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대원목사 설교

하늘길 인생

by 마이코 2024. 7. 22.

2024년 7월21일 대구동신교회 주일예배


우리는 한 번 사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딱 한 번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인생을 의미 있게 잘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하루 또 12년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의 인생은 무엇인지에 관해서 관을 정립해 가게 됩니다.
처음에는 인생 철학 살아가는 방식 배운 것 기초해서 어떤 사고방식이나 패턴으로 나타나게 되죠.
인생이란 화목하게 사는 것이다.

인생이란 성공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가치관이 정립이 되고요.

그것이 습관이 되고 나의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인생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 우리의 모습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 좋습니다.

인생에 대한 가치가 있어야 되고 또 관점이 있어야 되겠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런 우리의 생각과 인생에 대한 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입장과 정리된 나의 정서와 정체성 이런 것들이 어디에 기초하고 있어야 하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을 때라야 그것이 영원한 가치를 지닌 진짜 인생이 될 수가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오늘 그래서 우리가 함께 읽은 전도서의 말씀을 통해서 나는 누구이고, 나의 인생은 무엇이며, 남은 인생을 어떤 관점으로 나를 이해하고 내 인생을 이해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한 토막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택한 본문이 어디예요? 전도서라는 책입니다.
누가 지었습니까?

솔로몬이 지었다고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생각하고 있지요.
고대 근동의 최고의 강자였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 해볼 수 있었던 지혜가 뛰어났던 솔로몬이기 때문에 인생에 관한 그의 통찰을 우리가 들어봐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죠.

이 말씀은 단순히 솔로몬의 견해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감케 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그런 은혜의 메시지를 들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 들으시면서 하나님 제가 남은 인생 지금부터 펼쳐가야 하고 살아내야 하는 나의 하루하루의 그 남은 인생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깃들기를 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마음으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전도서의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전도서 그러면 어떤 구절이 생각이 나십니까?
굉장히 유명한 표현이 하나 있는데요.

인생은 어떻다? 헛되다.

왜 이렇게 잘하세요?
'헛되다'라는 구절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요.

전도서 12절 말씀 보니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요. 근데 처음 딱 들으면요.

이 헛되다라는 말은 기독교 그러니까 교회의 메시지로서는 약간 좀 낯설다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거예요.
제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교회에 처음 어떤 분이 이렇게 오셨는데요.
이 얘기는 교회보다는 타 종교에서 할 것 같은 얘기 같은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월화수목금토. 여러분의 일상에서 참 수고 많으시다가 속으로 그런 생각 엄청 들잖아요.
인생이 뭘까?

왜 이렇게 헛된 것 같고.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이러지 이렇게 생각하시다가도 주일에 이렇게 교회에 오시면 어떤 메시지를 듣고 싶으십니까?
이럴 것 같아요. 사람 마음이 이럴 것 같아요.

여러분 인생은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 의미가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얘기가 듣고 싶거든요.

 

근데 교회에 왔는데 계속 뭐라고 해요?

"인생은 헛되어 의미가 없어. 그렇게 열심히 살 필요가 없어. 내가 다 해봤는데 아무것도 아니야"

이렇게 얘기를 들으면 그냥 기운이 쭉쭉 빠져서 내가 교회에 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타 종교의 메시지를 듣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라고 생각되시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왜 주님께서는 전도서를 통하여 인생이 어떻다고요?
'헛되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계신 것일까요?

다시 말해서 이 전도서의 헛됨이란 말 말씀은 이 표현은 무슨 뜻일까요?
사실 이 전도서를 읽어보면은요. 참 이해하기가 쉬운 것 같으나 또 쉽지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왜냐하면 앞뒤 얘기가 상충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서를 이렇게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메시지가 서로 상충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실은 상충하는 건 아닌데 말이죠.

큰 두 가지의 메시지 첫 번째는 뭐냐 하면은요.
'인생을 즐기세요. 누리세요' 이런 메시지가 있습니다.
224절 말씀 보니까요.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끝에 보니까 어디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좋단 말이에요.

