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창세기 11장 1절-9절
말씀: 임상동목사
할렐루야
우리는 지난 주일까지 영적 은혜를 받기 위해 수련회를 했습니다
철야를 하면서 영적 전투를 싸워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 오늘까지 육적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거의 죽을 판입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영적, 육적 모두 승리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당에 나오셨다는 것은 죽어도 여기서 죽자하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오면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도 설교할 때쯤 되니 회복이 됩니다
제가 오늘 왜 일찍 여기 와 있었느냐 하면 목양실에서 이곳까지 올 힘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미리 와 있었던 겁니다
예배는 드려야 하고, 예배는 성공해야 하니까요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지요
여러분이 당한 고통과 고난, 육체의 병듦과 힘듦을 주님이 다 알고 계십니다
이것을 통해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를 의지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새 힘을 맛보는 거에요
이번 주간에 맛보지 않으면 언제 맛보겠습니까?
오늘 아침까지도 죽을 것 같던 내가 은혜의 보좌 앞에서 서서히 풀리고 있지 않습니까
예배가 끝날 쯤에는 여러분 모두가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상처뿐인 영광으로 그분 앞에 서 있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간 주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회복되는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기, 냉방병, 코로나, 열병, 지치고 힘든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도 능히 우리를 지키실 분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서 마음껏 은혜를 받고 새힘을 얻고 이번 한 주간을 시작합시다
오늘 말씀은 지극히 커서 세계를 상대로 하는 동시에, 지극히 작아서 나 개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론에 바벨탑을 쌓는 이야기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나 개인을 향한 이야기입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라크 지방, 고대 바벨론 도시에 가면 엄청나게 큰 바벨론 성이 있습니다
몇 십 킬로가 되는데 그 성 안에 탑이 있습니다
바벨탑은 평방 91미터이고 흔적이 없이 땅만 움푹 꺼져 있는데 공중에서 촬영한 결과 바벨탑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BC 4세기까지만해도 바벨탑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바벨탑을 직접 본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3분의 1은 땅 속으로 꺼져 내려갔고, 3분의 1은 날아갔고, 3분의 1은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바벨탑을 왜 쌓았습니까?
하늘로 통하는 문을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종교적인 의미입니다
바벨론은 세계의 중심이고 하늘의 신이 그곳에 내려옵니다
하늘의 문이 여기 있으니 바벨은 하늘 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인간들이 쌓아 놓은 바벨탑을 바라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역사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떠나 인간끼리 잘 살아보려는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이 존재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매번 개입하셔서 인간끼리의 작당을 박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관계해야 돼 그래야 살아” 말씀하시는 것이 성경의 역사입니다
아담이 하나님 없이 살아보려고 하다가 박살났습니다
가인도 하나님 없이 살아보려고 하다가 박살났습니다
노아 시대의 많은 사람들도 다 하나님 없이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바라보시면서 인간이 나와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느냐, 자기 힘으로 살아가느냐를 보십니다
거대한 인류적인 것이든 나 개인적인 것이든 하나님의 관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인간이 좀 잘되려고 하면 하나님이 딱 때리십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계획이 있는데 왜 네 멋대로 살려고 하느냐
이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이냐, 인간이냐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하나님이냐,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세상이냐
이 싸움판이 성경입니다
창세기의 위인들을 보시면 다 이런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벨탑과 바벨론 도시는 인간이 무엇을 해보겠다는 것의 상징입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이 해보겠다고 하는 가장 큰 규모가 바벨탑입니다
요즘도 “We are the One”을 외칩니다
어느 종교든 UN이든 카톨릭이든 “We are the One”으로 전세계를 합치지 못합니다
바벨탑은 그래서 유명합니다
바벨탑은 온 인간이 힘을 합쳐서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끼리 살아보자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오셨습니다
인간끼리 살자는 것은 죽음의 길이요, 멸망의 길입니다
노아의 후손들, 노아의 세 아들이 인류 종족을 펼쳐 나가는 데 있어, 노아 할아버지 때부터 생긴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홍수로 다 망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 홍수로 인간을 멸망시키실까 하는 트라우마입니다
인간이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아 스스로를 구원해보고자 하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결과이지요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시며 무기를 내려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무지개입니다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싸우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것을 믿지 못하고 점점 번식하다가 메소포타미아 시날땅 이라크의 대평원에서 ‘여기서 살만하구나! 여기에 성을 짓고 살자! 탑을 하늘에까지 쌓아 흩어짐을 면하자’하며 바벨탑을 쌓아 올렸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언어가 하나입니다
