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9 분당우리교회 주일설교
은혜에 대한 감사가 흐르게 하라
(고린도전서 15장 9-10절)
이찬수 목사
제가 가진 그 생활 철학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이제 내가 선택한 것 이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된다.
이게 제가 가진 굉장히 중요한 저 자신을 향한 지침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거죠. 제가 이제 제 아내를 선택해서 결혼을 했는데요.
저는 뭐 선을 엄청 많이 본 사람이기 때문에 제 아내 바로 앞에 그 여자분도 좋은 분이에요.
그리고 그 앞에 앞에 여자분도 생각하면 참 좋은 분이에요. 굉장히 좋은 여성이 많이 있었음에도 제가 제 아내를 저의 아내로 그렇게 제가 결정했기 때문에 저에게 어떤 책임이 주어지는가 하면은 내가 선택한 이 여성이 제 아내가 수많은 여성 중에 가장 잘된 선택이다.
이걸 제가 만들어내야 된다는 거죠. 뭐 이제 이런 거죠.
아 저희 교회가 이제 내년에 함께 일할 목사님들 청빙이 이제 다 끝났거든요.
그래서 제가 지난 주 중에 이분들을 다 좀 보자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제 11월 중순이니까 그러면서 이제 몇 가지 제가 말씀을 좀 이제 권면을 했는데요.
제일 먼저 한 이야기가 이겁니다.
교회 입장에서도 많은 좋은 교역자들이 이제 이력서를 제출해 줘서 선택할 폭이 굉장히 넓었지만
교회도 당신들을 어떤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이제 선택하게 됐고 거의 저는 이제 맨 마지막 빼고는 팀이 선택하도록 저는 관여를 잘 하지 않습니다. 잘 이제 기준을 가지고 선택했을 것이고 또 당신들 입장에서도 분당 우리 교회 한 군데만 지원했겠냐고 어떤 분은 또 그렇겠지만 또 배우고 싶은 좋은 교회가 한두 교회이겠냐고요.
근데 당신들이 최종적으로 분당 우리 교회를 선택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내년 이맘때에 당신들과 내가 해야 되는 숙제가 뭐냐 하면 내년 이맘때에 진짜 내가 이 교회 잘 선택했다. 이걸 만들어내야 될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분당 우리 교회가 객관적으로 우뚝 서 제일 좋은 교회라 하기 어렵습니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더 성숙해져야 되는 게 많이 있지만 서로가 노력을 해서 우리가 선택한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만들어내야 된다.
또 제 인생에서도요 전 가족 이민 가는 것까지는 제가 택한 거 아니에요. 막내니까 이민 가자 그럼 따라가는 거죠.
그랬는데 30살 되던 해에 제가 선택해서 한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34년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진짜 잘한 결정이라 생각해요. 그러면서 또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때 제가 이런 선택을 하지 않고 그냥 쭉 지금 미국에서 제가 그 슈퍼마켓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럼 그건 내 인생에서 그러면 그게 뭐 나쁜 길로 가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나 확실한 건요 제가 지금 슈퍼마켓 사장님이 돼가지고 사업을 한다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일한 게 더 좋은 결정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내 모든 것을 다 쏟았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뭘 말하는지 아시겠죠?
어떤 면에서는요 뭘 결정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내가 택한 것에 대하여 이게 잘된 결정이 되도록 계속 그것을 은혜를 구하면서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이런 이야기들을 제가 젊은 목사님들에게 많이 합니다.
청빙을 받아 담임 목사로 갈 수도 있고 자기가 개척을 해서 담임 목 가 될 수도 있고 여러 갈래가 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이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은 내가 가장 잘 결정한 선택이다.
이거는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는 겁니다.
분당 우리 교회를 선택하신 여러분은요 여러분이 택한 것이 정말 잘된 결정이 되도록 저도 노력을 하고 같이 노력해 나간다는 거거든요.
고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제가 꺼내보는 회복 탄력성이라는 책인데요.
이 한 부분을 제가 읽어드릴게요.
우리의 삶은 늘 크고 작은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 가지 도전과 어려움을 끊임없이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질병, 사고, 이혼, 파산, 가족의 죽음, 경제 위기, 자연재해, 전쟁의 위험 등 커다란 시련도 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사소한 갈등이나 작은 실수 혹은 짜증스러운 일 등 자잘한 어려움도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시련 중 하나다. 모든 일이 언제나 뜻대로 이루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사람이 아니라 신일 것이다.
