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배우자를 가리켜서 인생의 동반자라고 부릅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평생의 짝이라는 뜻입니다.
튀르키예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길도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길지 않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어떤 길로 걷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걷는지는 더욱더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누구와 함께 걷고 계십니까?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왜 21일이 부부의 날일까요?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해서 그렇습니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관계적으로 하나가 되고 경제적으로도 하나가 됩니다.
예전에는 부부가 경제권을 공유했습니다.
빡빡한 살림이지만 서로 아끼고 모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부부가 각자 자기 돈은 자기가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맞벌이를 하게 되면 각자 자기 통장을 관리하고 생활비 통장을 만들어서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더 이상 부부가 경제적으로 하나가 아닙니다.
심지어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도 혼인 신고를 안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살아보고 그 다음에 하겠다는 거죠.
혹시라도 일찍 헤어지면 재산 분할 등 복잡한 문제가 많으니까 혼인 신고를 최대한 늦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결혼하면 한몸이 된다는 개념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결혼 전이나 결혼 이후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혼 이전에 생활하던 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거죠.
하지만 이것은 결혼의 진정한 의미가 아닙니다.
결혼은 인격적인 결합이고 영적인 결합입니다.
두 사람이 만나서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부부를 한 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 즉 이제 둘이 아니오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
한 몸은 모든 것을 다 공유하는 관계입니다.
기쁨도 공유하고 슬픔도 공유합니다.
영광도 공유하고 아픔도 공유합니다.
이것이 결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결혼했는데 결혼하기 이전과 똑같이 사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누군가와 결혼한다는 것은 그와 한몸이 되는 것이지요.
나랑 다른 인격과 한몸이 되는 것은 그만큼 내가 희생하고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TV 프로그램 중에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가 있죠
제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프로입니다.
싱글라이프가 엄청 자유롭고 멋진 것처럼 포장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 청년들에게 항상 이야기합니다.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모든 장면은 다 연출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발 그 모습에 넘어가서 혼자 살겠다고 다짐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던 배우가 결혼을 했습니다.
이 배우는 피규어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피규어가 비싼 거는 아주 비싸거든요.
한 개에 수백만 원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피규어를 모았던 남자 배우가 이제 결혼을 하고 이제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같이 출연했던 그 사람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이후에 깨달은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피규어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예전에는 피규어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가족이 전부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가족입니다.
가족은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뭐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사실입니다.
가족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가족은 축복이죠.
각자 책임을 다하고 힘들 때 도와주는 가족은 큰 축복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가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 줍니다.
하지만 희생을 강요하는 가족은 짐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짐이 될 수도 있고 자녀가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면 이제 가족은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랑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입니다.
self-seeking love 는 이기적인 사랑, 가짜 사랑입니다.
둘째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 있습니다.
self-giving love 는 이타적인 사랑 진짜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4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아멘.
진짜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입니다.
상대의 유익을 위해서 나를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동일한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장은 1차적으로 로마 교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덕을 세우라' 는 말씀입니다.
이 원리가 모든 인간관계 안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가족 간에 부부 사이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아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도덕책에 나오는 개념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것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으로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배우자가 좋아하는 여러분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무엇을 하면 어떤 행동을 하면 배우자가 좋아합니까?
세 가지만 말해 보십시오.
아 이거 세 가지 말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반대의 질문은 대답하기 쉽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배우자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는 건 쉽죠.
배우자가 어떻게 하면 내가 좋은지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배우자를 기쁘게 하려고 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자신을 기쁘게 하기 원합니다.
나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서 배우자가 맞춰주기를 기대합니다.
멀리 갈 것 없습니다.
여러분은 외식 갈 때 누가 메뉴를 고르십니까?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십니까?
아니면 배우자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가십니까?
제가 결혼하기 전에는 조금 이기적이었습니다.
데이트할 때에는 제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많이 갔습니다.
청년 시절에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이 있는데 만두였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이제 만두를 좋아했습니다.
데이트 할 때 아내가 만두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그때마다 제가 싫다고 했습니다.
결혼한 다음에 제가 이제 회개했습니다.
선교지에 갔다 와서 모든 음식이 맛있게 느껴 지기도 했죠.
그러다가 이제 대구에 왔는데 만두 맛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저희가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만두를 먹었습니다.
결혼 전에 만두 안 먹은 것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3년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월요일을 이렇게 부를 때 '만두 먼데이'라고 불렀습니다.
라임이 맞죠
만두 먼데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결혼을 합니다.
나의 기쁨을 위해서 배우자가 맞춰주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나만 기쁜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함께 기쁜 것입니다.
나의 행복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행복도 함께 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결혼 생활을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이 더 커집니다.
