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원목사 설교

2026년 2월 15일 대구동신교회

마이코 2026. 2. 16. 16:37
인격의 향기가 나는 사람
고린도후서 2:14-17 | 문대원 목사
2026-02-15


여러분은 누군가의 인격에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으십니까?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감동받았던 적이 있으십니까?
모든 사람에게는 인격의 향기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향기가 납니다.
다른 사람을 존대하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좋은 향기가 납니다.
최고급 향수보다 더 아름답고 좋은 향이 인격의 향기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박사 공부할 때 지도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세계 기독교 역사 분야에서 전 세계 탑 3안에 드는 대학자이셨습니다.
예일 대학에서 박사를 하시고 모교에서 이제 교수로 초청이 왔습니다.
하지만 보스턴 대학에 대한 애정이 있으셔서 40년 동안 한 학교에서만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교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큰 영광인 동시에 또한 큰 부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고, 그분의 조교로 일하면서 여러 가지 연구 프로젝트에도 동참했습니다.

유학하는 동안 제가 재정적으로 어렵게 지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야지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 사랑의 교회, 소망교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구 동신교회에서 주는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장학금 신청을 위해서는 지도 교수님의 추천서가 필요했습니다.
세계적인 학자에게 교회 장학금 추천서를 부탁드리는 것은 사실 좀 죄송한 일이었거든요.
교수님께서 안 그래도 엄청 바쁘신데 부탁드리는 일이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교수님께서 너무나도 기쁜 마음으로 추천서를 써주셨고, 그렇게 받은 장학금 덕분에 학위 과정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보스턴을 떠나면서 교수님께 감사의 이메일을 드렸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추천서를 써주셔서 너무너무 고마웠다고 감사의 이메일을 드렸더니 다음과 같은 답장을 주셨습니다.


'선생으로서 사랑하는 제자를 돕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나에게 은혜를 갚지 말고 나중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갚으면 됩니다.
내가 당신을 아끼고 사랑했던 것처럼 나중에 당신의 제자들을 아끼고 사랑해 주세요' 라고 이메일을 보내셨습니다.

 

제가 이것을 받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교수님의 인격의 향기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고의 학자라는 타이틀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분의 인격의 향기였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이제 부룬디 아이엘리 대학에서 교수로 있을 때 저는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추천서를 정성껏 써주었고, 또 장학금 모금도 열심히 했습니다.
교수님께 받았던 그 사랑의 빚을 학생들에게 갚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 부교역자 분들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우리 교역자들이 영적으로 사역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돕고 있습니다.
우리 부목사님들이 담임 목사로 지원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제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추천서를 쓰기도 합니다.
제가 받은 은혜를 가장 잘 갚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향수를 써본 사람은 싸구려 향수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인격의 향기를 맡아본 사람은 나도 그러한 인격을 갖기를 갈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은 인격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았기 때문에 나도 그러한 인격을 갖기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여러분, 인격의 향기가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가정입니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였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인격입니다.
사회에서는 뭐 학벌, 능력, 직업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격입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했어도 가정에서는 그냥 누군가의 아들, 딸, 조카일 뿐입니다.
가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인격입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인격의 향기가 있을 때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즐거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바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5절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 라고 말씀합니다.
구원받는 자들이나 그렇지 않은 자들이나 모두가 다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고급스러운 향수의 냄새를 숨길 수 없듯이 그리스도의 향기도 숨길 수 없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바라게 됩니다.

 

명절이 되면 오랜만에 가족과 친척들이 다 모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친척 가운데 이런 분 꼭 계십니다.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번에 우리 아이가 어느 대학에 들어갔고 주식으로 돈을 얼마나 벌었다라고 질문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분, 자랑하기 원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습니다.
향수 냄새를 숨길 수 없듯이 나의 속 마음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을 위로해 주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보고 손을 꼭 잡아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원하는 그 마음도 숨길 수 없습니다.
인격의 향기는 어떤 것으로도 숨길 수 없습니다. 

인격의 한계를 논하기 전에 우리가 성격과 성품의 차이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성격과 성품이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먼저 성격(personality)는 타고난 성향으로 잘 변하지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MBTI 검사로 나타나는 것이 성격입니다.
우리가 MBTI를 성격 유형 검사라고 하지 성품 유형 검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은 내향적이고 또 어떤 사람은 외향적입니다.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습니다.
반면에 외향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얻습니다.

