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교회는 매년 12월 첫째 주일을 선교 주일로 지킵니다.
요즘은 교회 이제 회기가 1월에 시작하지만 예전에는 12월에 시작했습니다.
그 전통이 남아 있어서 지금도 이제 교역자 이동을 11월 말에 합니다.
11월 말에 사임하고 12월 초에 교역자가 부임합니다.
전통적으로 12월에 교회 회기가 시작되는데, 우리 교회는 12월 첫째 주일을 선교 주일로 지켜왔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새로운 한 해를 선교로 시작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새해 우리 교회가 어떤 일에 전념하겠는가?
선교에 전념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새해 우리 교회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겠는가?
선교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했을까요?
1973년부터 그렇게 했습니다.
1973년은 김창렴 목사님께서 부임하시던 해입니다.
그 해에 동신 세계 선교회가 창립되었고, 선교 주일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대구동신교회는 선교를 위해 존재하고 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저는 이런 교회를 섬기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교회를 섬기는 것을 정말로 자랑스러워하시기 바랍니다.
선교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는 신학 책에 나오는 교회이기 때문이죠.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데이빗 머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선교를 위한 도구이다. 선교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있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신학교에서 이제 이런 글을 읽으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적용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선교를 교회가 하는 여러 가지 사역 중에 하나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힘들고 여력이 없으면 선교를 잠시 쉬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1997년 IMF 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을 때 많은 교회가 선교비를 삭감했습니다.
당장 교회가 어려운데 힘든데 제일 먼저 삭감하는 예산은 선교비였습니다.
제 주변에 선교사님들이 많이 계시죠.
교회가 어려우면 선교비부터 삭감된다는 것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선교사들입니다.
선교사 입장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어려운데 계속 선교 후원을 해달라고 저희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어떤 위기가 와도 선교비를 삭감하지 않았습니다.
요즘처럼 환율이 올라가면 오히려 선교비를 더 많이 책정합니다.
환차손을 보존하기 위해서 추가적으로 선교비를 더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1월에 국민일보에서 우리 교회 사례를 모범 사례로 보도했을 정도입니다.
이틀 전에도 또 다른 기독신문에서 우리 교회의 선교 정책을 보도했습니다.
'선교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우리는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헌신적으로 선교하는 교회를 섬기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매년 선교 주일을 맞을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헌신적으로 선교에 동참하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세계 선교를 위해서 헌신된 교회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동안 놀라운 복을 하나님께 많이 받았습니다.
전 세계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선교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복을 주셨는지 여러분 모두가 증인이 되십니다.
특별히 오늘은 50대 이하의 성도님들께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가 받은 복은 사실 우리가 잘해서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특별하게 헌신한 것이 적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믿음의 선배들께서 헌신하고 희생하신 것의 열매를 공짜로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의 차례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심고 믿음으로 순종할 차례입니다.
우리 세대가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기도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위한 기도인데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세 가지를 알게 하기를 원하신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르심의 소망이고
둘째는 기업의 영광이고
셋째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모두 다 살펴보고 싶지만 시간 관계상 오늘은 세 번째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알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깨닫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아멘.
이 구절은 흥미로운 구절입니다.
동일한 의미를 가진 힘, 위력, 능력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강조하기 위해서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짜 돈이 많은 사람은 돈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재용 회장 같은 사람이 돈 자랑하지 않죠?
진짜 학벌이 좋은 사람도 학벌 자랑하지 않습니다.
서울대학교 하버드 나온 사람이 학벌 자랑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을 자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그분의 능력을 자랑할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기를 원한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작은 분으로 인식하고 있으면 제발 그분의 능력을 제대로 깨닫기를 원한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능력일까요?
바로 다음 절에 나와 있습니다.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아멘,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나타났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것을 똑똑하게 목격했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분명히 본 것을 증거했습니다.
자기 목숨을 바쳐가면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증거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이들에게도 가정이 있었고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거짓말을 전하기 위해서 가정을 버리고 목숨을 버리는 바보는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목숨을 걸고 선포했던 진리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었습니다.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죠.
