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원목사 설교

2025년 11월 16일 대구동신교회

마이코 2025. 11. 17. 09:59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역대상 16:7-11, 31-36 | 문대원 목사
2025-11-16


여러분은 꼭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에 리스트가 있으십니까?
흔히 버킷리스트라고 하죠 

여러분의 버킷리스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저의 버킷리스트에는 마이클 더블유 스미스의 콘서트에 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이클 W 스미스는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크리스천 뮤지션입니다.
제가 중학생 때부터 정말로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모든 앨범을 제가 하나도 빠짐없이 찾고 거의 전곡을 외우고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현대 음악에 담아서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마이클 W 스미스가 처음으로 한국에 공연을 왔습니다.

2005년 여름에 왔습니다. 

서울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거기에 갔을까요? 안 갔을까요? 

예 당연히 갔습니다.
공연 소식을 듣자마자 제가 주관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제일 앞자리 티켓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를 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무슨 티켓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열정을 보였던 적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주관사에서 알려주어서 이 공연 맨 앞자리 티켓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좋아했던 마이클 w 스미스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버킷리스트를 성취했습니다.
그러면 그 감동이 얼마나 갔을까요? 

그 공연의 감동이 2주 3주 정도 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라졌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클래식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제 수학 선생님이었는데 이분의 사무실에 가면 항상 클래식 음악이 흘러 나왔습니다.
수학 선생님인지 음악 선생님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이분의 버킷리스트는 모차르트의 생가에 가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은퇴하신 이후에 친구들과 함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는 모차르트 생가에 다녀왔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모차르트 생가에 가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그 감동이 영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 달 두 달 지나고 사라졌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다 이런 경험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그토록 가고 싶은 곳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느끼는 기쁨과 감동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러한 기쁨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자동차를 샀을 때의 기쁨, 직장에서 승진했을 때의 기쁨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지나면 다 사라지게 됩니다.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부와 세속적인 물질을 갈망하지만 막상 소유하고 나면 그것을 경시하고 다른 것을 찾는다. 그 이유는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면 그것의 부족함을 더욱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절묘한 표현입니다. 

정말로 원하던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면 그때 그것에 부족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나를 행복할 수 있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뿐입니다.
세상은 만족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

세상 사람들에게 만족은 내가 원하던 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도 그 만족감이 이어지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만족감을 느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만족감을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만족감이 유지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다윗의 모습입니다.
다윗이 모든 원수를 다 무찌르고 이스라엘 나라를 통합했습니다.
외부의 적도 무질렀고 내부의 적도 다 처리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다윗을 괴롭혔던 사울 왕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왕위에 오른 다윗이 했던 첫 번째 행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역대상 16장 1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니라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다윗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을 상징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언약궤에서 이스라엘을 만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행진할 때 언약궤가 가장 앞에 섰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신다는 의미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언약궤가 가장 앞에 섰습니다.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에도 언약궤가 가장 앞에 섰습니다.
그렇게 할 때 인간의 능력,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을 상징합니다. 

왕위에 오른 다윗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그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을 갈망하는 다윗의 신앙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능력을 믿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약궤가 도착했을 때 다윗은 이렇게 감사의 찬양을 올려 드렸습니다.
본문 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아멘, 

인생 최고의 순간에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인 것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여러분은 그때 누구에게 공을 돌리셨습니까?
많은 사람은 최고의 순간에 자신에게 공을 돌립니다.
내가 똑똑하고 내가 열심히 해서 이렇게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 최고의 순간에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겉으로 말은 그렇게 할지언정 속으로는 다 내가 잘나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금요 기도회에서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이런 질문을 드렸죠. 

악어와 사람의 차이점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여러분, 악어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악어는 사냥할 때 경쟁합니다.
가장 빠르고 가장 힘센 악어가 사냥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 악어 혼자서 사냥한 것을 다 먹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사냥할 때 함께 협력합니다.
혼자서는 큰 사냥감을 사냥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힘을 모읍니다.
그리고 사냥에 성공하면 잡은 것을 함께 나눠 먹습니다.
악어는 혼자 사냥하고 혼자 먹습니다. 

사람은 함께 사냥하고 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이것이 바로 악어와 사람의 차이점입니다. 

