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에게 부모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기리는 주일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미덕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지혜를 모은 델픽 격언에 보면 '너의 부모를 공경하라' 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공자 또한 이렇게 말했습니다.
'효는 덕행의 근본이요, 인간 교화의 근원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100번 맞는 이야기입니다.
효를 통해서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사회가 올바로 세워집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서 다른 덕행을 말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일반 계시에 의해서 부모 공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특별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부모 공경의 의미를 더욱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통해서 부모 공경을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에서 부모 공경이 몇 번째 계명이지요?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고 안식일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5계명부터 십계명까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중에 제일 처음으로 나온 것이 너의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바로 부모 공경입니다.
신명기 5장 1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내 부모를 공경하라.그리하면 내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내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아멘,
내 부모를 공경하라 말씀하신 이후에 하나님께서 한 문장을 더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가 내게 준 땅에서 내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릴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명령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 공경에 대한 명령을 주시고 그에 대한 약속 또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명령만 내리는 엄격한 사령관이 아니십니다.
그 명령을 지켰을 때 어떤 선한 결과가 나타나는지 약속을 또한 주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을 지켰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이 있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 가나안 땅에서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형통하고 안전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세우면 이러한 형통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나라의 기초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권위를 인정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복되고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배우는 첫 번째 장소가 바로 가정입니다.
여러분 지난 주일 설교를 기억하십니까?
가정은 실패해도 되는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받고 사랑받는 곳입니다.
오늘 설교는 지난주 설교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가정은 실패해도 되는 곳입니다.
동시에 가정은 순종을 배우는 곳입니다.
인생에서 순종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대로 살아가서는 어떠한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하고, 질서와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을 배우는 첫 번째 장소가 바로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 중에서 조금 난해한 말씀도 있습니다.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연구하고 묵상해야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너무나 쉽고 명확한 말씀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말씀이죠.
부모님을 어떻게 대야 하는지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6장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아멘.
이 말씀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면 유익한 점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님 말씀 들어서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우리보다 경험이 많은 분들이시고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현실적인 접근, 실용적인 접근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규범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방식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물건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 목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열쇠는 자물쇠를 열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 열쇠를 가지고 우리가 택배 박스를 뜯을 수도 있겠죠.
커터칼이 없을 때 열쇠를 가지고 박스를 뜯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열쇠의 원래 목적은 아닙니다.
열쇠는 박스를 뜯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물쇠를 열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원래 의도대로 사용될 때 가장 가치 있게 쓰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무작위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혼돈 가운데 살아가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질서와 권위를 세우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보니까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다'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 질서가 필요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 혼자 살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살면 질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질서는 나쁜 게 아니죠.
질서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다 같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편입니다.
질서 없는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저는 부룬디에서 경험했습니다.
부룬디는 아주 가난하기 때문에 나라의 신호등이 없습니다.
제가 부룬디를 떠난 지 6년 되었는데 부룬디를 떠날 즈음에 그 나라 전체의 신호등이 5개 정도 새로 생겼습니다.
시내에 신호등이 없으면 어떨까요?
운전하기 편할까요? 불편할까요?
언뜻 생각하면 편할 것 같잖아요.
내 마음대로 운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 되면 사거리에 차가 뒤엉킵니다.
수십 대의 차량이 자기가 먼저 가겠다고 사거리에 뒤엉켜서 경적을 울립니다.
제가 부룬디에 살면서 웬만하면 정말 화를 내지 않았는데 그 사거리 안에 갇히면 화가 났습니다.
제발 좀 누가 신호등을 좀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중에 신호등이 생겼는데 그래도 문제였습니다.
여러분, 신호등이 있으면 뭐 합니까?
안 지키는데요.
신호등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여전히 운전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데 질서가 없으면 모두가 힘들게 살아갑니다.
이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자연 세계 가운데 인간 사회 가운데 질서를 주셨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질서와 권위는 하나님의 계획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규범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모델 되신 예수님께서도 부모님께 순종하셨습니다.
나사렛에 계시는 동안 예수님은 부모님께 순종하고 받드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51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으시더라.
아멘,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행동은 우리에게 모델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육신의 부모님께 순종하고 받으셨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옳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한다면 부모는 자녀를 잘 지도해야 합니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부모에게 있습니다.
본문 22장 6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아멘,
아이에게 행할 길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부모가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는 교통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지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부모는 주일 성수를 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주일 성수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십일조를 철저하게 합니다.
절기, 헌금, 감사 헌금도 철저하게 합니다.
제가 이것을 교회에서 배우지 않았습니다.
가정에서 배웠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평생 동안 철저하게 헌금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돈의 자유하십니다.
저는 아버지처럼 돈의 자유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돈이 많아도 그만 적어도 그만입니다.
돈에 집착하지 않고 돈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십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기쁨과 행복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일리노이 대학교 에드 디너 교수는 세계 갤럽 여론조사에서 얻은 자료를 연구했습니다.
전 세계 145개국 36만 명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얻은 자료였습니다.
그 자료를 상세하게 분석한 디너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살면서 기쁨을 더 많이 누린다. 왜 그런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재밌는 표현이죠.
