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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Lecture/Sermon

김동호목사 인생 설교 - 1/4

by 마이코 2023. 8. 15.

 


강사: 김동호 목사

장소: 라스베가스 은혜와사랑의교회
일시: 2017년 4월 23일 (주일)
제목: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1~5)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우리반주하는, 고영민 이모부에요.
여기 와서 살면서 한번 이모 한번 놀러 오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제가 이번에 그랜드캐니언 여행할 길이 있어서 왔다가, 
사실은 우리 조카 집에서 좀 쉬려고 놀려고 왔다가 또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겁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게 이제 하나님의 소원을 얘기하는데,
성경 어디를 읽어봐도, 하나님이 하나님 생각하는 걸 볼 수 없어요.
하나님은 밤낮 우리만 생각하세요.
"너희들이 기뻐야 내가 기쁘지 너희들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해."
그걸 보면 항상 기뻐해라. '그게 내 뜻이다'라는 말씀 하나를 봐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우리의 소원도 '행복하게 잘 사는 겁니다.'
잘 살려고 공부하고, 잘 살려고 돈 벌고, 또 잘 살려고 예수 믿고, 여러분은 잘 살아보시려고 미국까지 오셨죠?
예, 그렇게 노력하고 사는 건 굉장히 긍정적이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문제는 그래서 행복하냐?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라스베가스까지 오셨는데 여기까지 오실 때는 뭔가 단단한 각오를 가지고 오신 것인데, 그래서 행복하시지요?
이게 여기 온 게 잘못된 건 아닌데, 여기 온 건 도리어 잘한 일인데, 여기까지 온 건 잘한 일인데,
그래서 과연 사람들이 행복하냐? 하는 것이에요.
사람이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근데 왜 그럴까? 한번 이유를 생각했어요.

여러분 그 이유는,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오해와 착각 때문이에요.
착각은 굉장히 중요한 건데요. 여러분 이게 잘 사는 것인데, 이게 잘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면 끝난 거예요.
그러면 잘 살기 위해서 이 사람은 이리로 가거든요. 근데 이리로 가도 실패하고 못 가도 실패해요.
왜? 이 방향이 틀렸으니까.
저희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집을 갔다 오더니 호들갑을 떨었어요. '아빠, 아빠 친구 집 갔다 왔는데 되게 잘 살아요.' ‘되‘자에다 힘을 많이 줬어요. 왜 그러냐? 그랬더니 '자가용 두 대야, 집에 풀장 있어. 텔레비전 카메라로 도둑 경비해' 뭐 이런 소리를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굉장히 중요한 걸 깨달았어요.
얘가 말을 잘 못하고 있다. 단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
여러분 말이 참 중요해요. '말이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이 삶을 지배'하거든요.
잘 산다는 말처럼 중요한 말이 어딨겠어요? 다 그러려고 사는 건데 근데 잘 산다는 말을 착각하면 잘 살 수 없는 거거든요.

자가용 두 대 집에 풀장 있는 건 좋은 일인데, 그거는 그래도 말은 이렇게 얘기해야 돼요.
’되게 부자예요‘라고 얘기했으면 정확히 맞아요. 근데 우리 아이는 부자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어요. ’잘 살아요‘라고 얘기했어요. 우리가 그렇게 가르쳤어요.
우리가 늘 그렇게 말하고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살아요.
그런데 돈이 많은 건 부자지, 잘 사는 게 아니에요.

돈 없는 사람을 우리는 ’못 사는 사람‘이라고 얘기해요. 사실, 그 엄청 틀린 말이에요.
여러분 그 '말이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이 삶을 지배'하기 때문에 자꾸 어긋나거든요.
저 이 설교 참 엄청나게 많이 하고 다니고, 교인들에게 우리 교인들에겐 자주 얘기하는데도요, 설교 들을 때뿐이죠.
또 나가서 얘기하면 금방 못 사는 사람, 못 사는 나라, 그 사람 잘 살아, 뭐 이 얘기 아무 생각 없이 하는데, 이게 굉장히 이게 중병에 걸린 사람 같아요. 중독된 것 같아요. 여러분 돈 없는 건 ’가난한 것‘이지 ’못 사는 건‘ 아니에요.
근데 우리는 돈이 많은 걸 잘 사는 사람이라고, 없는 걸 못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에
그다음에는 돈이 우리를 잘 살고 못 살게 하는 거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요.
아주 믿음을 가지고 살아요. 그러니까 잘 살려면 돈 벌어야 돼요.
돈 없으면 못 사는 거니까, 여러분 돈 좋으세요? 싫으세요? 아, 정직하게 대답해요.
돈 좋으세요? 싫으세요? 좋지.
저는, 목사들 돈 좋아하게요? 싫어하게요? '되게 좋아해요'. 여러분 돈이 좋지 왜 나쁘겠어요?
’돈이 나쁘다‘ 난 그것도 옳은 말이라 생각 안 해요. 여러분 이왕이면 가난하게 사는 게 좋아요? 부자로 사는 게 좋아요?
난 부자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해. 뭐 가난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데 돈이 좋아요. 그건 인정해요.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돈이 뜻밖에 우리를 행복하게 잘 살게 못한다는 걸 사람들은 깊이 몰라요.

