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사랑한 우상들 (7) 성공에의 강박
빌립보서 3:4-9 | 문대원 목사
우리가 사랑한 우상들이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탐심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탐심은 단지 좋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아닙니다.
탐심은 절제를 잃어버린 욕심입니다.
허망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에 감각 없는 자가 됩니다.
그 결과 자신을 방탕에 내어 줍니다.
자신을 방탕에 내어주는 것은 권투 선수가 가드를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완전히 다 경기를 포기한 모습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지 살다 보면 돈의 유혹을 받을 때도 있고 성적인 유혹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유혹에 자신을 내어주면 안 됩니다.
가드를 올리고 탐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할 때 새 사람을 입게 됩니다.
오늘은 성공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좋은 학교에 가기 원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원합니다.
사회에서 성공하길 원하고 결혼 생활에서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현대인들이 돈을 갈망하는 것처럼 또한 성공적인 삶을 갈망합니다.
성공하기 원하는 마음은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 제목이 성공이 아니라 성공의 강박입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집착입니다.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성공주의, 엘리트주의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은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성공을 이제 마약에 비유하는 것이 지나쳐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마약에 중독성이 있듯이 성공에도 강력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3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가수가 있습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팝스타 마돈나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내 모든 의지는 늘 끔찍한 열등감을 극복하는 데 있었다.'
이미 대단한 존재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내가 대단한 존재임을 증명해야 한다.
내의 고난은 끝난 적이 없으며 아마 영영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최고의 실력과 판매량을 가진 가수가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마돈나는 자기가 대단한 존재임을 항상 증명해야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솔직한 고백일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되고 형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하기 원합니다.
좋은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께 넘치는 축복을 받는 것이 맞다고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물론 어떨 때는 넘치는 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떨 때에는 고난과 아픔을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너무 괴롭지요.
고난이 주는 괴로움보다 내 믿음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잘 되고 형통해야 하는데, 이렇게 힘들게 살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께서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다면 오늘 설교는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간단합니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성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공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가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정통 유대인으로서 바울은 모든 자격과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살아갔습니다.
빌립보서 3장 5절 6절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오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오,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아멘.
바울이 총 7가지 항목으로 자신의 자격과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 네 가지는 출생에 관한 것이고, 나중 세 가지는 자격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바울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정한 그대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부모가 독실한 유대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족속이고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속했던 지파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왕족이 속한 지파였습니다.
또한 베냐민 지파 안에 예루살렘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안에 성전이 있었죠.
하나님의 성전이 위치했던 지파가 바로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첫 번째 왕을 배출했던 지파였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지파에서 바울이 태어났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을 가리켜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헬라파 유대인과 대비되는 히브리파 유대인을 뜻합니다.
부모 모두가 히브리어를 말할 줄 알고 어렸을 때부터 히브리어로 교육을 받았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인데 한국어를 완벽하게 하는 것입니다.
종교적, 문화적, 언어적인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바울은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장로회의 전통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유대교를 어지럽히고 훼방하는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율법의 기준으로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어떠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도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면 대통령 선거에 나가도 될 것입니다.
이 정도 배경에, 이 정도 학벌에 이 정도 헌신이면 정말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자랑했던 과거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신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탁월하고 누구보다 헌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배경으로 보나 자격으로 보나 바울은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공을 추구해 갔습니다.
그런데 성공을 향한 끝없는 갈망이 때로는 우리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텍사스 대학교 캐럴 홀라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뛰어난 재능과 성취가 인생의 후반기에는 압박감과 실패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족과 친구들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며 사는 삶은 매우 힘들고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훌라한 교수는 어린 나이에 천재성을 보였던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너는 천재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것이 평생 부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들 중 다수가 80세 이후에 노년기에는 정신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들을 짓눌렀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똑똑하고 경건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훼방하는 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사명이라고 강하게 믿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뿐만 아니라 저 멀리 다메섹에 있는 교회까지 박해하기 위해서 원정을 떠났습니다.
요즘 프로야구가 인기라서 원정 응원을 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서울, 대전, 부산 등 여러 지역으로 원정 응원을 갑니다.
제가 아는 분은 휴가 스케줄을 세울 때 삼성 라이온즈 원정 경기를 따라가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원정 응원은 들어봤어도 원정 박해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응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서 원정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해서 바울이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그러던 중에 다메섹 도상에서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4절 5절 함께 읽겠습니다.
땅에 엎드려져 들음에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아멘,
그토록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던 바울이 변화된 순간이었습니다.
자기 노력, 자기 헌신, 자기 성공으로 가득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바울은 자신의 삶을 재평가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향이 옳은 것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지 재평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 스스로 이러한 시간을 가지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억지로 이러한 시간을 허락하실 수도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고난이나 시련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하나님께서 돌아보게 하십니다.