신앙이 없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를 사회과학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왜 기쁜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쁜 이유는 감사할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신앙을 본받아서 저도 헌금 생활을 철저하게 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있을 때에도 출석하던 교회에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 결과 저도 돈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비결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에서 살 때에도 행복했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살 때에도 행복했습니다.
돈에 집착하지 않고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것을 교회에서 배우지 않고 가정에서 배웠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자녀들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이 세상에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께서 본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돈을 다스리는 삶이 어떠한 삶인지 자녀에게 보여주셔야 합니다.
자녀에게 올바른 신앙을 전수하는 것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신앙을 갖도록 날마다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자녀들 앞에서 아름답고 귀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면서 그 명령에 담긴 약속을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 3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내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아멘.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 잘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과 이 땅에서 잘 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제가 이에 대해서 정확히 1년 전에 설교를 했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과 이 땅에서 잘 되는 것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죠.
의사, 교수, 사업가, 운동 선수 등 자기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절제와 자기 훈련입니다.
미국의 작가 지그 지글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훈련은 변화를 바라는 것과 변화를 살아가는 것 사이의 다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변화를 바라죠.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를 실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 번 실천하는 것도 어려운데, 변화된 모습으로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있죠.
바로 훈련, 영어로 discipline 입니다.
절제와 인내로 연관된 훈련입니다.
훈련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그 변화를 실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대로 살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잘 되기 위해서는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 절제를 배울 수 있을까요?
나보다 더 큰 권위에 순종함으로써 우리는 절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큰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게 됩니다.
인생에서 권위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것 너무나 중요한데, 그 첫 번째 장소가 바로 가정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에게 순종하면 이 땅에서 잘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명한 마부는 욕망과 복종이라는 두 마리의 말을 균형 있게 다룰 줄 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순간적인 욕망을 따라가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늦은 밤에 먹고 싶은 대로 야식을 먹는 것,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내일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밤새 게임을 하는 것도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결혼한 사람이 다른 이성에게 눈길을 돌리는 것도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무책임한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라옵니다.
그 결과는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건강을 해치게 되고, 좋은 학교에 못 가게 되고, 결혼 생활을 망치게 됩니다.
우리는 욕망과 복종이라는 두 마리 말을 균형 있게 다루어야 합니다.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보다 더 큰 권위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더 큰 권위가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장소가 바로 가정입니다.
부모의 권위에 순종함으로써 우리는 내 욕망대로 행동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혼자 살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살아갑니다.
아시는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규범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규범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로 처벌과 억제를 통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게 합니다.
폭행, 살인, 절도 등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면 이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우리가 처벌을 하죠.
규범을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을 함으로써 그 행동을 억제시킵니다.
두 번째로 규범의 내면화를 통해서 정의로운 성품을 함양합니다.
처벌이 무섭기 때문에 규범을 지키는 것은 사실 낮은 수준의 도덕성입니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은 그 규범이 옳기 때문에 지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규범이 지향하는 정의로운 성품을 내 안에 갖추는 것입니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천종호 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동체의 규범, 외적인 규범이 개인의 성품, 내적인 규범으로 연결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처벌이 두려워서 규범을 지키게 되면 그 사람은 아직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마음으로는 법을 어기고 싶은데 그 처벌이 무서워서 억제된 상태이기 때문이죠.
진정으로 자유로운 상태는 규범이 지향하는 그 정의로운 성품이 내 안에 갖추어진 상태입니다.
공자는 이러한 상태를 가리켜 종심소역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따라가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다는 뜻이죠.
공동체의 규범이 내적인 성품으로 내면화된 상태입니다.
타락한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규범으로 형성된 정의로운 성품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일평생을 형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 번 반짝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그 성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흔히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을 하죠.
돌아보면 누구나 인생에서 좋은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기회를 잘 살립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합니다.
여러분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단지 운이 더 좋아서 그 기회를 잘 살렸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절제와 인내입니다.
올바르게 형성된 정의로운 성품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있어야지 한 번의 성공을 장기간의 성공으로 이어갈 수 있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말세의 징조가 나오죠.
마지막 때가 다가오면 나타날 현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이 말씀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사회입니다.
현대 사회는 교만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과거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사회이지만, 과거보다 훨씬 더 감사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한마디로 정의로운 성품을 잃어버린 사회입니다.
올바른 규범에 순종해서 정의로운 성품을 함양하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건달 아버지도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권위에 순종했습니다.
존중했습니다.
우리 자녀가 학교에서 잘못하면 따끔하게 혼내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멀쩡한 아버지도 선생님을 함부로 대합니다.
왜 우리 아이를 꾸중에서 기 죽이냐고 항의합니다.
여러분, 이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요?
누구의 말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고, 누구도 나를 훈계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정의로운 성품을 함양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 속담에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3살 때 형성된 성품이 80살까지 간다는 뜻입니다.
3살 때 순종하는 법을 못 배우면 80살에도 배우지 못합니다.
3살 때 정의로운 성품을 갖지 못하면 80살에도 갖지 못합니다.
