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 역사에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터닝 포인트라고 불렀습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세계사에는 여러 가지 터닝 포인트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1455년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했습니다.
인쇄기의 발명으로 인해서 책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쉬워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성경책을 출판하는 것이 아주 쉬워졌습니다.
이전에는 부자들만 성경책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수도원에서 손으로 일일이 필사한 성경책은 가격이 아주 비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로 인해서 이제는 평민들도 성경책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60년 뒤에 있을 종교 개혁의 아주 중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이전에도 종교 개혁자들이 있었습니다.
영국에 위클리프가 있었고, 체코에는 얀 후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종교 개혁은 실패했습니다.
대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루터의 종교 개혁은 성공했습니다.
왜냐하면 대중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루터는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되었을까요?
그가 적은 95개조 반박문이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통해서 대량으로 배포되었기 때문입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없었다면 루터의 종교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종교 개혁이 성공하지 못했으면 지금의 개신교도 없고 근대 국가 네이션 스테이트의 출연도 훨씬 더 늦었을 것입니다.
1455년 인쇄기의 발명은 이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터닝 포인트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미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왕정을 타파하고 공화정을 시작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국가의 주권은 왕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가 유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833년 영국에서는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아프리카 노예를 금지하는 법안이 영국에서 통과되었습니다.
타고난 인정으로 사람을 억압할 수 없다는 공식적인 법안이었습니다.
이렇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역사의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정치학자는 인간의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왔다고 주장합니다.
경제학자는 산업이 발전하고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왔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학자는 제국의 출연과 몰락을 가지고 역사를 논하기도 합니다.
로마 제국, 몽골 제국, 대형 제국 등 여러 제국들이 있었습니다.
제국의 탄생과 성장, 몰락이 반복되는 것이 역사이다라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역사의 방향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우연히 이 세대에 태어났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을까요?
우리가 보내심을 받았다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시대적인 사명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번 주간에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시대적 사명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리더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시대를 분별하고 역사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장면입니다.
70년 전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정복되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사라졌고 성전도 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때가 이르면 그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아멘.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영원히 바벨론에 있을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70년이 차면 그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하나님의 선하심에 근거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하지 않고 그분의 사랑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이 오늘 본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에스라 1장 1절 함께 읽겠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심에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여기서 바사는 페르시아입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 제국을 정복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기원전 539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역사학자들은 바벨론이 멸망한 이유를 다양하게 설명합니다.
빈번한 쿠데타와 반란으로 왕권이 약화되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종교 갈등에 있어서 지도층이 분열되었습니다.
또한 페르시아 군이 탁월한 군사 전략을 사용하였습니다.
바벨론 성 주위를 흐르고 있는 유프라테스 강물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운하를 팠습니다.
그렇게 강물을 마르게 하고 강바닥을 통해서 성벽 내부로 진입하는 아주 기발한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큰 피해 없이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놀라운 장면이죠.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겠다 그런 약속을 하셨죠.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사용하셨습니다.
고레스 왕은 원년에 칙령을 선포했습니다.
원년이라 함은 왕이 된 첫 번째 해를 뜻합니다.
지금도 대통령 임기 첫해에 권력이 가장 막강하죠.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이 된 첫 해의 권력이 가장 막강했습니다.
고레스가 왕이 된 첫해에 칙령을 내렸습니다.
성경은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을 조종하지 않으십니다.
로보트를 조종하듯이 사람을 조종하지 않으시고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사람의 의지를 존중하면서도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실 때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합니다.
첫째는 마음을 부드럽게 해서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마음을 완악하게 해서 하나님의 감동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둘 중에서 어떤 사람을 사용하실까요?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 마음이 완악한 사람 중에서 하나님은 누구를 사용하실까요?
둘 다 사용하십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그 순종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마음을 완악하게 해서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면 그 거역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 모두를 사용해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성경에 보면 이 두 가지 경우가 모두 다 나옵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해서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한 사람은 바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였습니다.
그는 하늘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사 자기가 왕이 된 것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그분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허락했고, 성전을 재건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품을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한 좋은 예가 고레스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마음을 완악하게 해서 하나님의 감동에 대적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애굽의 왕 바로였습니다.
출애굽기 9장 35절 함께 읽겠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아멘.
바로는 마음을 완악하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내보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이 내리는 데 쓰임을 받았습니다.
좋은 일을 위해서 쓰임 받은 것이 아니라 재앙이 임하는 일을 위해서 쓰임을 받았습니다.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면, 하나님은 그 불순종을 통해서도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선한 도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악한 도구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선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악한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최근에 들었던 설교나 묵상했던 말씀 중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감동이 있었습니까?
내가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그분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살았던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그냥 그곳에 남았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던 사람들은 그 결과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는 그 역사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분의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멀리서 듣게 될 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를 멀리서 듣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직접 보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보기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실 때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레스 왕은 스스로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강 바벨론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태도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 되면 자신에게 공을 돌립니다.