나쁘단 말이에요? 좋단 말인 거죠. 여러분 먹고 마시고 누리세요.
교회에서 그런 얘기도 하네요. 먹고 마시고 누리세요.
기쁘도다. 오늘부터 먹고 마시고 누려야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말입니다.
그 다음에 따라 나오는 두 번째 메시지가 또 좀 다른 것 같다는 말이에요.
226절 조금 전에 24절 읽었는데 2절 내려가서 26절에 보니까 이 문맥에서 이렇게 또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맨 끝에 보니까요.
이것도 어떻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다.

조금 전에 먹고 마시고 누려라 해놓으시고서는 그건 어떻다 헛되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 제일 나쁜 것 중에 하나가 줬다 뺏는 것이거든요.
그렇죠? 누리세요라고 하지를 마시지 처음부터 안 된다 하시지 누려라 하셔놓고 그것은 헛되다 하시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까?
그래서 이 전도서는 굉장히 이해하기가 난해한 책이다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요.

처음 들을 때 약간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차근차근 살펴보면 아주 깊은 의미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헛됨의 메시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요. 오늘 저는 여러분들께 전도서에 나오는 이 헛됨의 의미를 세 가지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몇 가지 한다고요? 헛됨의 의미 세 가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사람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학교에서 나온 것이 확실하도다.

우리에게 중간고사를 보려고 하는 것인가?

여러분 저는 교회에 와서는 악한 짓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혼자 다 하고 갈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들으시면서요.
하나님 제 인생 속에 주님 오늘 무어라 말씀하시려 하는 겁니까? 제가 이제 인생을 저의 이 인생을 하루하루 어떻게 더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들려주세요.

이런 좋은 마음으로 들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몇 개 한다고요? 세 가지 합니다.

맨 먼저 시작하면서요.

이 헛됨의 첫 번째 의미를 시작하면서 이 헛됨이란 단어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말씀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헛됨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시냐면 대개 이렇게 생각하세요.
염세주의적인 세계관이다.

그래서 이제 한국말로 아이고 의미 없다, 소용이 없어요. 의미가 없어 이렇게 생각을 하시는데요.

그런 정도의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헛됨이라는 단어는 성경 원어상 원래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느냐?

기본적으로 이 단어는요. '숨, 숨결, 호흡' 이런 뜻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숨, 호흡인데 여기서 따라 나오는 '하니'이라고 하죠.
따라 나오는 의미가 뭐냐 하면 '짧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제가 지금 숨을 한 번 쉬었어요.
내가 숨을 쉬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하니까 그 숨이 쉬어져가지고 지나가 버렸어요.
그 숨이 더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짧아요.
그래서 헛되다 헛되다라는 것은 숨 호흡이라는 뜻이어서 어떤 뜻이 되는 거죠?
매우 짧도다. 매우 짧다 라는 뜻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도자는 뭐라고 말씀한 거죠?
인생을 향해서요,  짧도다 짧도다, 매우 짧도다 이렇게 말씀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인생이 짧다는 것이 헛되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여기서부터 세 가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는 전도서 1장 말씀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우리가 이미 읽었거든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시작을 했는데 그 헛되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가?

1장 앞부분 구절들을 통해서 쭉 설명되고 있어요.
그런데 그중에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5, 6, 7절에 '자연만물'을 먼저 말씀하시면서 설명을 풀어나가십니다.
5, 6, 7절에 자연만물 설명이 먼저 나오는데요.

이걸 기초로 해서 헛되다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중에 오늘 우리는 56절 읽어보면서 한번 시작해보도록 하렵니다.
56절 한번 힘차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읽습니다.

시작

는 뜨고 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아멘. 자연물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시작을 합니다.
5절에는 태양, 6절은 바람, 7절은 물 이렇게 세 가지를 말씀하시는데요.
5절 보니까 이렇게 돼 있어요.

