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청년들이 가끔씩 저에게 편지나 또 이메일을 보내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 제가 편지 한 통을 이제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목사님 저는 전라도 광주에서 살고 있는 31살 청년입니다.
지난 7년간 하나님을 위해 내 몸을 불태우겠다는 청년 때의 에너지와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살아왔습니다.
어느덧 보니 저는 어떠한 모습으로도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없는 더러운 죄인인 것을 날마다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호기로 내 삶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던 제 과거가 부끄럽습니다.
이제 터무니없는 원대한 꿈을 접고 내가 있는 이 무미건조하고 똑같은 일상에서 주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하루를 살더라도 제발 주님 뜻대로 용서도 해보고 사랑도 해보고 좀 몸에 힘을 빼면서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게 참 귀한 청년 아닙니까?
이전에는 막 원대한 꿈을 가지고 막 엄청난 하나님의 일들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이제 그런 어떤 거품 다 걷고 일상생활 가운데 소박하게 제가 예수님 닮은 그런 삶을 살고자 합니다.
이게 너무 귀한데요. 근데 그다음 내용이 참 마음이 아픕니다.연달아 제가 좀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제발 주님 뜻대로 용서도 해보고 사랑도 해보고 좀 몸에 힘을 빼면서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믿음의 선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창피합니다.
내가 교회 다닌다고 말하기가 세상에 부끄러울 정도니까요.
그러니까 목사님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가려는 이 좁고 거룩하고 재미없고 힘든 십자가의 길,
청년의 때에 혈기와 정욕 다 죽이면서 정말 하루하루 쓰러지다시피 하며 주님 생각하며 이겨내는 저의 몸부림에,
실망스러운 교회와 목회자 모습들 때문에, 내가 너무 신앙생활을 유난스럽게 하나 회의감이 들까 무섭습니다.
그건 제 신앙은 물론이고 제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러니까 목사님 제발 그 길 끝까지 걸어가 주십시오.
그 좁은 십자가의 길, 하나님만 의식하며 사는 그 길,
저도 따라가려는데 회의감이 들 때마다 목사님 같은 선배 보고, 흔들릴 때마다 다시 다 잡고 싶습니다.
저 같은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쓰러지지 마시고, 타협하지 말아주시고, 지금 가시는 그 힘든 길 제발 끝까지 가주세요.
이 청년의 편지가 참 기가 막힌 내용 아닙니까?
요지가 뭡니까?
30대 이 청년이 하는 말이, 내 정말 한번 예수 잘 믿어보고 싶은데,
그리고 그렇게 다시 결의하고 결단하는데 교회가 방해 좀 하지 말아달라.
목사님이 거기에 좀 찬물을 끼얹고, 실망스러운 일 하지 않게 해달라 그 얘기 아닙니까?
제가 이번 여름에 막 스케줄이 너무 무리하게 잡혀서 굉장히 지쳐 있던 어느 새벽에 우연히 이 편지를 다시 읽게 된 거예요.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우리 같은 기성 목사들이, 또 우리 교회가 세상을 뒤집어 놓겠다고 이런 결단, 그런 거 하기보다는 정말 저렇게 좀 잘 믿어보려고 하는 우리 청년들이 힘 빠지는 짓이라도 좀 하지 말자.
그런 마음에 좀 결의가 좀 일어나는 그런 시간을 제가 그 새벽에 보냈습니다.
지금 여러분 청년들이 교회를 자꾸 떠난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요.
그런데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말 예수 좀 잘 믿어보려고 몸부림치는 청년들이 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좀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너 그렇게 살아가는 게 그게 옳은 거야 이걸 꼭 말로 훈계하고가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살아가면서 그것을 너무나 본을 보이면서 이렇게 살아가기를 원하는데,
오늘 예배 가운데 성령님이 우리 청년들에게 그리고 우리 기성세대들에게 또 저 같은 목회자들에게 이런 마음의 열망이 일어나는 은혜를 성령님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저는요. 이 청년 시절에 다윗에 대해서 좀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이 청년 시절의 다윗의 주변에는 두 부류의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사울 왕과 같은 참 힘을 다 빼놓는 이런 어른'이고요.
또 다른 한 부류는 '너무나 힘들고 어렵고 지칠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주는 그런 부류의 어른'인데 사무엘이 바로 그런 인물 아니었겠습니까?
이 두 인물이 너무나 대조적인데요.
먼저 이 사울 왕을 보니까, 참 악해요.