이런 것들을 설명을 하면서 이제 뭘 덧붙이는가 하니까 시련과 역경이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걸 바라지 말고 우리가 상처를 받고 시련을 만나고 그래서 상처받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하고 하는데 그때 얼마나 잘 회복하느냐 이게 관건이다.
그래서 그 책에서 주장하는 게 회복 탄력성이에요.
어떤 사람은 한 번 자빠지면 끝이에요. 회복이 안 돼요.
어떤 사람은 오뚜기처럼 벌떡벌떡 일어나는 거죠.
넘어지면 또 일어나는 거죠.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하는 분이세요? 이 책에서 강조하는 굉장히 중요한 강조가 뭐냐 하면
사람이 이게 이제 몸은 운동을 많이 하면 근육이 생기잖아요.
헬스클럽에 가면 막 우리 젊은 남자들 부러워요. 막 이도 바뀌 삶도 바뀌 막 울퉁불퉁한 거 보면 진짜 부러워요.
이 밋밋한 저를 보면서 그거는 엄청난 노력을 해서 근육을 키웠는데 이 책이 주장하는 건 뭐냐 하면 우리 마음의 근육도 키울 수 있다는 거예요.
굉장히 심약하게 태어났지만 마음의 근육을 계속 키워나가면 마음의 근육도 2도 받건 3도 봤건 사실 여러분 중에는 아이 난 타고나기를 심략하게 타고났어.
이런 분 계시면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 인간이라는 존재가 심약하게 태어나는 거예요.
원래 유난히 조금 더 심약한 분이 있을지는 몰라도요.
저도 여러분도 다 심약한 사람들이에요. 마음의 근육을 얼마나 키워 나가느냐 이게 관건이거든요.
저는 항상 강조하잖아요. 예수 믿는다는 건요 천국 가는 티켓을 받는 게 아니에요.
이 티켓은 죽어야 쓰는데, 티켓은 그냥 장롱에 넣어놓고 그거 아닙니다.
신앙생활은요 그리고 교회 생활은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거예요.
주중에는 헬스클럽 가서 키우시고요. 몸의 근육을 주일날 혹은 수요일날 새벽에 주님 앞으로 나와서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거죠.
굉장히 여리고 심약한 10대 20대를 보낸 전인데요.
저는 자부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많이 받아서 어지간한 데는 상처 잘 안 받아요.
굉장히 강해졌어요. 그리고 넘어지면 벌떡벌떡 잘 일어나요.
며칠 가는 경우 거의 없습니다. 거의 자고 나면은 다 회복이 되거든요.
마음의 근육을 하나님이 키워주신 거란 말이죠.
이런 의미에서 저는 최근에 이제 우리 교회 어떤 권사님인데 이분도 이제 겉으로 보면 굉장히 여리고 여성스러워요.
마음도 소심하고 그런데요 깜짝 놀란 글을 제게 보내준 거예요.
저희 교회 초창기 때부터 순장님으로 수고하던 그런 권사님인데 이분이 식당을 이제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손님들을 많이 찾아오는데 막 체력이 이제 한계가 온 거예요.
너무 이제 이게 이제 일이 힘드셔가지고 그래서 이제 이거를 넘겨줄 사람이 있으면 이제 식당을 넘겨줘야 되겠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업소에 의뢰를 했더니 금방 이제 누가 이거를 이제 자기가 인수받겠다고 온 겁니다.
그래서 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치르고 그리고는 이제 마지막 잔금 받고 이제 넘겨줄 날만을 막 이제 해방이다.
그러면서 막 눈 빠지게 기다렸는데 그 과정에서 일이 덧나버린 거예요.
돈 줘야 되는 잔금 치르는 분이 돈을 못 구했다고 그러면서 그래서 이제 그 내용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너무 이제 일이 어긋나버려가지고 이분이 마음이 힘들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 새벽에 이제 편지를 이렇게 보낸 겁니다.
이 새벽에 잠도 오지 않고 목사님께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 소식을 전합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이제 너무 기뻐하는 이야기를 제게 하셨거든요.
이제 이 식당에 넘겨주게 됐다 그랬는데 이제 잘 안 됐다는 거죠.
목사님께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 소식을 전합니다.