해는 뜨고 지되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간다라고 하셨어요.
여기서 돌아간다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하니까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거예요. 태양이 동쪽에서 이렇게 떴어요.

그래서 이렇게 쭉 가다가 저녁에 서쪽으로 졌습니다.
그래서 태양이 갔네라고 생각했는데요. 웬일입니까?
다음 날 아침에 어떻게 돼요? 동쪽에서 다시 뜹니다.
그래가지고 이렇게 돌고 돌아요.

이걸 본문은 태양이 자기가 원래 있던 자기 곳 자기 장소로 돌아갔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질문 드려볼게요.

태양이 변한 겁니까? 변하지 않은 것입니까?
변하지 않은 거예요.

막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사실은 순환하고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태양은 움직이거나 변하지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자기 곳으로 돌아갔다 순환을 말하는 거지 6절에 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이리 불다 저리 불다 남으로 불다 북으로 불다가 자기가 있던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라고 했어요.
대기의 순환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고 태풍이 치고 막 이래서 바람이 대기가 움직이는 것 같아도요.
과학적으로도 그렇지 않습니까?

대기가 순환하는 것이고 지구상의 대기는 변합니까?
아니면 그대로 있는 것입니까? 그대로 있는 겁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물이 막 흘러가지고 바다로 가고요.
거기서 수증기가 되어가지고 구름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비가 되어 땅으로 내려와서 강물로 들어가는 물의 순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요, 여러분 이 자연 만물이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아도 사실은 움직이는 것입니까?
그대로 있는 것입니까? 그대로 있다. 그대로 있다라고 말씀하는 거지요.
변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자연에 속한 이 땅에 존재하는 피조물들 중에요 모든 것은 그대로 있지만 딱 한 존재는 순환하지 않고 왔다가 그냥 가서 끝나는 존재가 있어요.
예외가 있다는 것이죠. 어떤 존재입니까?

'사람' 바로 우리 인생이 다르다.예외가 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을 4절 말씀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하셨어요.


여기서 한 세대란 인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인간 한 세대가 있었는데 갔어요.
그러니까 다음 세대가 왔습니다.

보세요. 한 세대가 이렇게 갔다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 가지고 다시 나오는 무슨 전생이 있고 후생이 있고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
다음 생에 살아보자 이런 게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 번 왔다가 가요.
그러나 땅은 그대로 계속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땅이란 사람을 제외한 이 피조세계 전체를 의미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우리 100200년 전에 대구 땅이 여기 계속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100년 전 200년 전에 사시던 우리의 선조님들은 지금 여기 계십니까? 아니면은 돌아가셨습니까?

돌아가셨어요.

앞으로 10020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대구 땅은 그대로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 오래 사세요.

100200년 장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100200년 지났을 때 예수님께서 그때까지 다시 오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도 가고 없겠지.
그러나 대구 땅은 그대로 있을 것이고, 우리의 후손들이 여기서 주님을 섬기고 있을 거예요.
무슨 말입니까?

잘 보셔요. 세상은 변하지 않고 만물은 그대로 있어요.
그러나 왔다 가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우리들 사람입니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영원히 있는 이 땅과 만물에 비하여 보니 잠깐 왔다 가는 우리의 인생 사람의 인생이 어떻다고요?
매우 짧더라, 매우 짧더라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요.
눈 감았다 뜨면 가는 날이 온다.

나는 100년 만년 여기서 살 것 같은데요.
나는 100년 만년 20대일 것 같고 100년 만년 50대일 것 같고 100년 만년 70대일 것 같은데 근데 눈 감았다 뜨면 여기서 떠나야 하는 날이 금방 온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것이 헛됨의 첫 번째 의미입니다.

조금 더 정리해 보면 이렇게 되죠.
눈 감았다 뜨면 나는 여기서 떠나서 가야 하는데요.
근데 땅은 어때요?

땅이 나를 따라와요, 아니면 땅은 여기 남아 있어요?

땅은 여기 남아 있다는 거죠.
더 쉬운 말로 할까요?