자기 권력을 유지하려고 아무 죄도 없는 그 청년을 그냥 죽여버리려고 혈안이 돼 있는 그런 악한 어른이에요.
오늘 본문 바로 앞에도 보면은요. 사무엘상 19장 10절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손에 들고 있던 단창을 그에게 던졌다.
그러나 다윗이 피하자 그 창은 벽에 꽂혔다. 그날 밤 다윗은 그곳을 피하여 달아났다.
이게 무슨 추한 짓입니까?
아무런 죄도 없는 이 청년을 이런 식으로 짓밟으려고 하는 짓을 지금 했단 말이죠.
그다음 11절에도 보니까요.
사울은 사람들을 보내 다윗의 집을 지키게 하고 아침에 그가 나오면 죽이라고 하였다.
기가 막힌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 참 다행인 것은요.
청년 주변에, 다윗 주변에 청년 시절에 다윗 주변에 이런 악한 어른만 있었던 게 아니에요.
그렇게 억장이 무너지는 그런 상황에 떠올려지던 어른이 다윗 주변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사무엘 선지자예요.
다윗은요,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이 사무엘 선지자를 찾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 사무엘상 19장 18절 말씀입니다.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일러바친 거예요.
나 지금 죽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요 엿새 동안 우리 청년들이 참 힘들게 살잖아요.
회사를 다니는데 너무나 자기를 이용해 먹으려는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고, 또 단물 다 뽑아먹고 발로 차버리듯이 상처를 많이 받는 게 청년이에요.
그럴 때 여러분 그 떠올려지는 그런 어른이 있는 교회, 이거 너무 멋지잖아요.
우리 청년들이 상처받고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 때 아니 왜 주일이 이렇게 빨리 안 오는 거야?
빨리 주일에 가서 내가 하나님 앞에 또 교회에서 만난 어른들에게 내가 속상한 거 틀어 놓고 하소연하고 싶은데
그래서 여러분 저는요, 하나님 앞에서 같이 좀 꿈을 꾸자는 거예요.
이 동신교회가 오래전부터 제가 듣고 있거든요.
너무나 대구에 은혜롭고 많은 교회들에게 본이 되는 이런 예배와 또 영적인 충만함 또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교회로 제가 듣고 있는데요.
거기다가 덧붙여서 오늘 하나님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주시길 원합니다.
어떤 꿈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다음 세대 청년들에게 청소년들에게 사울 같은 이런 존재로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사무엘처럼, 정말 우리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이,
이 한국 사회가 너무나 지금 메마르고 삭막하고 건조하기 짝이 없는데
하나님 그들에게 이 오아시스와 같은 그런 시원한 생수 같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꿈을 좀 꾸자는 거거든요.
여러분 사실 저는 청년 다윗이 살아가는 가운데, 그에게 이유도 없이 자기 권력을 위하여 죽이려고 했던 그런
사울의 길이 있고 그런가 하면은 그렇게 절망할 때 떠올려지는 그런 어른으로서 사무엘이 길이 있다고 한다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런 꿈을 꾸자는 거죠.
이 사무엘이 사실 현역으로 활동할 때도 굉장히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은퇴 이후가 더 아름다웠습니다.
마음먹기 따라 얼마든지 사무엘이 더 큰 권력을 탐할 수도 있었는데요.
딱 사무엘은 여기까지 내 역할이다.
그렇게 딱 제한을 하고 그러고는 이제 고향으로 가서 거기서 이제 사람 키우는 일에 전념을 한 인물이 그게 사무엘이에요.
오늘 본문 19절에 나오는 이 라마나욧이요.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나욧에 있더이다.
이 라마나욧 할 때 이 라마은 그게 지역 이름입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출생지고 고향 이름이에요.
제가 대구 사람이니까요.
라마 대구 이거 적용이 잘 안 되는데 이건 없던 걸로 하고요.
하여튼 라마는 지명이에요. 사무엘이 태어났고 그가 자란 곳.
그런가 하면 그다음 나오는 나욧 이거는 기숙사예요.
그러니까 라마나욧 은 무슨 합성어인가 하면은 이제 이제 또 시도해 보겠습니다.
대구 사람인 제가 은퇴를 하고 대구에 내려와서 라마에 내려와서 나욧를 세운 거예요.
다음 세대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을 위하여 기숙사를 만들고.
그러니까 요즘으로 말하면 그 신학교 같은 걸 세운 거거든요.
저도 이제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제 이후에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될까를 요즘 고민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엄청난 일을 내가 하겠다는 생각은 못해도 욕심은 부리지 말자.
