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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원목사 설교

241117_추수감사절_감사가 가져오는 변화

by 마이코 2024. 11. 28.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이야말로 하나님의 큰 은혜이자 선물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동의하는 명제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 행복의 깊이는 감사의 깊이와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존 밀러가 한 이야기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자녀를 키워보신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담아서 자녀에게 잘 대해주고 또 선물을 주었는데 그것에 감사하지 않으면 어떻게 느낄까요?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 풍족하게 자라서 감사할 줄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단기 선교에 보내면 됩니다.

우리 교회는 청년부, 청소년부, 심지어 소년부에 이르기까지 단기 선교를 가고 있거든요.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같이 어려운 나라에 가서 생활해보면 아이들이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깨끗한 물이 나오는 것, 집에 냉장고가 있고 에어컨이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사람은 감사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은 사계절을 당연하게 생각하십니까? 

이제 가을이 깊어서 낙엽이 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제 자동차에 떨어진 낙엽을 치우면서 제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브룬디에서는 낙엽을 치운 적이 없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부룬디는 계절이 두 개밖에 없거든요.
여름이 있고, 더운 여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낙엽이 떨어질 일이 없겠죠. 

 

더운 여름 지나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사계절이 있는 것은 나의 노력과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줄로 믿습니다.
변화하는 계절 안에 담긴 그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의 선하신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 힘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누구에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믿지 않는데 내가 건강한 거에 대해서 누구에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나 자신에게 감사하겠습니까? 

감사에는 중요한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혼자서는 감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 혼자 한 일에 대해서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감사할 수 없습니다.
감사를 위해서는 나 말고 다른 존재가 필요합니다.
내가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그 대상이 필요한 것이죠.
나와 함께하고 나에게 사랑을 준 다른 인격적인 존재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그러한 분이십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고 필요한 은혜와 힘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혼자서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감사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 힘을 의지하고 자기 능력을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감사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오늘은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다른 모습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과 분리되고 다른 사람과 분리되어서 외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인식하면서 날마다 그분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 시편 52편에 보면 두 가지의 나무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뿌리 뽑힌 나무이고 또 하나는 뿌리 내린 나무입니다.
뿌리 뽑힌 나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이고요.
뿌리 내린 나무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두 가지 나무가 얼마나 상반된 모습인지 오늘 본문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 52편은 포악한 자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52편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아멘, 포악한 자가 악한 계획을 자랑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포악하다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기보인데요.
용맹한 강성한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전쟁에 능한 용사를 뜻하는 단어이고, 동물의 왕 사자의 용맹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사자같이 강성하고 용맹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악한 계획을 세워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엄청난 지식과 돈과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선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일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자기 유익을 위해서 안하무인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52편에 나온 이 포악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앞부분 표제어에 나옵니다. 

에돔 사람 도엑입니다.
혹시 여러분 도엑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사울 왕의 심복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1장 7절에 보니깐 도엑이라 이름 아는 에돔 사람이 있는데 사울의 목자장이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돔 사람이면 이방인인데 어떻게 이방인이 사울 왕의 심복이 되었을까요?
학자들에 따르면 아마 그는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딱 이 사람을 보니까 쓸모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사울 개인의 목자장으로 세웠습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사울의 비밀 요원 같은 사람입니다.
사울이 개인적으로 시키는 일을 은밀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악한 일, 더러운 일을 해결하는 해결사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다윗이 이제 인기가 올라가자 사울이 그를 시기해서 죽이고자 했습니다.
왕궁에서 단창을 던졌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윗이 그것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왕궁을 떠나서 사울을 피해서 도망갔습니다.
그렇게 도망간 다윗이 도착한 지역이 놉이라는 지역입니다.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와주었습니다.
성서에 있던 떡을 다윗에게 주었고, 또 예전에 다윗이 죽었던 골리앗의 그 칼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을 받아서 다윗은 도망갔습니다. 

그 놉 지방에 살고 있던 사람이 바로 도엑이었습니다.
사울의 비밀 요원이었던 그는 이 모든 사실을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왕이 이 말 듣고 화가 엄청 나서 호위병들을 데리고 와서 다윗을 도와준 제사장들을 다 죽여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호위병들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22장 17절에 보니까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을 죽이기를 싫어하였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왕의 명령이지만 죄가 없는 제사장을 죽이는 일을 했다가 어떤 일을 당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왕의 호위병들이 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도엑이 나섰습니다. 

