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03-08
우리가 사랑한 우상들이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금송아지 우상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애굽의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합주의에 빠졌습니다.
혼합주의는 하나님과 다른 신을 동시에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내와 다른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신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들을 향해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는 모습입니다.
자기가 만든 우상을 섬기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거만하고 고집스러운 태도를 가진 사람을 가리켜서 목이 곧은 사람이다라고 불렀습니다.
우상숭배자는 자기 마음대로 살기 때문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사랑하면 닮아간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닮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과 행동 매너를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식당에서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호텔에서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배웠습니다.
때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닮아가게 됩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 청년부 특색 강사로 평촌 드림교회 담임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평촌 드림교회는 분당 우리 교회에서 분립 개척한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그때 총 29개의 교회를 볼립 개척했는데 그중에서 제일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개척한 지 4년 되었는데 2700명이 모인다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담임 목사님이 제 친구입니다.
대학 시절에 함께 선교 단체에서 훈련받고 사역을 했습니다.
분당우리교회에서 사역하는 것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개척해서 훌륭하게 사역을 하니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우리 교회에서 설교하는 모습을 보고 아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설교의 구성과 흐름, 전달력까지 이찬수 목사님을 꼭 닮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목사님께 배우니까 그 모습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심지어 이찬수 목사님의 대구 엑센트까지 비슷했습니다.
참고로 제 친구는 서울 사람입니다.
서울 사람이 이찬수 목사님을 얼마나 존경했으면 대구 엑센트까지 비슷하게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델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를 닮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구를 사랑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십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창조주 아니면 피조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죠 세상에 있는 것은 창조주 아니면 피조물 둘 중에 하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격이십니다.
하지만 피조물은 물질입니다.
나무도 물질이고, 동물도 물질이고, 해와 달과 별도 물질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떨까요?
기본적으로 인간은 피조물 중에 하나입니다.
인간의 몸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게 됩니다.
물질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특별한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그분의 형상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인격이 있습니다.
동물에게는 인격이 없습니다.
식물에게도 인격이 없습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인격이 있습니다.
창조주는 인격이고 피조물은 물질입니다.
그런데 인간만이 유일하게 인격인 동시에 물질입니다.
인간은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특별한 피조물입니다.
인간은 특별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만이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여러분, 강아지가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강아지가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겠지만 찬송 부르지 않습니다.
저희 집의 고양이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예배하는 존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이 말씀은 인간의 존재 목적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그 본래의 목적에 충실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새는 하늘을 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폭포는 흘러내릴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찬송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데 그 대신에 피조물을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장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창조주 하나님은 인격이시고, 피조물은 물질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인격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창조되었는데, 타락으로 인해서 물질인 피조물을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을 예배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이 오늘 설교의 주제입니다.
미국의 신학자 그레고리 비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배하는 것을 닮아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놀라운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고 갈망하고 예배하는 것을 닮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올바른 인격을 갖게 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되고 정의를 행하게 됩니다.
반면에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우상을 닮아갑니다.
우상은 물질이기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물질화됩니다.
물질화된다는 것은 인간성을 잃어버린다 하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사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시편 115편 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아멘,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은 우상과 같이 됩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우상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우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금과 은을 부어서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상은 말하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다.
시편 115편 4절에서 6절까지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우상의 특징입니다.
우상은 인격이 아니라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우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는데, 우상을 숭배하면 인격을 잃어버리고 물질처럼 변해갑니다.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말,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양심을 잃어버리고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괴물로 변해갑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결과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 하원에서 엡스타인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7년 전에 사망한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은 정관계 인사들의 비밀 파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 클린턴, 빌 게이츠, 영국의 앤드류 왕자 같은 사람들의 성추문 사진이 공개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하원에 출석해서 청문회를 했습니다.
청문위원들은 클린턴이 젊은 여성들과 욕조에 있던 사진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이 사진이 언제 어디서 찍힌 것인지 질문했습니다.
정말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순간이죠.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이러한 스캔들로 청문회에 서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클린턴의 대답이었습니다.
이 사진은 브루나이에서 찍혔다고 하면서 자기가 브루르나이 국왕이 국제 정치 무대에 데뷔하도록 도왔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도움으로 브루나이 국왕이 에이펙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자랑하듯이 말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 마음이 참담했습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주 태연하고 아주 당당하게 설명했습니다.
내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자기가 브루나이 국왕을 어떻게 도와줬는지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아무도 그것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브루나이 국왕이 누구인지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왜 미국 대통령이 젊은 여성들과 욕조에 있는 사진이 있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에 대해서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고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인터뷰를 보면서 제 마음에 떠오르는 사자성어가 있었습니다.
