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원목사 설교

2025년 11월 9일 대구동신교회

마이코 2025. 11. 10. 10:38

 

안전할 때 성장한다
골로새서 3:9-14 | 문대원 목사


지난 주일에는 성장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의 능력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노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고, 또한 교육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이 작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믿음에도 크고 작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분량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성장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과거에 비해서 믿음이 더 좋아질 수도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교육학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학에는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로젠달 교수는 한 초등학교에 가서 성적과 상관없이 무작위로 학생 20명을 선발했습니다.
그리고 선발된 아이들이 아주 똑똑한 영재라고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이 아이들이 아주 똑똑한 영재라고 착각하고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1년 후에 확인해 보니까 이들의 성적이 놀랍게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이 증명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재능이 있다고 믿기만 해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재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의지적인 노력, 의식적인 노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학자들은 성장 마인드셋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 성장이 일어날까요? 

성장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환경은 어떤 환경일까요?
이것을 연구한 또 학자가 있습니다. 

미국의 교육학자 벤자민 블룸은 세계적인 음악가, 조각가, 수영 선수, 테니스 선수, 과학자, 수학자 등 120명을 연구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를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연구 결과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 120명 중에 대다수는 첫 번째 선생님이 아주 따뜻하고 포용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학생들의 재능을 판단하거나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너에겐 재능이 없어'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학생의 잠재력을 인정해 주는 말을 했습니다.
학생의 성장을 격려하고 기뻐하는 신뢰의 분위기를 형성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을 만날 때 학생들은 더 큰 열정을 가지고 자기 분야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인생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실패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자전거를 배우기 위해서는 수십 번 넘어져 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실패했을 때 부모님의 경우나 선생님의 경우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실패한 여러분들을 나무라셨나요? 

아니면 실패는 성장을 위한 과정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나요?

실패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지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실패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실패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됩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어떠한 위험, 어떤 도전도 감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도전하지 않으면 어떠한 성장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성장은 혼자 힘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안전한 공동체, 건강한 공동체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성장을 위한 도전에는 많은 실패가 있는데 그때 우리를 붙잡아주는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신분의 변화이고 정체성의 변화입니다. 

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느끼는지 그 여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값을 치르고 사 왔습니다.
노예에 대한 소유권을 가져오고 그다음에 해방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노예 입장에서는 이것이 감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분이 변화되고 소유권이 변화되는 것은 사실의 문제이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결혼하고 혼인 신고할 때 감정적으로 무언가를 느끼셨습니까?
드디어 우리가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구나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외국으로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서 결혼 전에 혼인 신고를 먼저 했습니다.
결혼식 일주일 전에 구청에 가서 혼인 신고를 했는데 뭐 별다른 감정적인 변화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법적으로 이제 부부의 신분이 되었으니까 끝까지 아내만을 사랑하고 섬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죄에서 해방되었으니까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9절 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old self) 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new self) 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아멘,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오래된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옛 사람이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죄의 종으로 살아갔던 자아를 뜻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마치 술 취한 사람이 자기가 술 취한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여러분, 술 취한 사람의 특징이 있죠 옆에서 볼 때는 분명히 취했는데 자기는 안 취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김치를 먹은 사람이 자기에게서 마늘 냄새가 나는 것을 모르는 것과도 비슷할 것입니다.

제가 20년 전에 유럽에서 선교 훈련을 받고 아프리카에서 단기 사역을 섬겼습니다.
그 기간 내내 김치를 한 번도 안 먹었습니다. 

6개월 동안 김치를 먹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이제 르완다에서 사역하는 한국인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 만나니까 반가워서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에게서 마늘 냄새가 났습니다. 

그전까지는 저는 한 번도 한국 사람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외국인들이 그렇게 느낀다고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그때 느꼈습니다. 

