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pecial Lecture/Sermon

(임상동 목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by 마이코 2023. 8. 30.

 

성경: 요한복음 21장 15절-19절

말씀: 임성동목사

 

할렐루야

내일 모레가 입추입니다

뜨겁던 여름도 지나갑니다

참으로 대구의 태양은 뜨거웠습니다

단 한 번의 햇빛에 살갗이 그을러 버리지만,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피부는 다시 하얘질 것입니다

여름에는 마음껏 그을리고 겨울에는 마음껏 하얘지면서 우리 몸의 신비를 자연과 함께 즐기시기 바랍니다

물론 햇빛도 자외선 등 몸에 해로운 것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 속에서 버틸 수 있어야 합니다

에어컨에 너무 의존하면 목이 다 갑니다

주님의 지혜 속에서 여러분의 건강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참으로 느낍니다

오직 영원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영원하신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순간을 살면서 무한한 하나님의 세계를 만나야 합니다

유한한 인간의 세계를 사는 동안 영원을 잡아야 합니다

순간을 살아가는 동안 영원을 잡지 못하면 순간으로 끝납니다

순간의 삶 속에서 영원을 잡으면 영원한 겁니다

영원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영생을 소유한 자들이기에 이 가치를 더 느낍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주님은 이 땅의 아무에게나 막 나타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영원은 숨겨져 있고 비밀입니다

그러나 미스테리한 베일에 싸여 있는 주님을 리빌(reveal)해주십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지만 숨겨져 있기 때문에 천을 싹 걷어 주시는 겁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눈에 덮인 천이 벗겨질 때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의 순간, 말씀의 순간, 주님을 묵상하는 순간,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순간, 주님께 나아가는 순간 주님께서 보여주십니다

빛 가운데 살아가다가 어둠 가운데 들어가는 순간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빛과 어둠이라는 첨예한 대립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늘 주님을 부여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유지하고 있어야 눈이 가리워서 앞에 계신 주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깨우쳐 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공동체입니다

맞습니까?

예수를 만나기 원하는 공동체, 예수를 사랑하기 원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공동체는 아닙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순간을 사는 인생이 영원을 잡는 상황을 말합니다

놀라운 축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오셨다면 주님을 만나야 하고, 주님을 만나셨다면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을 추구해 가는 교회가 우리 교회입니다

 

신약 성서에 여러 모습의 공동체가 나옵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나는 마태의 공동체는 제자를 삼기 위한 제자 공동체였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제자로서 삶을 살기 바랐습니다

주님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공동체, 구약의 율법이 아니라 주님의 새로운 율법을 가지고 새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 공동체가 마태 공동체입니다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마가 공동체는 복음을 전파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마다 귀신이 쫓겨 가고, 병자가 낫고, 뱀을 집어도 상하지 않는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가 마가 공동체입니다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누가 공동체성령 공동체입니다

창세 전부터 역사하시던 성령께서 구약을 통과해 오시고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성령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예수께서 성령을 받으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성령으로 부활하시고, 성령으로 승천하셨습니다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사람들을 변화시키시고, 성령으로 불러 모은 사람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에 대한 모든 것을 밝혀 주는 공동체가 누가 공동체입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요한 공동체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으로부터 ‘사랑’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을 우리에게 물려 줍니다

신학이 발전하고, 성경 읽기도 발전합니다

예전에는 사복음서를 네 생물에 비유했었습니다

여러분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을 읽다가 이와 관련한 내용이 나올 때 참고하시도록 설명드립니다

마태복음사자에 비유합니다

동물의 왕인 사자에 비유하여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선언합니다

다윗의 후손이시며 왕족이신 예수의 족보를 보여주신 책으로 사자 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은 송아지, 즉로 비유합니다

일하는 종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표현합니다

누가복음인자로 비유합니다

에스겔서, 다니엘서에 ‘사람같은 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를 말합니다

요한복음독수리에 비유하여 신성을 나타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하지요

즉, 예수는 왕이요, 종이요, 인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사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를 네 가지로 해석을 했었습니다

마태복음은 마태로부터 전승된 신앙을 마태 공동체에게 물려주는 책입니다

마태복음의 결론은 “가서 제자삼으라”입니다

마가복음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라"

누가복음"성령을 받아라"

요한복음은 원래 20장에서 끝나는데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열심히 가르칩니다

21장 한 장을 더 써서 요한 공동체에 주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를 담습니다

“사랑하라!”

