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원목사 설교

2026년 3월 22일 대구동신교회

마이코 2026. 3. 22. 19:59

 

우리가 사랑한 우상들 (5) 권력 의지
다니엘 4:28-37 | 문대원 목사
2026-03-22



우리가 사랑한 우상들에 대한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전통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형상으로 된 우상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전통을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전통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람이 만든 전통 안에 가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율법의 계명 그 자체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더 중요하게 보십니다.


오늘은 또 다른 우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권력 의지입니다. 

권력 의지는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다스리고 통제하려는 욕구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한 욕구 중에 하나입니다. 

정치인들만 권력 의지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의 권력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인간의 본성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확연하게 구별되는 점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동물은 생존 본능을 따라 살지만, 인간은 생존 본능을 넘어서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기의 힘을 확장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지배하려는 욕구를 인간은 가지고 있습니다.
니체는 그것을 권력 의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걸쳐져 있는 밧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서 초인,위버맨쉬는 니체가 주창한 개념입니다.
기존의 전통과 관습을 뛰어넘어서 자기 의지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과거의 인간은 연약해서 신에게 의지했지만 이제는 자기 의지로 도덕적이고 강인한 초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니체는 인간의 타락을 인정하지 않았고, 인간을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도덕성을 신뢰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초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초인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상승 욕구 이것을 '권력 의지' 라고 불렀습니다.


니체보다 200여 년 전에 활동했던 철학자 중에 파스칼이 있습니다.
파스칼도 인간의 권력 의지와 상승 욕구를 주목했습니다.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구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은 천사와 같아지려다가 오히려 짐승과 같아진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니체와 파스칼 사이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인간에게 있는 권력 의지를 발견했습니다.
니체는 권력 의지를 긍정적으로 본 반면, 파스칼은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권력 의지는 긍정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것입니까?

성경에는 초인과 같이 되려다가 짐승과 같이 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초인을 슈퍼휴먼이라고 한다면 짐승은 서브 휴먼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습을 초월한 초인이 되려고 했지만, 오히려 인간 이하의 모습을 가진 짐승과 같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신 바벨론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느부갓네살 왕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신바벨론 제국의 제2대 왕이었습니다.
그는 수도 바벨론의 새 왕궁을 건축하고 큰 도로를 건축했습니다.
도시 전체를 둘러싸는 거대한 이중 성벽을 구축했습니다.
그 안쪽 내벽이 얼마나 견고했는지 두께가 무려 6.5m였다고 합니다.
또한 세계 7대 불가 사유 중 하나인 공중 정원을 조성했습니다.


그림으로 보시는 것처럼 공중 정원은 7층 높이의 건물 전체를 정원처럼 꾸민 것입니다.
지금이야 놀랍지 않지만 2600년 전에는 7층 높이의 물을 끌어올려서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 불가능한 기술이었습니다.
이 공중 정원은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아내 아미티스를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메데 출신인 그 아미티스는 바벨론으로 시집을 와서 산이 많은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바벨론은 평야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느부갓네살 왕이 아내를 위해서 고층 건물 전체를 정원과 같이 꾸며서 마치 산과 같은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높은 곳에 조성된 정원은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이 다스리는 낙원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신 바벨론 제국의 영광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기록한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정원에서 도시 전체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니엘 4장 30절 함께 읽겠습니다.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험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한 구절에 나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나옵니다.
'나 왕이 말하여 내가 능력과 권세로 나의 도성으로 삼고 내 위험의 영광을 나타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제국의 화려한 도시에서 왕이 선포합니다.
'내가 나의 능력으로 내 위험의 영광을 나타냈다' 라고 선포합니다.
얼마나 교만한 모습입니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자랑하고 자신을 과시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모습과 같습니다.
20~30년 전만 해도 우리가 PR  시대라고 얘기했죠.
PR이 원래 Public Relations 에서 홍보의 약자입니다.
농담 삼아서 P할 것은 피하고 R릴 것은 알린다를 줄여서 PR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약점은 감추고 장점을 알린다 하는 거죠. 

그래도 염치가 있으니까 지나친 자랑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 PR 시대를 넘어서서 자기 과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부와 능력, 성공과 성취를 과시하고 자랑합니다.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마음껏 자기를 과시하고 자랑하는 시대입니다.
좋은 식당, 좋은 호텔에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근사하게 사진을 찍어서 SNS에 자랑하기 위해서 갑니다.
요즘 청년들에게 중요한 남자친구의 자질이 있다고 합니다.
뭔지 아십니까? 

사진을 잘 찍어야 합니다. 