6개월 동안 김치를 안 먹으니까 김치 먹은 사람에게서 마늘 냄새가 났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죄의 노예로 살아갈 때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언제까지 모를까요?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빛에 들어갈 때까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 주님을 만나서 은혜의 빛 가운데 들어갈 때 그때야 깨닫게 됩니다.
내가 죄인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더럽고 추한 죄인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은혜의 빛 가운데로 들어갈 때 베드로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으로서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에 연합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으신 주님과 합하는 것이고, 의에 대하여 살아나신 주님과 또한 합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아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에 우리의 옛 사람도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 죽으신 것처럼 우리 또한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죄를 죄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술을 끊은 사람은 술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됩니다.

담배를 끊은 사람은 담배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죄에서 해방된 사람만이 죄를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죄의 종으로 살아갈 때는 인식할 수 없었던 죄를 알게 됩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본문 5절에 나와 있습니다.
5절에 보니까 '음란과 부정과 사역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옛 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죄의 종으로 살아가던 모습입니다.
음란과 욕심과 종욕에 빠져서 죄를 즐거워하고 죄를 사랑하던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때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어서 주님께 속하게 되었습니다.

죄의 종으로 살다가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둘 중에 하나입니다.

죄의 종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것은 국적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중 국적을 허용하는 나라도 있지만 허용하지 않는 나라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과 중국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중 국정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만 택해야 합니다.
어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갈지 선택해야 합니다. 

그 선택에 따라서 소속과 신분이 달라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소속과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죄의 종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중 국적은 없습니다.
죄의 종이든지 하나님의 백성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소속과 신분에 맞게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전문직이 입는 옷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고, 경찰은 경찰복을 입습니다.
의사는 가운을 입고 야구 선수는 유니폼을 입습니다.
여러분이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군복을 입고 있으면 이상할 것입니다.
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수술받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왔는데 목사가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이상할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야구를 좋아해도 유니폼을 입고 설교하지는 않습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을 때 가장 멋있습니다. 

의사는 가운을 입을 때 제일 멋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세 사람을 입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이와 같이 옷을 입는 것과 새 사람을 입는 것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가 있죠. 

군인이 아닌데 군복을 입는다고 군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대를 안 나왔는데 가운을 입는다고 의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속 사람이 안 바뀌었는데 겉모습만 바뀐다고 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 활동 열심히 한다고 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부터 24절까지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mind)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아멘,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무엇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까?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심령이 영어로 mind입니다.
마인드 하면 생각을 뜻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새롭게 될 때 새 사람을 입을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12장 2절 말씀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마인드를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 사역에서 강조하는 생각의 틀입니다.
우리 생각의 틀을 새롭게 할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새로운 생각의 틀을 가지는 것입니다.
타락한 이 세대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 생각이 변화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영국의 신학자 제비 필립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이 그 형틀대로 당신의 생각을 빚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진리로 당신의 생각을 빚으시도록 하라' 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능력이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생각도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생각의 틀은 한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생각의 틀은 내가 많이 보는 것, 내가 많이 듣는 것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진리에 많이 노출되면 거룩한 것을 더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죄악과 정욕에 노출되면 죄악을 더 많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유튜브를 보실 때 무슨 영상을 많이 보십니까?
예능과 드라마를 많이 보십니까? 

아니면 말씀과 찬양을 많이 보십니까?
저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서 뉴스를 많이 봅니다.
국내 뉴스도 보고 해외 뉴스도 봅니다. 

그런데 뉴스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보다 안 좋은 소식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새벽 기도 갔다 와서 안 좋은 소식 듣고 있으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최근에 한 가지 다짐을 했습니다. 

아침에는 뉴스를 보지 말고 찬양을 들어야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주로 그래서 아침에는 찬양을 듣습니다. 

클래식 찬송가도 듣고 모던 워십도 듣습니다.
요즘에는 우리 교회 찬양대의 찬양도 많이 듣습니다.
우리의 생각의 틀이 변화될 때 그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본문 10절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아멘.