참고로 저는 내향적인 성격입니다. 

저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쉬는 날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반면에 외향적인 사람은 쉬는 날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격은 타고난 성향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서 성품(character)는 훈련으로 변화되고 성숙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예를 들어서 태어나면서부터 남을 배려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갓난 아기 때는 누구나 다 이기적입니다. 

자기만 알기 때문에 자기의 것을 나눠줄 줄 모릅니다.
부모의 지도와 교육으로 아이는 배려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거죠.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우리가 성품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잘못하면 사람들은 아이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욕합니다.
부모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그렇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에 제가 영국에 갔을 때 한 레스토랑에서 이렇게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의 바른 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들을 환영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센스 있는 표현이죠. 

예의 바른 어린이를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예의 바른 부모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하는 그런 레스토랑의 문구였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올바른 성품을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타고난 성격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성품을 가르칠 필요는 있습니다.
성격은 타고난 성향이기 때문에 좋은 성격, 나쁜 성격이 없습니다.
외향적인 것이 좋고 내향적인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품에는 좋은 성품, 나쁜 성품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좋은 성품이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것은 나쁜 성품입니다.
성격은 개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품은 개발할 수 있습니다.
좋은 성품을 갖도록 지도하고 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좋은 성품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좋은 성품을 갖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 가운데 좋은 성품을 갖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십니까?
사람은 자기가 바라고 갈망하는 것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공부에 욕심 있는 사람은 공부를 따라가고, 돈에 욕심이 있는 사람은 돈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성품을 원하는 사람은 좋은 성품을 갖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성품을 위해서 기꺼이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
성품이 좋다고 해서 갑자기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품이 좋다고 해서 갑자기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좋은 성품이 없으면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놀라운 성공을 거둔다 해도 그것을 지탱하는 성품이 없으면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장관 후보자가 과거 인턴 직원에게 폭언을 했던 것이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분 엄청 똑똑한 분이고 집안도 엄청 좋은 분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녀보다 어린 인턴 직원에게 정말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겠죠. 

하지만 그것이 그분의 성품이었고, 그로 인해서 그분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학벌도 좋고 집안도 좋고 모든 것이 다 좋았지만 그것을 지탱할 성품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버글라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청난 성공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탱할 기본적인 성품이 없다면 파멸로 향하게 된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은 사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증명했습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을 지탱할 성품이 없어서 몰락한 사람들은 성경에도 많이 있고 역사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 인격의 향기를 낼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어떻게 나오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 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아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나온다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라는 것은 추상적인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경험적이고 관계적인 지식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창세기에 보면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알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녀가 동침하는 것을 가리켜 성경은 '안다' 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식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 나오는 경험적인 지식을 뜻합니다.
그렇게 친밀한 관계 안에서 예수님을 알아갈 때 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옵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동행하는 사이입니다.
피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나의 모든 마음을 나누는 깊이 있는 관계입니다.
결혼한 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부부 관계가 깊은 것은 아닙니다.
서로 간에 마음을 나누는 대화가 없다면 얼마든지 피상적인 관계가 가능합니다.
결혼한 지 30년, 40년이 지났지만 부부 사이에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 오래 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예수님과의 관계가 깊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 마음을 나누는 인격적인 교제가 없으면 얼마든지 피상적인 신앙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친밀한 관계 안에서 예수님을 알 때 그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따뜻한지 경험한 사람은 예수님처럼 되고 싶은 갈망이 일어납니다.
실패하고 좌절한 나를 일으켜 주신 그 주님의 위로를 경험한 사람은 나도 이렇게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여서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바라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서 향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향기로운 냄새를 뜻하고, 둘째로는 희생 제물의 냄새를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 때 하나님께 동물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희생 제물의 냄새를 흠향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처음으로 향기라는 단어가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노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죠.
창세기 8장에 보면 노아가 여호와께 재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셨다고 말씀합니다.
홍수 이후에 노아가 하나님께 정결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재물의 향기를 기뻐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정결한 제사를 드릴 때 그것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그러면 인류 역사상 가장 정결한 재산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재물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했을까요?
에베소서 5장 2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아멘, 

인류 역사상 가장 거룩한 재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몸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가장 정결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할 때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성품에서 나오는 향기로운 냄새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들이신 그리스도의 제사에서 나오는 냄새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벽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죄의 노예로 살아갔습니다. 