'이 기회야말로 왕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기회이구나, 내가 왕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무엘상 22장 18절 함께 읽겠습니다.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도엑이 노 지역에 있는 제사장 85명을 죽였습니다.
전쟁에서 일반 사람 85명 죽이는 것도 끔찍한 일이지, 하지만 죄가 없는 제사장 85명을 죽이는 것은 그가 얼마나 포악한 사람이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엑은 말 그대로 안하무인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따위 인정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죄 없는 제사장을 죽였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3절과 4절에 나온 대로 그는 악을 사랑하고 남을 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악을 사랑하고 남을 해치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사람하고 친구가 되고 싶으십니까? 

도엑 같은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본문 7절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시편 52편 7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포악한 사람이 악한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악한 계획을 세워서 스스로를 든든하게 세우고자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반댓말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신앙인데, 그럼 그 신앙의 반댓말은 무엇일까요?
불신앙일까요? 

신앙의 반댓말은 불신앙, 신앙의 부재가 아닙니다.
신앙의 반댓말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의지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이든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무언가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혼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이 재물입니다. 

내가 가진 소유를 의지합니다.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의 소유를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요?
그런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죠. 

누가 나를 도와줬다고 누구에게 감사하겠습니까?
내 힘으로 내 손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 벌었는데 누구에게 감사하겠습니까?
부모에게 감사하겠습니까? 아니면 배우자에게 감사하겠습니까?
예전에 어떤 연예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는 자기가 고생해서 번 돈을 아내와 함께 쓸 때 제일 아깝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그가 얼마나 자신을 의지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고생한 아내를 이렇게 무시한다면 다른 모든 사람을 다 무시할 것입니다.
100% 내 힘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은 절대로 감사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 힘으로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이 말하기를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로 고립이고, 두 번째로 자기중심적이고 세 번째로 거만한 모습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세 가지 모습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주변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고립된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 거만한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친구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 오로지 자기만 아는 사람, 교만하고 거만하게 말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십시오.
그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애 나로스스리즘에 빠진 사람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하지 않으니까 주변에 친구가 없습니다. 

저희 부모님 지인 중에 서울에 아파트 15채가 있는 분이 계십니다.
부럽죠? 서울에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좋을 텐데, 15채가 있는데 그분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없을까요? 

친구가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니까 누구에게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도 감사하지 않으니깐 혼자서 고립되어서 외롭게 살아갑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외로움을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주변에 친구가 없고 내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혹시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나는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있는가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나를 생각해 주고 나를 배려해 준 그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그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거나 내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는가를 자문해 보십시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외롭게 살아갑니다. 

뿌리 뽑힌 나무와 같이 홀로 외롭게 시들어 갑니다.
하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깊이 연결됩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고립되고 감사하면 연결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도엑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남을 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힘과 자기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했습니다.
시편 52편 1절 말씀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아멘, 다윗은 포악한 자의 그 악한 계획 앞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언약에 근거한 사랑, 영원히 변하지 않는 책임지는 사랑을 뜻합니다.
자신을 도와주었던 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했지만 다윗은 그 상황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변하지 않는 헤세드의 사랑을 기억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나와 함께한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현재 진행형의 신앙입니다.

다윗은 과거의 믿음, 과거의 신앙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그 포악한 자 도액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죽은 나무를 뿌리 뽑아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뿌리 뽑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본문 5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 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시이오.
너를 붙잡아 내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있는 땅에서 내 뿌리를 빼시리로다.


아멘.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을 자랑하는 그 악한 자가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고, 이것을 볼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6절 말씀 뭡니까? 의인이 보고 두려워할 것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보고 두려워한다라는 이 관용어구는 다윗이 시편에서 자주 사용했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악인이 심판당하는 모습을 보고 다윗은 주님을 두려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인이 하나님께 구원받는 모습을 보고 또한 다윗은 주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시편 40편 3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아멘. 시편 40편은 다윗이 하나님의 구원을 다 경험한 이후에 쓴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셨다고 고백했는데 그 직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고 두려워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주님을 두려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의인의 기도를 들으셨고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행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태도가 있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주님을 막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벌을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있는 것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죄가 나를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이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우리가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죄를 바라보게 되면 그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 죄의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이고 그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알기 때문에 그 죄악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말이 있고요.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 있는 사람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말과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말조심을 합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하나님 앞에서 절대 할 수 없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다른 사람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행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여전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깁니다. 