우리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우리를 새롭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고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수학 공식, 물리 공식을 이해하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어떤 공식이 있었는데 좋은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 공식을 이해하게 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전에는 이것을 왜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되면 우리 마음의 눈이 열려서 이해되고 깨달아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지면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리는 줄로 믿습니다.
전에는 성경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이제는 이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약속이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있을 때 우리는 지속적으로 변화되고 성장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 가운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불량에까지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공동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혼자 열심히 기도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혼자 산에 가서 수행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동체에 속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새로운 공동체는 바로 교회입니다.
본문 1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아멘,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거기가 어디일까요? 

교회입니다.
교회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박사 학위자나 고등학교 졸업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전부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Christ is all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번역하면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가 전부이다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전부인 공동체입니다. 

교회에 와서 다른 거 자랑할 필요 없습니다.
교회에 와서 내가 세상에서 성공한 거 자랑할 필요 없습니다.
교회에 와서는 예수님만 자랑하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가 전부이기 때문에 여러분 교회는 가장 안전한 공동체입니다.
왜 안전할까요? 

나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증명해야 하고, 회사에서는 성과로 증명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나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것이 사실 큰 압박감입니다.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조각 퍼즐을 맞추게 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중에는 쉬운 퍼즐도 있었고 또한 어려운 퍼즐도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쉬운 퍼즐을 택해서 빨리 정답을 맞추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아이는 정답을 맞추지 못하더라도 어려운 퍼즐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어떤 아이는 쉬운 퍼즐을 택하고, 왜 어떤 아이는 어려운 퍼즐을 택할까요?
이 실험을 주도했던 캐럴 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아이들은 보다 쉬운 쪽에 집착했다. 그들은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원했다. 하지만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아이들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성공이란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내가 똑똑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원하는 사람은 어려운 도전을 하지 않습니다.
괜히 어려운 문제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나의 부족한 모습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실패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배움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으면 새로운 도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없으니까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가장 안전한 길만 택하게 되고, 100% 성공할 수 있는 일만 택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아이들이 쉬운 문제만 푸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쉬운 문제만 풀면 정답률은 100%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절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문제에 도전할 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전부인 공동체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가장 안전한 공동체입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용납해 주는 공동체입니다.
안전한 공동체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안전하다고 느껴야지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년 10월 말 당회에서 저는 내년도 생명 사역의 방향을 발표합니다.
우리 교회는 생명 사역이라는 확고한 비전이 있기 때문에 매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년에 중점적으로 노력할 부분에 대해서 몇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올해에도 그런 시간을 가졌는데 그 시간을 준비하면서 지난 3년 동안 노력했던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2022년 23년, 24년에는 어떠한 내용으로 발표했는지 제가 살펴보았습니다.
22년에는 코로나 이후에 예배 회복, 금요 기도회 회복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23년에는 사회 선교라는 개념을 나누고 지역사회와 취약계층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24년에는 꿈너머 꿈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 지역의 연약한 교회들을 세우는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지난 3년간 있었던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을 보면서 제 안에 감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역의 어떤 결과도 감사했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과 진행하는 과정이 더욱더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사역을 제안하고 실행하면서 제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습니다.
혹시 이거 실패하면 어떡하나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안전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근거해서 생명 사역 정신에 근거해서 누구든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역을 하다가 실패했다고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교회는 안전한 공동체입니다.
서로의 성장을 독려하고 교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공동체입니다.
과거에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안에서 사역하는 것은 너무나도 행복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올해 노벨 의학상과 화학상의 일본 학자가 선정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총 27명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한 명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일본에 뒤처진 것이 거의 없는데, 노벨상에 있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처져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국연구재단의 논문에 따르면, 노벨 수상자들이 연구를 시작해서 상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이 평균 32년이라고 합니다.
2, 3년 연구한다고 세계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평균적으로 32년을 연구해야지 노벨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렇게 장기간 동안 연구비를 지원해 주는 경우가 없다고 합니다.
국내 학회에서는 수년 안에 2~3년 안에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 결과를 기다려 달라고 말하기 어려운 풍토입니다.
다시 말해서 충분히 연구하고 충분히 실패하고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기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분위기에서는 창의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으로 미국에서 202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오말로 야기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소한 데이터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실패조차 연구의 일부로 기록했다. 이러한 꾸준함은 실패를 견디게 하는 제도 안에서 가능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진정한 성장을 위해서는 실패를 견디게 하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다려줄 수 있는 공동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랑이 필요하고 둘째로 진리가 필요합니다.
먼저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과 용납이 없으면 실패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면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현재의 상태를 정직하게 말해주는 진리가 필요합니다.
현재 부족한 모습이 있을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부족한 모습이 있는데 무조건 잘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현재 모습에서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진리를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사랑과 진리 모두 다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아멘,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라는 구절이 영어로