 

다윗은 악어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거만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하신 하나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할 대상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지속적인 만족감은 여러분 한 번의 성취에서 오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만족감은 지속적인 관계에서 옵니다. 

인생의 모든 과정을 함께해 오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이러한 만족감이 나오게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기쁜 일이 있는데, 감사할 대상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다 내 힘으로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감사할 일이 없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는 단회적인 성취만 알고 있을 뿐, 그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지속적인 관계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 힘과 내 지혜로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너희의 힘과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너무나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9장 23절, 24절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성경에서 가장 용맹했던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부자지간이지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수많은 감사 기도와 시편을 남겼다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너무나 기뻐하셨고, 왕위를 다윗의 가문에서 옮기지 않으셨습니다.

북이스라엘에는 반란과 배신이 이어졌습니다.

한 왕조가 쇠락하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습니다.
209년 동안 무려 9개의 왕조가 들어섰습니다.
9명의 왕이 아니라 9개의 다른 왕조가 있었습니다.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이전 왕을 폐위하거나 살해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콩가루 집안, 콩가루 왕국인 거죠.
하지만 남유다에는 단 한 번도 반란이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윗 왕조 하나만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209년 동안 총 9개의 왕조가 있었지만, 남유다는 425년 동안 단 한 개의 왕조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북이스라엘은 운이 없었고, 남 유다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다윗의 가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만 자랑하여서 자자손손 대대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은 인생 최고의 순간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하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일한 고백이 시편 44편에 나옵니다. 

우리 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아멘. 

시편 44편은 왕 되신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원수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고백합니다. 

우리가 온종일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께 영원히 감사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 바로 감사의 제사입니다.
추수 감사 주일을 맞이하여서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베푸신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힘과 나의 지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서 자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면서 그분의 영원한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작고 보잘것없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시고 보호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 19절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 그 때에 너희 사람 수가 적어서 보잘것없으며 그 땅에 객이 되어
  • 이 민족에게서 저 민족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백성에게로 유랑하였도다

아멘.

다윗은 이스라엘의 과거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크고 강한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민족이었습니다.
이방에서 객과 같이, 나그네와 같이 유리하던 민족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작고 연약한 사람들을 택하사 그들을 통해서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렇게 행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장 감사해야 할 제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과 5절 함께 읽겠습니다.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아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니까 혹시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이런 잘못했는데 내가 이런 죄를 지었는데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실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 54장 10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아멘.

여러분 혹시 산을 움직일 수 있습니까?

팔공산을 움직여서 부산으로 옮길 수 있습니까?
산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화평의 언약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받을 때 그때 우리는 행복을 느낍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 행복을 느낍니다.
하버드 대학의 아스 브룩스 교수는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사회과학적 연구 방법을 통해서 현대인들의 행복도를 측정하고 있습니다.
2022년 그는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20대 청년들의 행복도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에 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파란색이 기존의 행복도 표시이고요.
빨간색이 가장 최근 2022년 행복도의 표시입니다.
과거에는 20대의 낭만과 행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0대가 그러한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죠. 

우리나라도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 중에서 20대 여성의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지금 20대 청년들은 왜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요?
갑자기 경제 사정이 나빠졌을까요?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까?
왜 지금의 청년들은 행복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해서 브룩스 교수는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가 세속화되었기 때문에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생의 의미를 말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지속적인 만족감,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우리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는 다섯 가지 방법을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로 절대자를 향한 예배, 

둘째로 인격을 향한 사랑, 

셋째로 세상을 향한 소명 

넷째는 자연의 아름다움, 

다섯째는 고난의 의미와 역할입니다.
현재 20대 청년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이 5가지로부터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요즘 청년들은 예배하지 않습니다.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대 청년 중에서 80%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입니다.
여러분, 종교가 없다는 것은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이런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갈 뿐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절대자를 향한 예배가 없다는 것은 세 번째 항목인 소명에 영향을 끼칩니다.
신을 믿지 않는데 내가 받은 소명에 대해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소명 의식이 없으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돈입니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만 살아갑니다. 

소명 의식이 없는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할 뿐입니다.
제가 예전에 일에 대한 세 가지 관점이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생업은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입니다.
직업 커리어는 더 좋은 직장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입니다.