스코틀랜드의 목회자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고독은 세상의 초조함, 소음, 떠들썩함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은 시끄럽고 경쟁적입니다.
불안과 초조함이 가득합니다.
다른 사람처럼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조용히 그분 앞에 머물기를 원하십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내려놓고 진짜 무엇이 중요한지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진짜로 중요하고 진짜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살기를 원하십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위해 살기 원하십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노력, 나의 헌신, 나의 성공 위에 인생을 쌓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 위에 인생을 쌓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영혼까지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단 한 번입니다.
인생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세상의 소음과 초조함에 이끌려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무엇이 진정한 이익이고 무엇이 진정한 손실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계 장부에 보면 대차 대조표가 있지 않습니까?
한쪽에는 자산을 적고 한쪽에는 부채를 적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도 대차대조표가 있습니다.
한쪽에는 이익이 있고 한쪽에는 손실이 있습니다.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목표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바울은 이익과 손실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본문 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다는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앞에서 바울이 자랑했던 그 모든 것은 그에게 이익이었죠.
정통 유대인으로서 그가 거둔 모든 성과는 그에게 이익이었습니다.
평생 자랑하고 싶은 그의 성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바울의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 자랑했던 그 모든 것을 손실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여전히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고 율법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과거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모습, 이익이라고 여겼던 그 모습을 손실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손실이었을까요?
왜 바울은 과거의 이익이라고 여겼던 것을 이제는 손실로 보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 있어서 손실이었습니다.
그가 이루었던 성공으로 인하여서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성취가 너무나 자랑스럽기 때문에 굳이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울이 추구했던 의의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의가 아니라 자기 열심으로 만들어낸 의였습니다.
자기 노력, 자기 헌신, 자기 성공으로 만들어낸 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바울은 자기 열심으로 만들어낸 의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바울은 자기 열심으로 만들어 낸 의의를 해로 여겼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습니다.
자기 노력, 자기 헌신, 자기 성공으로 만들어낸 그 의를 쓰레기와 같이 여겼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충격적인 고백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성취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대학 교수님의 연구실에 가면 박사 학위를 걸어놓습니다.
어느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지 자랑스럽게 걸어놓습니다.
기업의 CEO는 지난해 영업 이익을 성공으로 여깁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놀라운 영업 이익을 낸 것이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성공을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제일 자랑스럽게 여겼던 성취를 쓰레기와 같이 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에 공감이 되십니까?
내가 이룬 최고의 성취를 왜 배설물과 같이 여기는 것일까요?
그 성공에 집중하느라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룬 성공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굳이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강조했던 바입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성취를 배설물과 같이 여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고 가장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장 나를 기쁘게 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나에게 유익이 되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단기적인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이익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일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 없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즐거워서 하는 사람 없습니다.
누구나 쉬고 노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일합니까?
우리가 왜 자녀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합니까?
그것이 즐겁기 때문이 아니라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힘들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놀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시험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지혜라고 부릅니다.
놀고 싶은 거 다 놀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마태복음 16장 26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아멘, 이 구절은 100번 맞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온 천하를 얻고서도 목숨을 잃어버리면 어떤 유익이 있겠습니까?
목숨이 가장 중요합니다.
생명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던 그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십자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고난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3일 후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듣고 있던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 일이 결단코 주님께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냥 정중하게 말한 것이 아니라 영어로 rebuke, 비난하면서 말했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비난하면서 말했습니다.
제발 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의 관점과 예수님의 관점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왕이 되어서 통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베드로가 생각한 성공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생각하신 성공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다분히 현재적이고 근시안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하고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근시안적인 관점과 영혼의 관점은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관점은 너무나 좁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그 영원한 관점을 헤아리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 오기 전에 아프리카 선교사였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존경하는 선교사의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데이빗 브레이너드입니다.

18세기에 태어난 그는 예일대학교에서 공부한 최고의 인재였습니다.
미국에서 제1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 최고의 인재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메리칸 인디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여기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죠.
하지만 그는 실제 선교 사역을 감당하기도 전에 결핵에 걸렸습니다.
1747년 브레이너드는 29살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혼도 하지 못하고 초라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죠.
29살의 젊은 선교사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슬퍼했습니다.
당시에 어느 누구도 브레이너드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눈에 보이는 선교적인 열매가 없을지언정 브레이너드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사람을 통해서 그의 전기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그 유명한 조나단 에드워즈였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미국 최고의 신학자이자 부흥사였습니다.
제가 제일 존경하고 권성수 목사님께서 제일 존경하는 신학자가 바로 조나단 에드워즈입니다.