오래전에 예언되었던 메시아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10편 1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원수들로 내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아멘.
다윗이 이 시편을 적었는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주님 메시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영광을 받은 메시아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서 통치한다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예수님보다 천 년 전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천 년 후에 어떤 일이 있을지 예언할 수 있으십니까?
천년은 커녕 1년 후에 어떤 일이 있을지도 우리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천년 후에 있을 일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영광을 받으실 메시아가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서 통치하신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다윗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늘로 승천하신 주님은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골로새서 3장 1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아멘.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시다 하는 것은요.
세상을 통치하는 권세를 받으셨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고난받는 종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영광을 받으신 메시아로서 세상을 통치하고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선포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22절 본문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아멘.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인 동시에 만물의 머리가 되십니다.
여러분, 이것은 아주 중요한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인 동시에 만물의 머리가 되십니다.
고대 사회에서 머리는 영광을 뜻했습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도 머리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주권을 의미합니다.
몸은 머리의 지시를 따르지요.
마찬가지로 교회와 세상은 예수님의 주권을 따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또한 세상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 할 때가 있죠.
예수님이 없는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께서 없다면 그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인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라면 그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이것을 세상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세상은 진정한 세상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만물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이 없다면 진정한 교회가 아니지듯이, 세상의 머리 되신 예수님이 안 계시다면 그것은 진정한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깨어지고 타락한 이유가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정의가 무너진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 없이 사람의 힘으로 정의를 이루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타락한 사람에게 어떤 정의가 있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권력을 사용할 뿐입니다.
정의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 사람의 힘으로 정의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없는 세상은 진정한 세상이 아닙니다.
사람이 주인인 세상, 진정한 세상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고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세상을 다 포기하고 희망이 없다고 말해도 예수님은 결단코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 줄로 믿습니다.
그분의 몸 된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사랑하고 회복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이 세상에 대해서 염세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중세 시대 때 교회가 많이 타락했습니다.
지금의 교회보다 훨씬 더 타락했습니다.
중세 교회 때 고질적인 문제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성직 매매였고,
둘째는 성적 타락이었습니다.
카톨릭 사제가 되기 위해서 돈을 주고 그 자리를 사야 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아무리 타락했다고 해도 성직 매매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돈을 내고 들어오지 않습니다.
제가 담임 목사 되기 위해서 돈 내지 않았고요.
오늘 부임하신 목사님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중세 교회가 이 정도로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그분을 경외하는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변화시키셨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타락한 교회도 변화시키셨다면, 지금의 한국 교회를 변화시키시는 것은 하나님께 너무나도 작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포기한 적이 없으시고 세상을 포기하신 적도 없으십니다.
교회의 머리, 만물의 머리 되신 주님은 지금도 그분의 선한 뜻을 따라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 15장 1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색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아멘,
열방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여러분 각자 부르심 받은 그 자리에서 신실하게 주님의 뜻을 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동시에 만물의 머리가 되십니다.
만물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에 만물을 축복하기 원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고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교회는 그분의 몸으로서 이 사명을 실행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에 충만함이니라.
아멘, 이 말씀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교회는 머리 대신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공동체입니다.
둘째로 교회의 사명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교회를 충만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의 목표는 교회가 무한대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목표는 예수님의 복음으로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영국의 신학자 윌리엄 템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 멤버가 아닌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번 인용했던 말입니다.
하지만 선교적 교회를 정의할 때 이것보다 더 명확한 표현이 없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 즉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러한 선교적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살아있게 되고 역동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역사가 75년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노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몸에 힘이 빠지고 움직임도 둔해지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가 떨어집니다.
음악도 내가 아는 음악을 좋아하고, 식당도 내가 아는 식당을 좋아합니다.
새로운 식당이 생겼다고 뭐 딱히 좋아하지 않고 내가 원래 가던 식당 단골집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75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뜨겁고 역동적입니다.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젊고 뜨거운 교회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할까요?
어떻게 75년 된 교회 안에 이러한 열정과 역동성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 안에 선교적인 DNA가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고, 복음을 들고 열방으로 나아가는 열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생명 사역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헌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런던을 대표하는 교회가 두 개가 있습니다.