'인면 수심'이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동물의 마음을 가졌다 하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사람과 동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배우자하고만 사랑을 나눕니다.
동물은 아무하고나 사랑을 나눕니다.
이것이 사람과 동물의 차이입니다.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미국의 대통령을 보면서 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왜 양심을 잃어버리고 부끄러움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요?
어쩌다가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 인격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갈망하는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돈, 권력, 정욕, 탐욕, 이데올로기 이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상은 피조물, 물질입니다.
물질에게는 영적인 도덕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영적인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에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고 무엇이 부끄러움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성과 인격을 잃어버리고 점점 더 물질화되어 갑니다.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우상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간다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인 무지와 무감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2장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많은 것을 보는데 왜 깨닫지 못할까요? 많은 것을 듣는데 왜 이해하지 못할까요?
이것은 현대인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AI 기술의 발달로 어마어마한 정보를 인식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으면 문서, 이미지, 비디오 제작도 이젠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대인들이 과거보다 더 지혜로울까요?
말과 행동에 있어서,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현대인들이 더 지혜로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내 정치나 국제 정치를 보아도 오히려 퇴보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도 후퇴하고 있고, 국제 협력과 평화 유지도 후퇴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발전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후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으면 이사야 선지자의 말이 딱 맞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있는데 깨닫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모습입니다.
영적인 눈이 가려워서 아무리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사야 6장 9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구절은 중요한 말씀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함 사복음서에 모두 다 인용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직접 인용하셨습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인용된 구약 구절이 한 두세 개밖에 없습니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이사야 40장 말씀 정도가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서 이사야 6장도 예수님께서 직접 인용하신 구절입니다.
마태복음 13장 14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러서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영적인 무지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면서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웠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섬기는 우상과 같이 비인간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세속주의 사회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물질주의 사회입니다.
이전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시대이지만 훨씬 더 돈에 집착하면서 살아갑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1위가 건물주라고 하죠.
과거 어느 시대에도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건물주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물질주의 사회의 특징은 비인간화입니다.
사람을 인격적인 존재로 대하지 않고 비인격적인 수단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사업의 수단,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사람을 여깁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비인간화 현상을 더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배달 라이더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람에 의해서 관리되지 않고 알고리즘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사람을 관리합니다.
알고리즘은 사람의 감정 피로도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효율성과 배달 속도만을 고려할 뿐입니다.
물론 효율성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건강과 생명을 해치기까지 효율성을 추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간성이 없는 효율성은 인간을 착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얼마든지 비인간화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내에서 이제 운전하다가 빨리 지나가는 배달 라이더를 보면 위험하다고 느낍니다.
안전이 중요한데 배달이 좀 늦더라도 안전하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배달을 시키는 입장이 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주문한 지가 얼마가 됐는데 아직도 왜 오지 않는지 답답하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라이더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고 내가 주문한 음식이 빨리 도착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얼마든지 비인간화될 수 있습니다.
사람보다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인간화된 이 사회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비인간화의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전쟁터입니다.
전쟁은 너무나 참혹한 일입니다.
절대로 이 땅에서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됩니다.
그래도 과거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적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드론 조종사들은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공격을 수행합니다.

이 병사는 지금 게임하는 게 아니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실전인지 게임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공격자와 피해자 사이에 물리적인 심리적인 거리가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 살인에 대한 죄책감도 희석되기 시작합니다.
죽음은 통계와 데이터로만 다가올 뿐입니다.
전쟁의 게임화는 현대 사회의 큰 문제입니다.
20세기 협상학의 대가 로저 피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버드 법대 교수였던 그는 갈등 관리 전문가로 많은 국가의 지도자들을 컨설팅해 주었습니다.
그가 활동했던 1980년대에는 핵 전쟁의 위협이 컸던 시기였습니다.
핵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피션은 여러 가지 전략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핵 전쟁을 개시할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는데 정작 대통령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핵 전쟁이 벌어지면 수백만 명이 죽을 텐데, 이것을 명령하는 대통령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는 한 가지 장치를 제안했습니다.
핵무기를 발사하기 위한 그 암호를 작은 캡슐에 넣어서 수행원의 심장에 넣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핵무기를 발사하기 위해서는 그 수행원의 심장을 찔러서 그를 죽여야지 그 암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는 핵무기를 발사하기 위해서 최소한 한 명이 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피셔는 대통령이 함부로 핵 전쟁을 시작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를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비인간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인격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비인격적인 수단으로 여기는 시대입니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왜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말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물질을 우상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을 닮아가게 되는데, 물질을 숭배했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있던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현대 사회가 더 각박하고 더 삭막해진 이유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심리적인 관계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떠나서 물질을 우상으로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 사람의 60%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20대 청년들의 80%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종교가 없다는 말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오로지 돈입니다.