오늘 사랑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있는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출발합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세 번씩이나 나타나셨을 때는 의미가 있는 거지요

세 번째 나타나셨을 때는 열 두 제자가 다 있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있는 일곱 제자들만 있었습니다

일곱 제자 중 다섯 명의 이름은 나오고 두 명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한 번 만나서도 안 되고, 두 번 만나서도 안되고, 세 번은 만나야 되나 봅니다

주님은 그렇게 세 번씩이나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확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이 한 번만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었지만 또 의심하는 겁니다

세 번은 해야 하늘에서 역사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삼 세판을 좋아합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메시지를 주시려고 나타나신 것 같습니다

베드로를 따라갔던 사람들은 덩달아 복 받았습니다

원래는 베드로 혼자 고기 잡으러 가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지만 주님이 곁에 계시지 않으니까 주님을 따라 다닐 수도 없고 주님 없는 인생이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겁니다

며칠을 보냈지만 할 일이 없으니 일을 하려고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세상의 생업에 복귀하려고 간 것이 아닙니다

그저 착잡한 심정에 무료하게 집에 있기 보다는 바닷가로 간 것이지요

주님이 언제 나타나실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될 지도 모르니 내 할 일을 하는 겁니다

내가 하는 산업의 현장에 묵묵히 가는 겁니다

그곳에 주님이 오십니다

밤새 고기를 잡아 봤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아침이 되면 호숫가에 조반 거리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고기를 좀 잡았는지를 묻습니다

원래는 배를 갖다 대어야 사람들이 고기를 살 건데, 주님은 배가 가까이 오기도 전에 멀리서 부르십니다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은 입구에서 고기 살 사람이 기다리는가보다 생각했겠지요

배를 갖다 대면서 대답해도 되지만 제자들은 멀리서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대답해 줍니다

주님이 배를 갖다 대지도 않고 배가 호수 깊은 곳에 있는 상황인데 왜 물으셨을까요?

고기가 없으면 잡으라고 말씀해 주시려고 물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밤새 허탕치고 들어온 배에 주님이 올라타셔서 다시 깊은 데로 가자고 하십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렇게 해주시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관계는 발전하는 겁니다

실험해 볼 필요 없습니다

“고기 있느냐?” “없어요” “오른 편으로 던져라”

오른 편으로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 지도록 고기를 잡았습니다

'저 사람 누구야?' 했을 때 요한이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왜입니까? 요한이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뒷모습만 보고도 알아보고, 그림자만 보고도 알아보고,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알아봅니다

이런 사랑을 해보셨나요?

'님이 오시나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사랑 좀 하세요 여러분!

사랑하면 지옥갑니까?

요즘같은 세상에 사랑으로 사는 것 같아도 진짜 사랑은 없더라구요

사랑이 뭔지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것 같은데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을 모르니까요

사랑으로 가득찬 세상인 것 같으나 진짜 사랑이 없어요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거지요

우리는 진짜 사랑을 좀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예수님과의 사랑 관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십니까?

호숫가에 들어오기도 전에 주님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고기가 잡혔을 때 베드로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주님과의 첫 만남이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누가복음에서 주님과 고기를 잡던 기억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때는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쟎아요

고기가 잡혔을 때 이분이 누구신지를 느꼈을 겁니다

가슴이 뛰는 겁니다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지요

요한에게 “저분이 누구신가?” 물었더니 “주님이시다”

주님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예의를 갖추기 위해 옷을 입고 바다에 뛰어 들었습니다

사랑에는 눈이 멀어야 됩니다

옷을 입고 있다가도 옷을 벗고 헤엄쳐야 되는데 사랑은 거꾸로입니다

옷을 벗고 고기를 잡다가 옷을 입고 바다에 뛰어드는 겁니다

당시에는 옷이 귀했기 때문에 옷을 버리지 않기 위해 옷을 벗어놓고 어업을 했는데 주님을 만나러 가야되니 옷을 입고 바다로 뛰어든 겁니다

여러분, 정신 차리면 사랑은 못합니다

정신 차려보니 결혼했더라는 겁니다

사랑은 정신없이 하는 겁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주님이 보고 싶은 마음에 혼자 헤엄쳐서 정신없이 주님께 갑니다

다른 제자들은 어떡하라구요

남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제가 어떤 경우에도 경쟁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랑만큼은 경쟁하라고 말씀드립니다