눈 감았다 뜨면 떠나야 하는 날이 생각보다 너무 금방 찾아올 것인데 그 떠나는 날 나는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한다는 것이죠.
제가 여기서 만 년 동안 대구에서 살려고 대한민국에서 살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제 손에 쥐어진 거를 제가 만 년 동안 갖고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눈 감았다 뜨면 당신 것이 아니니 놓으세요.
그래서 여기에 탁 놓고 나는 떠나야 한다는 거지요.
그날이 그날이 100년 있다가, 만 년 있다가 오는 것이 아니라, 그날이 오늘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사십시오라는 것이 헛됨의 첫 번째 의미인 것입니다.
다 놓고 갈 것들이니 쥐고 갈 것처럼 생각하지 마시고 놓고 가는 것인 죄를 깨닫고 사십시오.
그렇군요. 여기까지 말씀드리면요.
우리 성도님들이 두 가지 반응을 보이실 것으로 두 가지 중에 한 가지 반응을 보이실 것으로 예측이 됩니다.
첫 번째 반응은 이럴 것 같아요.

'목사님 그렇군요. 놓고 간다고요? 알겠어요. 알겠어요. 저는 오늘부터 아등바등 더 모으려고 살지 아니하고 오늘부터 누리고 기쁘게 나누고 이렇게 좀 베풀면서 그렇게 살겠습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그 말씀하시는 분들을 제가 이렇게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되게 좋으시겠어요? 쓸 건 있으신가 봐요?

이런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등바등 안 하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좋으시겠어요. 우리 성도님들이 다 그렇게 여유 있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반응이 아닌 두 번째 반응을 보이시는 분이 없으셨으면 좋겠으나 있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두 번째 반응은 이겁니다.

'목사님 그렇군요. 다 놓고 간다고요 거 잘 됐네요. 안 그래도 저는 손에 쥔 게 없어요. 하나님은 딴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많이 맡겨주시는데 왜 저한테는 아무것도 안 줬어요? 왜 줬다가 자꾸 뺏어가요 저는 가진 게 없어. 근데 놓고 잘 됐네.
딴 사람들도 다 놓는 거죠.

그거 잘 됐네.

차라리 오늘 저는 가진 것도 없는데 저는 오늘 먼저 갈래요.

안녕히 계세요.

저 주님 안 불렀으나 저는 오늘 먼저 가고 싶어요.'

인생이 어려워 이렇게 우시는 분도 계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반응이 정답입니까? 두 번째 반응이 정답입니까?
말하기가 어려워요. 여기까지가 헛됨의 몇 번째 의미요?
첫 번째 의미입니다.
목사님 그 첫 번째 들어보니까, 기독교회 교회뿐만 아니라 타 종교에서도 그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괜찮아요. 우리는 아직 몇 개 남았어요? 2개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헛됨의 두 번째 의미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의미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전도서 12장 말씀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먼저 121절 말씀 다 같이 읽어보면서 두 번째 의미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한번 읽어주시겠습니까? 121절 시작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너는 언제예요? 청년회 때.

누구를 기억하라?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셨습니다.
많이 들어본 표현 아니세요?

여러분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나서 교회에서 온갖 종류의 예배를 어렸을 때부터 다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딱 들으면 생각나는 그런 예배의 종류가 있어요.

12장에 청년회 때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은 특정 종류의 예배의 단골 설교 말씀으로 등장하는 경향이 있는 그런 말씀이세요? 어느 예배에 제일 많이 나왔을까요?
중고등부 헌신예배, 청년부 헌신 예배에 꼭 나이 많으신 목사님이 오셔서 이것들아 이렇게 하시면서 말씀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제가요. 그 예배를 여러 번 드렸는데요.