맞아, 논리로 이기는 게 아니라 목소리 큰 사람이 이깁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무조건 먼저 화를 냈으면 그 사람이 진 겁니다.
직분이 높든 낮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먼저 화를 낸 사람이 진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말이 있고 할 수 없는 행동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안에 말과 행동을 제어할 수 없는 어떤 그런 부분이 있다면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맞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결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시편 52편 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으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아멘. 다윗은 나는 하나님의 집에 숨겨진 감람나무 같다고 고백합니다.
고대 근동사회에서 감람나무 올리브 트윈는 풍요와 생명을 상징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장수하는 나무가 감람나무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의 집에 숨겨진 감람나무로 비유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학 용어 중에 성화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직격하면 신앙적으로 성숙해지는 것, 더욱더 거룩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생각에 성화된 사람은 봉사 많이 하고 열심히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성경도 잘 알고 기도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근데 정확하게 신학적으로 말해서 성화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화된 사람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성화가 아직 덜 된 사람은 열심히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이 그 하나님의 집에 숨겨진 감람나무가 되기를 원합니다.
시냇가에 숨겨진 나무와 같이 사시사철 푸른 나무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우리가 하나님께 뿌리 내린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일을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심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오하리다.


아멘. 다윗은 영원히 주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릴 때에 그의 마음속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감사가 가져오는 변화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하나님의 동행을 인식하게 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자신에게 감사하지 않죠? 

혹시 여러분 중에 그래 내가 제일 수고했어. 나 자신에게 감사해라고 말하시는 분 계십니까? 

조금 이상한 모습입니다.
감사는 나한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죠.
나를 도와주고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격려해 준 다른 인격에게 하는 행동이 감사입니다.
감사는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감사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구원하셨고 또한 여기까지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인생에서 고난이 없었던 분은 아마 아무도 안 계실 것입니다.
사는 게 힘들어서 정말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던 그런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안아주시고 우리를 붙잡아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이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동행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 나 혼자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지, 나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지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고난을 당하면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질병에 걸리고 가족이 아프고 사고를 당했을 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야가 좁아진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고난을 당하면 그 고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입니다.
유명인들이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5천 명의 팬이 있고 5명의 안티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까요? 

나를 좋아하는 5천 명의 목소리가 크게 들릴까요?
아니면 나를 싫어하는 5명의 목소리가 크게 들릴까요?
당연히 나를 싫어하는 5명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그 고난도 문제이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고난으로 인해서 우리의 관점이 왜곡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동안 좋았던 일도 있었거든요.

그동안 감사한 일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나쁜 일, 오로지 힘든 일만 기억납니다. 

여러분 내 앞에 있는 그 고난에만 집중하면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 인생에 있었던 그 고난에만 집중한다면 저도 얼마든지 불쌍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인생에 고난도 있었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섭리 그것은 제가 당한 고난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 우리가 이 고난 가운데 고난의 압도 당하지 않고 우리의 시야를 넓힐 수가 있을까요?
고난에 집중하지 않고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지 우리가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 감사할 때 그 일이 시작됩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지만 주님께 감사할 때 우리는 주님의 동행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고 이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올바른 관점으로 내 인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첫 번째 결과는 고립입니다.
반대로 감사할 때 나타나는 첫 번째 결과는 혼자가 아닌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아 계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감사가 가져오는 두 번째 변화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직전에 말씀드린 첫 번째 변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의 동행을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동행을 인식하게 되면 나타나는 중요한 결과가 있습니다.
바로 마음의 평안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으로 내가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시편 118편 6절의 고백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니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할까?