여기까지가 내 일이라면 기꺼이 여기까지
그리고 그다음에는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고 사람을 키우는 이런 일을 하기를 원한다.
요즘 그런 꿈을 자꾸 꾸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저는 본문 말씀을 가지고 오늘 여러분의 귀한 교회가 지금도 귀하지만 교회적으로 함께 꾸어야 될 꿈.
그리고 이걸 개인에게 적용하면 이제 우리 개개인이 함께 이 꿈을 꾸는 그런 한 세 가지 정도를 제가 정리해 드리기를 원하는데요.
여러분 교회가 꾸어야 될 꿈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여러분 교회는요.
이 '상처 입은 자들의 피난처'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상처 입은 자들에게 피난처가 되는 그런 교회'를 향한 꿈을 꾸자는 겁니다.
제가 국어 사전으로 이 피난처 이걸 찾아보니까 두 가지로 풀이하더라고요.
피난처가 뭐냐
첫째 재난을 피하여 거처하는 곳, 최근에도 막 홍수가 나고 또 막 너무 폭우가 쏟아지고 할 때 위험하면은
그 마을에 이제 어떤 체육관 같은 데로 모여서 이제 거기서 같이 지내잖아요.
그게 '피난처'라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로 이 '피난처'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근심 고통 위험 따위로부터 피할 수 있는 장소나 대상.
그러니까 이런 어떤 건물, 이것만이 피난처가 아니라 오늘 여러분의 교회가 피난처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는요, 교회가 요긴했어요.
너무 가난하고 어렵고 그러니까 이제 여름 성경학교를 한다 그러면 그거 온 동네 마을 잔치였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나요.
이제 오늘 저녁부터 여름 성경학교를 한다 그러면요.
이제 어떤 선생님이 북을 가지고 나가요.
큰 북을 매고는, 별 안내도 없습니다.
그냥 둥둥둥둥 북만 치면 그러고 이제 동네 한 바퀴를 돌면,
애들이 무슨 쇠붙이에 지남철에 쇠붙이가 붙듯이 막 우르르르르 이렇게 따라와요.
그래서 애들을 쑥 몰고 이제 이제 예배당에 들어가가지고 여름 성경학교 학교가 시작되면 동네들이 다 모였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그렇게 모여가지고 이제 막 성경학교 하고, 막 수박깨기 막 또 예수님 이야기도 전해주고,
그러면서 꼭 보면 또 이제 신발 잃어버린 애들이 한 둘 반드시 나오고, 너무 많이 모이니까.
중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여기 대륜고등학교 나왔거든요.
바로 요 건너편인데요.
제가 대륜고등학교 다닐 때 그 70년대 말인데요.
저한테 애들이 나 좀 교회 좀 데리고 가라 그런 애들이 여러 명 됐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로 하여튼 뭐 여학생 구경할 때라고는 교회밖에 없었거든 남녀 공학도 아니고
뭐 하여튼 뭐 이성이 만날 때는 그때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계속 나 좀 교회 좀 데리고 가라고 그런 애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지금요 어떤 길거리 가서 한번 물어보세요.
어린 시절에 한두 번 교회 안 가본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다 교회 다 다녀본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세파에 찌들려가지고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나고 그렇게 된 거 아닙니까?
여러분 꿈꿔야 되는 게 뭐냐 하면 저는 이 꿈을 꾸어요.
다 어린 시절에 한두 번은 교회를 다녀봤고 예수님 이야기 다 들어봤단 말이죠.
그러다가 세파에 찌들려 살다가,
어떤 분이 그러다가 이제 갑자기 사업이 망해요.
어떤 분이 갑자기 암을 만나가지고 너무나 마음이 무너져요.
어떤 분이 이혼의 위기를 겪고 있어요.
어떤 분이 지금 막 가정이 깨질 것 같은 상황이에요.
이렇게 위기가 올 때 아 맞다, 교회가 있지. 참 내 인생에 교회가 있었지. 내가 오래 잊고 있었네.
교회가 있는데 여러분 한국교회가요. 이걸 실패한 거 아닙니까?
평상시에는 세상에 찌들려 살다가도
어떤 위기를 만나고 어려움을 만나면, 아 맞다 그때 눈물을 닦아주던 교회가 있었는데.
내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회가 내게 너무 참 많은 위로를 해줬는데 동신교회가 이 꿈을 꾸면 좋겠습니다.
다 그러시겠지만요.
제 인생을 돌아보면은 이렇게 뇌리에 완전히 저장이 된 그런 순간의 기억이 있잖아요.