언어가 같다는 것은 뜻이 같고, 생각이 같고,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온 땅에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 때까지만해도 인간은 다 통하는 사이입니다
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인간끼리 하나님을 믿을 수 없으니 우리가 우리를 구원해보자 하고 뭉친 겁니다
벽돌을 굽고, 진흙 정도가 아니라 몰타르라고 불리는 아스팔트의 원료가 되는 역청을 발라 담을 쌓았습니다
각기 소리를 내며 자기 뜻을 펼치면서 “We are the One”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인간끼리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도모를 박살내기 위해 언어를 흩으셨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모든 범죄가 시작됩니다
하루 아침에 언어가 혼잡되니 벽돌을 가져 오니 “내가 물을 가져 오라고 했지 언제 벽돌을 가져 오라고 했느냐?”며 싸우는 겁니다
온갖 싸움은 말이 통하지 않는 데서 납니다
일을 도모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 죽이고 싸우고 절망합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자기의 뜻을 이룰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 겁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다면 어떻게 인간의 뜻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도 소리가 너무 많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집안에서조차도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들의 소리가 다 다르고 의사소통이 안됩니다
싸움 뿐이고 살인 뿐이고 절망 뿐인 이 세상입니다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혼잡시켜버린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언어를 통일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히브리 민족입니다
히브리 민족은 언어가 같습니다
한 하나님을 섬기고, 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율법을 지킵니다
혼잡하여 죽이고 싸우는 세상 속에서 히브리 공동체는 언어가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히브리 민족도 결국 실패했습니다
언어가 같지만 마음이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심을 차리다 보니 결국 하나님 뜻을 행하지 못하고 멸망당했습니다
오순절 성령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바벨론과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친히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시니 모두 다 한 목소리, 한 언어,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한 목소리, 한 마음, 한 뜻으로 말하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세계 인류 구원사에 이것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부터 오순절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해 오시고 성령 받은 사람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언은 언어가 통일되었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하나님 뜻을 행하는 언어입니다
바벨에서 흩어진 언어가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벨 역사 이후 어떤 인류도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기도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전부 자기 뜻을 이루는 자기 말, 자기 언어, 자기 생각만 하는 인간들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한 마음, 한 뜻, 한 언어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방언입니다
방언이 각기 다 다른 말인 것 같지만 하나님 뜻을 행하고 있다는 면에서 같은 언어입니다
그 뜻을 우리는 모르지만 바벨과는 다릅니다
제가 은혜 받고 성경을 읽으면서 바벨이 오순절 다락방 성령의 역사로 회복되었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으면서 이렇게 깨달아지지 않았습니까?
바벨에서 혼잡해진 언어가 오순절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통일되고, 하나되고,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 차원의 영해이기 때문에 설교에서 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제가 설교에서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방언과 관련하여 도전적인 상황이 왔습니다
디펜스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물론 잘못된 방언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방언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종교에도 있는 방언인데 기독교에 왜 없을까요?
다른 종교에 있는 방언은 귀신 뜻을 행합니다
기독교 안에 있는 성령의 은사로 나오는 방언은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지런히 방언으로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어떻게 일일이 다 기도하겠습니까?
바벨탑에서 혼잡해진 언어로 기도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날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통일된 언어, 한 목소리, 한 언어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않겠습니까?
바벨과 방언, 이제 오늘의 제목이 이해가 가십니까?
이 제목이 황당하다고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무슨 관계가 있나 싶었겠지요
성령의 은혜로 이 제목을 본 사람은 초창기에 은혜 받았을 때 벌써 알았을 겁니다
아무소리 안하고 있다가 왜 40년이 지나서야 이런 말씀을 드리냐하면 우리나라에 드디어 방언에 대한 도전이 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오순절의 방언이 바벨탑과 관련 있습니다
바벨에서 흩어진 언어가 오순절에서 하나되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영이 성령께서 하게 하심을 따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말로, 한국 말로 기도하면 자기가 알아 듣지만 자기 뜻일까요, 하나님 뜻일까요?
