을 마음속으로 미리 그려보는 것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특별한 능력을 주셨는데 그것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일어날 그 일을 우리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그 능력을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It is also important to imagine what you want to be in the future.

Don't just look at your current self, but imagine what you want to be in the future.

God has given us a special ability that allows us to see with our hearts, not just with our eyes

God has given us the ability to see the future with our hearts, even though it has not happened yet.

 

 

 

그래서 인간은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마음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자세히 주의하여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1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자세히 주의하여라는 이 말씀을 영어 성경으로 보니깐  "Look carefully"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변화의 시작은 자세히 주의하여 보는 것입니다.

So humans can see with their eyes and with their hearts.

Today's passage talks about how important it is to pay attention. 
Let's read Ephesians 5:15 together.
"Look carefully, then, how you live--not as unwise but as wise,"

The word "look carefully" is translated as "Look carefully" in the English Bible.
The beginning of change is to pay attention.


그러면 무엇을 볼까요?

지금 내 모습도 보지만 또한 앞으로 변화될 나의 모습도 미리 보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하지만 앞으로 변화될 나의 모습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눈을 여실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17,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아멘.

What should we look at?

We should look at our current selves, but we should also imagine what we want to be in the future.

We can see our current selves with our eyes. However, we cannot see our future selves with our eyes.

We can see our future selves with our hearts.

The apostle Paul proclaims that when God opens our hearts, we can see the future from God's perspective.
Let's read Ephesians 1:17-18 together.

I keep asking that the God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glorious Father, may give you the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 so that you may know him better.

I pray also that the eyes of your heart may be enlightened in order that you may know the hope to which he has called you, the riches of his glorious inheritance in the saints,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허락하실 때 우리의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의 내 모습도 볼 수 있지만 앞으로 변화될 그 영광스러운 모습도 미리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제한된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영원하신 그 하나님의 관점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될지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될 그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When God gives us the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 our hearts are opened.

Then we can see our current selves, but we can also see our future selves in all their glory.
We can see how we will be transformed in the eyes of God, not in the eyes of man.
People who can see this can have hope in any situation.
Because they can see the future that God has for them, which is not limited by what they can see with their eyes.
But this is not seen with our eyes, but with our hearts.


심리학자들은 '심적 시연'이라는 개념으로 이것을 표현합니다. 영어로 하면 "mental rehearsal" 이죠.

변화는 마음속에 그리는 이상적인 그 모습에서 시작된다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멘탈 리허설은 스포츠 선수나 예술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중요한 경기, 중요한 연주가 있을 때 그 실제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력으로 한번 그려보는 것입니다.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긴장하지 않고 준비한 것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머릿속에서 미리 예행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아주 생생하게 상상을 하면 그 실제 그 느낌을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긴장과 두려움이 있겠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일종의 멘탈 트레이닝을 하는 것입니다.

Psychologists call this "mental rehearsal".

Change starts with the ideal image that we draw in our minds.
Mental rehearsal is a common technique used by athletes and artists.
They imagine the actual situation in their minds before an important game or performance.
They mentally rehearse to be able to perform well in front of a large audience without feeling nervous.
We can feel the actual feeling of the event when we imagine it vividly, even though it has not happened yet.
It is a kind of mental training to overcome tension and fear.

 

사실, 저도 이것을 자주 합니다.

중요한 발표나 어떤 설교를 앞두고 기도하는 가운데 멘탈 리허설을 자주 합니다.
4차 로잔 대회를 준비하면서 어떤 중요한 기자회견도 많고 대형 집회도 많이 있었습니다.
어제는 한국 로잔을 대표해서 정말 수천 명의 청년들 앞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긴장된 순간을 앞두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면서 은혜를 구합니다.
동시에 멘탈 리허설을 통해서 실제 그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습니다.


긴장되고 떨리지만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설교하는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죠.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면 실제로 설교할 때에는 훨씬 더 긴장을 적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조금 더 확장해보면, 내가 되고 싶은 그 모습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입니다.

Actually, I also do this often. I mentally rehearse before important presentations or sermons, while praying to God.