모든 자유를 다 잃어버리고 사탄의 노예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사탄의 억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십자가를 통해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리스도의 냄새를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게 하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대 로마의 승전식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 시대 때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은 퍼레이드를 했습니다.
그러면 시민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승리한 장군에게 환호와 축하를 보냈습니다.
그때 신에게 드리는 향기를 피웠다고 합니다. 

승전식 퍼레이드와 신에게 드리는 향기가 어우러진 모습입니다.

이 퍼레이드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했습니다.
첫째로 승리한 장군과 함께 싸운 군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승리의 기쁨을 함께 누리며 즐거워했습니다.
둘째로 패배한 적군의 포로들이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자들은 쇠사슬에 묶여서 비참한 마음으로 함께 행진했습니다.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퍼레이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쪽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한쪽은 패배의 절망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퍼레이드에서 신에게 드리는 향기를 피웠습니다.
승리한 사람에게는 이 향기가 생명의 냄새였습니다.
하지만 패배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사망의 냄새였습니다.
이것이 16절의 의미입니다. 

16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오.


아멘.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는 생명의 냄새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을 무찌르셨습니다.
사탄의 권세를 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속한 자는 승리했습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입니다. 

하지만 사탄에게 속한 자는 패배했습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속하셨습니까?
여러분에게 십자가는 어떤 냄새입니까? 

어떤 사람에게 복음은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죄와 저주에서 해방되어서 자유와 생명을 주기 때문에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 복음은 불쾌한 냄새입니다.
내가 계속해서 죄를 짓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쾌한 냄새일 수 있습니다.
동일한 복음 앞에서 이렇게 다른 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섬기는 주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오,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아멘, 

십자가의 도를 보고 미련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들이 뭐 특별히 더 악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잘못된 편에 속했기 때문에 사탄의 편에 속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에게 십자가는 영광이자 생명입니다.
하지만 사탄에게 속한 자는 십자가가 미련한 것이자 사망입니다.
똑같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으면서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국의 기독교 사상가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주에 중립지대란 없다. 한 치의 공간, 단 1초의 시간까지도 하나님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시고, 사탄은 그 주장에 맞선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와 사탄을 따르는 자 사이에 대립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무슨 물리적인 전쟁은 아닙니다. 

몸으로 치고받는 그런 싸움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싸움이고 세계관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에게 속한 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마찬가지로 사탄도 그에게 속한 자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온갖 거짓말로 사람들을 유혹하여서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생각이 옳은지, 누구의 가치관이 옳은지 우리는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죄와 사망이 옳은지, 생명과 성령이 옳은지 우리는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과연 생명의 냄새인지 아니면 사망의 냄새인지 우리가 나타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선한 증거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초대교회의 변증가 미누키우스 펠릭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숫자, 초대교회 숫자가 매일 증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선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것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초대 교회가 부흥했던 이유는 위대한 설교 때문이 아니라 위대한 삶 때문이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전염병이 돌면 이교도들은 환자들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 다 죽을 때까지 다른 마을로 갔다가 다 죽으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끝까지 남아서 그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또한 로마 가족에게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버렸습니다.
저주를 받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여기면서 갓난 아기를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가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바로 이 모습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로마 전역에 퍼져 나갔습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을 나타냈습니다.

 

초대교회가 부흥했던 것은 위대한 설교가 아니라 위대한 삶을 통해서였습니다.
자신을 들이신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리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예수님의 향기가 우리 가정 전체로 퍼져 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6절, 27절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아멘, 

성경은 남편과 아내 중에서 남편이 큰 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남편이 더 좋은 것 같죠. 

하지만 성경은 또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겨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큰 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죠.

더 수고해야 하고 더 섬겨야 하는 자리입니다.
명절이 되면 누가 주로 일합니까? 

남성이 일합니까?
여성이 일합니까? 

여성이 일하지요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지난 명절 때 제가 숙제를 하나 드렸습니다. 

명절 중에 한 끼는 남성들이 준비했으면 좋겠다라고 제가 부탁을 드렸죠.
떡국이든 라면이든 하기 싫으면 외식이든 뭐든지 좋습니다.
남성들이 한 끼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이번 명절에도 동일한 숙제를 드립니다.