왜? 그렇게 좋은 돈이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잘 살게 못하게 하나? 그 이유를 생각해 봤어요.
그게 ’복음‘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복음 중에 복음은 간단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근데 사랑이 뭔지 아세요? 사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사랑하면 사랑받는 대상이 존귀해져요.'

2005년 1월달인데 우리 큰아들이 전화를 했어요. 제가 독일 집회 가려고 인천공항을 나갔는데 전화를 했어요.
웬일이냐? 그랬더니 '축하드립니다'. 그래요 왜? 그러냐 그랬더니, '올해 할아버지가 되시겠습니다.'
제가 2005년도에 할아버지가 됐어요. 벌써 제가 무녀동남 외아들로 커서요, 굉장히 아이들 좋아하고, 개 고양이 동물 좋아하고, 그러는데 손주가 생긴다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집회를 다녀왔더니, 우리 아이가 그때 공군 장교 생활에서 계룡대라는 데 살았는데, 우리 집까지 오려면 차 빨리 몰아도 세 시간 세 시간 반 걸리는 거린데, 그 초음파 사진 찍은 걸 들고 보여주겠다고 올라왔어요.
 
보니까 초음파 사진 보니까 우리 며느리 뱃속에 뭐 이렇게 벌거지처럼 꼬부라진 그만한 거 하나 여기 계셨어요.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 있나? 뭐 얼굴을 알 수 있나? 아무것도 몰라요. 다만 내 피붙이가 생겼다는 것뿐이었어요.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그러다가 제가 교회 홈페이지에다 글을 썼어요.
그 키를 쟀는데 2.8cm였어요. 우리 손녀딸이었는데 손녀 딸과의 첫 만남은 걔가 2.8cm 생명이었을 때였어요.
지금은 13살 됐는데 계집애가 1m 65cm가 넘어요.
이게 얼마까지 크는지 걱정이에요. 이제 굉장히 커서 축구 선수하고 그래요. 학교에서.
 
‘우주보다 더 크고 귀한 2.8cm’ 그게 글 제목이에요. 맞죠?
2.8cm가 저한테는 우주보다 더 크죠? 더 귀하죠? 그게 사랑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귀하게 만드셨을까요? 하찮게 만드셨을까요? 
얼마나 귀하게 만드셨을까요? 
천하보다 귀하다’ 그러셨어요.

‘사람이 온 천하을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 네가 더 큰데.
이건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에요.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천하를 다 얻어도 사람은 행복할 수 없게 됐어요.
행복은 ‘만족’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어요.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얘기했어요.
그게 ‘만족’이거든요. 그게 ‘행복’을 얘기한 거거든요.
여기 물이 이 만큼 담겨져 있는데 이건 만족한 상태예요? 불만족한 상태예요?
이건 불만이에요. 요만큼 안 찼잖아요. 이만큼 안 찬 상태거든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천하보다 크게 만드셨어요.
이걸 천하로 해보세요. 다 얻을 수 없지만 다 얻어서 여기다 넣으면 찰까요? 안 찰까요?
'못 차요.' 이게 더 크니까 천하보다 내가 더 크니까 안 채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 가면, 반드시 불만을 느끼게 돼요. 안 채워지니까, 채워지지 않으니까.
 
저는 비교적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저희 아버지 학교 수위 하셨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계산하고 따지는 거 좋아했어요.
우리 아버지 월급이면 쌀 몇 가마 사나 계산했더니, '한 가마 반' 샀어요.
선생님들은 몇 가마 사나? 했더니 '세 가마' 샀어요.
선생님들 월급의 꼭 절반이 우리 아버지 월급이었는데, 
여러분 여기서 사시니까 지금 한국에 쌀 한 가마 얼마인지 모르시죠? 
기껏 잡아줘야 사실 15만 원 20만 원 채 안 돼요. 20만 원은 안 돼요. 
한 가마에 80kg에 그러면 20만원을 잡아줘도 한 가마 반 이라면은 요즘 화폐 가치로 얼마라는 거예요? 30만 원.
여러분, 30만 원 갖고 한국에서 세 식구 살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살 수 있어요? 없어요?
왜 못 살아요? 못 살면 내가 여기 어떻게 있어요? 
그것 밖에 우리 돈 없었는데, 살아서 제가 여기까지 지금 있잖아요.
 