While preparing for the 4th Lausanne Congress, there were many important press conferences and large gatherings.
Yesterday, I represented Korea Lausanne and preached to a thousand young people.
I go to God and pray for grace before such tense moments.
At the same time, I can vividly imagine the actual situation through mental rehearsal.
I imagine the scene of preaching while being nervous and trembling, but relying on God alone.
Surprisingly, I can be less nervous when I actually preach.
If I expand this a bit, I imagine the person I want to be in my mind.

 

 


예를 들어서,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내가 자녀에게 화를 내는 그런 부모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인내심과 온유한 마음을 가진 부모가 될 것인지 마음속으로 우리가 그려볼 수 있습니다.
내가 과거에 우리 아이가 어떻게 했을 때 내가 화가 났는지 생각해 보면서,

또다시 그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마음속으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 지금의 나의 어떤 성품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을 닮아갈 그 내 모습을 상상하고 미리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연습한 적이 있는 그 상황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연습한 적이 있기 때문에 과거의 습관대로, 옛 자아의 관성대로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연습했던 말, 내가 준비했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점점 더 더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하신 성품을 닮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For example, as a parent, we can imagine whether we want to be a parent who gets angry at our children,

or a parent with patience and gentleness.
Thinking about how I got angry when our child did something in the past, I can imagine how I will react when that situation happens again.
It is not about thinking about my current appearance or any of my current qualities,

but about imagining and pre-drawing the image of myself who will resemble the gentle character of Jesus.
And when that situation actually happens, we face the situation that we have practiced in our minds.
Because we have practiced in our minds, our words do not come out in the same old habits or inertia as our old selves,but we can say the words we have practiced and prepared.
Then I can gradually resemble the gentle and humble character of Jesus.

 

최근에는 이 영적인 체험과 뇌 활동 사이에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많은 연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앤드류 뉴버그(Andrew Newberg) 교수는

어떤 실제적인 영적인 체험을 할 때, 전두엽이 활성화되어 아주 고도의 집중력과 결단력이 나타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두엽은 상황을 판단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우리의 충동을 억제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의지력을 주는 것이 전두엽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집중력과 결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두엽의 기능입니다. 제가 뇌 과학자들의 책을 몇 권 읽어봤는데,

뇌 과학자들은 정말 전두엽을 신봉한다고 느낄 정도로 전두엽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두엽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의 어떤 욕구가 아니라

미래에 있을 그런 긍정적인 모습을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These days, there are many studies happening about the connection between spiritual experiences and brain activity. Professor Andrew Newberg from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says that when we have real spiritual experiences, our prefrontal cortex gets activated.

This leads to very strong concentration and decision-making abilities.

As said before, the prefrontal cortex is a very important part of our brain.

It helps us judge situations and plan for the future.

It also gives us the willpower to control our impulses and make the right choices, so we can go in the right direction. Successful people in society have something in common , they have good concentration and decision-making skills. That's because of the prefrontal cortex.

I have read a few books by neuroscientists, and they really believe in the power of the prefrontal cortex.

But to activate the prefrontal cortex, we need to feel and experience positive things that will happen in the future, not just our immediate desires.

 

 

그럼 어떻게 해야 그 미래의 긍정적인 모습을 우리의 마음으로 볼 수 있을까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주실 때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비록 지금의 내 모습은 부족하고 연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과 소망이 있을 때 진정한 변화는 시작되는 것입니다.인간은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마음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일어나게 될 그 일을 미리 볼 수 있는 그 능력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셨는데,

이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실 때, 우리는 미래에 변화될 그 모습을 미리 볼 수 있게 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 마음의 눈을 여시는, 그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ow can we see the positive future in our hearts?

I believe that it is possible when the Holy Spirit opens our hearts.

Even if we are weak now, we can be transformed by the grace and power of God.

True change begins when we have faith and hope.

Humans can see with their eyes, but they can also see with their hearts.

God has given humans the ability to see the things that will happen in the future, even though they have not happened yet. I believe that we need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o use this ability.