철 스퍼 목사님께서 사역하셨던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이 있고,
존 스터트 목사님께서 사역하셨던 올 소울즈 교회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올 소울즈 교회는 세계 선교회에 헌신된 아주 귀한 교회이죠.
이 교회를 담임하는 휴 파머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주 2500명의 선교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중에 몇몇은 해외에서 섬기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선교는 전문 사역자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은 선교사라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국내에서 섬기는지 해외에서 섬기는지 그 차이 뿐입니다.
글로벌 기업을 보면 국내 지부가 있고 해외 지부가 있습니다.
각자 일하는 지역이 다를 뿐이지 동일한 직원이고 동일한 목표를 향해서 달려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글로벌 공동체인 교회는 동일한 사명과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각자 일하고 있는 지부만 다를 뿐입니다.
여러분은 국내 지부에 속해서 사역하고 있고, 파송 받으신 분들은 해외 지부에서 사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는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일한 말씀이 에베소서 4장 10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국제 웹 선교회에 패트릭 존스톤이 쓴 세계 기도 정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입니다.
이 책은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기도 제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모두 다 이 책을 한 권씩 사서 집에 비치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보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기도 제목을 보는 거죠.
참고로 저와 아무 상관없는 책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백과사전을 많이 봤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백과 사전 보면서 이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여러분의 자녀들이 세계 기도 정보를 통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지식을 얻고 또 그 나라를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패트릭 존스톤이 쓴 또 하나의 명작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당신의 생각보다 더 크다' 라는 책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이 책에서 제가 가져왔습니다.
존스톤은 교회의 크기와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이고 전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눈에 보이는 작은 조직체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당신의 생각보다 큽니다라는 주장에는 삼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는 '시간 면에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큽니다.
교회는 영혼 전에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었고, 지구의 역사가 끝난 이후에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둘째, 교회는 '크기 면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세속화의 도전 앞에서도 세계 교회는 엄청난 성장과 확장을 이룩해 왔습니다.
우리는 한국 교회의 현실만 알고 있지만, 세계 교회는 지금도 유례가 없는 부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교회는 '조직 면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합니다.
전통적인 모달리티, 조직적인 교단과 교회 이외에도 수많은 소달리티, 자발적인 선교회와 단체가 세계 복음화라는 비전을 위해서 역동적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모달리티와 소달리티의 차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교회가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교회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광대합니다.
전 세계적이고 전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눈에 보이는 작은 조직체로 우리가 인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몸인 줄로 믿습니다.
세계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그날까지 세계 선교를 위해서 기도하고 헌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선교는 교회 안에서 하는 사역이 아니라 교회 바깥에서 하는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적 교회는 교회 바깥에 관심이 많이 있고,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고민하고 기도합니다.
선교에 힘쓰지 않는 교회는 교회 안의 문제만 생각합니다.
강단 장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성가대 가운을 무슨 색깔로 할 것인지 고민합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최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선교에 힘쓰지 않는 교회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굳이 변화되지 않아도 아무런 불편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교에 힘쓰는 교회는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선교에 힘쓰는 교회는 여러 가지 실험을 합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전에 하지 않았던 일들을 시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를 가리켜 선교적 실험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선교적 실험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낼 때가 있습니다.
시작할 때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열매를 맺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감동을 받은 한 인물이 있습니다.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신 이영식 목사님이라는 분이십니다.

1894년에 태어나신 이 목사님은 대구에 있는 계성 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
3.1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로 일제시대 때 감옥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1945년 우리나라가 독립했을 때 이분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장애인들을 향한 마음을 주셔서 1946년 대구 맹아학교를 설립하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학교를 세운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영식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따라서 선교적인 실험을 했습니다.
그 이전에 아무도 하지 않았던 그 일을 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대구 맹아학교는 광명학교, 영화학교, 보명학교, 보건학교, 덕희학교로 성장했습니다.
이 5개의 학교가 모두 다 대구 대명동에 있습니다.