여러 기억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요 옥한흠 목사님
저의 스승 되시던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시던 아침이예요 머리 각인이 됐습니다
그 전날 막 엄청나게 태풍이 뭐 그냥 막 분당을 초토화를 만들어 놨고
그리고 잦아드는 그 다음날 새벽에 이른 아침에 연락이 온 겁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위독하시다고 아마 천국 가실 것 같다고
그래서 그 아침에 막 미친 듯이 제가 차를 몰고
분당에서 그 서울대병원으로 막 나무가 쓰러져 있고
그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정신없이 그렇게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들어 가자마자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조금 전에 돌아가셨다고
그게 참 제 마음에 각인이 됐어요
금방 이제 목사님이 돌아가시고요
그리고 이제 사모님이 예배를 드리자고
그래서 제가 예배를 이렇게 성경을 뒤지고
이러니까 그 사모님이이 부탁을 하시는 겁니다
목사님, 이 찬양을 불러 주세요 그게 어떤 찬양인가?
하면은요
찬송가 96장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2절 가사도 같은 내용이 계속 흘러가요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여러분 2010년도에 이 일이 일어났는데요
지금으로부터 거의 한 14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그날 아침에 그 사모님과 함께 목사님
돌아가신 직후 드렸던 그 예배에 그 목사님의 표정 그 사모님의 표정
그 눈물을 흘리시던 그 사모님 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던 그 모습 잊혀지지가 않아요
제가 그때 깨달았죠
뭐 온 대한민국의 목사들이 다 흠모하고 존경하고 그렇게 사모했던 그런 옥한흠 목사님
그 가정에도 눈물이 흐르는구나
그렇게 존경받던 그 사모님도 이 찬양이 절실한 때가 오는 거구나
그 잊혀지지가 않는 거거든요
아무리 세상에서 잘 나가도요
여러분, 눈물 닦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거거든요
저는 그래서 분당우리교회 개척하고 만든 구호가 이겁니다
우리 교회는요 항상 이거를 같이 부릅니다
분당우리교회 할 때 앞에 토를 다는게 있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분당 우리 교회에요
함께 울고, 함께 웃는, 분당 우리 교회를 왜 '우리'라고 지었겠냐고요?
이 말씀은요 로마서 12장 15절에서 따온 겁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이게 교회거든요
그런데요 즐거워하는 자들과는 함께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아요 왜?
즐거워하는 자들에게는 찾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굳이 교회가 같이 즐거워 안 해도 즐거워하는 사람한테는 사람이 붙어요
그런데요 너무나 마음이 무너지는 그런 일이 있으면은 함께 우는 자들은 별로 없습니다
왜 옥한흠 목사님 사모님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존경하는 사람들로 쌓여 있는 그분이
왜, 목사님 이 찬양을 불러주세요 아무리 주변 사람이 어떻게 위로를 해도요
예수님의 위로 아니고는 견딜 수 없는 게 인생이거든요
동신교회는요 요한계시록 7장 17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의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요 예배하러 오신 여러분들이 뭐 이찬수 목사가 설교를 하건
어떤 교수님의 설교하든 이건 중요하지 않아요
오늘도 여섯 동안에 참 난 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픔을 가지고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예배의 자리로 오신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이 시간 여러분 이 교회는요 천국의 모델하우스예요
그래서 저 말씀을 계속 묵상하셔야 됩니다
생명수 샘으로 인도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눈에 눈물을 씻어 주실 그날이 있다
이거는 늘 우리가 사모하고 기대하면서 이 모델하우스에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모델하우스는 완벽하지 않아요
그러나 모델하우스 가보시면 집기들, 집에 대한 모든 걸 다 갖추고 있는 거거든요
오늘 예배 가운데 성령님이 저와 여러분을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 주셔서 여러분의 답답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그리고 여러분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은혜가 이 시간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교회가 꿔야 되는 꿈이 또 있는데요
여러분 교회는요 이 사무엘과 같은 어른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본문을 묵상하다가 참 흥미로운 걸 하나 발견했는데요
그렇게 다윗이 자기 인생의 위기를 여러분 절대 권력자 왕이 막 창을 던지면서 죽이려고 하는 이보다 더 위기가 있습니까?