사랑도 꼴찌하면 안됩니다

사랑은 절대 가치이기 때문에 누가 많이 한다고 줄어드는 것 없습니다

내가 온 힘을 다 해야 되고 다른 사람이 온 힘을 다해도 상관 없습니다

내가 예수를 제일 사랑한다고 고백하셔야 합니다

내가 이만큼 사랑하지만 저 사람이 더 사랑할거야 하면 안됩니다

마귀가 틈 탑니다

주님은 내가 제일 사랑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오신 분들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랑에 자신이 없는지 여러분의 표정들이 좀 떨떠름합니다

여러분이 전부 사랑에 미쳐서 바뀌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사랑에는 양보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사랑에 양보를 많이 하지만 그것은 신앙이 없어서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사랑을 놓치다'라는 영화 보셨습니까?

어른들이 보면 “잡지 왜 안 잡아” 답답해 합니다

더더구나 신앙인들이 양보하는 것이 신앙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는 사랑을 잘못 배운 겁니다

사랑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믿음은 자라는 것이지만, 사랑은 연습해야 합니다

믿음은 열심히 먹으면 자랍니다

그러나 사랑은 훈련이고 연습입니다

해봐야 잘 하는 겁니다

사랑해보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은 실행이 안되는 겁니다

베드로는 사랑을 해봤고 사랑에 실패를 많이 해봤습니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으리라, 내가 바다에 뛰어들어서 주님께 제일 먼저 가도 다른 제자들이 알아서 한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왜 남 걱정 합니까? 자기만 잘하면 되지요

베드로는 달려가는 겁니다

다른 애들이 욕하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 안합니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요한에 대해 증언하고 있으니 요한이 배에 남아 있고 요한 일행이 바닷가에 도착하기까지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릅니다

도착해서 보니 예수님과 베드로가 앉아 있습니다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가 요한의 관심사는 아닙니다

요한까지 막 뛰어오면 되겠습니까?

요한은 뒷수습해서 와야지요

요한이 잡은 고기를 세어보니 153마리 잡았더라는 겁니다

상품 가치가 있는 쓸만한 고기였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방금 잡은 고기를 가지고 오라고 하니 베드로가 뛰어가서 가지고 옵니다

베드로는 이순간을 독차지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나서 21장 15절입니다

베드로와 주님의 사랑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는가를 오늘 본문에서 보여줍니다

요한은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계실 때 사랑 연습을 충분히 많이 했습니다

남자가 남자 품에 안긴다는 것이 쉽습니까?

요한은 그 품에 의지해서 매일 어찌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사랑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드디어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세 번 딱 말씀하십니다

한 번 해서 안됩니다

한 번 해서는 못 알아먹거든요

첫 번째 질문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전제가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보다”

왜 이렇게 질문 하셨습니까?

베드로가 자기가 예수님을 제일 사랑한다고 했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했거든요

이것부터 주님은 확인하고 싶으셨습니다

사랑은 말로 함부로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똑바로 알아야 하는 겁니다

“진짜 니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해?”

물으시니 베드로가 “예!”라고 먼저 대답합니다

자기 확신, 자기 결단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오이다(알다)" 하십니다

"오이다"라는 단어는 통찰하다, 직관하다, 안 봐도 안다, 하나님이시니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아십니다

베드로의 대답에서 “이 사람들보다” 는 빠졌습니다

베드로가 드디어 절제되어 가는 겁니다

“주님, 이 사람들보다 당신을 더 사랑한다고는 말씀 못드려요 이 사람들이 주님을 더 사랑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베드로에게 삶의 변화,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이 굳이 물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야”

책임과 의무를 같이 주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랑에 허풍 떨고 건방지게 쓰러지지 말라는 말씀을 함께 주시는 겁니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주님께서 물어 주셨을 때는 첫 번째는 네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느냐를 물으시는 것이고, 두 번째는 네가 이 사람들을 이끌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 이 사람들보다 당신을 더 사랑한다면 이 사람들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드로는 “이 사람들보다 당신을 더 사랑한다”는 말을 뺏습니다

이것을 보면 베드로는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말 실수 했습니다 인간이 세운 거에요 사람들이 나를 띄워 준거에요 괜히 우쭐해서 내가 책임져야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거지요

두 번째 질문입니다

사랑은 발전하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두 번째 물으셨을 때도 “예!”가 먼저 나옵니다

“주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변화를 일으키셨습니다

“이 사람들보다”라는 말이 없는데 주님 입장에서 이 부분이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님께서 순수하게 베드로만 보십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 자체를 보시는 겁니다

“베드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에서 베드로의 변화를 살펴보면,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베드로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했습니다

주님도 그것을 확인하셨기 때문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개인에게 확인하셨습니다

이 정도하면 됐는데 왜 세 번째 질문을 또 하셨을까요?