저 뒤에서 제가 어른들이 말씀을 예배를 어떻게 해드리는지 이렇게 막 봤어요.
근데 놀라운 사실을 제가 항상 발견하곤 했습니다.
사회자 분이 나오셔가지고 청년회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 라고 성경 봉독을 하는 순간 제가 진짜로 봤어요.
앞에 계신 40대 이상의 장년 성도님들이 귀가 딱 닫혀요.
진짜예요. 귀가 딱 다이 닫혀요.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은 내가 들을 설교가 아니라 애들 설교구나 이렇게 성격을 하시면서 애들 몇 명이나 왔나 보자.
청년부 몇 명이나 왔나 중고등부 누구 왔나 이렇게 하시면서 남 설교 듣듯이 예배를 드리는 거를 제가 뒤에서 이렇게 느끼곤 했습니다.
질문해볼게요.

여러분 청년회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이 말씀은요,102030대만 들어야 하는 말씀일까요?
다르게 표현해 볼까요? 여기서 청년의 때란 어떤 뜻일까요?
그리고 왜 주님은 청년들에게 창조주를 창조주를 창조주라는 표현을 왜 쓰셨을까요?
다른 좋은 표현 많잖아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구세주를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좋은 표현 많은데 하필이면 굳이 무슨 표현이요?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신 이유는 뭘까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디서 답을 찾을 수 있지요?

2절 이하의 여러 가지 구절들이 바로 이 1절에 대한 내용을 설명해 주시고요.
이것이 인생은 헛되다라는 것과 직결되는 그런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21절 다시 볼게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청년의 때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무슨 날이 이르기 전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이 언제라는 거예요?
청년회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청년회 때는 곤고한 날이 임하면 청년회 때가 끝나는 거예요.
곤고한 날은 또 언제냐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오면 그게 곤고한 날이고 그때 청년의 때가 끝난다는 거죠.
그러면 곤고한 날이란 어떤 날이냐 이것이 핵심인데 2절 이하에서 그 곤고한 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절 보니까요. 곤고한 날이란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는 날이다 하셨어요.
그러니까 빛이 사라지는 날인 거죠.

이 날은 두 가지로 대략 설명들이 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요. 빛이 없어진다는 것은 우주적 종말의 날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 다시 재림하셔가지고요. 모든 세상이 변화되는 날이다 의미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또 다른 두 번째 설명도 있습니다.

첫 번째가 우주적 종말을 가리킨다면 두 번째 견해는요.
이 공고한 날을 개인적 종말의 날로 이해를 합니다.
개인적 종말이 뭐죠? 내가 끝나는 날인 거잖아요.
어떤 날이죠? 내가 죽는 날 다시 말해서 내 육체가 죽는 장례식 날 죽음의 날로 이해를 하는 거죠.
저는 오늘 이 후자 쪽에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요. 3절 이하에 나타나는 추가적인 구절들이 육체의 노쇠 과정, 그러니까 육체의 죽음을 향해서 이렇게 쭉 가게 되는 노화 과정으로 이해할 수가 있어요.
3절 보니까 예를 들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 곤고한 날이 되면 가까워질수록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다.
뭐죠? 육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의 힘이 없어진다라는 얘기겠지요.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다.

뭐죠? 허리가 굽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교회 어른들 보시면 이렇게 허리가 굽으신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근데 요즘은 뭐 오메가3 이런 걸 많이 드시는지 모르겠어요.
허리가 다들 이렇게 꼿꼿하셔요.

육체 노화 과정 말하는 겁니다.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을 것이다. 이거는 뭐죠?
치아가 빠져가지고요.

씻기가 어려워진다라는 것이고요.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눈이 노쇠해가 노안이 오고 눈이 안 좋아져서 보기 어렵게 된다라는 말씀인 거지요.
이런 이야기들이 쭉 나오다가 5절 중반부에 가면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그래서 그날에는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무슨 날이죠? 장례식 날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지.
1절로 다시 돌아가 보면은요. 그러면 청년회 때는 곤고한 날이 오기 전인데 곤고한 날은 내 육체가 죽는 날인 것이므로 청년회 때는 어떤 범위를 가지고 있는 겁니까?
인생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우리는 이해할 수가 있는 거죠.
옆에 계신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청년이십니다.
인사하겠습니다.


