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원목사 설교

2026년 1월 11일 대구동신교회

마이코 2026. 1. 12. 14:10

 


여러분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할 때 제일 기쁘시고 즐거우십니까?
어떤 사람은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할 때 제일 기쁘다고 합니다.
뭐 테니스를 하든 골프를 하든 운동할 때가 제일 좋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 갈 때 제일 기쁘다고 합니다.
이번 휴가 때 어디에 갈까? 

여행 계획을 세울 때가 제일 즐겁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제일 많이 생각하고 제일 사랑하는 것, 내가 가장 원하고 갈망하는 것 그것이 내가 누구인지 말해 줍니다.

 

지난주에 합리주의 철학과 경험주의 철학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했습니다.
합리주의 철학은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규정합니다.
근대 합리주의 철학을 정립한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인간만이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고 계획할 수 있습니다.
동물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이 정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생각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정적이지 않고 지향적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무언가를 바라는 존재입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런 질문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7장 36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아멘,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 마음의 갈망을 물으십니다.
우리가 정말로 소망하고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여러분 앞에 오셔서 이 질문을 하시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딱 한 가지만 말할 수 있습니다.
너가 무엇을 원하느냐? 라고 질문하시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인간은 단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고 그것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신학자 제임스 스미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갈망하는 것이 나를 규정합니다. 

궁극적인 사랑이 우리를 움직이고 자극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따라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방향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가입니다.

 

오늘 본문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오병이어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5개로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이야기죠.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모두 다 기록된 기적이 딱 두 개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는 예수님의 부활이고, 또 한 가지는 오병이어의 기적이었습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기적이 언제 일어났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4절에 보니까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 예수님께서 이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유월절이 어떤 날입니까? 

과거의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해방된 독립 기념일입니다.
그로부터 1400년이 지났고, 이스라엘은 이제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서는 로마의 지배에서 우리가 해방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총독은 유월절이 올 때마다 혹시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그렇게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 큰 무리가 광야에 모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셔서 5천 명에게 떡을 주셨습니다.

 

유월절, 광야, 떡 하면 연상 나는 연상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의 조상이 애굽을 나와서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그 사건이 기억났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모세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혹시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 2의 출애굽을 인도할 모세 같은 지도자가 아닐까?
유대인들은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정치적인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떠나서 혼자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따라온 무리와 대화하는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온 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26절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아멘.

이것은 정곡을 찌른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돌려서 말하지 않고 곧바로 핵심을 찌를 때가 가끔 있었는데요.
무리가 왜 예수님을 따라왔는지 그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은 표적이 아니라 떡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성경에서 표적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기사(wonders)는 인간의 입장에서 놀랍고 신비로운 일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표적(signs)는 예수님의 신성과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의미합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비슷할 수 있죠.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신 일, 물 위를 걸어가신 일 다 놀라운 기적이고 신비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일이 가리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그분의 신성과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표적의 목적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깨닫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표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표적이 가리키는 그 예수님의 신성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무리는 표적이 가르키는 것을 보지 않고 그냥 표적 자체에 열광합니다.
그저 놀랍고 신비로운 일에 열광합니다. 

무엇보다도 공짜로 떡을 먹은 것에 열광했습니다.
그건 정말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선교지에서 구제 사역을 우리가 섬길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 재난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식량을 나눌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헌금해 주셔서 저도 부룬디에 있을 때 염소를 나누어 주는 사역을 했습니다.
선교사가 식량을 나누고 염소를 나누는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서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초청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모든 구제 사역은 현지 교회를 통해서 진행합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현지 교회와 연결되어서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신앙에는 관심이 없고 먹을 것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배고프니까 온통 먹을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절박한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족 수에 따라서 필요한 양식을 저희가 드립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필요한 것만 딱 가져가고 교회와는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선교사 입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 나눠주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식량을 가지고 평생 동안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금방 떨어질 것이고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영원한 만족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원한 소망과 위로를 주시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당장 먹을 음식에만 혈안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유대인들이 꼭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표적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내는 예수님의 영광과 신성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이 무엇인지 아무 관심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온 이유는 공짜로 떡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현실적인 요청을 하게 됩니다.
본문 34절에 보니까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그들의 배를 채울 육신의 떡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딱 한 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항상 먹을 떡을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내렸던 것처럼 예수님도 그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우리에게 떡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 요청은 사마리아 여인의 요청과 똑같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죠.
한낮에 더운 낮에 물을 기르러 온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15절 함께 읽겠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기르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아멘.

