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입니다.
창조론은 인격적인 절대자가 세상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가 있기 전에 인격적인 절대자가 먼저 존재했습니다.
그 절대자는 선한 뜻과 목적을 가지고 물질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론에 있어서 궁극적인 본질은 인격입니다.
반면에 진화론은 인격적인 절대자를 부정합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만 믿는데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무에서 우주가 생겨났다라고 말할 뿐입니다.
우주가 생겨난 데에는 어떠한 이유도, 어떠한 목적도 없습니다.
진화론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본질은 물질입니다.
창조론은 인격이 물질을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진화론은 물질이 그냥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둘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합리적인 설명입니까?
진화론은 물질만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창조론은 인격과 물질 모두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물질만 있습니까? 아니면 인격과 물질이 함께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인격과 물질이 함께 있습니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창조론밖에 없습니다.
2012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유명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무신론자 리차드 던킨스와 영국 성공회 대주교 로완 윌리엄스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1시간 30분 분량의 전체 토론회가 나와 있습니다.
무신론을 대표하는 사람과 영국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만나서 공개 토론을 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예의를 갖추어서 학문적인 토론을 했습니다.
토론의 주제는 인류의 기원이었습니다.
시간 관계상 전체 토론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저에게 흥미로웠던 부분은 인간의 언어 능력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에 하나가 언어 능력입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랑, 정의, 평화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와 반대되는 상황을 가정해서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문자로 기록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영국 성공의 대주교 로먼 윌리엄스가 질문했습니다.
만약에 원숭이가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면 최초의 인간 호모 사피엔스에게 언어를 가르쳐 주었던 것은 누구였냐? 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리차드 던키스가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숭이가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면 최초의 인간에게 '엄마'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었던 것은 누구였을까요?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없자 던킨스는 갑자기 돌연변이가 나타나서 언어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진화론자들이 할 말이 없을 때 사용하는 것이 돌연변이입니다.
그런데 사슴 중에서 갑자기 돌연변이가 나타난다고 해서 호랑이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변화와 돌연변이는 종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원숭이가 갑자기 돌연변이가 되어서 언어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인간에게는 인격이 있지만 동물에게는 인격이 없습니다.
인간은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동물은 언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인간과 동물은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물질과 DNA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인격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질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창조되었는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다.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는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 목표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와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가 있습니다.
일반 계시는 창조 세계를 통해 나타난 계시이고, 특별 계시는 성경을 통해 나타난 계시입니다.
일반 계시는 아래로부터의 지식이고, 특별 계시는 위로부터의 지식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 세계가 하나님의 영광과 신성을 나타낸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19편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아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맑은 날에 태양을 직접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태양빛이 너무나 밝기 때문에 태양을 직접 쳐다보면 시력을 잃게 됩니다.
태양의 밝기, 열기, 에너지는 우리의 생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은하에 태양과 같은 항성이 4천억 개에 있다고 합니다.
태양 같은 별이 4천 개 있다고 해도 놀랄 텐데 4천억 개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은하에만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우주에는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가 최소한 2천억 개에 있다고 합니다.
관측 가능한 것이 2천억 개 있고, 최대치로 잡으면 2조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최소로 잡아서 4천억 곱하기 2천억 하면 얼마입니까?
계산이 안 되죠.
우주의 태양과 같은 별이 얼마나 많습니까?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태양 한 개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는데, 태양과 같은 별이 우주에는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우주를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하나님의 영광과 신성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빅뱅 이론이죠.
1929년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모든 은하가 우리 은하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심지어 그 멀어지는 속도까지 측정했습니다.
우주가 점점 더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모든 것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면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어느 순간에는 모든 은하가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문학자들이 20세기 내내 이것을 연구했고, 그 결과 우주가 어느 특정 순간에 생겼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빅뱅 이론, 대폭발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학자들은 그 시점을 약 140억 년 이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빅뱅을 믿는 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 말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성경은 빅뱅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빅뱅 우주론이 가져온 큰 변화가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이전의 과학자들은 영원 불변의 우주관 이른바 정적 우주론을 가졌습니다.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은 정적 우주론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빅뱅 우주론과 함께 정적 우주론은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빅뱅 우주론이 가져온 중대한 결론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주는 스스로 영원하지 않다라는 사실입니다.
우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도 종말이 있을 것이라고 현대 과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주뿐만 아니라 시간에도 시작이 있고 종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빅뱅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고 있지 않지만 세상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밖에 계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 세상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세상의 시작 이전에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과 저 모두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보이는 모든 것은 다 유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 없으십니다.