안 믿어지시는가 봐요.

갑자기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는데요.
우리 인생 전체를 통해서 누구를 기억하라는 거죠?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시는 거죠.
왜 창조주라는 표현을 쓰셨을까요?

거기에 대한 답이 127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7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은 여전히 으로 돌아가고 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자 여기 보면요.
돌아가다라는 표현이 두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자 돌아가다라는 말이 오늘 나왔었는데요. 굉장히 중요하게 어디에 나왔었죠?
1장 첫 번째 헛됨에 첫 번째 의미할 때 만물들이 자기가 원래 있던 곳으로 자기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것은 순환하는 것이고 변한다?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다.

근데 사람은 돌아가는 거예요? 왔다가 가는 거예요?
왔다가 가는 것이므로 예배다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첫 번째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전도서 마지막 장인 결론부에서 하나님은 한 가지 진리의 말씀을 더 알려주십니다.
무엇일까요?
우리 인간도 돌아갈 곳이 있다.

우리도 나온 곳이 있어서 그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시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느냐? 내가 나온 것은 어디냐? 두 가지입니다.
상반절에 보니까 첫 번째 흙은 땅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흙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의 흙으로 우리 육신을 빚으셨다고 창세기에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죽으면 육신이 분해가 되어 땅으로 돌아가고 흙으로 분해된다라는 말씀인 거죠.
알겠어요.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하반절 보니까요.
뭡니까? 우리의 영은 우리의 영혼도 우리의 진짜 본질이죠.
나의 인격과 생명이 있는 나의 영혼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온 곳이 있다는 거죠.

어디입니까?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거예요.
여기서 주다라고 번역한 단어는 만들다 창조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내 영혼은 어디에게로 돌아가는 거죠?


나를 만드신 분께 나를 창조하신 분께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서 누구를 기억하라 말씀한 거죠?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신 것입니다.
헛됨의 두 번째 의미는 그러니까 이것이죠.

눈 감았다 뜨면 내 인생이 끝날 것인데요.
어디로 가느냐 눈 떠보면 누구 앞에 서 있는 거죠.

나를 창조하셔서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 앞에 내가 이렇게 서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날이요.

100만 년 있다 온다고요 아니면 눈 감았다 뜨면 온다고요 바로 온다.
바로 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라는 뜻이죠.

그러면 나를 만드신 창조주 앞에 내가 가서 서게 되면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일까요?
그 부분을 전도서 1214절 말씀이 이렇게 표현해 주고 계십니다.
마지막 읽을 성경 구절이 되겠습니다. 힘내셔서 읽습니다.
14절입니다. 시작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아멘. 거기 가면 어떻게 되느냐? 눈 감았다 떴어요.
주님 앞에 섰습니다.
그때 주님은 나의 모든 행동들과 은밀한 것까지 다른 사람을 모르는 내가 한 그 행동까지 나의 마음의 속의 동기들까지 다 드러내셔서 선악간에 평가하시고 심판하셔서 대가를 지불하게 하실 것이다.
이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진짜로 그거를 다 아신다고요?
이게 잘 와닿지 않지 않습니까?

옛날 분들은 이게 설명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한테는 참 설명하기가 쉬워진 것 같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 곳곳을 가보면요. 그렇죠 우리 대한민국이요.
나의 인생을 다 찍고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가는 데마다 뭐가 있어요?
CCTV와 카메라들이 있어가지고요. 자동차들에 달려 있는 다 우리를 찍고 있어요.
제가 여러분 사실 제가 죽어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게 아니기 때문에 이게 비유적으로 이렇게 설명을 한번 드려보려고 합니다.
마치 이런 종류와 비슷하겠죠. 눈 감았다 떴어요.
창조주 앞에 섰더니 그분께서 나를 심판하려 하십니다.

내가 한 모든 것들을 다 드러내시려는 거예요.

옆에 천사들이 쭉 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뭐 하려는 거죠?