이보다 더 절망이 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다윗이요 인생의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찾아간 곳이 라마나욧이예요 그곳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그곳에서 치유가 일어나고 그곳에서 회복이 일어난 것인데요
그랬던 그곳인데 다윗이 망설이지 않고 그곳을 떠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언제 떠나는지 아십니까? 자 사무엘상 25장 1절입니다
언제 다윗이 그곳을 떠났느냐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 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여러분 사무엘이 죽으매로 시작했고요 다윗이 이제 그곳을 떠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는데 한절이 필요한 하지 않은 거예요 그냥 떠난 거예요 떠난 거예요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아니 자기가 그렇게 위기를 만났고 절망이 찾아오고 인생의 그냥 상상하기 어려운 그런 낙심 가운데 있었을 때
그가 찾아온 간 곳이 라마나욧인데 이제 그 자기 상처를 치료해 주던 라마나욧을 다윗이 왜 떠났냐고요
왜 떠났다고요
더 이상 거기 사무엘이 없단 말이죠 있을 이유가 없단 말이죠
거기 뭐 공기 좋고 뭐 경치 좋고 그래서 간게 아니거든요
거기에 사무엘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교회 가요 자칫하면은 정말 인간미가 없어요
교회는 진짜 위험한 곳이에요
여러분 다 하나님 다 돌리잖아요 아니에요 하나님은요 사람을 통해 일하세요
동신교회가 동신교회 될 수 있었던 건요 여기에 사무엘 같은 너무나 귀한 분들이 많이 계셨기 때문 아닙니까
그리고 뭐 여러분은 뭐 진짜 그 목회자 복은 타고난 교회 아닙니까
권성수 목사님은요 제가 이민생활을 끝내고 신학교를 들어갔을 때 신학대학원 1학년 때 저를 가르쳤던 분이에요
성경 해석학, 아 이분이 뭐 그냥 막 그때 이분도 이제 유학 마치고 얼마 안 되고 막 젊어실땐데 아 그러면 하여튼 놀라웠어요
막 성경에서 신학을 가르치시는데 막 하여튼 뭐 글쎄
이게 제가 뭐 표현이 잘 안 돼요 이 권성수 교수님 설교가 강의가 지나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막 소리도 엄청 지르셨어요
막 엄청 열정적으로 그렇게 해서 참 제 신학에 기초를 닦게 해주신 분인데 어느 날 보니까 동신교회에서 목회를 하신다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이 귀한 신학과 열정을 겸비한 목사님이 목회 하셨는데
그 다음에 이제 또 2대 그다음 문대원 목사님이 오셨다
그래서 제가 문대원 목사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보니까 저는요
지금까지 난 문대원 목사님처럼 착하게 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아 정말 이게 정말 이게 뭐 상상하게 어려워요
그리고 또 이렇게 그 대화를 해보고 하면 하여튼 뭐 야 그래서 저는 참 목사는 이래야 되는데
그러면 딱 보면 목사 같잖아요 문대원 목사님이 그래서 이제 저는 진짜 기대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선하고 순수한 목사님을 통해 이제 뭐 얼마나 또 바톤을 받아 가지고 잘 하시겠냐고요
그래서 제가 동신교회를 주목하니까 제가 지금 자기 교회도 안 가고 여기 왔잖아요 제가
정말 제가 기대하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제가 지금요 권성수 목사님 문대원 목사님이 대단하다는 얘기를 하려고 이런 말씀드리는게 아니에요
동신교회 하면 두 분밖에 안 떠오른다
그건 병든 상태입니다
여러분 이 두 분은 그냥 간판일 뿐이고요
들어가 봤더니 모든 성도님들이 아니 저 권사님도 사무엘 같은 분이네
아니 저 장로님은 사무엘 같은 지도자네
저 집사님도, 우리 청년부의 리더도, 우리 찬양대에도,
아까도 그랬고 또 지금도 느끼는데 여러분 그 인간적으로 찬양을 뭐 이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까?