여자친구의 모습을 예쁘게 찍을 줄 알아야 합니다.
SNS에 자랑하려면 사진을 잘 찍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는 엄청난 자기 과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학벌을 자랑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오히려 자랑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랑하는 것 중에서 정말 우리 힘으로 이룬 것은 몇 퍼센트나 될까요?
말콤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라는 책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천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각 분야에서 탁월한 성공을 거두었던 사람들을 연구했더니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로 타고난 능력, 

둘째로 적절한 환경, 

셋째로 끈기 있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맞아떨어져야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환경이 안 좋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은 엄청 똑똑한데 아주 폭력적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공부를 하려고 해도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때려서 도저히 공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도 가출하고 대학교 때도 가출했습니다.
그런 집에서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있지, 부모가 아무리 공부를 시키려고 해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학교에 갈 수 없습니다.
과목별로 과외를 붙여서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도 대학 가서 공부하지 않으면 그 이상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타고난 능력,

적절한 환경,

끈기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에서 두 개는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탁월한 능력과 적절한 환경은 우리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성공한 사람도 사실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성공에 필요한 것에 3분의 1만 내가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3분의 2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결과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룬 최고의 성공은 무엇이 있습니까?
직장에서의 성공, 학업에서의 성공, 가정에서의 성공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이룬 성공이 100% 여러분의 공로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할 수 없는 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있었습니까?


저는 보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100% 저의 공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영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유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 지원해 주셨습니다.
유학 중에는 사랑의 교회, 소망교회, 대구동신교회에서 장학금을 주셨습니다.
또한 저의 멘토 교수님이신 케저리엔 교수님께서 보스턴 대학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또한 지도 교수님께서 책임감을 가지고 제 논문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없었으면 저는 학위를 마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들은 제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학위에 대해서 자랑할 게 별로 없습니다.
제가 감당한 것은 전체 중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사실은 있는 그대로 보면 별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수많은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를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잘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 내가 열심히 한 것 맞습니다.

하지만 내가 한 부분은 전체 중에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과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느부갓네살 왕의 태도였습니다.

 

'내가 나의 능력으로 내 위험의 영광을 나타냈도다' 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과시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 교만을 너무나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리어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내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아멘.

 

자신의 권력과 번영에 심취해서 교만해진 그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의 총명 판단력을 잃어버려서 왕위에서 쫓겨났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에 빠져서 7년 동안 왕궁을 떠나 들짐승과 같이 생활했습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느부갓네살 왕은 천사와 같이 높아지려다가 동물과 같이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그에게 예언되었던 일이었습니다.
집에 가셔서 다니엘 4장 전체를 읽어보시면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꿈에서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은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거룩한 순찰자가 내려와서 그 나무를 베었습니다.
불길한 느낌으로 꿈에서 깬 왕이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이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다니엘이 말하기를 왕이 교만하게 행하면 하나님께서 7년 동안 왕위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말고 공의를 행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행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로 교만은 떨쳐버리기 어려운 죄악입니다.

권력 의지는 다스리고 통제하려는 욕구입니다. 

먼저는 내 인생을 다스리고자 합니다.
높은 자리, 높은 권력으로 올라가서 내 마음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자 합니다. 

다른 사람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조종하려는 욕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스리고 통제하려는 욕구야말로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성경은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4장 13절,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뭍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지표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아멘.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천사가 먼저 타락했습니다.
그러면 천사는 왜 타락하게 되었을까요? 

천사 중에서 자기 자리를 벗어나서 높이 올라가고자 했던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뭇별 위로 올라가고자 했습니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아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사탄은 최초의 인간에게 동일한 유혹을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 따르지 말고 너가 직접 하나님과 같이 되라고 유혹했습니다.
창세기 3장 5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아멘.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스리고 통치하는 것입니다.
내가 통치하고 주관하는 권세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증거하는 사탄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사탄을 어떤 단어로 표현하고 있을까요?
성경에서 사탄을 표현하는 단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자, 통치자들과 권세들, 어둠의 세상 주원자, 이 세상 임금'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탄을 권력을 갈망하는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어둠의 세상을 다스리는 임금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특징은 한마디로 권력 의지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고 통제하기를 원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조종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조종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을 존중하십니다.
여러분이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협박하셨습니까? 

지금 당장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여러분 위협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절대 우리를 협박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조종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존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치하십니다. 

세상 모든 것을 그분의 뜻대로 통치하십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께서 인간을 조종하지는 않으십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만은 조종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마음을 열고 자발적으로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를 조종하지 않으실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인격이 있고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가 나를 사랑하도록 강요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잖아요. 

그런데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도록 강요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인격이 있고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에 사랑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어떠한 자유 의지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모험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것을 사랑한다면 비참한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우리에게도 고통이 되고 하나님께도 고통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이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를 가장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를 조종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사탄은 우리를 조종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조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나를 조종하지 않는데 내가 다른 사람을 조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탄을 따르는 자는 다른 사람을 조종하기 원합니다.
내가 누군가의 조종을 받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을 조종하기 원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누군가를 조종하기 원하십니까?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누군가를 다스리기 원하십니까?

그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마음이 아닙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느 어머니가 25살 된 아들을 지나치게 통제한다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25살 된 아들의 식당까지 매일매일 간섭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이것을 아들을 위한 올바른 사육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정확하게 '사육'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육은 동물을 사육하는 것이지 사람이 사람을 사육하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까 어린 시절에 이 아들에게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게 너무 걱정이 되어서 25살이 되었는데도 모든 식단을 관리합니다.
24시간 간섭하고 통제합니다. 