그렇게 할 때 믿지 않는 가족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성경적인 원리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예수님의 향기를 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직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포도주에 물을 타서 파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포도주에 물을 타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포도주의 퀄리티가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정직하지 않은 상인들을 가리키는 헬라어가 있었는데 카펠루어라는 단어였습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패들러이고 한글로 표현하면은 잡상인 정도 될 것입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품질이 나쁜 물건을 파는 사람이죠.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그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본문 1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한다고 하면서 잡상인을 뜻하는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온전한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불순물이 섞인 물건을 파는 것입니다.
포도주에 물을 타서 파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교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실제 삶에서 복음을 실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은 복음의 일꾼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복음의 잡상인과 같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사지 말아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향수입니다.
여러분, 웬만하면 인터넷에서 향수를 사지 마십시오.
특별히 정가보다 더 싸게 파는 향수를 사면 안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향수는 가짜이기 때문이죠.
제가 청년 시절에 좋아하던 향수가 있었습니다.

상쾌한 향이 좋아서 매번 똑같은 향수를 구입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터넷에 보니까 그 향수를 50% 세일해서 파는 겁니다.
좋아하는 향수를 싸게 파니까 이제 기쁜 마음에 바로 주문했습니다.
배송된 상품을 보니까 포장지나 향수병이나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향수의 강도가 훨씬 더 약했습니다. 

처음 쓰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매일 사용하는 사람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싸게 파는 향수는 물을 섞어서 향이 아주 약합니다.
뭐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언론에도 보도가 많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인터넷에서 향수를 사지 않습니다.
진짜 향수에 물을 섞어서 파는 것은 일종의 사기입니다.
원래 제품을 손상시켜서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복음에 불순물을 섞는 것은 잘못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을 섞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인본주의 사상을 섞고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섞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영적인 사기이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잡상인이 아니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떠한 불순물도 섞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그 복음을 있는 그대로 순전한 마음으로 증거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복음 안에 담긴 영적인 생명이 있는 그대로 역사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간에 대구 기독교 총연합회 대기총에서 목회자 모임이 있었습니다.
대기총 선배 목사님들께서 후배 목사들을 격려해 주시는 자리였습니다.
목회하기 힘든 시대에 고생한다고 격려해 주시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앉은 테이블에는 동신교회, 범어교회, 충성교회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대구를 대표하는 교회들인데 다 제 또래의 젊은 담임 목사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표정이 환하고 좋았습니다.

어떤 목회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마음으로 사역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왜 그런지 아십니까?

전임 목사님들께서 훌륭하셔서 그렇습니다.
동신교회, 범어교회, 충성교회 원로 목사님들께서 정말로 훌륭하신 분들이십니다.
특별히 그분들의 성품이 훌륭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목사님께서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사역하셨으니까 교회 전체가 평안하고 은혜롭습니다.
교회 전반적으로 목회자를 향한 사랑과 신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은퇴하신 이후에도 교회가 건강하고 평안합니다.


여러분, 설교 잘하는 목사님보다 훨씬 더 훌륭한 분이 예수님을 닮은 목사님이십니다.
본인이 설교한 대로 살아가는 그 목사님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권성수 목사님, 장영일 목사님, 최영태 목사님 같은 분들이 같은 시대에 같은 도시에서 사역하신 거 너무나도 귀한 일입니다.

진짜 아름다운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같이 있을 때도 좋았지만 떠난 이후에 깊은 향기가 남는 사람이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델을 볼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 우리도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오늘 본문 바로 다음 장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바울은 아름다운 믿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인정, 사람의 인정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채울 수 없는 우리의 갈망을 하나님께서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가장 귀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불순물을 섞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욕심, 인간적인 야망을 섞지 않습니다.
그것을 섞으면 본래의 아름다운 향기가 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만족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미국의 존 파이퍼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만족하십니까? 

무엇으로 인해서 가장 기뻐하십니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는 너무너무 기뻐합니다.
이 순간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동안의 노력과 고생을 생각하면 너무나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20년 전에 메달을 딴 기쁨이 지금까지 생생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기쁨은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성취에 갇혀 있으면 오히려 현재의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과거의 성취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내가 예전에 이런 사람이었는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 때문에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일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드립니다.
인간의 욕심을 하나님의 은혜에 섞으면요. 그 향기가 상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바라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섞지 않는 순전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복음 안에 담긴 영적인 생명이 있는 그대로 역사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바라는 자로 세우신 분들이십니다.
우리 주변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모두가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맞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축원합니다.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예수님의 향기를 바라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pE7ztRQZa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