막 4부 내려고 막 얼마나 고생 많이 했습니까
다음 주는 단음으로 그냥 부르시면 돼요
뭐 그렇게까지 막 이렇게 찬양하고 막 여기
또 악기 연주하는 분한테 지금 무슨 전화인지 모르겠는데
찬양대가 막 화음을 잘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요 이 찬양대 안에 그 육신의 목소리로 찬양을 아름답게 하려고 애쓰는 거와 똑같이 이 찬양단에 사무엘 선지자 같이 너무나 영적으로 본이 되는 그런 분들이 곳곳에서 여러분 교회에서 나기를
기도하셔야 돼요
문대원 목사님은요 여러분들에게 그런 분들을 보듬어가는 역할을 하시는 것뿐이에요
이제는 여러분이 이 꿈을 꾸는 거예요
사무엘이 죽으니까 다윗이 그렇게 은혜 받았던
라마나욧 공동체지만 나 여기도 있을 이유가 없다
동신교회가 여러분 우리가 온 세상을 뒤집어 놓는 일을 못하지만요
적어도이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나는 사울 같은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이 교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나는 어떤 그 젊은이들에게 누군가에게 나는 사무엘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이 꿈을 꾸면서 가자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이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잖아요 여러분이 교회인 거예요
건물이 교회가 아니에요 몇 명이 모인다 예산이 얼마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여러분이 교회. 여러분이
그래서 이 교회가 함께 모였기 때문에 건물이 필요하고 예배당이 필요한 거지 여러분 교회에이 구성원 한 분
한 분이 이 꿈을 꾸시면 좋겠어요
나는 이 교회에 나는 이름 없이 빚도 없이 나는이 교회에 사무엘이 될 거야
적어도 내 주변에 몇 명에게는 내가 동신교회에 있는 한 그들은 절대로 이 교회 안에서 시험에 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꿈을 꾸는 거거든요
이 꿈이 있으면요 여러분이 그 사무엘이요
이제 은퇴를 해요 그리고는 이제 고별 메시지를 전하는데요
기가 막힙니다 이분의 그 은퇴의 메시지를 한번 들어보세요
사무엘상 12장 3절입니다 사무엘이 말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선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ㅜ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지금 사무엘이 뭐라고 선포하는지 아시죠
그랬더니요 이 이야기를 들은 백성들이요
합창을 해요 뭐라고 합창을 하느냐 4절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저는요 분당우리교회를 개척한지가 22년째예요
이제 한 뭐 한 7, 8년 더 남았는데요
지금부터 꿈을 꾸어요 저는 목회의 목표는 딱 하나예요
뭐 모든 성도님들을 만족해 하는 일, 그거는 제가 역부족이에요
그러나 저는 꿈을 꾸어요
저는 우리 집에요, 여자 청년 둘 남자 청년 하나 우리 집에 살아요 다 20대예요
저는 내 인생의 목표가 이거예요
제가 은퇴하는 날 우리 딸 둘 아들 하나가요, 내가 가까이서 지켜봤는데 우리 아빠는 진실한 목사야
개척할 때부터 이 꿈을 꾸었어요
개척할 때 우리 아이가 8살이었거든요 다섯살 이었고 두 살이었거든요
여러분 그 어릴 때부터 제가 꾸는 꿈이 이거예요
세상에 여러분 살아보니까요 세상에서 제일 쉬운게 늙는 것 같아요
늙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어요 아무것도 한계 없는데 그게 저절로 이루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여러분 아시죠
세상에서 늙는 것만큼 쉬운게 없는데요
세상에서 늙는 것만큼 쉬운게 없는데요
그다음 뭐더라
세상에서
세상에서
아 세상에서 가장 쉬운게
늙는 건데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어른이 되는 거예요
늙는 거는 너무 쉬운데
늙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제
60대가 되면서부터
놀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 목사님 50대 같은 이래야 되는데
대구 사람인데
제가 60이 넘어서면서 아 이게 절실해요
애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건 늙는 건데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건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되는 거 그냥 쉽게 됐습니다 세월 지나니까 다 애들이 자랐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비가 되는 건 자동적으로 일어났지만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기를 원해요
우리 아이들이 저를 지켜보면서 제 설교를 들으면서 그래서 저는요
주일 저녁에 애들하고 밥 먹을 때가 제일 두려워요 그날의 심판을 애들이 다해요
아빠 그 과장한거 아닙니까? 약간 과장 같은데
농담을 하는 것 같은데, 그 뼈가 있는 거죠
여기 우리 기성세대 어른들이 꿈을 꾸자고요
세상에 늙는 것만큼 쉬운게 없어요
그러나 나는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이 교회에 사무엘과 같은 어른이 되기를 원한다
떠나갔던 대구에 많은 떠나간 청년들이 가나안 성도가 지금 뭐 엄청 양산이 된다는데
여러분 교회에 이 사무엘 같은 어른들이 있어서
상처받고 떠나갔던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교회가 되는 꿈
이 꿈을 꾸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요
우리가 꿔야 되는 꿈이 하나 더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곳이어야 돼요
이 꿈을 꾸자는 거예요
다윗에게 위기가 또 찾아왔습니다
그 악한 사울이 알아 버린 거예요
그 라마나욧에 숨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랬더니 이 못된 사울이 또 이제 사람을 보내요
그랬더니 거기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게 오늘 본문 19절 20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그 다음 보세요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심지어는요 그 악한 사울에게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23절입니다
사울이 라마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더니
다윗이 위기를 만났을 때 계속 사무엘만 나서 가지고 다윗을 보호하면요 그건 영적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동신교회에 권성수 목사님 너무 훌륭하시고 너무 훌륭하셨고 지금도 훌륭하시고 우리 문 목사님이 너무너무 훌륭하게
목회를 잘 하신다 하더라도 인복을 누리고 또 누려도 동신교회에 하나님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건 교회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곳이거든요
지금 이 다윗이요 위기를 만났는데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시는 거거든요
분당우리교회는요 지금도 캠페인 중이에요
예배 지각을 엄청나게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일만성도 파송운동 하기 전에는 초신자들이 지금보다 그렇게 많기 전에는요
딱 예배 문 닫았습니다 못 들어오도록
아니 무슨 예술의 전당의 무슨 5만 원짜리 티켓 끊고도, 연주하는 연주자들 연주를 해도
딱 시간지나니까 안들여보내주더라고요 문 닫어버리든데요
얼마나 그 5만원짜리 티캣 아깝다고 노력들을 합니까~ 지각 안할려고요
이거 지금 괜찮습니까?