가게를 넘겨주게 되어 감사하면서 주위 모든 분들과 함께 즐거워했는데 계약이 취소되었습니다.
잔금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잔금 치르는 날짜를 두 번이나 미루시더니 결국은 계약을 취소한다고 나타나지도 않고 통보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동산 중개업 잘못도 많은데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법대로 하라고만 하네요.
어떤 상황인지 아시겠죠? 엄청 낙심을 하는 상황이 온 겁니다.
그다음 한번 들어보세요. 다시 식당에서 손님을 위해 반찬하고 음식을 해야 하는데 집기 일부를 정리해 버렸고 다시 구입하여 식당을 운영해야 하는데 의욕도 열정도 생기지 않고 이미 마음이 떠난 곳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연자실하고 낙심하여 가슴 아리하고 있는 저에게 주님은 주일 말씀으로 그러면서 이제 최근에 했던 설교를 막 요약을 해서 제게 보내준 겁니다. 주님은 주일 말씀으로 따옴표 해가지고 다시 회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 또 따옴표 해가지고 내가 실패를 실패시켰다. 또 따옴표 해가지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 등등 하나님은 저희 곁에서 떠나시지 않으시고 늘 지켜보고 계 심 눈물과 함께 말씀의 은혜로 이 모든 과정도 주님의 뜻이 있음을 알기에 다시 용기와 힘을 내어 마음을 추스리고 있습니다.
그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 다짐하고 나아가자 했는데 온 몸 마디마디가 아파오면서 감기, 몸살로 일주일 내내 아팠습니다. 몸이 아파 누워 있는데 어찌나 감사 고백이 나오는지요. 그러면서요 이게 그냥 온 마디마디가 다 아픈 이거 이게 너무 신경 써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렇게 누워 있으면서 이 가슴 아픈 과정에서 자기가 감사할 게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한 거예요. 그 감사를 이렇게 막 표현합니다. 그래도 한 달 동안은 쉼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사하고 짐 정리를 못했는데 집 짐 정리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고, 가게 부엌도 정리되어 좀 더 청결한 가운데 음식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하고 그리고 메인 전기 구이 기구가 빠지지 않았다는 것 등등 감사한 것이 너무 많더군요.
목사님 주님은 분명히 더 좋은 길로 회복시키실 분이심을 잘 알기에 기도하면서 힘을 내어 나아가려고 합니다.
마음이 무너져가지고 일주일 내내 막 고열에 근육통에 그렇게 시달렸는데 저는 이 권사님의 여린 마음에 이 회복 탄력성이 너무 놀라운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 이것을 그냥 무너지지 않으려고 저도 미국에서 조그마한 비즈니스를 해봤기 때문에요.
이제 막 힘들고 어려워서 이 마음이 떠났는데 그래서 누가 이거를 이제 인수해 가기로 했는데 이게 잘 안 돼가지고 다시 출근해야 된다는 걸 상상만 해도 힘들어요. 이게 이제 이분이 이제 오뚜기 같이 넘어졌지만 벌떡벌떡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파서 그냥 마음이 무너지고 몸이 무너지고 드러누워 있는 일주일 동안 그 상황에서 감사할 제목들을 여러 가지를 찾아내는 거 이거 놀랍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아까 그 책에서 말하는 이 마음의 근육은 훈련에 의해서 키울 수 있다는 거예요. 매 예배가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의 장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않으셔야 됩니다.
저는요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의 이 고백 하나가 어마어마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9절, 10절에서의 바울의 고백 유명한 고백입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한 바퀴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오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제가 이 말씀을 한 주일 묵상을 하는데요 그 회복 탄력성에 나오는 이론 하나가 제가 확 떠오르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 심리학자 다니엘 케니만 교수가 주장한 이론인데요.
이 교수가 뭘 주장하는가 하니까 인간에게는 두 가지 자아가 공존한대요.
첫 번째 자아는 '경험자아'예요. 그리고 두 번째 자아는 '기억자아' 예요.
이 '경험자아'는 한마디로 말하면 현재 내가 경험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자아입니다.
그게 희노애락하게 살아있을 때 건강한 자아가 어떻게 활동합니까?
막 예배드리다가 너무너무 감격이 되면 어떤 분들은 막 눈물을 훔치세요.
그 여성이 훨씬 많이 우세요. 우리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이런 부분에 발달이 돼 있는 거죠.
또 슬픔도 여성들이 또 굉장히 많이 느끼잖아요.