사마리아 여인의 요청과 유대인들의 요청이 똑같았습니다.
마실 물을 요청하는 것과 먹을 떡을 요청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일하지 않고 수고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요즘 30 40대 중에서 '파이어족'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파이어족이 뭔지 아시죠? 파이어 하면요 파이낸셜 인디펜던스 리타이어 얼리의 약자입니다.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서 일찍 은퇴하는 것이 꿈인 사람들을 뜻합니다.
최대한 빨리 30억 원을 모아서 일찍 은퇴하고 즐기면서 살고 싶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꿈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2천 년 전에도 똑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하지 않고 그냥 편하게 먹고 살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서도 오로지 그 문제만 이야기했습니다.
일하지 않고 편하게 먹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항상 먹을 떡과 마실 물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오로지 자기 배만 위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난달에 제가 서울에 출장을 갔다가 한 현수막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행복이 권리가 되는 나라'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언뜻 보면 뭐 좋은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대중의 이기심을 선동하는 말입니다.
마치 나에게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행복해야 하는 권리는 없습니다.

다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만 있을 뿐입니다.
행복 추구권과 행복권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 원망하고 국가를 원망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일하지 않고 편하게 먹고 사는 것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불가능한 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있고 2천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공짜를 바라고 요행을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요술 방망이처럼 생각합니다. 

인간의 수고가 필요 없는 기적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기적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초점은 기적이 있지 않고 예수님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왜 기록했는지 그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오,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비인격적인 기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대인들의 본심을 드러내신 예수님께서 이어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I AM 선포 중에 첫 번째 말씀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예수님의 IM 선포라는 시리즈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분이 누구이신지 7번에 걸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라고 말씀하셨죠.
이것은 그냥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I AM 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그분의 신적인 정체성을 선포하셨습니다.
I AM을 헬라어로 하면 에고 에이미입니다.

유대인이 에고 에이미라는 말을 듣는 순간 기억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기 3장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분의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바로 여호와이죠.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I AM WHO I AM 이고요. 헬라어로 표현하면 에고 에이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에고 에이미라고 말을 하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에고 에이미를 사용해서 총 7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신적인 속성을 7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중에서 첫 번째 말씀입니다. 

본문 3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줄이지 아니할 터이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아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를 채운 유대인들은 항상 떡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육신의 떡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떡이 아니라 생명의 떡을 주기 원하셨습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허기를 느끼는 그런 일시적인 만족이 아니라 영원히 줄이지 않는 영원한 만족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가봤던 식당 중에서 가장 좋은 식당은 어디였습니까?
요즘은 워낙 좋은 식당이 많아서 딱 하나만 고르기가 어렵습니다.
제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고급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께서 서울 남산에 있는 힐튼 호텔 부페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지금이야 글로벌 체인 호텔이 많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별로 없었거든요.
제 인생에서 정말 최고급 식당 처음으로 가봤습니다.
처음 보는 음식들도 많았고 외국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정말로 근사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 되니까 또 배가 고팠습니다.
비싼 음식 먹었으니까 한 2, 3일은 가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비싼 음식 먹든 싼 음식 먹든 6시간 지나면 다시 배가 고픕니다.

 

육신의 떡은 우리를 영원히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우리가 영원히 만족할 수 없죠.
6시간이 지나면 다시 허기를 느끼는 것이 인간입니다.
영국의 기독교 사상가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어느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갈망을 가진 자신을 발견했다면 가장 가능성 있는 설명은 우리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은 누구든지 동의할 수 있는 솔직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상관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동의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갈망이 있습니다.
돈, 명예, 학벌, 그 어느 것도 우리를 영원히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것을 원하죠.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는 애처로운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이 현상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한 CS 루이스가 결론을 내렸죠.
'우리는 이 세상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 입니다.
이 세상을 다 얻어도 만족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세상보다 더 선하고 완벽한 다른 세상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완벽한 세상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오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그래서 말씀하셨죠. 

'나는 생명을 주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3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아멘.

여기에서 생명은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입니다.
내 영혼이 정말로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겁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확신하는 상태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살아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생명력이 가득하고 소망이 가득하십니까?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씀할 수 있으십니까?
인생의 고난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수많은 것을 가졌지만 영적인 생명이 없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큰 재산을 가졌지만 마음에 기쁨이 없는 사람 만나본 적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주 평범한 사람인데 영적인 생명이 가득한 사람도 만나본 적 있습니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진정한 기쁨을 가진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둘 중에서 누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까? 

누가 진정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분을 믿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만족감에 대한 약속입니다. 

만족감은 성취감에서 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고 어떤 목표를 이루었을 때 성취감을 느끼죠?
그때 우리 마음이 만족합니다.

여러분이 가장 최근에 이룬 성취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합격이든 승진이든 계약이든 뭐든지 좋습니다.
여러분이 이룬 성취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원하는 목표가 있을 때 딱 그것을 이루었을 때 성취감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오는 만족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만족감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우리의 만족감은 영원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관점 인간의 계획이 장기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생각하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단기적인 목표만을 이루기 원합니다.
예를 들어서 뭐 박사 과정에 입학한 학생의 목표는 학위를 따는 겁니다.
좋은 논문 써서 빨리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때 느끼는 기쁨과 만족감이 있죠.
그런데 그 만족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박사학위 있다고 인생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박사학위 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교수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인간의 관점은 단기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성취도 단기적입니다.
여러분, 단기적인 성취에서는 영원한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또 다른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즉각적인 만족과 쾌락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군대에서 인터넷 도박이 문제라고 합니다.
요즘 군대에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휴대폰으로 인터넷 도박을 많이 합니다.
사병 월급 많이 올랐잖아요. 