하나님의 존전에서 드리는 예배에 지각을 방치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분당우리교회는 엄청 엄격하게 지금도 고민 중이에요
저희는 기존 신자 등록을 안 받기 때문에 초신자들이 거의 한 절반 가까이 돼요
그래서 그분들이 또 어 늦게라도 왔더니 뭐 문 닫네 잘 됐다 이제 교회 안가
그러실까 봐 그 지금 뭐 굉장히 갈등 중이예요
여러분 그런데요 이렇게 예배 지각하는 걸 저는 이게 나쁜 일이라 생각하는데
그런데 여러분 지각보다 더 나쁜게 있습니다
지각보다 더 나쁜게 뭐냐 하면은 아무런 기대감 없이 교회 오는 거예요
그건 최악이에요
여러분 5만 원짜리 티켓 들고 연주 가는 그 사람도 기대감으로 지각하지 않으려고 막 서두는데요
오늘 예배 드리러 왔는데 이게 그냥 관성으로 뭐 모태 신앙이고 뭐 달력에 빨간불이 있으면 늘 갔고
그래서 강아지 종 땡 치면은 침이 그렇게 흐르듯이 아무 뭐 그냥 뭐 기대감도 없이 그냥 교회 왔다가 그냥 뭐 잘 때웠다
그렇게 가는 그것은 제가 좀 심하게 말씀드릴까요
범죄행위에요
그건 굉장히 하나님을 조롱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지금도 그러고 계시겠지만
이제 매주일 날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올 때마다 이 기대감을 갖는 거예요
이제 이번 주간 내가 받았던이 아픔 이번 주간 너무너무 억울한 일을 당했고
이번 주간에 내가 실직을 당했고 이번 주간에 내가 암 선고를 받았고
이런저런 상하고 찢긴 아픔을 가진 내 심령 속에 하나님, 오늘 누구를 통하여 무엇을 통하여 저를 치료해 주시고
싸매어 주실 것인지 사모하는 거예요
기대하는 거거든요
그런가 하면 여러분 예배 가운데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늘 그것을 우리가 구해야 돼요
마태복음 7장 11절을 보니까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똑같은 내용을 다르게 해석한 누가복음 말씀을 보십시오
누가복음 11장 13절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가장 좋은 것을 누가복음에서는 그게 성령이다 그게 그게 성령이다
그래서 여러분 초대 교회가 태동하는 과정을 보니까
사도행전 2장 1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그렇게 함께 모여 기도했더니요
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다음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예요
전에는요 이 경상도 사람들이 제가 83년에 이민을 갔는데요
그때는 저는 대구를 일주일도 떠나 본 적이 없거든요 완전 토박이거든요
저는 이제 대구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아마 난 모든 온 세계 사람들이 다 이렇게 말이 걸고 막 고집이 세고 난 그런 줄 알았어요
진짜예요
원래 인간애가 그런 줄 알았는데요
제가 23살 때 미국으로 딱 이민을 가고 엄청 당황했어요
팔도의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데 보니까
경상도 사람만큼 고집 센 사람이 없구요 말 함부로 하는 사람이 없구요
충고 잘하는 사람이 여기 막 걸핏하면 내가 충고할게 있다 그러고
그리고 또 경상도 사람이 끝 항상 이게 충고하고 토를 다는게 거의 뭐 이게 뭐 모든 경상도 사람이 대부분 그렇더라
그렇게 아픈 이야기를 해놓고 이렇게 말을 끝을 맺더라구요
나 뒤끝 없는 거 알지?