유한한 인간이 영혼의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노 비기닝 노앤드입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과학자 프랜시스 컬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주에 대폭발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또는 무엇이 대폭발을 초래했는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대폭발만큼이나 과학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던 일은 없었다. 대폭발을 설명하려면 신을 말할 수밖에 없다. 시간과 공간, 저 너머의 초자연적인 힘이 존재해 그 일을 했으리라고 밖에는' 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프랜시스 콜린스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총지휘했던 세계 최고의 과학자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우주는 스스로 생겨날 수 없다라는 거죠.
과학자들의 주장대로 빅뱅이 만약에 있었다면 빅뱅은 스스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 너머에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빅뱅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 세계가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을 나타낸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장 20절 함께 읽겠습니다.
생사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아멘,
우리가 정직한 마음으로 자연을 연구하면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온 우주 안에 또한 사람의 인체 안에 분명히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혈관의 길이를 모두 합하면 12만 킬로미터가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구 세 바퀴를 돌 수 있는 길이죠.
여러분의 몸 안에 지구 세 바퀴를 돌 수 있는 혈관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우리 심장의 크기가 보통 자기 주먹 크기라고 하죠.
심장이 1분에 약 70회 뛰는데 수명을 80년으로 계산하면 총 20억 회 이상 뜁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20억 회 이상 심장이 뜁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심장 박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습니다.
심장아 빨리 뛰어라 천천히 뛰어라 명령할 수 없습니다.
심장은 자율신경계에 속하기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작동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정교하고 완벽한 인체가 자동적으로 기능하도록 누가 설계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만들어진 심장을 연구하고 뭐 고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심장이 작동할 수 있도록 누가 설계할 수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직한 마음으로 자연을 연구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지식, 일반 계시입니다.
타락하기 전에 인간은 일반 계시로 하나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인간은 타락하게 됐죠.
타락한 인간은 일반 계시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반 계시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에 이르는 길은 알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위로부터 임하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특별 계시라고 부릅니다.
일반 계시는 창조 세계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지식이라면 특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지식을 뜻합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특별 계시가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구원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장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선포합니다.
1장 1절 함께 읽겠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옛적에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성경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여러분 성경 최초의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성경에서 처음으로 선지자라고 불렸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창세기 20장 7절에 나옵니다.
그는 선지자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 이름이 안 나오는데 창세기 20장은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그는 나의 선지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선지자는 하나님께 예언의 말씀을 받은 사람입니다.
엘리야나 이사야 같은 사람을 선지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증거하는 최초의 선지자는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예언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창세기 12장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멘.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너를 통해서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겠다 하는 약속입니다.
놀라운 약속이고 놀라운 예언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예언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인데 왜 굳이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답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품과 뜻, 그분의 사랑과 구원을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나타내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을까요?
하늘에 내가 모든 민족을 사랑한다라고 쓰면 되는 것일까요?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이야기로 나타납니다.
자녀가 아플 때, 자녀가 힘들 때 부모가 어떻게 사랑했는지 그 이야기를 통해서 부모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야기로 나타납니다.
사랑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구상에 있는 한 민족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그 이야기를 통해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기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한 민족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얼마나 신실하게 지키셨는지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사랑과 구원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지 그들만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작고 연약하고 불순종하는 한 민족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세계 모든 민족을 동일한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세상 모든 민족을 축복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보여주는 첫 번째 선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고의 선지자가 있었는데요.
그는 바로 모세였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성경이 이렇게 말합니다.
신명기 34장 10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의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서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확실하게 받은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인간이 어떻게 탈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놀라운 계시를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모세는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사람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기 원하시는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 율법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레위기 19장을 읽어보시면 하나님께서 세우기 원하시는 그 사랑과 정의의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나타나 있습니다.
이 구절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어보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가 이 말씀대로만 되면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할까 저는 생각하게 됩니다.
레위기 19장 1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여러분 이 말씀을 21세기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재판할 때 가난한 사람 편도 들지 말고 권력자의 편도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평과 정의로 재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언제 기록됐는지 아십니까?
기원전 1400년에 기록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1세기에도 이 개념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하나님은 3400년 전에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3400년 전에 사람들에게 공평과 정의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의 높은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발견한 진리가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온 하늘의 진리입니다.
구약 최고의 선지자였던 모세는 자기 뒤에 오실 선지자에 대해서도 예언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실 위대한 선지자가 오실 것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
신명기 18장 15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내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아멘 .
모세가 예언한 이 마지막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마지막 선지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율법을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서 충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순종하셨습니다.
최고의 선지자였던 모세보다도 더 위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 외에도 구약의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특별 계시를 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메시지가 모두 다 성취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예언이 많이 있었는데 그것이 다 구약 시대에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시대에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이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구약 성경은 100%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 그 자체로 진리이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만 구약에는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세계적인 신학자 유진 피터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주석이 아니라 결말이었다. 또 다른 책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책의 마지막이 필요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소설을 읽다가 중간에 그만두었던 적이 있으십니까?