내가 무엇을 하면 배우자가 기뻐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배우자가 이렇게 해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버드 의대 교수였던 로널드 시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두 가지 기본적인 욕구와 강하게 맞닿아 있다. 첫째는 긍정적인 자기 감정을 느끼고 싶은 욕구이고 둘째는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이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혼을 통해서 긍정적인 자기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고 집단에서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부부가 서로 이기적인 사랑을 하면 행복도가 떨어지겠죠.
서로 기대하는 것이 많을수록 불평할 것도 많아집니다.
그러다 보면 아 내가 결혼을 잘못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문제는 결혼에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기 중심적인 사랑, 이기적인 사랑에 있습니다.
상대방의 행복보다 나의 행복을 더 추구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관계의 황금률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두 가지만 지키면 모든 인간관계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제가 받고 싶은 것을 선물합니다.
제가 받았을 때 기뻐할 만한 것을 선물합니다.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에게 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내 유익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유익도 함께 생각합니다.
부교역자를 대할 때 상대방이 잘 되고 상대방이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이 두 가지를 지키면 인간관계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원칙은 부부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결혼을 통해서 내가 행복하기보다 배우자가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배우자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랑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을 행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혼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선택입니다.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라고 말했습니다.
육체적으로 하나일 뿐 아니라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두 사람이 한 마음, 한 뜻을 품을 때 하나님께서 의로워하신 가정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한 마음과 한 뜻을 품을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취향이 비슷하면 한마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 취향, 영화 취향이 비슷해서 결혼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야구장에서 같은 팀을 응원하다가 결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부 간에 함께 공유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취향이 같다고 해서 언제나 한 마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의견 대립이 생길 일이 너무나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영화 취향이 같아도 재정 사용의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양가 부모님 용돈을 어떻게 드릴 것인지,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취향이 같다고 해서 결혼 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한 마음을 품어야지 인생의 갈등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두 사람이 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5절 6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아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배경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른데 한 마음을 뽑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부부가 한 마음을 품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성품을 본 받을 때 남편과 아내는 같은 뜻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 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과 7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아멘.
예수님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상대방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이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을 때 부부는 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이것을 다른 말로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취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려입니다.
취향이 달라도 얼마든지 결혼 생활 잘할 수 있습니다.
저와 아내는 음식 취향도 다르고, 스포츠 취향도 다릅니다.
하지만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취향이 같아도 배려가 없으면 행복한 관계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배려하지 않는 사람,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배려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취향을 가진 사람, 함께 사는 것 여러분 이것은 큰 도전이지요.
부부 사이에 잠자리 버릇, 뭐 식사 예절, 화장실 사용 등 부딪히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 부부가 맞지 않은 이유를 말하자면 수십 가지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두 사람도 한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하나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신앙의 모델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의 모델이 되십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부부 관계에 있어서도 모델이 되십니다.
부부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뭐 일이 년 사는 게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집을 부리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이것이 곧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2장 3절 우리 빨간색 글씨만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낮게 여기고,
겸손한 마음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비하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이 좋으면 얼마든지 나의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겸손한 사람은 자기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을 바꿀 용의가 있으십니까?
미국의 심리학자 존 가트만은 부부 관계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했습니다.

결혼 안정성과 이혼 가능성을 예측하는 다양한 척도를 개발했습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안정적인 부부는 한 사람이 결정권을 독점하지 않고 부부가 함께 공유한다' 고 합니다.
가정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할 때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부부가 각자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부부 관계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여러분의 뜻대로 결정하십니까?
아니면 배우자의 말을 듣고 원래 내가 가졌던 생각을 바꿀 수 있으십니까?
부부는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 집을 살 것인가, 어떤 차를 살 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누가 결정을 내립니까?
항상 한 사람의 생각대로 하십니까? 아니면 함께 논의하고 함께 결정하십니까?
결정권을 공유하는 것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내 생각이 가장 좋다는 그 고집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한 마음입니다.
정확히 1년 전에 제가 '부부 사이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가 가장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대상은 배우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부 사이에는 결정권을 공유해야 합니다.
큰 결정이든 작은 결정이든 상관없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결정을 내리는 관계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정말 사랑하고 존중하는 관계라면 결정권을 공유해야 합니다.
서로의 의견을 들으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함께 기도하고 함께 결정해야 합니다.
자녀 교육에 대해서 양과 부모님에 대해서 한 사람이 결정하지 말고 함께 논의해서 함께 결정해야 합니다.
함께 결정했으니까 함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잘하면 함께 잘하는 거고, 잘못하면 함께 잘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 마음과 한 뜻을 품은 부부의 모습입니다.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한 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한 마음과 한 뜻을 품는 것은 오랜 과정입니다.
남편과 아내 모두가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결혼한 지 오래되었다고 자동적으로 한 마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혼한 지 50년이 되었어도 아주 작은 일로 다투고 화낼 수 있습니다.
부부가 한 마음을 품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고 오랜 과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 사람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나보다 남을 더 낮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부부는 서로 용납하는 관계입니다.