이게 '경험자아'에서 나오는 거예요. 제가 오늘 설교를 좀 이제 길게 하면 마음에서 지루하다 이게 이제 '경험 자아'예요.
지루함을 느끼는 게 그 건강한 거예요. 난 지루한 걸 못 느꼈는데 그 문제가 있는 분이에요.
이게 '경험 자아'예요. 이게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근데 '기억자아' 는 뭐냐 하면은 지나간 경험을 회상하고 평가하는 자아랍니다.
그러니까 이 경험 자아가 실제로 자기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이 '기억자아' 는 자기가 경험한 그 사건에 대하여 의미부여를 해주는 자아예요.
그리고 중요한 건요 이 '기억자아' 는 그 지난 일에 대한 회상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어가는 거래요.
그래서 오늘 이제 설교를 들으셨잖아요. 그러면 이제 내일 회사에 가셔서 어제 내가 그 교회 갔더니 내 지루해 죽는 줄 알았어 내가 말도 못하고 내가 너무 힘들었어 이러면서 '기억자아' 를 표현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속상하는 일이 있을 때 그때 내가 왜 속상했는가 하면 그러면서 이제 친정 엄마한테 가서 말씀을 드리는 게 이게 '기억자아' 가 하는 일이래요.
건강한 '기억자아'가 많은 사람은요 그래서 그 어떤 일을 겪었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가 겪은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이게 더 중요하다는 거죠.
아까 그 권사님이 너무너무 지금 속상해요. 잔금만 치르면 되는데 이제 여기 원점으로 돌아가가지고 어떤 치킨은 다 막 팔고 했는데 없는데 이 도장만 해야 되고 하는 이런 경험이 있는데 우리 권사님이 안간힘을 쓰시는 건 뭐죠?
여기에 그래도 건강한 의미부여를 하려고 애쓰는 게 이게 기억 자아라는 거예요.
그걸 이제 말로 표현하는 게 스토리텔링이래. 제게 편지로 보내줬잖아요.
이런 관점으로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의 고백을 분석할 수 있다는 거죠.
사도 바울이 지금 자기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던 그 사건을 지금 이제 감격으로 고백을 하는 거거든요.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잔인데 난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에 주님 만날 자격이 없는 인간인데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은혜를 주셨다. 그래서 나의 나된것 여기서 나의 나된것 할 때 나는 과거의 나 아닙니까?
주님을 핍박하던 나.
근데 뒤에 나오는 나는 현재 자격 없는 나에게 주신 하나님 은혜를 누리는 나 아닙니까?
여러분 과거의 나하고 현재의 나가 다를 바 없는 거는 그거는 참 불행한 인간이에요.
과거에 나 난 자격이 없었는데 난 굉장히 나 스스로를 엉덩이로 몰고 갔는데 지금의 나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감격으로 기억 자를 지 되살리고 있는데요.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런 기억자를 감격으로 묻어서 고백하는 내용이 여러 번 반복되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제가 23살 때 미국 가서 밑바닥을 헤매고 우울하고 죽고 싶었고 어디서 어쨌고 이거는요 우리 교회 한 3년만 내면 다 꿰요.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해가지고 그래서 이제 23살 그러면 이제 그다음 이 이야기하겠구나 그럴 거예요.
놀라운 건요 강단에서만 아니라 단 아래서 만나는 사람은 또 해요.
우리 교역자들은 이거 스토리 어느 동네인지 다 알아요.
난 이랬다 난 이랬다. 이거는요 그 듣는 분을 위한 간증도 되지만 이건 저의 기억 자아예요.
제가 교만이 찾아오잖아요. 내가 그래도 목회 이 정도 잘했지 이런 생각이 들어오면 기억자 니가 어땠는지 기억 안 나 니가 도대체 너 밥버릇이어서 밥버릇이 너 그때 너 막 죽으려고 그랬잖아.
너 같은 걸 누가 은혜를 줬냐고 그래서 제가 계속 이야기하거든요.
사도 바울이 난 자격이 없는 인간이라고 난 만삭되지 못한 인간이라고 계속 자기를 드러내는 거는
원리는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감히 사도바울하고 견주면 그게 어불성설이지만 원리는 비슷한 걸 느껴요.