사업이 잘 되면 내가 잘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부응하면 내가 열심히 해서 부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힘만으로 일이 잘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하고, 외부적인 요인도 잘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교회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역동적으로 부응하는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어떤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부흥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담임 목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당회가 하나 되지 못하면 교회가 부응할 수 없습니다.
당회가 하나 되어도 교역자들이 헌신하지 않으면 교회가 부응할 수 없습니다.
교역자들이 헌신해도 평신도 리더들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으지 않으면 교회가 부흥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19개 위원회 중에서 한 위원회라도 맡겨진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교회는 건강하게 부응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의 헌신으로 교회가 부흥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합당한 태도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놀라운 성공을 경험하게 되면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치 내가 잘해서 이것이 다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위기의 시작입니다.
내가 잘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기의 시작입니다.
놀랍게도 고레스 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잘해서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지혜가 탁월하고 그의 용기가 뛰어나서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 일을 행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의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고레스 왕이 고백합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고레스 말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었는데, 왜 고레스에게 모든 나라를 주셨을까요?
이것은 100만 불짜리 질문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에서 성공을 경험했을 때 반드시 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러한 은혜와 성공을 허락하셨을까라고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 질문을 허락하지 않으면 교만하게 됩니다.
내가 잘나서 성공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머지않아서 쇠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고레스 왕은 이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모든 나라를 주셨을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답을 찾았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짓게 하라고 나에게 이러한 성공을 주셨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레스가 어떻게 이것을 깨달았을까요?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나타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4장 28절 함께 읽겠습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내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아멘.
이 말씀은 기원전 680년경에 쓰였습니다.
고레스 왕이 등장하기 150년 전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고레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등장할 것인데 그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놀라운 예언의 말씀이죠.
그 말씀대로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세계 최고의 권력을 잡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가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렇게 어마어마한 성공이 주어졌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150년 전에 나의 이름을 알고 계시고 말씀하신 분이 계시다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고레스 왕은 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신 이유는 바로 이 일을 위한 것이다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 전역에 칙령을 내려서 유대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혹시 어떤 분은 이 이야기를 믿지 못할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고대 설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런던에 있는 대형 박물관에 가시면 사이러스 설린더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레스가 영어로 사이러스거든요.
고레스 왕이 내린 칙령이 이 원통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대 언어인 아카드어로 적혀 있습니다.
여러분 나중에 런던에 가셔서 꼭 보시기 바랍니다.
기원전 539년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왕이 제국에 있는 모든 피지배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했습니다.
본국으로 돌아가서 신을 위한 성전을 건축하라라고 명령했습니다.
오늘 본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기록입니다.
성경의 역사성은 고고학 자료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성경의 기록이 고과학 자료와 모순되었다면 엄청난 공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지명 사건은 고고학 자료와 일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고레스 왕은 중요한 결론에 다달랐습니다.
역사에 주권자가 있고 그분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면 거기에는 목적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은혜를 허락하신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질문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데 나에게 특별한 은혜를 허락하셨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교회가 5만 개에서 6만 개 정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가 있는데 우리 교회처럼 영적으로 살아 있고 뜨거운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데 동시에 청년들이 이렇게 많은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교육과 훈련에 특화되어 있는데 동시에 뜨거운 금요 기도회가 있는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76년 된 장로 교회입니다.
일반 장로 교회와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회가 있고 위원회가 있고 부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딱딱하게 제도화되어 있지 않고 유연하고 역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중에 천국에 가서 칼빈을 만나면 제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구상했던 장로교 제도를 정말로 잘 구현했던 교회가 대구에 있었다고 제가 꼭 말하고 싶습니다.
장로교 제도를 만든 사람이 칼빈이거든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는 특별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레스가 했던 이 질문을 자주 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특별한 은혜를 주셨을까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이 질문에 대한 쉬운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신교회를 사랑하셔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른 교회는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다른 교회는 조금 사랑하시고 동시 교회 더 많이 사랑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신교회를 통해서 하기 원하시는 일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우리 교회를 통해서 나타내기 원하시는 일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선한 청지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 응답 중 하나가 바로 파송 개척입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분립 개척이라는 개념이 많이 공유되었습니다.
분당 우리 교회, 안산 동산교회와 같이 귀한 마음으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지난 노회 때 우리 교회의 파손 개척에 대해서 다른 목사님들께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한 개척교회 목사님께서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드디어 대구에도 파송 개척하는 교회가 나왔다고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분 말씀에 내가 개척한 지 15년 됐는데 신실한 성도 30명을 세우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고 영적으로 훈련된 성도 30명을 세우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동신교회에서 파손 개척을 한다면 10년은 앞당겨서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역사의 주권자를 인식하고 그분의 뜻을 구했던 고레스 왕처럼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대인의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위해서 하나님은 여러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각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인식했고 그것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었습니다.