When the Holy Spirit opens our hearts, we can see the future and make the right choices by praying for it.

I pray that you all will experience the work of the Holy Spirit who opens your hearts in the name of the Lord. "

 

 

마지막으로 우리가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의 시간과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1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끼라 하는 이 말씀은 시간을 아끼라 하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또한 그 시간 너무나 빨리 지나기 때문에 인생의 모든 순간을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영어 성경에 보면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든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세월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카이로스인데 이것은 물리적인 시간을 의미하지 않고
영적인 의미에서 영원한 의미를 가진 아주 특별한 시간을 뜻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아주 특별한 기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여러 가지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 은사와 달란트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또한 그렇게 잘 준비되었을 때에 교회를 위해서, 이 사회를 위해서 섬길 수 있는 기회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아주 특별하게 공헌할 수 있는 기회도 주십니다.

Lastly, we must remember that our true transformation requires us to acknowledge the limitations of our time and opportunities.

Let's read Ephesians 5:16 together.

It says, "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because the days are evil."

The phrase "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means to value and utilize our time effectively.

Our time is limited, and it passes by quickly, so we should cherish every moment in our lives.

However, in the English Bible, it says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It means to maximize and take full advantage of every opportunity that comes our way.

In this passage, the word "opportunity" in Greek is "kairos," which doesn't refer to physical time, but rather signifies special moments with eternal significance in a spiritual sense.

In other words, it represents the unique opportunities that God gives us.

God grants us various opportunities in our lives.

He provides us with chances to develop our gifts and talents.

Moreover, when we are well-prepared,

He gives us opportunities to serve the church, society, and even contribute in a special way to the kingdom of God.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기회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셔서 우리에게 여러 번의 기회를 주십니다.
한 번 기회를 놓쳤다고 우리가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기회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 안 됐으니까 다음에 하지라고 편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해서 무언가 헌신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이걸 위해 기도해야겠다 생각이 들 때 다음에 하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다음이 있을지 없을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내 생각에는 내가 아직 부족하니까 다음에 해야겠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부르시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준비될 수 없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의 순종을 기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There is an important fact to note here: the opportunities that God gives us are not eternal.

Of course, God is merciful and grants us multiple chances.

We don't need to despair just because we missed one opportunity.

However, we should not assume that God's opportunities will last forever.

It's not a matter of thinking, "If I didn't do it this time, I can do it next time."

We cannot be comfortable with that mindset because no one can be certain if there will be another chance. 

When God touches your heart and you feel the desire to dedicate yourself or the thought of praying for it comes to mind, do not think, "I'll do it next time." Because no one can guarantee if there will be a next time. You may think, "I'm still lacking, so I should do it next time." But God does not call you when you are perfectly prepared. In fact, none of us can be perfectly prepared.

I believe that when we obey God as we are, just as we are, God is pleased with our faith and obedience.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타고 가실 나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마을에 가서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그 나귀 새끼를 한 마리 데리고 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보기에는 이 나귀 새끼가 아직 한 번도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연약한 것입니다.그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31절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예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는 연약한 나귀였습니다.
그래서 이해를 못할 거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다고 말하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의 능력, 우리의 재능, 우리의 경험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그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힘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When Jesus entered Jerusalem, He needed a donkey to ride on.

So He told His disciples to go to a village and bring a young donkey that no one had ever ridden before.

However, in the owner's eyes, this donkey had never carried anyone.

From a human perspective, it seemed inadequate and weak.

But at that moment, Jesus instructed His disciples to say, "The Lord needs it."

Let's read Luke 19:31 together. 

  1. If anyone asks you, 'Why are you untying it?' tell him, 'The Lord needs it.' "

Jesus knew exactly what people would think.

From their perspective, it was a weak donkey that had never been ridden.

They couldn't understand.

But Jesus told His disciples to say that the Lord needs it.

He proclaimed that He would use it.

 

Jesus knows our abilities, talents, and experiences.

He knows everything about us.

The Lord, who knows everything, wants to use us. But for what purpose?

Not to showcase our abilities and strength, but to reveal God's power.