근대 복음주의 운동의 시초가 된 사람입니다.
에드워즈는 1749년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에드워즈가 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에드워즈가 정말로 훌륭한 신학 책들을 많이 썼는데 가장 많이 팔렸던 책은 바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였습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의 윌리엄 캐리가 이 책을 읽고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지엘리엇과 같은 훌륭한 선교사도 이 책을 통해서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수많은 선교사들이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를 통해서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다시 한 번 질문하겠습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인생은 성공적인 인생이었습니까?
29살의 나이에 아무런 선교적 열매 없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삶은 성공적이었습니까?
물론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영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비록 그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성공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현재적인 관점에서 보는 성공과 영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성공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지혜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평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동시대에 칭찬과 존경을 받았다고 꼭 성공한 인생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을 평가하는 분은 영혼부터 영혼까지 계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인생에서 성공하길 원하는 마음은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문제는 성공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성공에서 안정감을 찾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로 그 순간 성공은 나에게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상이 무엇입니까?
이번 시리즈의 첫 번째 설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궁극적인 안전을 위해 당신의 마음이 매달리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그것이 당신의 하나님이다. 오직 마음의 신뢰와 믿음이 하나님도 만들고 우상도 만든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궁극적인 안전을 위해서 우리의 마음이 매달리고 의지하는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돈이 우상이 될 수도 있고, 학벌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권력이 우상이 될 수도 있고, 성공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은 깨어진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그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를 통해서 나를 증명하고자 합니다.
멋지게 성공해서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증명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문제죠.
성공을 통해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 왜 문제입니까?
간단합니다.
우리의 성공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영원한 성공은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파티는 계속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언젠가 우리는 쇠퇴하게 되고 은퇴하게 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토록 사랑하고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 아스터 브루츠라는 교수님이 있습니다.
공공 정책과 리더십을 가르치는 아주 훌륭한 교수님인데, 이분이 한 가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놀라운 업적을 세운 사람 중에서 말년에 가서 조금 이상하게 변하는 경우가 있다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세계 최고의 과학자가 말년에 유사 의학에 빠져서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을 할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화학 결합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라이너스 폴링은 말년에 유사의학을 주장해서 물의를 빚었습니다.
브룩스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직업 심리적 중력의 법칙' 이라고 불렀습니다.
쇠퇴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고통이 과거에 성취한 명성에 대한 정서적 집착으로 이어진다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고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가 스스로 쇠퇴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과거의 명성에 집착해서 학문적으로 근거가 없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유사 과학, 유사 의학에 빠져서 전혀 무리한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종류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정신이 예전 같지 않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이와 같습니다.
나는 여전히 건재하고 여전히 성공적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그런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전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성공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증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이 진리를 믿으십니까?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증명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외쳤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아멘, 오늘 빌립보서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정통 유대인으로서 그의 출신과 그의 업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하면 배설물과 같다고 고백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정체성은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생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사랑받았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사랑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분이 성공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분이 사랑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진심으로 믿으면 우리에게는 놀라운 자유가 임합니다.
어떤 자유입니까?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입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로운지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비슷할 수 있죠.
똑같이 학교에 가고, 똑같이 직장에 갑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는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습니다.
나의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서 애쓰지 않습니다.
평안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나의 경주를 달려갈 뿐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이 나는 나의 레인에서 나의 경주를 달려갈 뿐입니다.
제가 보스턴에서 공부할 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고생을 하고 가족들도 고생을 했습니다.
심지어 한국에 계신 부모님도 다른 이유로 고생을 하셨습니다.
제가 장남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함을 느꼈습니다.
대학 친구들은 대기업에 들어가서 잘 살고 있는데 나는 뭐 하고 있나 싶었습니다.
나는 왜 유학을 왔는가?
하나님 앞에서 수없이 돌아보았습니다.
나의 성공을 위해서 왔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왔는가 스스로 자문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구약학 시간에 욥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구약학자 덕 스튜어트 교수님께서 욥기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고난 가운데 신실하게 믿음을 지킴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 한마디가 고난 가운데 있던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저는 멋지게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서 멋있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고난 가운데 신실하게 믿음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목표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제 마음 가운데 진정한 자유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그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성공은 나에게나 중요한 것이지 하나님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서 성공하길 원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포장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싸한 포장으로 다른 사람을 속일진 몰라도 하나님까지 속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잘 살았는지 말해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이 우리 인생의 의미를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종, 착하고 충성된 종아, 여기에서 충성된 이 영어로 faithful인데 신실한 종입니다.
마더테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것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멋지게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공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신실하게 믿음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짧고 유한한 인간의 관점에서 성공을 구하지 말고 영혼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한 인생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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