고레스 왕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유를 선포했습니다.
돌아갈 때 빈손으로 가지 말고 필요한 물건과 폐물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아멘.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고레스 왕의 명령으로 필요한 물건과 은금, 폐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에 애굽에서 나올 때에도 동일한 일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나올 때에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은금 폐물을 가지고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출애굽기 12장 35절, 36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함에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심으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아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올 때 은근 패물과 의복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애굽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했다는 의미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승전국이 패전국으로부터 은금 패물을 취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의 은근 패물을 취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승리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취한 패물은 이후에 성막을 만들 때 중요한 재료가 되었습니다.
성막 안에는 언약궤가 있고 뭐 금촛대, 금향단 등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어디에서 금을 구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모두 다 애굽에서 나올 때 가져왔던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에서 나올 때 은근 패물을 취했다 하는 것은 과거 출애굽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 귀환은 두 번째 출애굽과 같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듯이 이제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취한 폐물로 성막을 지었듯이, 바벨론에서 취한 패물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재건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고레스 왕이 유대인들에게 패물을 주라고 한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고레스 왕이 직접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유를 선포했고, 성전 재건을 위해서 필요한 폐물과 물건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감당했습니다.
총독 스룻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선포했던 선지자가 바로 학개와 스가랴였습니다.
이들은 한 마음이 되어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했습니다.
그 이후에 에스라가 돌아와서 영적인 각성과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일을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대규모의 일이었습니다.
각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역할에 충성했습니다.
스룻바벨은 성전 재건에 힘썼고, 에스라는 영적인 각성을 위해 힘썼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이 모든 노력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예루살렘의 회복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시는 큰 그림의 퍼즐이 다 완성된 것입니다.
각 사람은 퍼즐의 한 조각, 한 조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혼자 힘으로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각 사람에게 맡겨진 역할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던 터닝 포인트는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시대적 사명감을 가진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인류 역사의 전환점 중 하나가 바로 항생제의 개발입니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과 지금의 상황은 절대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에는 작은 상처나 세균 감염으로도 치명적인 위협을 받았습니다.
사망자의 40% 정도가 감염 질환으로 목숨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최초의 항생제는 누가 개발했을까요?
AI에게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은 1928년 영국 의사 알렉산더 플레밍이 개발했습니다.
플레밍은 1차 대전에서 많은 부상자들이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감염 질환을 해결하기 위해서 실험을 거듭했습니다.
곰팡이를 배양해서 멸균 능력을 가진 물질을 찾던 중에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푸른 곰팡이의 한 성분이 세균을 죽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분을 페니실린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알렉산드 플레밍이 항생제를 개발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그 혼자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페니실린을 발견했지만 이것을 상용화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페니셀리를 대량으로 분리해야 하는데 그곳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7년이 흘렀습니다.
1935년 옥스퍼드 대학의 하워드 플로리와 에른스트 체인이라는 사람이 페니실린을 대량으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2차 대전에서 사용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세균 감염을 치료하기 위한 최초의 항생제는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완성되었습니다.
한 사람에 의해서 완성된 것도 아닙니다.
시대적 사명감을 가졌었던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완성되었습니다.
1945년 노벨위원회는 페니실린을 개발한 사람에게 노벨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노벨 의학상을 받았을까요?
페니실린을 처음으로 발견했던 플레밍이 받았을까요?
아니면 그것을 대량으로 생산했던 플로리와 체인이 받았을까요?
세 사람이 공동 수상했습니다.
플레밍, 플로리, 체인이 이 세 사람이 다 같이 함께 노벨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고 감당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습니다.
고도로 발전한 현대 사회에서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에게 맡겨진 역할을 감당할 뿐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다른 역할을 감당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 전체 그림을 완성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선한 뜻과 계획에 따라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놀라운 지혜에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분의 역사를 완성해 가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섭리를 영어로 Providence 라고 합니다.
이것은 라틴어 프로비데오에서 왔습니다.
프로 비데오는 프로와 비데어의 합성어입니다.
Pro 하면은 미리라는 뜻이고요.
Video 하면 보다라는 뜻입니다.
섭리는 미리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시간 안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에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간 바깥에 계시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번에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미리 보십니다.
우리의 미래를 붙잡고 계시고, 우리를 향한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줄로 믿습니다.
복음 성가 중에서 '살아계신 주' 라는 찬양이 있죠.
이 찬양의 영어 가사가 정말 은혜가 됩니다.

Becoause I know He holds the future, life is worth the living. 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미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눈앞의 상황이 절망적이어도 인생을 살아갈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상황이 아무래도 인생을 살아갈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나라의 미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먼저 보고 계시고, 우리를 향한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계신데, 우리가 소망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아멘.
역사는 무작위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방향을 주관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역사의 주관자를 인식한다면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해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에 충성함으로써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대적 사명을 분별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맡겨진 그 사명에 기쁨으로 충성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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