사도바울도 엄청나게 시련이 많고 사도 바울도 사망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그랬지만 잘 쌓이지 않고 금방 넘어졌는데 금방 일어나고 원리에 있어서는 저도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 제가 막 어떨 때 조금 마음이 좀 힘들어 보이고 우울했는데 그게 2주 3주 가는 경우는 별로 없었을 거예요.
이게 회복 탄력성이거든요. 이 비결이 뭐라고요? 기억 자아예요.
내 가장 밑바닥의 순간을 끊임없이 저는 드러내요.
그리고 그게 스토리텔링이라고 그랬잖아요. 자꾸 표현하는 거죠.
계속 이걸 드러내는 거 이게 굉장히 이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내는 걸 느끼는 겁니다.
제 스스로는 참 어릴 때 보면은 유약하고 소심하고 그런 성격이었는데 또 그런 면이 갑자기 제가 막 그냥 막 골리앗처럼 거대해진 건 아니지만 많은 변화를 느껴요.
굉장히 유연해지고 어지간하면 상처 안 받고 뭐라고 악플을 보고도 아이고 우리 찬수 씨도 고생하네 객관화시켜가지고 넘어가버리고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마음의 근육을 주님이 세워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사도바울에게서 배우는 게 이게 바로 '기억자아'거든요.
제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 경험자를 어떤 기억자에 담아서 분석하고 계세요?
부부 여러분이 만들어내는 그 과거에 경험한 경험자를 기억 자아로 되살려 어떤 걸 주로 드러내세요?
상당히 많은 분들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요.
당신하고 신혼여행 갔을 때 기억 안 나요? 당신 그때 집에 안 들어온 거 결혼 35주년에 또 그 얘기에요.
그때 당신 나 그때 그 힘들게 한 거 기억 안 나요? 제 아내가 결혼하고 꽤 오랫동안 기억 자아를 떠올린 게 배 사건이에요.
첫애를 임신하고 겨울에 배가 먹고 싶다고 나가서 배 하나 사달라고 슈퍼마켓에 가서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목사 부인이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살 수 없어. 그래서 참는 것도 훈련이야
솔직히 말해서 귀찮아서 그랬거든요. 압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지금 이 분노에 찬 눈빛과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요.
그래서 제가 그런 정말 정말 제가 엄청난 짓을 저질렀죠.
그랬더니요 첫 애가 초등학교 갈 때까지 겨울만 되면 배를 보면 그게 또 나와요.
당신이 저대로 임신했을 때 내가 배 먹고 싶다 그랬을 때 목사 부인이 다 어떻게 먹고 사느냐 참아야 된다 그랬다고 애가 좀 크니까 애한테 얘기해.
니 아빠가 어땠는지 아니? 너 임신했을 때 배가 먹고 싶다 그랬을 때 참으라 그랬던 분이에요.
이분이 그랬는데요. 제 아내가 은혜를 받았어요.
어느 순간에 배 이야기 안 해요. 사과 얘기를 자꾸 해요.
니 아빠가 사과를 사다 주셨을 때 감을 사다 주셨을 때 니 아빠가 얼마나 좋은 분인지 아니?
'기억자아' 가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거예요.
저는 갈수록 진짜 난 결혼 잘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기억자아' 예요.
23:07
여러분 그 배 안 사준 것도 저고요 천인공로할 짓을 한 것도 저고요.
또 제 아내를 위하여 여러 가지 심부름을 또 열심히 잘한 것도 많아요.
근데 뭘 끄집어내느냐가 그 관계를 규정하는 거란 말이죠.
물론 애당초 결혼을 잘못해서 아주 이쪽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그런 가슴 아픈 케이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저희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요 내가 '기억자아' 를 건강하게 떠올리면 가정이 회복이 되는 거 그걸 저는 경험하고 있거든요. 이게 '기억자아' 예요.
내년에 분당 우리 교회는요 제가 이제 이 소그룹 모임인 다락방을 살리는데 1차로 모든 걸 걸 거예요.
그리고 저는 꿈꿉니다.
내년에 분당 우리 다락방 소그룹에 거의 대부분의 분들이 참여할 수 있기를 지금 기도하면서
지금 묘안을 찾아내고 있거든요.
저는 이 꿈을 꾸어요.
분당 우리 교회 소그룹 한 7분 8분 순장님과 수녀님들이 모여가지고 소그룹을 구성하는데 매 금요일마다 매 토요일마다
이제 이 주일 오후반도 만들 생각이에요. 직장인들을 위해서.
