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원목사 설교

2026년 6월 21일 대구동신교회

마이코 2026. 6. 21. 17:50


현대 사회는 무한 경쟁의 사회입니다. 

좋은 학교, 좋은 회사에 들어가려면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다 경쟁 상대가 됩니다.
입시 경쟁, 취업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상대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에서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소셜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 특별히 청년들이 고립과 고독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제가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처음으로 사역했던 교회가 있습니다.
한인 교회였는데 그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저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중에는 성경적인 조언도 있었고 조금 인간적인 조언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 막 사역을 시작한 전도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회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위로 10년 아래로 10년은 다 경쟁 상대입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이 말씀하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위로 10년 아래로 10년 다 경쟁 상대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목사가 다른 목사를 동역자로 보지 않고 경쟁 상대로 본다는 것이 서글펐습니다.


여러분, 경쟁 상대와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경쟁 상대하고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이기든지 내가 이기든지 둘 중에 하나인데 어떻게 친구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다 아시는 것처럼 저와 범어교회 이지훈 목사님은 좋은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뭐 저희끼리만 친한 것이 아니라 아내들까지도 서로 아끼는 좋은 친구 관계입니다.
담임 목사들끼리 친하니까 우리 교회와 범모 교회도 서로 사랑하고 응원하는 관계입니다.
다른 사람을 경쟁 상대로 여기는 것은 그를 타자화하는 것입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C.S. 루이스는 이것이야말로 지옥의 철학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지옥의 철학은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과 별개라는 원칙, 하나의 자아는 다른 자아와 별개라는 원칙을 인식하는 데 있다. 그들에게 있어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경쟁한다는 뜻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지옥의 철학은 제로섬 게임입니다. 

파이는 제한되어 있고 그것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해진 파일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더 커지고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많이 하셨습니다.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를 통해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점점 더 커지고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 경쟁적인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한 교회가 부흥하면 다른 교회가 쇠퇴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선교 단체가 잘 되면 다른 단체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잘될 수 있습니다.
함께 부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해서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시기의 문제를 잘 다룰 수 있습니다.
시기는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참 못난 마음이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상대방을 보면서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최초로 시기를 품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보면서 슬퍼했던 최초의 인물은 누구였을까요?
가인이었습니다. 

창세기 4장 4절과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재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재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께서 가인의 재물은 받으셨으나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의 재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했고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은 시기로 인해서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재물을 받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그 재물을 함께 받으셨습니다.
가인의 경우에는 가인과 그의 재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는 사람이었을까요? 재물이었을까요?
가인이 재물을 잘못 준비해서 안 받으셨을까요? 

아니면 가인의 삶과 신앙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안 받으셨을까요?
당연히 후자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물 자체에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재물을 드리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이 자리에 계신 많은 분들이 이 주일 예배를 드리러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드려서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셨습니다.
교회에 간다고 멋지게 차려 입으시고 헌금도 준비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옷, 우리의 헌금에 관심이 있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우리의 삶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예배가 아니라 예배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내 삶에 어떤 문제가 있었나, 나의 마음에 어떤 문제가 있었나라고 스스로를 돌아보면 됩니다.
하지만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돌아본 것이 아니라 동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동생을 시기했고, 결국에는 그를 살해했습니다.
왜 가인은 동생과 자신을 비교했을까요? 

왜 옆에 있는 사람에게 경쟁심을 느꼈을까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비교는 나에게 있는 행복을 잃어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루스벨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교는 기쁨을 훔치는 도둑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한인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나라에서 사는 것이 마냥 좋지는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한국의 치안, 한국의 복지, 의료 시스템이 미국보다 더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생활에서 크게 만족하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비교하지 않는 문화입니다.

미국 사람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그냥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모두가 다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공부를 잘하면 좋은 학교에 가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을 하면 됩니다.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도 있지만 보일러를 수리하는 플라우머도 돈을 잘 법니다.

미국은 아파트가 별로 없고 대부분 개인 주택에서 살거든요.
개인 주택마다 보일러가 있는데 자주 고장이 납니다.
보일러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플라우머를 불러야 하는데 그러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한 가지 기술을 잘 익히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반면에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비교를 합니다. 

어렸을 때는 성적 비교를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회사 비교를 합니다.
무슨 차를 타는지 비교하고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 비교를 합니다.
우리는 평생을 비교하고 비교를 당하며 살아갑니다.
왜 우리는 비교하면서 살아갈까요?
여기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유교의 전통 수치의 문화도 있을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서 한국 사회에서는 행복의 기준이 하나이기 때문에 이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다 알고 계신 부끄러운 통계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에서 전 세계 17개국 선진국 국민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인생에서 제일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가족을 뽑았습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국만 물질적인 풍요를 뽑았습니다.
그러니까 돈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물질주의적 사회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행복의 기준은 돈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이 많으면 성공한 것입니다.
좋은 부모는 결혼한 자녀에게 아파트를 해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입니다.
여러분, 돈은 비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돈이 많은지 다른 사람이 돈이 많은지 단순 비교가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다른 선진국처럼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가족이었다면 아마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어느 가족이 행복한 가족인지 단순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자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가정이 아닙니다. 