이것을 알고 도박 업체에서 친구 소개해 주면 인센티브를 주는 형식으로 엄청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술, 도박, 마약 같은 중독은 여러분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각적인 만족과 즉각적인 쾌락을 준다는 면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통 도박하는 사람들이 술, 담배를 함께 합니다.
건강하게 샐러드 먹으면서 도박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든 종류의 중독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각적인 쾌락에 빠지면 여러분 시간에 대한 관점이 매우 짧아집니다.
그 결과 일반인은 미래를 4년 뒤라고 생각하는데, 

중독자는 미래를 9일 뒤라고 생각합니다.
중독자는 9일 이상의 장기적인 관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쾌락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만족이 영원하지 못한 이유는 우리의 관점이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영원한 만족을 누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나의 뜻을 이루면 일시적인 만족감을 누리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 영원한 만족감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만족에 대해서 말씀하신 예수님은 그분이 무엇을 위해 사시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8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아멘.

예수님은 자기의 뜻을 위해 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셨습니다.
그렇게 할 때 일시적인 만족감이 아니라 영원한 만족감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감으로 영원한 만족감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마음으로 출근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 출근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출근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위해서 일합니다.
사도 바울은 과연 무엇이 그를 움직이는 동력인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데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음 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아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강권하다가 영어로 compel, control 입니다.

우리 인생을 지배하고 움직이는 힘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강력한지 우리를 붙잡고 간다는 고백입니다.
우리 인생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사랑하십니까?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올바른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부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거룩한 갈망의 삶이다. 그것은 갈망에 의해 훈련되는 삶이며, 거룩한 갈망을 통한 우리의 훈련은 우리의 갈망이 점차 이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올바른 것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가장 선한 것,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책임은 그러한 거룩한 갈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어떨 때에는 교회에서 하는 설교가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 때가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설교 중에서 어떤 말은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거룩한지 들어야 합니다.
비록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에 대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가장 선한 것, 가장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갈망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단 신문과 신년 대담을 했습니다.
그 주제는 청년 사역이었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교회를 많이 떠나는데 그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왜 대구동신교회는 청년들이 그렇게 몰려드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을 받고 제가 그 기자님에게 다시 질문했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인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인지에 대해서 그분의 의견을 제가 물었습니다.
물론 세상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떠나는 청년도 있습니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은 교회에 실망해서 교회를 떠납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청년 중에서 44%가 가나안 성도이다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신앙은 가지고 있는데 교회의 모습에 실망해서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청년들이 예전 청년들보다 더 세속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더 나쁘거나 더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청년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 똑같습니다. 

다만 눈앞의 현실이 어둡고 차가워서 조금 낙심될 뿐입니다.
왜 대구 동신교회 청년들이 몰려드는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청년부를 위해서 헌신한 수많은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굳이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우리 교회는 청년들을 사랑합니다.
담임 목사인 저는 청년들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우리 교육자들도 청년들 사랑합니다.
우리 장로님들 중직들 다 청년들 사랑합니다. 

청년들을 위해서라면 교회에서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이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교회의 사랑을 받은 청년들은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교회의 지지를 받은 청년들은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 대구교대 캠퍼스 모임에 대해서 들으셨죠?
우리 교회 부목사님과 청년 6명이 캠퍼스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기간에 줌 미팅을 하면서 학교를 위해서 기도하며 친구들 전도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이 부흥해서 작년에 290명이 모였습니다.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 요즘 캠퍼스 선교 단체 다 어려워서 모여봐야 10명 20명 모입니다.
근데 우리 교회 청년이 주축이 되어서 이렇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90명 중에서 우리 교회 청년은 6명, 7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280명은 우리 교회와 아무 상관없습니다.
다른 교회 청년이거나 가난한 성도거나 아니면 불신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는 사랑의 마음으로 이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과 섬김을 통해서 이들은 매주 생명의 말씀을 듣고 있고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사람을 움직입니까?

사랑이 사람을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가? 

단기적인 관점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의 방향이 꿈의 방향을 결정하고, 꿈의 방향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방향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예수님은 썩을 양식과 영원한 양식을 대비하셨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해 살지 말고 영원한 양식을 위해서 살아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영원한 양식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4장 34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아멘,

예수님의 양식은 그분을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예수님은 영원한 만족과 기쁨을 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만족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계획과 관점은 단기적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루어도 우리의 만족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과 계획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루어 갈 때 우리는 영원한 만족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떡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는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만족이 아니라 영원한 만족을 위해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과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신 그 예수님을 더욱더 사랑하는 새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Bfr5utOM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