그래서 모이면 한 주간의 상한 마음들이 다 거기서 치료가 되기 위해서 이 건강한 기억자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를 눈물로 고백하는 그런 아름다운 소그룹이 만들어지기를 저는 원합니다.
여러분 가정 안에서 이 기억 자아를 여러 원리를 기억하시고 자격 없는 나 그래서 저는 주례 부탁하러 오는 젊은 예비 부부에게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가정이 뭔지 아시느냐고. 가정은 상대방에 대한 감사로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세월이 가면서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발전하는 게 가정이다.
제가 제 아내가 아니었으면 결혼을 엄청 늦게 했는데 제가 여러분 끔찍하잖아요.
여러분의 담임 목사가 지금 노총각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저 이찬수 장가 보내야 되는데 그러면 막 은혜도 못 받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왜 이렇게 고마운 제 아내가 뭐가 씌워가지고 7살이나 많은 이런 노총각을 선택해 그것도
그것도 목사를 선택해줘가지고 이렇게 지금 사역을 하게 되는 게 그래서 감사로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맨날 여러분 감사절마다 했던 거 기억나시죠?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과일이 감이에요.
성경에 보면 우리 하나님께 감사드리세 감사드리세 이거 다 까먹으셨어요.
다 했는데 옛날에 성경 보세요. 감사드리자고 막 계속 배 사드릴 적 없어요.
우리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감사드리세요 감사드리세.
두 번 반복해도 안 웃으면 이거 실패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 그 이 본문 말씀을 가지고 이제 숙제 두 가지 실천 사항 두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하나는 오늘 말씀드리고요. 또 하나는 다음 주에 말씀 불량이 좀 많아서 다음 주에 이제 두 번째 건 드릴 텐데요.
첫 번째 실천 사항이 이겁니다. 내 마음에 은혜에 대한 감사가 흐르게 하라.
은혜의 감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예요. 9절 10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한 바위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게
이 바울의 감격이 막 느껴지지 않으세요? 자격 없는 나에게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 이게 막 성경에 여러 차례 반복이 되는 표현이에요.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도 똑같이 나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니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다음 보세요. 이 감격을요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바울의 내면에감사가 끊어지지 않는 거예요. 항상 감사한 거예요.
이 자격 없는 자 그랬더니 막 두들겨 맞아도 상처를 안 받아요.
억울해 감옥에 처박혔는데 그날 밤에 막 찬양을 드리는 이게 바울이에요.
은혜의 감격이 끊이지 않도록 하는 이것 그래서 여러분 이것도 추수 감사실 때마다 제가 한 세 번 네 번 드렸는데요.
화면으로 감사를 제가 좀 띄워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감사가요 느낄 감사해야 할 사 이게 감사예요.
그런데 사례할 사 그 풀이를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사례할 사는요 앞에 말씀 은이 나와요.
말씀은 쏘사예요. 뭐가 사냐 감사할 때 사 말씀을 여러분 올림픽 할 때 양궁 화를 쏘잖아요.
감사 말을 쏘는 거예요. 뭘 쏘는 거예요? 여보 고마워요.
잘 들어보셔야 돼.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요 거의 내가 볼 때 좀 내성적이에요.
그래서 이제 이렇게 백화점 들어가다가 문을 이렇게 받쳐주면 감사합니다.
열에 한 7 8명 안 해요.
그냥 쓱 가요. 처음에는 되게 그게 좀 괘씸했는데요.
그게 내성적이라 그래 집에 가서 반드시 할 거예요.
어떤 아저씨가 문 잡아줘서 내 참 고마웠어. 이게 우리나라분들이 갖는 내성적인 거거든요.
그래서 감사가 안 돼요. 맨날 우리 감감감감감감 이러고 살잖아요.
사가 안 나와요. 사가 뭐예요 쏘우는 것까지가 사라니까요.
그래서 목사님 정말 감사해요. 이게 감사해요. 속으로 감사했잖아요.
그거를 느낀 것뿐이에요. 감감감감감감 그다음 말을 하시라고요.
사 말씀은 말씀에 쏠 사자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다 여러분 마음에서 감격이 되잖아요.
그러면 사도바울처럼 표현하는 겁니다. 어디 가서 다락방에서 직장에서 부부 간에 저는 저와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 감격이 끊이지 않고 계속 흘러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표현되어지는 다락방에서 소그룹에서 서로 만날 때 참 하나님에게 너무 감사한 분이에요.