여러분 24시간 감시를 받으면 그것은 이 집이 아니라 감옥입니다.
집에서는 감시를 하지 않죠? 

감옥에서 감시를 합니다.
24시간 감시를 받는 아들은 너무너무 힘들어서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욕구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타인을 다스리고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권력 의지입니다.
미국의 작가 지그 지글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흥미가 있는 곳으로 간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이 있는 곳에 머무른다' 라고 말했습니다.
멋진 말이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흥미 있고 재미있는 곳으로 갑니다.
인생에서 친구가 중요한 시기가 있지요.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기 원하는 그 아이의 마음을 우리가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우리 집을 안전하고 사랑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면 됩니다.
그럼 아이들이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이 머물고 싶은 곳은 안전하고 사랑이 있고 위로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 가정이 그런 곳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자녀의 방에 들어갈 때 노크를 하십니까?
아니면 그냥 벌컥 들어가십니까?

저희 아버지는 제 방에 들어오실 때 항상 노크를 하셨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10대 시절부터 그렇게 하셨습니다.
제 방에 노크 하시는 그 아버지를 보면서 저는 존중받는다고 느꼈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한 인격으로서 존중받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딸의 방에 들어갈 때 노크를 합니다.
그런데 저희 딸은 제 방에 들어올 때 노크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녀의 권세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존중하고 신뢰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 신뢰에 합당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신뢰하는데 내가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자녀를 의심하고 감시하면 안 됩니다. 

부모님이 나를 의심한다고 생각하면 홧김에 반항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고 하는 마음은 일종의 권력 의지입니다.
권력 의지는 그 이면에 불안이 있습니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정서적으로 불안하며 그 불안을 권력 의지로 극복하려고 한다.  자신이 유한하지 않은 척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권력 의지는 불안과 결핍의 증거입니다.
자신의 불안을 숨기기 위해서 더 큰 권력을 원합니다.
내가 유한하지 않은 척하기 위해서 더 큰 힘을 원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유한합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끝이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나의 힘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 맡기셨을 뿐입니다.
모든 힘과 지혜와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인정하며 그 선하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 평안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자신을 과시하던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습니다.
총명과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왕위에서 쫓겨났습니다.
7년 동안 왕궁을 떠나서 들짐승과 같이 생활했습니다.
그렇게 7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교만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 깨닫고 그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했습니다.
오늘 본문 3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 기한이 참에 나 느부건대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아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했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나의 뜻대로 세상을 주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나의 능력으로 이 왕국을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나를 이 자리에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하고 그분의 뜻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인정한 순간에 그의 총명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실 때 비로소 그의 생각이 올바르게 된 것입니다.
요즘 현대사회를 보면 정말 모든 것이 뒤죽박죽입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학교가 무너졌습니다. 

도덕적 기초, 윤리적 기초가 다 무너졌습니다.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시지 않을 때 모든 질서는 뒤죽박죽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비로소 그때 우리는 올바른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인생은 내가 계획한 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멀리 갈 것 없습니다.
여러분의 지난 20년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처럼 될지 20년 전에 아셨습니까?
이렇게 될지 알고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MBTI 성격 유형 중에 J와 P가 있습니다.

J는 판단형으로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성격입니다.
P는 인식형으로 유동적이고 자율적인 성격입니다.
성격에는 좋고 나쁘고가 없다고 했죠. 

J가 좋고 P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성향입니다. 

참고로 저는 J입니다.
저는 계획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아내와 처음 교제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4년 뒤에 결혼하고 스위스에 선교 훈련 받으러 가자라고 말을 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을까요? 

물론입니다. 

정확히 4년 뒤에 결혼하고 스위스에 선교 훈련 받으러 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기도하고 계획하면 그대로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은 일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미국에서 그렇게 고생할지 몰랐습니다.
또 미국에 그렇게 오래 있을지도 몰랐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가 될 줄은 알았지만 대구 동신교회의 파송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동신교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제가 대구에서 목회를 하게 될 것이라고 단 한 번도 계획했던 적이 없습니다.
지금 저는 한 번도 계획한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기쁘고 보람 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귀한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계 선교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어서 제가 매일매일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저의 계획과 비교할 수 없이 좋습니다' 라고 매일 고백합니다.
인생은 내가 계획한 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움직이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좋기 때문에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55장 8절 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아멘.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길이 우리의 길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내가 모든 것을 다 통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내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니엘 4장에 보면 반복해서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이 구절이 17절 25절, 32절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신 뜻대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인생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움직이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것을 다 통치하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종하지는 않으십니다.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며 우리의 선택을 존중하십니다.
진정한 사랑은 강압적이지 않고 인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통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에 있는 모든 불안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주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할 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줄로 믿습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고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바라보며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qUSZ_pzbtN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