틀려고 틀려고 있는 거죠. 얘들아 준비되었느냐? 주님 준비되었나이다. 틀어라 라고 하시면 그렇죠.
태어날 때부터 내 속 생각과 아무한테도 말하지 아니하였던 온갖 종류의 일들이 이제 쫙 화면과 영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앉아서 계속 감상하시렵니까?
저 같으면 주님 제가 죄인인 것을 인정합니다.

저는 지옥에 가기에 합당한 사람인 것을 고백합니다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올 것을 기억하고 그 날을 준비하며 오늘을 사십시오 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가르침인 거죠.
그런데 여러분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어떤 분들은 저한테 오셔서 이렇게 얘기하실 것 같습니다.
목사님 두 가지 다 들었는데 그중에 두 번째 거는 뺍시다.
그러실 것 같아요. 그냥 첫 번째 걸로 그걸 하고 끝내죠.

첫 번째, 그렇죠 죽으면 없어진다는 거잖아요.

한 많은 이 세상 그냥 내가 다 지고 없어질 터이니 그걸로 끝내시죠 이거는 하겠는데요.
근데 그걸 주님 앞에 가지고 가서 다 평가받는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럽고 그래서 이거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겁니까?
그건 못하겠소 라고 하실 것만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헛됨의 두 번째 의미입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몇 개 한다고요?

3개 한 가지가 더 남았습니다.


지금까지 들으시면요.

전도서란 인생에 관한 것인데 사실은 뭐에 관한 거죠?
죽음에 관한 메시지라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잘 살고 잘 죽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우리가 잘 죽을 준비를 하면서 인생을 보람 있게 진짜 사는 것입니까?
이에 대한 대답을 전도서가 주고 있는 것임을 알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이 죽음이라는 주제는 성경에서 그리고 우리가 믿는 복음에서 너무 중차대한 주제이기 때문에 전도서만으로 다 끝낼 수는 없어요.
그래서 세 번째 의미까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세 번째입니다.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의인은 있어요? 없어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하셨어요.
주님 앞에 우리의 인생을 놓고 서게 된다면 의롭다 평가받을 사람들이 우리 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떻게 돼야 되는 거죠? 

틀어라 하시면 모두 다 지옥 형벌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에요.
그러나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영혼 전부터 택정하시고 은혜 주시기로 주님께서 정하신 주의 백성들을 위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고 내가 심판받아야 하는 그 자리에 다른 한 분을 먼저 보내셨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나를 대신하여 내가 받아야 할 심판을 받으신 분이 계시다는 거예요.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이세요.
여러분 예수님 믿으십니까?
예수께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셔서 나의 죽음을 죽으시고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그렇다면요.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을 똑같이 믿으셔야 돼요.
왜냐하면 그 말이 그 말이고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눈 깜빡하니까 우리의 인생이 끝나서 주님 앞에 가서 섰어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틀어라 하셔서 들었어요.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심판으로 들어가야 하는 그때에 하나님 보자 우편에 계신 중보자 되시는 예수께서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이 사람은 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은 신자입니다.
제가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바로 이 사람을 대신하여 죽은 것입니다.
이 사람이 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었으므로 아버지여 이 사람은 성도입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딸입니다라고 말씀해 주실 것이고요.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만면에 가득한 웃음을 띠시면서 우리를 그 넉넉한 품에 이렇게 꽉 안아주시면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뭐라 하실 것 같으십니까?

이러실 거예요.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영어로 welcome home 하시면서 그 넉넉한 품에 이렇게 안아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헛됨의 세 번째 의미는 그래서 이것입니다.
인생이 짧은데요.

굉장히 짧은데요.

우리의 인생은 무엇이냐 이렇게 표현해볼게요.
고향집에 돌아가는 짧은 여행이다라는 거예요.