평범하게 살아도 얼마든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한국은 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입니다.
단순 비교가 가능한 것이죠. 

이러한 비교는 시기로 이어지게 되고, 시기는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잠언 14장 30절 함께 읽겠습니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아멘.

시기는 뼈를 썩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하지만 속은 문드러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기는 결코 하찮은 문제가 아닙니다.

시기는 우리를 해치는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기에 빠진 사람은 엄청난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시기에 빠져서 큰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앞에서 본 대로 가인은 아벨을 시기해서 살해했습니다.
요셉의 형들도 동생 요셉을 시기해서 그를 노예로 팔았습니다.

 

여러분, 모르는 사람을 인신매매하는 것도 큰 죄악이지만, 자기 형제를 인신매매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죄입니다.
무엇보다도 사울 왕은 시기에 빠져서 최고의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시기로 인해서 사울의 인생 전체가 몰락했습니다.
사울왕은 이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죠. 온 백성이 그를 사랑하고 따랐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향한 시기심 때문에 그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졌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고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했습니다.
승리의 그 소식을 듣고 여인들이 기뻐서 노래했죠.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노래를 들은 사울이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사무엘상 18장 8절 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이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사울이 여인들의 노래를 듣고 심히 불쾌하고 분노했습니다.
아니 감히 나보다 다윗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을 듣고 시기했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사울은 왕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보다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시기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인생 전체를 망칠 수 있는 치명적인 죄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슬퍼하는 시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고 그 길로부터 돌이키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는 시기에 빠지지 않고 진정한 사랑을 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되는 부분입니다. 

구약에서는 요나단이 그러했고, 신약에서는 세례 요한이 그러했습니다.
요나단은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을 보고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자기 생명과 같이 사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을 향한 유나단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침에 유나단의 마음(nepesh) 이 다윗의 마음 (nepesh)  과 하나가 되어 유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nepesh)  같이 사랑하니라.

 

아멘.

이 한 구절에 히브리엄  네페시 (nepesh)  라는 단어가 세 번 등장합니다.
네페시 하면 마음, 생명,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나누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고 그리스 철학자들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 전통에서는 인간을 하나의 통합된 유기체로 보았습니다.
영혼과 육체를 나누기보다 모든 것이 통합된 하나의 인격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바로 네페시였습니다. 

요나단의 네페시와 다윗의 네페시가 하나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요나단의 마음과 다윗의 마음, 요나단의 생명과 다윗의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머니와 그 뱃속에 있는 태아가 탯줄로 연결된 것과 비슷합니다.
둘로 나뉘어진 관계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생명적 연합 관계를 뜻합니다.
요나단이 이 정도로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다음 구절에 보면 요나단이 자신의 겉옷과 칼을 다윗에게 주고 있습니다.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아멘.

고대 사회에서 옷은 신분을 뜻합니다.
요나단이 자신의 겉옷 예복을 주었다 하는 것은 다윗을 왕으로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후기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습니다.
그래서 철기 무기가 아주 귀했습니다. 

사무엘상 13장에 보면 이스라엘 나라 전체에 칼이 두 자루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사울 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칼이 귀한데 요나단이 자신의 칼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을 자신의 상관으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요나단이 누구입니까?

그는 사울 왕의 장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자였습니다. 

장차 다음 왕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요나단의 입장에서 다윗은 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입니다.
내가 왕이 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이 더 유명해지기 전에 빨리 제거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나를 제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습니다.
자신의 겉옷과 칼을 그에게 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요나단은 왜 이렇게 했을까요?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싫었을까요?
권력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마침 왕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나니까 기뻤을까요?
왜 요나단은 다윗에게 경쟁심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저의 오랜 고민이었습니다. 

왜 요나단은 다윗을 시기하지 않았을까요?
성경에 명확한 답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저와 아내는 이에 대해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았습니다.
요나단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데 나와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마침내 만났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보았습니다.
무시무시한 골리앗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다윗을 주님께서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았습니다.
다윗의 승리는 그의 용기 때문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토록 찾았던 신앙의 동역자를 마침내 만났기 때문입니다.
나와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드디어 만났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의 목표는 왕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유나단의 목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와 동일한 목표를 가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와 동일한 사랑, 그와 동일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자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요나단이 혼자서 블레셋을 기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요나단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4장 6절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멘.

여러분 이 말은 마치 다윗이 한 말처럼 들립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승리는 여호와께 속했다고 반복해서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이와 동일한 고백을 했습니다. 

인간의 지혜, 군대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윗을 보았을 때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다윗의 신앙이 자신의 신앙과 동일하다는 것을 한 번에 보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죠.
신앙의 고수는 신앙의 고수를 알아봅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와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동신교회 담임 목사로서 제 목표는 다른 교회를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대구 최고의 교회, 한국 최고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목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 이외에는 그 어떠한 목표도 없습니다. 