 

세 번째로 소명(calling)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헌신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생업입니까? 직업입니까?
아니면 소명입니까?

지금 하는 일을 생업으로 생각한다면 아침마다 괴로울 것입니다.
출근하기 싫은데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직업 커리어로 생각한다면 계속해서 취업 사이트를 찾아볼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대우를 잘해주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옮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소명으로 생각한다면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나의 헌신을 통해서 세상이 더 나아진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소명 의식을 가질 때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명 의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대자를 예배해야 합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나에게 이러한 재능을 주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소명 의식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인생의 의미로 돌아가서 두 번째와 네 번째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격을 향한 사랑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혼자 방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집 밖으로 나와서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립 은둔 청년이 54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사회 활동하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청년이 이렇게나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진학과 취업에 실패하고 대인관계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내 방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방 안에만 있으면 건강하지도 않고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고립 은둔 청년들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3.7점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반 청년들이 가진 그 만족도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집 바깥으로 나와서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보아야 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과 고립된 상태로는 인생의 의미를 알 수도 없고 행복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해 보십시오.
참 대구는 좋은 점이 20분만 운전해도 아름다운 산과 자연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면서 감사의 찬양을 해 보십시오.
저도 지난주에 아내와 함께 산책하면서 자연을 만끽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볼 때 제 마음 가운데 시편 8편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시편 8편 1절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아멘.

아름다운 자연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이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기 위해서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기뻐하고 가장 감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우주의 왕으로 통치하시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산과 바다, 모든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역대상 16장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모든 나라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할지로다.

아멘.

하늘과 땅이 기뻐합니다.

무엇을 기뻐합니까?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것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다음 구절에 보면 나옵니다. 34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만이 선하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과거 이스라엘을 억압했던 애굽의 왕과는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장자라고 부르면서 사랑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과거에 노예로 살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새로운 신분과 정체성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왕과 하나님은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세상의 왕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권력을 사용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그것을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돈, 명예, 지위, 무엇이든지 간에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을 채우기 위해 살아갑니다.
자기가 가진 힘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10세기에 스페인 코르도바 지역은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지도에 보시면은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이 아주 가깝기 때문에 이슬람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스페인을 다스렸던 아랍 왕 중에서 아브드 알 라흐만 3세라는 왕이 있습니다.
그는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50년 동안 절대 군주로 통치하면서 당대 최고의 부와 영광, 권력과 쾌락을 누렸습니다.
50년 동안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모든 것을 다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임종을 앞둔 70세의 나이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남긴 책에 보면 나와 있는 문구입니다.


50년 동안 절대 군주로 다스린 왕의 고백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온갖 부와 명예와 쾌락을 누렸던 사람의 말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진심으로 행복했던 날이 14일이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완전하지 않는 인간은 자기가 가진 힘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자기 충족성'이라고 부릅니다.
사도행전 17장 24절,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아멘.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서 권력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성품대로 완전한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과 땅이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는 이유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누구도 학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이것을 깨달을 때 그때 진정한 의미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솔직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정직하고 얼마나 신실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떻게 대해주셨는지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잘못했을 때, 여러분이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잘못한 그대로 갚아주셨습니까? 

아니면 용서해 주시고 한 번 더 기회를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하는 대우보다 훨씬 더 잘 대해주셨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행한 대로 받아야 한다면 우리 중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하는 대우보다 훨씬 더 잘 우리에게 대해주셨습니다.
미국의 존 파이퍼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를 부담이나 의무로 느낀다면 그것은 아직 진정한 감사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진정한 감사는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았을 때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에게 기대치가 있습니다.
내가 이 정도 했으면 상대방도 이 정도 할 것이라는 기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내가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느끼는 감정이 있죠?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주셨습니다.
죄인 된 우리는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구원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신분과 정체성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공의와 정의로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사랑으로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통치하시고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하지 않고 그분의 사랑의 품 안에서 평안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보다 더 큰 감사의 제목은 없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대상은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결과는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감사할 대상이 없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비록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할 대상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줄로 믿습니다.
지속적인 만족은 단회적인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hM5gVSvf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