 

아멘. 여호와 하나님이 내 편이신데 내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주를 통치하시는 그분께서 내 편이 되시는데 내가 무서워할 것이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데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스턴에서 공부할 때 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보스턴에 왔던 한국 이주민들에 대한 제가 연구를 했습니다.
개화사상가 유길준 이승만 대통령,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 등 많은 엘리트들이 20세기 초반에 보스턴에 왔었습니다.
보스턴에 왔던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를 해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발표를 했던 곳이 우리 대학이 아니라 다른 단과대학이었습니다.
보스턴 대학에는 17개 단과대학이 있었는데 그 발표를 하게 된 곳은 사회과학대학이었습니다.
대학에 계신 분들 알겠지만 우리 필드가 아닌 다른 필드에 가서 내가 연구한 것을 발표하는 것은 긴장되는 일입니다.
특별히 이 사회학자들 같은 경우는 아주 날카롭고 이념적인 성향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긴장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발표하기 직전에 제 지도 교수님께서 저에게 질문하셨습니다.
타 대학에 가서 발표하는데 긴장되지 않냐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신데 제가 긴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라고 답변을 드렸습니다.
제 지도 교수님은 보스톤 대학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학자였습니다.
그 대학에 전체 교수가 4300명 있었는데 그중에 15명만 받는 특별 석좌 교수직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학자가 나와 한 팀이 되어서 발표하는데 뭐가 두렵겠습니까?

아무리 어려운 질문이 들어와도 교수님이 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과 함께 같은 변에 있으면 무서울 게 없습니다.
하물며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다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그 하나님과 같은 편에 있는데 무엇이 무섭겠습니까?
여러분, 그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평안이라고 합니다.
평안을 이제 헬라어로 에이레네라고 하는데 영어로 보면 바운드 투게더라고 지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딱 붙어 있다 굳게 묶여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평안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딱 붙어 있을 때, 하나님과 굳게 묶여 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평안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 거할 때 그분과 함께 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 가운데 평안이 없다면 내가 하나님께 묶여 있는가, 내가 하나님께 붙어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의 동행을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동행을 인식할 때 우리는 마음 가운데 평안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이 평안은 세상에서 오는 평안이 아닙니다.
이 평안은 눈에 보이는 환경에서 오는 평안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우리를 붙잡아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줄로 믿습니다.
감사가 가져오는 세 번째 변화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는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시선을 옮기게 됩니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힘과 지혜를 주셔서 성공할 수 있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교만의 유혹에서 벗어나서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100m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마라톤 하는데 초반에 땅 했을 때 맨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은 실력자일까요?
기초일까요? 당연히 기초일 것입니다. 초반에 달려나가는 것 마라톤에서 어리석은 일이죠.
빨리 치고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롱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직장생활, 가정생활에서도 그대로 해당되는 일입니다.
빨리 성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 오랫동안 그 성공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초심을 잃지 않으면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우리가 초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초심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는데 '감사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고 내가 열심히 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주변 사람들이 함께 도와주어서 잘 된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여를 인정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겸손한 마음을 유지해서 초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담임 목회를 하면서 배운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일에 결과가 좋을 때 그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디렉터 목사님이 잘해서 이번에 잘 됐다고, 장로님께서 열심히 일하셔서 이번에 잘 됐다고 공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고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나중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이 나서서 리더를 지켜줍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리더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그런 역할을 해줍니다.
저는 이것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

좋은 일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고 다른 사람에게 감사했더니, 나중에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사람들이 저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만약에 좋은 일이 있을 때 내가 잘나서 그랬다고 말했다면, 나중에 힘든 일이 있을 때 저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팀 사역의 비밀입니다. 

나 혼자서 잘나서 잘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덕분에 잘됐다고 인정을 한다면 그 공동체 전체가 얼마나 아름답게 성장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다 같이 헌신해서 승리했다는 그 팀 사역은 여러분 훨씬 더 기쁜 사역이고 훨씬 더 안전한 사역입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멜로디 비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의 기적이라는 책을 썼는데, 인생의 폭풍을 지내는 과정에서 작은 일에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감사는 과거의 의미를 말해주고 오늘을 위한 평안을 가져오고 내일을 위한 비전을 창조한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감사는 나 중심의 작은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중심의 넓은 시각을 갖게 합니다.
그렇게 넓은 시각을 갖게 될 때에 과거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되고, 오늘을 위한 평안을 얻게 되고, 또한 내일을 위한 비전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시작해서 연말까지 하루에 세 가지씩 감사한 목록을 적어보십시오.
아침에 일어나서 묵상하고 기도하고 사소한 것도 좋으니까 내가 하나님께 감사한 것 뭐가 있는지 세 가지씩 한번 적어보십시오.
내 인생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성찰하면서 감사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감사가 가져오는 세 가지 변화를 체험할 것입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동행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안을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겸손한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햇세드의 그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추수 감사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aWhmHdlwn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