그러므로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모든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온 이 기회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다음에 또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 지혜인 줄로 믿습니다.
월터 라이펠드(Walter Liefeld)라는 신학자는 세월을 아끼라 하는 이 말씀이

문자적인 의미로 "buying up the time"이라는 뜻으로 주장했습니다.
특별한 시간, 그 영원한 의미가 있는 시간을 사드리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는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우리는 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사기 위해서, 얼마든지 큰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전자제품을 중요하게,

또 어떤 사람은 옷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아낌없이 돈을 지불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시간을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셨습니까?

한 번 지나가면 끝인 이 시간을 위해서 이 시간을 영원히 구속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셨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여러분의 인생 중에서 과연 천국에서도 기억될 만한 그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이 질문은 아주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과거의 습관을 따라서 잘못된 패턴대로 살아갈 시간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며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기 때문입니다.
기회는 제한되어 있고, 준비된 사람이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So, true wisdom is about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that God gives us.

Instead of taking these opportunities for granted or thinking that there will always be another chance, we should find joy in obeying God's Word. I believe that is wisdom. 

A theologian named Walter Liefeld argued that the phrase "redeeming the time" has a literal meaning of "buying up the time."

It conveys the idea of valuing and investing in special and meaningful moments.

We are willing to pay a high price for things that we consider important.

Of course, what each person considers important may vary.

Some people may prioritize food, others may value electronic devices, and some may focus on clothing.

We can be willing to pay generously for what we deem important.

So, what price have you paid for your time?

What have you done to preserve and make the most of the fleeting moments and time that will never come back?

This is a difficult question. It's essential to recognize that our time and opportunities are limited.

We should not live repeating the same regrets and falling into wrong patterns of the past.

Our lives are too short to waste on the same cycle of remorse.

Opportunities are limited, and prepared individuals are the ones who can seize them.

 

흔히 말하기를 누구나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는 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데 그 기회를 놓친 사람은 평생 후회만 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회를 기대하고 열심히 준비한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붙잡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행복과 성공만을 위해서 붙잡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 기회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People often say, "Everyone gets three chances in life."

But if someone misses those chances, they will live a life full of regrets.

However, those who expect and prepare for opportunities can seize them when they come.

And they can use these opportunities not just for earthly happiness and success, but also for the eternal kingdom of heaven and God.

 

여러분 진정한 변화는 방탕의 위험성을 자각할 때 시작됩니다.
옛 자아의 욕구를 따라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이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마음에 눈을 열어서 우리의 마음속으로 변화될 그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이 열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시간과 기회가 제한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영원하지 않고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흐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5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True transformation begins when we realize the dangers of indulgence.

We need to understand that following our old desires and doing whatever we want is risky.

Also, we need to open our hearts and envision the future changes within us.

Our hearts should be open through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Lastly, we must remember that our time and opportunities are limited.

Our lives are not eternal, and time passes by quickly.

To make all of this possible,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s necessary.

Let's read Ephesians 5:18 together.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말씀합니다. 이 헬라어 동사는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한 번만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신앙으로 살아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도 예전에 기도 열심히 했어요. 나도 예전에는 선교 열심히 했어요. 이렇게 말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성령 안에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The verse specifically tells us to be filled with the Spirit, using the present tense verb.

It means that we should not only receive the filling of the Holy Spirit once in the past, but we should continue to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in the present.

We should not live relying solely on our past faith.

Saying, "I used to pray a lot in the past. I used to do a lot of missionary work," This makes no sense.

We should believe that we need to keep living in the Holy Spirit even now.

 

어제보다 오늘 더욱더 주님을 사랑하고

더욱더 성령을 사모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진정한 변화를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 pray that each and every one of you will love the Lord more today than yesterday.

May you pursue the Holy Spirit more and more. In the name of the Lord, I bless you.

May you become a new person through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nd experience true transformation.

In the name of the Lord, I bless you.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dp7cFwU8hmE 

날짜: 2023년 7월 16일

말씀: 문대원 목사

성경: 에베소서 5 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