마지막 통과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에서 “아가파스 메?” 라고 "네가 나를 아가페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아가페는 신앙적인 사랑, 하나님과 관계된 믿음의 사랑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당신을 필레오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필레오는 인간적 사랑입니다

주님을 love(아가페)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like(필레오)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좋아하는 거지요

인간적 사랑은 좋아해서 사는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좋아합니까? 스포츠? 드라마?

좋아한다는 겁니다

반면 부모님이 너를 사랑한다고 할 때는 좋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가페는 신앙적 사랑, 하나님을 믿는 사랑, 믿음을 가진 사랑입니다

좋든 싫든 하는 사랑이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주로 부모에게 있고, 자녀들에게는 필레오가 있습니다

친구를 좋아해서 사랑하는 것이 필레오의 사랑입니다

주님이 첫 번째로 “네가 나를 아가페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필레오합니다” 대답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당신을 가장 좋아한다는 대답입니다

주님보다 더 좋은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더 좋아할 수 있는 것이 필레오의 사랑입니다

아가페한다면 주님이 지옥에 가더라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거지요

주님이 실패하더라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주님이 두 번째도 “네가 나를 아가페하느냐?” 물으셨고, 베드로는 “예, 주님 제가 당신을 필레오합니다”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듣기에 아직도 베드로가 사랑에 대해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필레오하느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상태로 물어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를 확인시켜 주신 것이지요

“네가 나를 필레오하는 건 확실해?”

“아가페 하느냐?” 물으셨을 때 “저는 필레오합니다” 대답했지만

“필레오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고민했습니다

고민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은 고민해야 합니다

사랑은 고민해야 합니다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 대해 고민고민해봐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에 대해 고민합니다

내가 진짜로 주님을 가장 필레오하는가?

필레오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가장 좋아한다는 뜻이거든요

여러분은 주님을 필레오하십니까?

주님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아가페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을 아가페합니다

주님의 아가페를 알고 있고, 주님을 아가페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베드로는 성령 받기 전입니다

성령 받기 전의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예수 때문에 인생 미쳤습니다

필레오 한 겁니다

거기에 성령 받았으니 다 된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성령 받아서 예수님을 아가페하지만 필레오합니까?

해 본 적은 있습니까?

이것이 오늘날 우리 눈 앞에 놓여 있는 싸움입니다

저는 이 질문 앞에서 당신을 필레오한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스포츠를 더 좋아했고, 세상을 더 좋아했고, 세상의 성공을 더 좋아했는데 어떻게 내가 주님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에게 가능성이 있었던 것은 주님이 제 첫사랑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필레오의 첫 사랑입니다

그 이후의 사랑은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좋아해 본 분이 주님이십니다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베드로의 심정을 좀 이해합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살펴봤습니다

진짜로 내가 예수님을 가장 좋아하는가?

고민고민하면서 자기를 살펴봤습니다

세 번째 대답은 조금 다릅니다

“예!”가 먼저 나오지 않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질문에는 “예, 주님” 이라고 대답했는데 세 번째 질문에는 “주여”라고 먼저 말합니다

“예”가 없습니다

세 번째 필레오 하느냐고 물으셨으니 베드로가 고민하는 거지요

“내가 진짜 주님을 필레오하는가?”

인간적으로 예수님을 제일 좋아하는가 고민한 겁니다

아직 한 번도 인간적으로 누구를 좋아해본 적이 없는 분은 주님을 제일 좋아하십시오

너무나 놀라운 천국을 살 것입니다

이미 다른 것을 좋아해버린 사람은 다시금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를 더 좋아하는 것이 좋을지를!

주님을 좋아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보다 주님을 더 좋아할 수 있느냐

더 좋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저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 성서소망 공동체, 요한 공동체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한 명만 나와도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싶은 공동체, 예수를 사랑하고 싶은 공동체, 예수를 최고로 사랑하고 싶은 공동체가 성서소망 공동체의 목표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성령 충만을 입었을 때 순복음 교회에서 예배드리면서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묻고 수 천명의 사람들이 “아멘” 할 때 저는 아멘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진짜 주님을 사랑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내가 주님을 사랑하지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고맙고 감사하지만, 주님을 보고 싶어 왔지만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4강으로 우리나라가 올라가서 잠시 후면 스포츠 중계를 하는데 예배 끝나면 중계 보러 가고 싶은 내 모습을 보면서 주님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여러분은 성경 읽기가 좋습니까, 폰 보기가 좋습니까?