대명동은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5개의 장애별 특수학교가 한 동네에 모인 유례가 없다고 합니다.
특수학교를 세웠으니까 특수학교에서 가르칠 교사를 양성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학교가 한국 사회산업 대학입니다.
이 학교가 1981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해서 대구대학교가 되었습니다.
대구대학교가 대명동에 캠퍼스가 있고 이 경산에도 캠퍼스가 있습니다.
경산에 있는 캠퍼스는 부지가 100만 평이 넘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뭐 대기업에서 후원했나, 전직 대통령이 후원했나 합니다.
하지만 이런 후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학교가 발전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대구대학교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 저와 장로님들이 대구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이 학교에 기독 학사를 재건축하는데 이제 우리 교회에서 후원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드린 헌금으로 1억 원을 후원했습니다.
타 지역에서 온 학생들, 외국에서 온 학생들을 위한 기독 학사를 세우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946년 이영식 목사님께서 대구맹아학교를 시작할 때 아마 현재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아주 작은 선교적인 실험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1973년 김창렴 목사님께서 동신 세계 선교회를 시작할 때 현재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파송 선교사 85명, 협력 선교사 99명, 미자립 교회 149개의 교회를 후원할 것이라고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작은 선교적 실험을 했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이고, 믿음으로 선교적 실험을 행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시도할 사역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마음에 따라서 우리 교회 울타리를 넘어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캐나다의 한 병원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은 때는 25년 전이었다. 그 다음으로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오늘이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여러분 이 세상에는 공의의 법칙이 작동합니다.
공의의 법칙은 간단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지금 당장 거둘 것이 없는 분이 계시다면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과거에 심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은 것이 없으면 거둘 것이 없죠.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입니다.
지금 당장 거둘 것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이라도 심어야 합니다.
지금 아무것도 심지 않으면 나중에는 거둘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재정을 들이는 것 이것은 미래를 위해서 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인생을 드린다 하는 것은요 우리의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일날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교육과 훈련을 위해서, 봉사와 사역을 위해 동참하는 것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에 아이자야 6tyone과 팀룩 워십의 집회가 우리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대구 지역에 많은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그중에는 경북 의성에서 온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너머 꿈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 교회를 의성 지역과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지난 여름에 우리 교회 청년부가 의성에 가서 청소년 연합수련회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의성 중부교회 목사님께서 오셔서 우리 교회 금요 기도회에서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청소년들의 소원이 아이자야 집회 가는 것입니다.
서울에서도 가기 힘든 집회인데 우리 교회에서 그 집회가 열리게 돼서 의성 아이들을 우리 교회로 초청했습니다.
모처럼 대구까지 왔으니까 선생님들과 함께 시내에 가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자야 집회에도 가고 시내에 있는 스파크랜드도 가고 꿈만 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 의료 선교팀에서 의성을 방문해서 외국인들을 위한 의료 봉사를 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요즘 농촌 지역에 가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주 의료 선교팀에서 많은 외국인들을 진료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너머 꿈 프로젝트를 통해서 의성 지역을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한 지역에 있는 청소년들을 섬기고 외국인들을 섬기는 일을 위해서 우리 교회를 사용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해서 우리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입니다.
의성 지역에 예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교회는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교회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선교학자 랄프 윈터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달리티, 조직화된 교단과 교회는 소달리티, 자발적인 선교회와 단체를 필요로 한다, 교회는 선교 단체를 필요로 한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이 말은 선교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교회와 선교 단체의 관계를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제도로서의 교회와 운동으로서의 교회를 동시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제도인 동시에 운동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당회, 제직회 같은 제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가 모든 것을 다 통제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의 자랑인 세계선교회와 아포슬 청년부는 상당한 재량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립 재산제로 운영되고 있고, 스스로 사역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제도로서의 교회 안에 이러한 자발적인 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 교회는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놀라운 부흥과 성장과 역동성이 발휘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가 선교적 실험을 계속하는 역동적인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실험적인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인 동시에 만물의 머리가 되십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예수님을 알게 되는 그날까지 끝없는 열정과 헌신으로 세계 선교를 위해 나아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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