 

speaking the truth in love입니다.
번역하면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입니다. 

현재 상태를 정직하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부분은 잘하고 있고 어느 부분은 부족한지 정확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 말을 하되 사랑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비난하기 위해서 비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용납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진정한 의미의 변화와 성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피아노를 배워서 지역 대회에 나갔습니다.
특출나게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대회에서 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낙심한 자녀에게 여러분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오지 선다입니다. 

 

1번 내 생각엔 네가 최고야. 

2번 심사위원이 공정하지 못했어.
3번 너는 상을 받을 능력이 아니었어. 그런 실력이 아니었어.
4번 너는 재능이 있으니까 다음엔 꼭 상을 받을 거야.
5번 피아노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야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번은 일단 진실이 아닙니다. 내 아이가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고 우리 아이도 알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2번은 이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3번은 사랑이 없는 말이죠. 

설령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낙심한 아이에게 이거 너무나도 가혹하고 냉정한 말입니다.

 

4번은 고정 마인드셋에 근거한 말입니다. 

재능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위험한 발언입니다.
재능이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상을 받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5번은 일종의 회피입니다.
내가 당장 잘 못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폄하하고 회피하는 거죠.

 

결국 1번부터 5번까지 그 어떤 것도 건강한 답변이 아닙니다.
사랑과 진리를 동시에 말하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자존감을 지킨다는 핑계로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의 노력이 부족한다든지 아니면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그냥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뭐 당장은 기분이 풀릴지 몰라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없다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현실을 직면하는 일이 불편해도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와 함께 변하지 않는 사랑과 용납을 준다면 우리 자녀는 사랑 안에서 현실을 증명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랑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아멘, 

한글 성경에는 사랑을 더하라라고 되어 있는데, 헬라어 성경을 보면 '사랑을 입으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는 것처럼 사랑을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연결하는 띠가 됩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신학자는 사랑은 다른 모든 미덕을 결합시키는 최고의 미덕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죠. 

아무리 좋은 것들이 많이 있어도 그것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띠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바로 그러한 띠입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미덕을 연결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안전망 속에서 소속감을 느낍니다. 

모든 사람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그런 안전한 관계, 안전한 공동체를 원하고 있습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는 아무도 성장을 위한 도전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리더의 역할은 노력하는 것을 칭찬하고 실수를 용납하는 안전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서 성장할 수 없고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기독교 심리학자 조던 피터스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선하고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려면 강인한 의지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겸손해야 하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을 만나라'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너무나도 멋진 말입니다. 

선하고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게 선해야 하고, 나도 건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교회, 역동적인 교회에서 사역하는 거 쉽지 않습니다.
나도 전심전력해서 성장하고 발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공동체 안에 있을 때 그때 우리는 성장하는 줄로 믿습니다.
혼자서 성장할 수 없고 혼자서 변화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동체에 속해야 합니다.


교회는 안전한 공동체입니다.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는 공동체입니다.
실패했다고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득한 이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그런 건강한 분위기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고 격려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qT2A95ax5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