솔직히 무엇을 좋아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좋아하는 것이 없으면서 주님을 안 좋아합니다

세상에는 하나뿐인 사랑을 던져서 좋아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지만 이걸로 됐다 하고 대충 만족하고 사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보세요

이거다! 합니다

아가페 플러스 필레오입니다

영성 플러스 지성입니다

영적인 것 플러스 육적인 것 다 주님입니다

영으로는 주님이고, 육으로는 사람이고 명예고 출세고 정욕일 수 있습니까?

세 번째 질문에 베드로가 자신을 살펴봤듯이 여러분도 무엇을 필레오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베드로는 살펴봤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압니다 내가 속일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내 마음을 아십니다

그러나 당신과 지난 3년간 겪어 왔던 그 경험으로 당신은 아십니다

내가 당신을 필레오하는 지를...

안다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모든 것을 아십니다’의 안다는 것은 ‘오이다’입니다

‘내가 당신을 필레오하는 줄을 당신은 아십니다’의 안다는 것은 ‘기노스코’입니다

기노스코는 당신이 겪어봐서 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필레오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하나 뿐인 사랑을 예수께 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하나 뿐인 사랑을 예수께 못 드리고 있습니다

가끔 어느 한 쪽에 올인하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

여러분이 이것 저것 사랑하지만 하나 뿐인 사랑을 완전히 던지지 않았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께 던질 희망이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이것도 사랑하고 저것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 남자도 사랑하고 저 남자도 사랑한다면 사랑이 아닙니다

남자도 사랑하고 물질도 사랑한다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 뿐인 사랑을 어디에 주었습니까?

여러분은 아직 아무 데도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 해볼까, 저것 해볼까, 이러면 좋겠네, 저러면 좋겠네 하고 있는 거지요

사랑했으니까 결혼하고 아이 낳으니 사랑하고 사는 것 같지만 진정으로 내 마음을 줘 본 사람은 다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 뿐인 내 마음을 예수께 던져야 할 교회입니다

좋아하면 미치는 겁니다

세상에서 세상 것을 사랑하는 연습을 많이 해보셨쟎아요?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시쟎아요?

오늘 말씀의 초점을 나눕니다

예수님을 필레오 합시다

필레오는 인간끼리 해 본 것과 똑같습니다

누군가를 지독히 사랑해 보셨습니까?

그 사랑으로 예수를 사랑하십시오

인간적으로 예수를 사랑하십시오

인간적으로 예수를 제일 좋아합니까?

세상에서 사랑할 것이 없는 사람에게 유리합니다

세상에서 사랑할 것이 천지인 사람은 어느 천년에 예수를 좋아합니까?

세상에서 낙이 없고, 세상에 정이 없고, 세상에서 좋아할 만한 것이 없는 사람은 예수를 필레오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필레오하셔야 합니다

 

필레오는 연습해야 합니다

사람 사랑하듯이 연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벌거벗고 뛰어가겠습니까?

옷을 딱 입고 가야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세요

짜증나게 하지 마세요

연습입니다

사랑은 영성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지성으로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영성과 지성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영적으로 사랑하기 쉽습니다

육적으로 지성적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감정이 되기 쉽습니다

감정에 매달리는 사랑이 되니까 좋았다 나빴다 하는 겁니다

지성적인 것은 생각으로 말씀으로만 사랑하는 겁니다

지성적으로만 사랑하면 뜨거움이 없는 겁니다

내 가슴에 불붙는 인격적인 만남이 없는 겁니다

따라서 사랑을 하되 영성과 지성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영성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영적인 판단을 잘 할 수 있는 훈련을 쌓는 것입니다

지성은 내 신앙을 지성적으로 인격적으로 잘 분석하여 믿음으로 굳게 잘 나가는 것입니다

감정에 의존하지 않고 사실에 의존합니다

믿음에 의존하는 것은 지성에서 나옵니다

사랑은 영성과 지성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불이 탁 붙었는데 영성으로만 사랑한다면 보고 싶으면 막 뛰어나고, 보기 싫으면 안가는 겁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중매를 해서 사랑을 시작한 커플이 연애해야하기 때문에 전화를 한다면 곤란하지요