자기 뜻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 뜻을 위해 막 기도하다보면 방언이 나오는데 방언으로 기도하면 하나님 뜻을 이루어드리는 순간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재미가 없다, 시시하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안할란다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럴 것 같으면 은사를 뭐하러 주셨겠습니까?
당당하게 은사를 받아서 하나님 뜻을 행하는 자가 됩시다
방언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는 사람마다 다 다른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백 사람이면 백사람이 모여서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이것이 오순절 성령의 역사에서 나오는 방언의 역사입니다
방언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돼 구시렁 말이 많습니까?
우리는 바벨과 방언을 연결해야 합니다
바벨은 인간의 뜻을 이루었지만, 방언은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비록 나는 쓰러지고 넘어지고 병에 걸려 아파 넘어갈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는 순간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 은사를 주신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십시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뜻이 이루어집니다
성도들의 모든 것을 위해 간구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고,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갈 수 있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로 기도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혼잡해져 버린 인간끼리의 세상인 바벨은 희망이 없습니다
말이 안 통합니다
같은 한국말이라도 뜻이 다르고, 마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말이 안 통합니다
말은 한국말을 하는데 생각을 달리 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 형제와 형제 사이, 이웃과 이웃 사이에 말이 안 통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의 조건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인간끼리만 말이 통해서 사고쳐서도 안되겠습니다
둘이 말이 통해서 은행에서 돈을 빼돌리자 하면 안되겠지요
하나님을 떠나 말 통하는 것은 별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말이 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잘 몰라도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말씀 보는 중에 하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열심히 기도하면 한국말로 나오기도 하고, 방언으로 나오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행할 때 하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과 언어가 통해서 기도하는 것이 방언입니다
근대사회 기독교에서 방언이 터진지가 100년쯤 됩니다
100년간 방언에 대해 왈가왈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으로 정리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말이 필요없잖아요?
여러분, 더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잘못된 것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할 때 방언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것들이 다가오겠지요
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내 신앙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마귀가 항상 옆에 와서 다른 언어로 끌고 갑니다
하나님 뜻을 행하지 말고 너의 목적을 이루라는 것이지요
하나님 뜻을 행하지 말고 세상 것을 추구해 가도록 하는 것이지요
다른 기도를 하게 할 때 구분해서 물리치셔야 합니다
예수가 생각나지 않으면 구분해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예수로부터 떠나거들랑 물리치셔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생각나야 되고, 죄와 마귀와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하고, 이웃에 대해 사랑의 마음이 올라와야 진짜 성령이 인도해가시는 방언 기도의 역사입니다
이것과 반대로 가면 틀린 기도이니 차라리 안하는 것이 낫습니다
기도가 어떤지도 모르고 막 하는 것 보다는 안하는게 낫습니다
모를 때는 하지 마십시오
주님과 우리 사이입니다
주께서 기도하게 하실 때는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는 순간입니다
이 땅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를 한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 아닙니까?
전세계 어디에서 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기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기도의 특권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목 하실 것이고,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이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가진 것 없지만 기도의 은사를 가지고 기도가 어떤 것인지를 바벨과 비교해서 알게 되었을 때 방언에 대한 자신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유튜브 등 어떤 매체를 통해서건 방언에 대해 부정적인 것, 잘못된 것, 들리거들랑 다 무시하시고 바벨과 방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벨은 인간의 뜻을 행하지만 방언은 하나님의 뜻을 행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살면서 아버지의 뜻을 위해 기도하고 싶을 때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해 봐도 나한테 별 것 없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인데 꾸준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재미 없다고 치우도록 하실까요?
기도의 공로가 있는 겁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를 많이 했으니 더 많은 비밀을 알려주시고 능력을 주실 것이 아닙니까?
주님과 친구가 되어 더 가까이 갈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 하다 치우면 안됩니다
집에서 하든, 교회서 하든, 매일 하든, 조금씩 하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네모국어공주 슨생님, 친절한 은희씨
https://blog.naver.com/carie76/223189662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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