10권까지 있는 소설인데 한 8권까지 읽다가 중단한 적이 있으십니까?
그렇게 하면 전체 이야기의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결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야기 전체의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과 약속이 많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결말이 아직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 말씀은 선지자를 통해서 온 것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직접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 바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로 믿습니다.
히브리서 1장 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 모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위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아멘.
여기에서 이 모든 날 마지막은 종말의 시대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옛 언약을 모두 다 성취하셨고 우리에게 새로운 언약을 주셨습니다.
미국의 신학자 데이비 리버모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언어는 예수님이다. 태국 사람은 태국어로 이야기하고 독일 사람은 독일어로 이야기하듯이 하나님은 그의 아들로 이야기하신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세계에 계신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 안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것은 마치 인간이 개미에게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여러분 인간이 뭐 개미의 언어를 만약에 배운다고 해도 개미에게 인터넷의 개념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쪽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개미에게 설명할 수가 없죠.
그런데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에게 그분의 뜻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볼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는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직접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9절에 보니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직접 볼 수가 없습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 죽는다고 믿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지 못하고 그분이 지나간 이후에 뒷모습만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실제로 그분을 보고 그분을 만지고 그분과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고, 자신이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증거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장 4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맞춤이 되시니라.
아멘,
여기에서 마침은 단지 끝이 아닙니다.
헬라어로 테로스 하면요. 목표 목적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모든 이상과 모든 목적을 예수님께서 완성하셨다라는 뜻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조립식 프라 모델이 유행이었습니다.
로보트, 비행기 같은 것을 조립하는 거죠. 그중에는 뭐 어려운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진짜 어려운 프라 모델에 도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사서 멋진 로보트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근데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저만 포기한 것이 아니라 제 친구들도 다 포기했습니다.
우리가 다 같이 제작사를 탓했습니다.
제작사에서 프라 모델을 잘못 만들어서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거라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성공했습니다.
그 어려운 프라 모델을 다 만들었는데 너무너무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와 친구들이 머쓱해졌습니다.
우리는 제작사를 탓했는데 제작사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실력이 없었던 것이었죠.
여러분,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신명기 10장에 보니까 '내가 오늘 너의 행복을 위하여 준 이 계명과 규례를 지키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본성이 타락해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계명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놓고서 하나님을 탓하는 거죠.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계명을 주셨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이들이 프라모델 제작사를 탓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자기 실력이 모자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제작사를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께서 율법의 마침으로 오셨습니다.
율법을 완성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계명이 얼마나 선하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의 의의를 완성하셨습니다.
행하신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이루셨습니다.
당하신 순종을 통해서 우리가 받아야 하는 모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다 주님께서 받으셨습니다.
행하신 순종과 당하신 순종을 통해서 예수님은 모든 이야기를 완성하셨습니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그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선포하셨죠.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야기의 전반부였습니다.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탐욕과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야기는 비극입니다.
실패의 이야기, 수치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분은 과거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율법의 의의를 완성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하는 모든 심판과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주님께서 완성하셨습니다.
인간이 망쳐놓은 모든 것을 다 회복하심으로써 이야기를 완성하셨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실패 이야기가 아니라 영광의 이야기, 회복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이야기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아멘.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보좌 우편에 앉아 있다는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서 있는 것은 일을 한다는 뜻이고요.
앉아 있다 하는 것은 일을 완성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 하는 것은요.
모든 일을 다 완성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모든 언약과 절기와 제사를 주님께서 다 성취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우리가 동물 제사를 드렸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단 한 번의 완벽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이야기의 결말을 완성하셨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결말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약에서 예언했던 모든 말씀이, 모든 약속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사람은 약속을 하고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약속을 다 지키시고 완성하신 줄 믿습니다.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 가운데 보내사 이전에 하셨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언어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이 땅 가운데 오신 그 예수님을 묵상하기 바랍니다.
복음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자를 귀하게 여기셨고,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인생의 무게에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셨고, 어둠 가운데 있는 자에게 빛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언어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가오는 성탄절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찬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문대원목사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년 1월 4일 대구동신교회 (1) | 2026.01.05 |
|---|---|
| 2025년 12월 28일 대구동신교회 (1) | 2026.01.03 |
| 2025년 12월 14일 대구동신교회 (3) | 2025.12.16 |
| 2025년 12월 7일 대구동신교회 (1) | 2025.12.09 |
| 2025년 11월 30일 대구동신교회 (0) | 2025.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