돈이 최고의 우상입니다.
그 물질을 우상으로 따라가면 그 물질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성을 잃고 비인간화되었습니다.
인격이신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는 인격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인간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인격이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는 세계에서 제일 격렬한 축구 리그입니다.
엄청난 스피드로 고강도 경기를 치른 선수들은 체력을 모두 다 소진하게 됩니다.
그래서 경기 이후에 피로 회복과 부상 치료를 위해서 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고압 산소 치료를 합니다.
높은 압력에 산소방이 들어가서 회복하는 것입니다.
대기압보다 2배 3배 높은 환경에서 환경에서 100% 순수 산소를 흡입합니다.
그렇게 하면 혈액 내에 산소량이 극대화되어서 염증이 감소하고 근육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신체의 염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고압 산소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염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산소가 필요합니다.
우리 영혼의 산소는 하나님의 생기 되신 성령이십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마른 뼈들이 나옵니다.
골짜기에 가득한 그 마른 뼈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7장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하나님의 생기가 임할 때 마른 뼈가 살아났습니다.
신체의 염증을 위해서 고압 산소가 필요한 것처럼, 영혼의 염증을 위해서 하나님의 생계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이 하나님의 생계가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고 평강의 영이십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임하실 때 우리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머리로 공부한다고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임하실 때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평강의 영이신 성령께서 임하실 때 우리 마음이 안정을 찾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외부 환경에 의해서 마음이 움직입니다.
일이 잘 풀리면 마음이 평안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복잡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임하실 때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이 생깁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 때문에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평강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분의 생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없었다면 인간은 한낱 물질에 지나지 않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되니라.
아멘.
여러분, 이 말씀은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물질인 동시에 인격입니다.
인간은 흙으로 지어졌지만 하나님의 생기를 받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생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인간은 물질인 동시에 인격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을 가장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세속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이제 진화론을 따라가게 되겠죠.
진화론은 기본적으로 유물론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만 믿습니다.
진화론으로는 인격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진화론으로는 사람의 생명이 왜 돼지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나 돼지나 물질과 세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자들은 비인간화 현상에 대해서도 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인격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데, 인격을 회복하는 것은 더욱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현대 사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논리적으로 진화론자들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창조를 믿는 사람만이 인격을 말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비인간화 현상에 대해서 답을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가 왜 인간성을 잃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격이신 하나님을 섬기면 우리도 인격이 되어 갑니다.
우리의 인간성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물질인 우상을 따라가면 우리는 물질이 되어 갑니다.
우리의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위해서 인격을 버리고, 관계를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 앞에서 가족도 버리고 형제도 버리는 경우 얼마든지 있습니다.
돈을 위해서 사람을 배신하고 죽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물질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 함께 읽겠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아멘,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should not 이 아니라 can not 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고 재물은 물질입니다.
물질과 인격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인격이신 하나님을 섬기든지 물질인 재물을 섬기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섬기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궁극적인 헌신, 궁극적인 충성은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헌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왜 헌금을 해야 합니까?
물론 세계 선교를 위해서 헌금해야 하고, 구제를 위해서 헌금해야 합니다.
생명 사역을 위해서 헌금해야 하고, 파손 개척을 위해서도 헌금해야 합니다.
하지만 헌금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물질을 섬기지 않는다는 표시입니다.
내가 돈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바로 헌금의 신학적인 의미입니다.
우리는 돈을 사용합니다.
돈보다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돈보다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돈이 나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돈을 다스립니다.
이것이 바로 헌금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돈을 사용합니다.
이 질서가 온전히 세워질 때에 하나님께서 뜻하신 행복을 누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위치이죠.
인격이신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인간성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인간답게 말하고, 인간답게 행동하고, 인간답게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아모스 5장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그리하면 살리라.
아멘.
아모스 5장은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임박한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주님께서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라고 선포하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어떤 고통과 좌절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께 돌아오다 하나님을 예배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는 방법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주 되시고 하나님만이 구원자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고 회복되는 줄로 믿습니다.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도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인격이신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인격을 갖게 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되고 정의를 행하게 됩니다.
물질인 우상을 예배할 때 우리는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우상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을 닮아간다는 것을 기억하며 언제나 창조주 하나님만 예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주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여서 인간성을 잃어버린 이 세대 가운데 예수님을 닮은 인격의 향기를 바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BEcPKHrGX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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