딱 한 번만 만나기로 했으니 한 번 만난 걸로 의무를 다했고, 집 앞까지 바래다 주기로 했으니 집 앞에서 딱 돌아서고 이런게 사랑이 아니쟎아요

사랑은 지성과 영성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영적으로 사랑을 잘 하고 있고, 영성으로 사랑하는 법을 많이 훈련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성을 가져야 합니다

지성으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소개합니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에 병합됩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우리 자체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의 속국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1910년에 출생한 사람들은 태어나보니 일제 시대인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모던 보이, 모던 걸이라고 합니다

모던 보이들이 2,30대가 되었을 때 그들은 조선인인데 일본제국 국민입니다

세계화가 되어 있는데 조선 땅에서는 해외 동향을 알 길이 없고 책을 통해 열심히 서구화를 하는 겁니다

당시에 지성이 풍부했습니다

유럽의 현대 작가들의 책을 조선에서 다 보고 있었습니다

조선은 공부하는 인간들입니다

지성의 최고조를 맞은 때가 1930년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도 그때의 지성 못 따라갑니다

지성들 가운데 눈에 확 띄려면 비정상을 추구하면서 좀 튀어야 합니다

평범하게 해서는 눈에 띌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을 뒤집어야 앞설 수 있는 겁니다

이상이라는 소설가가 있었습니다

가장 이상한 소설가입니다

튀어보려고 했겠지요

정신 상태는 비정상적입니다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고 정상적인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신문에 발표하는 시 중 ‘오감도’를 보면 시가 아닙니다

미쳤다는 댓글이 막 달리는 겁니다

당시의 댓글은 우편에 써서 신문사에 보냈습니다

거의 기독교인들이 비판적인 댓글을 많이 보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상을 사랑했던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의 사랑은 진짜 사랑일 거란 느낌이 좀 오지요?

사랑이 뭔지 모르면 이상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변동림이라는 여성인데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습니다

자기 오빠 변동욱이 운영하는 찻집에서 이상을 처음 만났습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젊은 여대생이 찻집에 앉아 도스토예프스키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상이 책을 읽은 느낌이 비슷하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말을 걸어 옵니다

변동림은 사랑을 아는 여자였습니다

분명 기독교 여성이었을 겁니다

교회 안에 머물지 않는 뛰어난 신여성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본명이 김해경인 이상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3개월만에 이상은 일본에 건너갔습니다

일본에서 이상이 죽은 후 변동림이 달려와서 장례를 다 치러주고 7년 후 세계적 화가 김환기 화백과 결혼합니다

이름을 김향안으로 바꿉니다

그녀의 사랑은 멋있습니다

김환기 화백은 '아이가 셋 있는 유부남인데 당신과 결혼을 어떻게 합니까?' 했더니

변동림이 '당신의 호를 나에게 주시오 그 이름으로 내가 살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녀는 변동림을 버리고 김향안으로 사는 겁니다

사랑은 그런 겁니다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성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쓴 수필 '월하의 마음'에서 자신의 사랑관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사랑은 지성입니다

지성으로 이해하고 지성으로 교류하며 지성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함께 성장하고 함께 함으로써 시들지 않습니다

나의 성장과 너의 성장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나의 성장이 너의 성장이 되고, 너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 되는 것입니다

함께 이루어 나가는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지요?

그런데 사랑 못합니까?

사랑 못한다면 믿는게 아닙니다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 믿습니까?

사랑하는 것들은 다 믿지 않습니까?

믿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아닙니까?

서로 믿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믿는 것이고, 믿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인격을 존중합니까?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엉망 아닙니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욕하면 됩니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이고, 믿는다는 것은 그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을 지성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까?

지성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영성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나 사랑합니다"라고 쉽게 말하지 마세요

사랑은 지성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믿는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서로를 향해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는 "당신의 인격을 존중합니다" 하는 마음이 같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네모공주 슨생님, 친절한 은희씨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2023-8-6)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할렐루야 내일 모레가 입추입니다 뜨겁던 여름도 지나갑니다 참으로 대구의 태양은 ...

blog.naver.com

 

 

'Special Lecture > Serm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동호목사 인생 설교 - 2/4  (0) 2023.08.31
(임상동 목사) 바벨과 방언  (1) 2023.08.30
구원에 대하여  (1) 2023.08.30
가인과 아벨  (1) 2023.08.29
김동호목사 인생 설교 - 1/4  (1) 2023.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