아이의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그 아이가 반드시 배워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순종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순종해야 할 권위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부모의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실정법을 따르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영적인 법을 따를 수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일관되게 부모님의 권위에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23장 22절 함께 읽겠습니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내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아멘.
그리스도인들은 효도에 있어서도 세상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말하는 그런 일반 계시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특별 계시의 수준에서 우리가 효도를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모님에게 받을 유산이 있어야지 효도를 합니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사실입니다.
여러분 주변을 보시면 알죠.
죽을 때까지 돈을 가지고 있어야지 자식들이 찾아옵니다.
미리 나누어주면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받을 유산이 없어도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합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기도해 주신 부모님께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삶입니다.
이 세상의 논리는 기펜테이크이지만 하나님의 논리는 무조건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이 많이 있죠.
결혼을 앞둔 청년들이 기도받으러 올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제 이야기를 해주죠.
저도 수입과 지출이 일정하기 때문에 예산을 세워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제가 돈 계산하지 않고 쓸 때가 있습니다.
언제인지 아십니까?
부모님께 식사 대접할 때입니다.
부모님께 식사 대접할 때 저는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주문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가격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혼하는 청년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조언합니다.
부모님 건강하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식사하고 한 번이라도 더 함께 여행 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옆에 계신 부모님께서 크게 '아멘' 하십니다.
앞으로 청년들 많이 데리고 와 주십시오.
똑같이 얘기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면에서 세상 사람보다 나아야 합니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면에서도 세상 사람보다 더 나아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약속이 있는 첫 번째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할 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과 은혜를 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므로 우리는 권위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범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님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자녀를 함부로 대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아멘,
여기서 노엽게 하다가 영어로 goad입니다.
직역하면 '막대기로 찌르다, 못 살게 굴다' 입니다.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동물을 막대기로 계속 찌르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순한 동물이라도 화를 낼 것입니다.
자녀를 그렇게 못 살게 굴면 안 됩니다.
자녀를 들들 볶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권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부모의 권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권위를 위임하셨습니다.
영원히 주신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위임하셨습니다.
부모는 하나님께 받은 그 권위를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성품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부모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자녀에게 쏟아내는 것입니다.
내가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고, 바깥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고 그 악감정을 자녀에게 풀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입니다.
자녀 입장에서 억울할 때가 있죠.
언제냐 하면 자기가 잘못한 것보다 훨씬 더 크게 혼날 때입니다.
자기는 이 정도 잘못했는데 부모님께서 훨씬 더 크게 혼낼 때 자녀 마음 가운데 억울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한 억울함이 쌓이면 부모님을 향해서 쓴 마음이 생깁니다.
물론 부모에게는 자녀를 훈육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훈육은 자녀가 잘못한 것에 비례해야 합니다.
작은 잘못에 대해서 크게 훈육하면 자녀는 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랑과 격려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훈육만 해도 자녀는 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혹시 누군가를 향해서 쓴 마음을 가진 적이 있으십니까?
누군가에게 쓴 마음이 생기면 그 사람 별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멀리에서 그 사람이 보이면 다른 길로 돌아가게 됩니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불편하기 때문이죠.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우리가 이러한 쓴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나를 공격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마음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을 향해서 이런 마음을 품는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가장 사랑해야 하는 부모님을 향해서 이런 마음을 품는다면 이것은 너무너무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향해서 쓴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그 원인은 자녀에게 있지 않고 부모님에게 있습니다.
자녀가 어렸을 때 함부로 대하고 비인격적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행복에 대한 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1930년대에 하버드에 입학한 학생 268명의 삶을 70년 동안 추적 관찰했습니다.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지 사회과학적으로 연구를 했습니다.
이 연구의 책임자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행복과 가정의 연관성에 집중했습니다.
인간의 행복이 행복한 가정에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교수에 따르면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에게는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들은 일반인에 비해서 정신 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둘째로 건전한 여가를 통해서 인생을 즐기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자기 감정은 물론 세상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넷째로 오래된 친구 없이 외로운 노년을 맞이합니다.
한 사람의 유년기가 이렇게 중요한 거죠.
불행한 유년기를 보내게 되면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세상을 신뢰하지도 못합니다.
삐딱한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죠.
반면에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게 되면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좋습니다.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면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마트에 갈 때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음식들이 기억이 납니다.
아 이것도 해 주시고 저것도 해주셨지라고 기억이 납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골로새서 3장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멘,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기쁨과 순종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할 때 기쁘지 순종하면서 기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으로 순종하는 법을 배우기 원하십니다.
왜 우리는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의 관계 안에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최선을 원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신뢰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은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권위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는 질서와 권위가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님께 순종함으로써 권위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부모는 자녀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말로만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자녀들은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녀를 훈육하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인격적으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과 공감 없는 훈육은 자녀에게 쓴 마음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말과 행동에서 자녀의 본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규범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아주 영광스러운 책임입니다.
현대 사회는 권위에 대해서 반감을 가진 사회입니다.
잘못된 권위로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권위라는 말 자체를 싫어합니다.이렇게 완악하고 어두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서 아름다운 권위를 보여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가정 안에서 순종하는 법을 배워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 안에서 복되고 형통한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1oHkR4t4Y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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