 

지난주 우리 교회에서 대구 경북 714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현장에 참석하셨던 성도님들은 기도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느끼셨을 것입니다.
교단과 교파를 넘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특별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서울 극동 방송에서 714 기도회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기도회의 취지와 목적을 이야기하면서 지난주에 대구 경북 기도회가 있었다고 제가 설명을 했습니다.
대구를 대표하는 10개 교회 담임 목사님들이 모여서 이 기도회를 준비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한 지역을 대표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 10명이 모이면 분위기가 어떨까요?
묘한 긴장감과 경쟁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더 부흥한다고 우리 교회가 더 뜨겁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모였던 10명의 담임 목사님들의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축복하며 우리와 함께 대구 지역의 부흥을 위해서 한마음으로 기도하자고 마음이 모아졌습니다.
강사로 오셨던 유기성 목사님께서 단번에 느끼셨을 정도로 저희의 관계가 좋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의 목표가 다른 교회를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월드컵이 한창입니다. 

월드컵 경기가 특별한 감동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가를 대표해서 뛰면서 팀의 승리를 위해서 헌신하기 때문입니다.
축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개인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팀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특정 선수가 골을 넣더라도 그 선수가 이기는 게 아니라 결국에는 팀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축구에서 내가 골을 못 넣고 동료 선수가 골을 넣었다고 시기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누가 골을 넣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팀이 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팀이라는 의식이 있으면 그를 시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성공이 곧 우리의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에서 흔히 Goat라는 표현을 사용하죠.


Great of All Time의 약자입니다.

역대 최고의 인물이란 뜻이죠.
축구에서는 메시, 농구에서는 마이클 조던을 고트라고 부릅니다.
메시와 조던은 단지 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아닙니다.
이들은 최고의 팀을 만들었고 그 팀을 이끌었던 리더였습니다.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능은 게임에서 이기게 한다. 그러나 팀워크는 우승을 가져온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팀워크입니다.
Goat 라고 불리는 선수는 재능만 뛰어난 선수가 아닙니다.
그들은 최고의 팀워크를 이끌어낸 최고의 리더였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보고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과 요나단은 같은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우리 편인데 그를 시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승리는 곧 나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같은 표현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서로를 사랑하고 격려하는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은 희귀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 함께 읽겠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진정한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우리가 비록 악하지만 자녀를 사랑합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나보다 더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고생을 했어도 내 아이는 고생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녀의 행복을 시기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시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성화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해지는 것을 우리가 성화라고 부릅니다.
예전에는 욕심과 이기심과 시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가운데 점점 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뻐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한마디로 사랑입니다. 

성화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과거에는 주님을 배신하고 실패했지만 이제는 정말로 주님만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아름다운 장면이죠. 

이 고백을 들은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나를 사랑하면 나를 위해 충성해라' 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그러면 내 양을 돌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그분의 백성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같은 일입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카를 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핍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결국 다른 사람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내면에 대한 문제입니다.
누군가를 시기한다는 것은 나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교 1등이 자기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전국 1등을 보고 시기할 수 있습니다.
벤츠를 타는 사람이 자기 차보다 더 좋은 벤틀리 타는 사람 보고 시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충분히 좋은 것을 가지고 있고 충분히 똑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시기한다는 것은 충분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사실 사울 왕은 누군가를 시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없는데 왜 다른 사람을 쉬게 합니까?
이것은 다윗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사울 자신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행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총을 거두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런데 다윗을 보니까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고 있습니다.
다윗이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골리앗을 이긴 것을 보았습니다.
온 백성이 함께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는 것을 보면서 사울은 시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데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다윗을 시기하지 않고 자기 목숨처럼,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어떻게 사울 같은 아버지에게서 요나단과 같은 아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지난달 가정의 달 설교에서 제가 가정의 중요성, 어린 시절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 마음 가운데 여러 가지 결핍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라 하버드 대학의 연구팀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사울 같은 아버지에게서 유나단과 같은 아들이 나왔습니다.
시기가 가득한 아버지, 예로부터 사랑이 가득한 아들이 나왔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줄 믿습니다.
요나단은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가 유나단의 마음의 중심을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했죠. 고린도전서 15장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적게 받았을지언정,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는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변화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남들이 가진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다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온 세상의 통치자가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사랑을 주십니다.

 

미국의 신학자 조 리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받은 복이 나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나를 정의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과 경쟁하려는 강박적이고 끈질긴 충동을 거부합니다. 다른 사람의 몰락과 실패를 바라는 아기에 찬 꿈을 내려놓습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자비롭고 아낌없이 후하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받은 복이 나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정의합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가 되어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시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서 다른 사람이 잘될 때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는 각박한 세상에서 진정한 사랑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나타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nSAHjN68iZ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