야 그 진짜 그게 상처를 후벼 파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제 미국 가서 너무 당황했어요
아니 온 인류가 다 이런게 아닌데
왜 우리 경상도 사람은 이렇게 말을 함부로 하는 거지
모든 지금 우리 목사님들 사이에 이렇게 말하는 거 아십니까?
할 수 있으면 경상도 쪽에서는 목회를 안 하는게 좋다
말을 막 너무 함부로 해 가지고 막 비수가 팍팍 꽂힌대요
근데 아까 제가 기차 타고 동대구역에서 목사님 여기 한 15분 데랴다 주는데
아 한마디가 지금 머리에 남아요
동신교회 성도님들은 너무 부드럽다는 거예요 너무 온유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동신 교회에서 자기는 이분은 그 경상도 사람도 아닌데 너무 행복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게 너무 좋았습니다
오늘 여러분 교회가 이렇게 경상도 사람들은 충고하기 좋아하고 직선적으로 말하기 좋아하고 상처 주기 좋아하는데
그런 거를 잘 안 한다면 여러분 그게 성령의 역사인 거예요
다시 한번 보세요 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그 다음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이에요
전에는 내키는 대로 막 나오는 대로 막 그냥 다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말을 했다면
성령이 나를 다스리니까 내 입술을 성령님이 다스려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바로 그 다음 11절에 보니까 어떤 말을 하는가 보니까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여러분 오늘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경상도 원근 각처에서 모여들어서 여러분을 보고 이렇게 고백하기를 바래요
내가 동신교회 왔더니 그들이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엿새동안에 그저 뒷 담화하고 누구 험담하고 부정적인 말하고
그런걸로 찌들어 살던 어떤 초신자가 여러분의 교회에 오면 김 집사님하고 대화를 하면 언어가 다르네
격려의 언어
복음이 뭡니까? 죽은 사람 살리는 언어잖아요
격려의 언어
치료의 언어
회복의 언어
말씀을 이렇게 마무리하기를 원하는데요
제가 여기 오게 된 이유도 그 중에 하나인데요
이제 여러분 같이 꿈을 꾸자고요
저희 교회가 2년 전에 일만성도 파송운동을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제게 꿈을 주셨어요
지금까지 경기도 지역에 있는 작은 교회들을 섬기는 일을 하다가
이제 올해부터 권별로 경상도 지역 전라도 지역 충청도 지역 또 강원도 지역 또 제주도 지역
이렇게 권별로 나누어서 이제 미자립 교회 또 조금만 후원하면 일어날 수 있는 교회를 섬기자
그랬더니 일부러 그렇게 한 것도 아닌데 이제 이 경상도 지역이 제일 먼저 하게 된 거예요
그게 제가 문대원 목사님한테 sos를 쳤어요
이제 모든 재정은 분당우리교회가 다 댈 테니까
이제 이 경상도 지역에 있는 미자립교회를 심사하고 선발하고
그리고 여러분 그 목사님의 교회도 이런 걸 같이 꿈을 꾸면 좋겠다
목사님 우리 동업합시다, 동업이 아니고
목사님 우리 동역 합시다
그래서 같이 꿈을 꿉시다
그랬더니 참 목사님이 너무나 그것을 좋게 받으시고요
또 장로님들과 나누었는데 또 너무 그것을 기뻐하신다
그래서 제가 감사드리려고 온 거예요
올해는요 분당우리교회가 모든 재정을 다 댈 거니까요
이제 내년부터도 계속하시면 좋겠어요
동신교회가 여기 자리 잡고 있는 이 의미가 참 이 지역의 어려운 교회 가난한 교회 꿈을 꿀 수 없는 교회
그들에게 복음으로 꿈을 심어주는 일을
이제 제가 아끼는 몇몇 후배 목사님들하고 이 일을 지금 이제 시작하기를 원하는데요
동신교회가 그 일을 꿈을 꾸시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만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개인의 삶 가운데서도
예수 믿는 사람은 꿈꾸는 사람이에요
세 가지 꿈이라 그랬죠
낙심하고 실망하면 떠 올려지는 사람
아~ 오늘 마음이 너무 슬프니까 그 동신교회 김 권사님 생각이 난다
이분 만나면 힘이 날 텐데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그 은혜주셔서 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주는 꿈으로 충만한 그런 성도님들과 그런 교회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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