하나님 참 고마운 분이에요. 이게 기억 자를 강화시킨다는 거죠.
최근에 제가 이제 이 설교 준비하면서 꺼내든 책 중에 감사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이 책 표지 맨 위에 그 책 주제를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해놓습니다.
삶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 연습하기 삶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 연습하기 그러면서 거기에 찬송가 429장을 이제 거기다 이제 예시로 하나 들어놓도록 저도 이제 감사절이 다가오면 이 찬양을 자주 떠올리는데 이 찬양 다 아실 겁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는 건 잘 될 때만이 아니에요. 마음이 무너질 때 아까 그 권사님 이야기 또 하게 되네요.
의도한 대로 잘 안 돼가지고 그것이 신경 쓴 게 몸으로 나타나가지고 막 드러누워 일주일을 보내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서도 받은 복을 세보는 거죠.
그래도 이사하고 막 손님들이 많이 와가지고 집 정리도 못했는데 이거 한 달 동안 집 싹 잘 치우게 됐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푹 쉬게 됐네. 하나님 감사합니다.
받은 복을 새 보는 거예요. 언제? 일이 안 풀릴 때 마음이 아플 때 실패했을 때 자빠져 넘어졌을 때 이게 아까 말씀드린 회복 탄력성이 회복 탄력성 벌떡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원천은 받은 복을 세워보는 거예요.
두 번째는 이제 제목 말씀드리고 그다음 주일날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이제 첫 번째가 감사가 감격이 내 안에 흐르는 거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거라면 두 번째는 그 감격의 힘으로 받은 만큼 베풀라는 거예요. 고여주면 다 상해요. 흘려보내야 된다. 이걸 이제 다음 주일날 제가 말씀을 드리려고 하고 이제 결론을 저는 한 가지만 더 살펴보고 맺기 원하는데요.
이 사도 바울이 이렇게 본문 9절 10절에서 큰 감격을 토로하는데 그 출발이 어디서 됐느냐 그게 8절이에요.
8절 3절부터 제가 한번 그 흐름을 읽어드릴게요. 3절부터 보십시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 고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이제 쟁쟁한 분들이 다 나와요.
게바에게 보이시고 베드로입니다. 그 후에 12 제자에게 와 그 후에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와.
그리고 8절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거예요.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이게 사도바울의 감격이에요. 그리고 이게 사도바울의 겸손이에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난 자격이 있다 이거예요.
내 아내를 보면서 아이고 나 같은 남자 만나는 게 이게 뭐 이 여자 복 터졌지 뭐 그게 가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에요.
말씀드렸잖아요. 가정의 첫 출발은 상대방에 대한 감사예요.
이 자격도 없는 나 같은 걸 택해준 그 고마움 그리고 그 상대방에 대하여 시간이 갈수록 불쌍한 마음이 드는 거죠.
제 아내를 봐도 참 안쓰러워요. 그렇게 저하고 7살 차이가 나고 20대 중반에 만났는데 이제 이 나이가 이렇게 들어가면서 체력도 약해지고 막 이러니까 너무 안쓰러워요.
그게 가정이에요. 항상 우리 안에 이 회복 탄력성은 겸손에서 나와요.
만삭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격 없는 내게도 주님이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셨다.
임하셨다. 결론은 제가 이 말씀 읽어드리는 것으로 하고 마치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어떤 예수님입니까?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요.
날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 십자가 자격도 없는 나 같은 거 그 구원을 위하여 주님이 대가지불을 치르신 그 십자가 십자가를 묵상하면
첫째 겸손해져요.
둘째 이런 나 같은 것 위하여 치르신 대가 지불을 통해 내 자존감이 높아져요.
내가 시시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이번 한 주 내내 여러분 안에 감사가 흘러넘치기를 원하는데요.
위로 위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꾸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그 하나님이 주신 만남의 축복 여러분 고마운 분들을 떠올리고 전화하세요 편지 보내세요 감사를 표현하세요.
말씀은 쏠사예요. 선생님 참 감사했습니다. 순장님 생각해 보면 그때 나 지도해 주신 순장님 너무너무 고마워요.
이게 우리 안에 기억 자아를 강화시켜줘서 오뚜기처럼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일어나는 회복 탄력성을 가져다 주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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