오늘 본문은 서로 용납하고 서로 받아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아멘.
우리가 서로 용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용납을 받은 자로서 서로 용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신학자 로버트 마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친구이면 곧 나의 친구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고 용납하신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도 예수님께 사랑을 받았고, 상대방도 예수님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무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나도 동일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가 서로 용납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 받은 사랑과 용납을 다른 사람에게 행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사업에서 성공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과 용납을 실천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용납이 필요합니다.
용납을 받으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우리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용납이라는 말은 있는 모습 그대로 환영한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주일날 교회 올 때 멋지게 꾸미고 오셨죠?
멋지게 꾸밀 필요도 없고 잘 보일 필요도 없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환영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차가운 현실입니다.
세상에서 한 번 실수는 봐줘도 두 번은 봐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는 항상 긴장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항상 긴장 상태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갈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제가 운전하다가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가끔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보스턴에 살 때 뉴욕으로 처음 운전해서 갔던 적이 있습니다.
뉴욕은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인데 뭐 그 당시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었습니다.
지도를 보면서 따라갔는데 맨하튼으로 가는 다리를 이제 지나가야 합니다.
톨게이트가 있고 통행료가 7 달러 정도, 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초행길이다 보니까 제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잘못된 길로 갔기 때문에 들어갈 때 통행료 내고 나오면서 통행료를 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길, 잘못된 길로 들어서 들어갈 때 또 통행료 내고 나갈 때 또 통행료 냈습니다.
그렇게 맨하탄 오가는 다리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지 모릅니다.
톨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돈이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릅니다.
너무 바보 같아서 스스로를 자책했습니다.
그때 제 아내가 옆에서 뭐라고 했을까요?
'창 밖으로 돈을 던지는구나' 라고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 아내, 착한 사람입니다.
'여보, 괜찮으니까 침착하게 천천히 가자'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잘못한 죄가 용납을 받았죠.
그때 아내에게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그 이후로 아내가 이제 운전하다가 실수를 해도 제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길을 잘못 들거나 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제가 잘못했을 때 아내에게 용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배우자가 잘못했을 때에는 사실 좋은 기회입니다.
무슨 기회일까요?
용납해 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저는 용납이 적금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용납해 주면 나중에 내가 잘못했을 때 용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용납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장 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아멘.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루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주어진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의 배우자입니다.
배우자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어떤 제목을 하면 좋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어떤 작가는 배우자를 가리켜 '내 인생의 증인' 이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왔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라는 거죠.
나에게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나에게 어떤 기쁨이 있었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 배우자입니다.
배우자는 내 인생의 증인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배우자입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지지해 주고 나를 사랑해 줍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다음으로 우리가 고마워하고 사랑해야 하는 존재가 바로 배우자입니다.
오늘 예배 이후에 배우자 집에 가셔서 배우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하는 거 따라 하십시오.
당신은 내 인생의 증인입니다.
네, 배우자는 우리 인생의 증인입니다.
증인은 감시자가 아닙니다.
감시자는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판단을 받고 평가를 받습니다.
학교에서도 평가를 받고, 직장에서도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판단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배우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배우자를 판단하지 말고 평가하지 말고 용납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로마서 15장은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라고 말하면서 소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과 용납을 계속 지속하기 위해서는 소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5장 13절 함께 읽겠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광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부부가 사랑하고 용납하기 위해서 소망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망을 어떻게 주십니까?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 가정 가운데 소망이 가득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가족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그때 밝은 소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사업이 잘 되면 소망이 가득합니다.
그러다가 경기가 어려워지면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소망이 가득합니다.
그러다가 수능 시험 못 보면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 소망이 있다가 없다가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사업이 잘될 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은 성령으로 충만할 때 임하는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령을 약속의 보증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5절 함께 읽겠습니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르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약속의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보증이 헬라어로 아라본입니다.
이 단어는 상업 거래할 때 내는 계약금입니다.
우리가 아파트 거래할 때 계약금을 내지 계약금을 내면 그 약속은 확실한 것입니다.
이사 갈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지만 그 계약은 확실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약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확실한지 보여주기 위해서 계약금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보증이 되십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확실한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한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의 소망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가족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한 사람만 성령 충만하면 안 됩니다.
가족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소망을 보게 되고, 믿음 가운데 인내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배우자는 내 인생의 증인입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왔고 헌신해 왔는지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하고 용납하는 진정한 친구입니다.
또한 배우자는 영원한 내 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은 언약적인 관계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사랑하고 보호하는 관계입니다.
'어떤 길도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길지 않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배우자와 한마음 한 뜻이 되어서 주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기쁨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쁨을 구하는 진정한 사랑을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fK0KRzV5C_c?list=PLiKnkSvoyvs0oP2CjhJ-FcDz7BymmE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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