그렇죠 여러분 우리의 진짜 집이 어디입니까?
여기가 진짜 집이라고 생각하시면 큰일 나세요

우리의 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 거기가 우리가 나온 곳이고 진짜 우리의 집이에요.
아버지 우리 인생은 뭐냐?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킬 일이 있어서 잠깐 심부름을 보내신 것입니다.
얘야 너가 가서 섬겨야 할 교회가 있다.
얘야 너가 가서 사랑하고 붙잡아 주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잠깐 가서 내 일을 해주지 않겠니?

여행을 심부름을 보내신 거예요.
여러분 여행 가보셨지요? 여행 가시면 뭐 하세요?
특별히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못 가고 혼자 여행을 갔다 뭐 하시겠어요?
뭐 하긴요 선물 사죠?

그 사람 돌아가서 마음 전달하려고 선물 삽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요. 선물이 필요 없으신 분이세요.
왜냐하면 이 세상 것이 다 그분 것이고 그분이 다 만드셨거든요.
그분이 세상 최고 부자세요. 선물 필요 없으세요.

아니 그런데 그게 사람 마음이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왜죠? 돌아가면 주님께서 뛰어나오시면서 나를 그 품에 이렇게 안아주실 것이고,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나를 위해서 주셨고 지금도 성령을 보내시고 말씀과 기도와 모든 은혜를 주시면서 나를 인도해 가고 계신 그 아버지를 만날 생각을 하니까 말이죠.
선물을 조금이라도 선물을 준비하고 싶어진단 말이죠.
그래서 선물을 준비하기로 하는 거예요. 그 선물이 뭘까요?
무엇이긴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내 삶의 그 일들, 주님께서 맡겨주신 내 삶의 그 분야들 본분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주님께 하듯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지요.
내 손에 쥐어진 거 그거 내 거 아니라 하나님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주님 저 가서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님 위에서 열심히 살았어요.
이 말하고 싶어서 이 말하고 싶어서 하루하루 선물을 준비하는 거죠.
돌아가가지고요.

얘기하는 거예요.

아빠 저 왔어요.
아버지 저 왔어요 하고 선물 이렇게 고고고고 이렇게 드리는데 아버지 보시면서 하늘 아버지 보시면서 그러 그렇게 좋으셔서 입이 귀에 걸리셔가지고요.
그렇게 기뻐하시면서 영광으로 그 선물을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표현했죠.

'성도들이 면류관을 주께 드리더라'라고 표현한 거죠.
이렇게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요.결론이에요. 우리의 인생은요.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는 하루하루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하늘길 인생이다'라고 붙여보았어요.
우리는 여기가 집이 아니라, 하늘이 고향이고 하늘을 향해서 돌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고 계십니까?

이 첫 번째 의미 말씀드릴 때요.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말씀드렸죠.

그 두 가지 반응에 따라서 하나씩 권면 말씀드리고 오늘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첫 번째 반응 뭐였죠? 다 놓고 간다고요? 그러면 오늘부터 저는 누리면서 나누면서 아둥바둥하지 않고 즐겁게 살려고 합니다.
이런 반응이 있을 수 있다 했지 맞습니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거 즐겁게 사용하시고 누리면서 살아가세요.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맡겨주신 것 그것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고 쓰느냐가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께 드릴 나의 선물이 된다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 합당하게 주님과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는 방법으로 그것들을 사용하시면서 누리시면서 나누시면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요. 이런 반응이 있을 수 있을 거라 했지요.
목사님 저는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잘 됐어요. 그냥 오늘 먼저 가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혹시 한 분이라도 계시면 이렇게 권면드리고 싶습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인생 우리 여기서 오래 사는 것 같아도 사실은 짧습니다.
진짜 인생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어요.

진짜 인생은 그곳에 가서 시작이 될 것이고 거기서 어떻게 우리가 지내게 될 것인지를 지금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결정하는 겁니다.
지금 연습하고 준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복된 거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 기억하시면서 오늘 하루하루 다시 힘을 내어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시는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 다시 의지하실 수 있는 그런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늘길 인생입니다.

오늘부터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께 드릴 선물을 다시 준비하기 시작하는 그런 믿음의 결단을 하실 수 있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https://youtu.be/ocSs-xChVj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