하여간 밥 먹고 살았죠. 겨우 밥 먹고 살았죠. 
그랬는데 우리 어머니가 저축을 했어요. 
그 쥐꼬리 많은 돈을 떼서 저축하고, 아끼고, 저축하고, 저축하고, 저축해서 
65년도에 집을 샀어요. 저는 ‘세계 8대 불가사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뭐 계산이 안 되고 하여 불가사이한 일이었어요. 근데 하여간 집을 산 건 사실이에요. 
중학교 15살밖에 안 됐을 땐데, 그날 밤 잠을 못 잤어요. 
너무 벅차서, 좋아서, 방바닥도 만져보고, 바람벽도 만져보고 그러다가 그날 그 생각했어요. 
평생 셋방살이 하다가, 자기 집 사서 이사한 날, 첫날부터 쿨쿨 자는 건 사람도 아니다. 그게 곰이지 사람이랴?
여러분 정직하게 대답하세요. 돈이 주는 만족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애가 잠을 못 잤는데, 여러분 애를 잠 못 들게 할 만큼 좋은 게 세상에 뭐 몇 개나 되겠어요?

그게 돈의 매력이고, 매력을 넘어선 마력이에요. 그러니까 온 사람들이 다 돈을 좋아하죠.
그런데 그 돈의 한계를 사람들은 잘 몰라요. 그렇게 좋은 돈이 저를 며칠이나 못 자게 했을까요?  
'하루죠' 이틀 못 자는 사람들이 있어요. '예민한 사람' 
사흘 못 자는 사람도 있어요. '아주 예민한 사람' 일주일 못 자는 사람도 있어요. '미친 사람' 
그건 너무 좋아서 미친 거예요. 
제 정신으로는 일주일 안 가요. 일주일쯤 가면 슬슬 잊어버리기 시작해요.
그러곤, 그저 그렇고 그렇지 뭐, 그게? 그러다가 1년 지나면,
왜 이렇게 조금해? 왜 이렇게 너절해? 왜 이렇게 초라해? 하고 불만이 생기는 거예요. 
이유가 '복음' 때문이라니까요. 내가 집보다 커요. 나는 집이 큰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런 집만 있으면 평생 행복할 줄 알았어요. 근데 그렇지 않아요.
 
저는 82년부터 자가용을 탔어요. 82년도에 목사들, 자가용 타기는 쉽지 않았어요. 
제가 영락교회 부목사로 갔는데, 영락교회가 자가용을 한 대씩 줬어요. 그건 교회가 참 지혜로웠어요. 
워낙 교회가 커서요. 심방할 집이 너무 많은 거예요. 버스 타고 택시 타고는 소화할 수가 없어요. 
그때는 한국에 서울에 차가 없어서요. 자가용만 있으면 끝에서 끝에 30분이면 가는 거예요. 
길바닥에 차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자가용이 있으면 하루에 20가정까지 심방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차 한 대 사주고 아니 되게 부려먹는 거예요. 교회가.
 
그래도, 우리는 또 차 준 김에 기분 좋아가지고 그냥 막 돌아다니고 그랬죠.
그런데 제가 제일 막내 목사였어요. 새차 받았께요? 고물딱지 차 받았께요? 
당연히 '고물딱지' 차 받았어요. 얼마나 고물을 받았나 잊을 수 없어요. '포니원7540 비 새는 차'. 
차가 비가 샜어요. 이게 구멍이 뚫려서 되는 게 아니에요. 차가 삭아서 스며들어서 바닥에 고여요. 
비가 많이 오면 그래서 비를 맞지는 않아요. 이렇게 물이 고여요. 
그러면 여러분 진짜에요 그런 날 심방 가면, 반드시 플라스틱 바가지를 하나 앞에 놔요. 
그 앞에 권사님 구역 권사님 있다가 가끔씩 이렇게 해서 버려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소린데 하여간 그랬어요. 그게 보트가 아니었어요. 차였어요. 
차가 하도 녹슬고 보기 싫어서, 에이 굴러는 다니니까 칠이나 해서 다니자 하고 공업사에 맡겼는데, 
못 붙였어요, 뜯었다가.
 
그래서 결국 하여간 교회가 새 차 사줬어요. 그때. 그게 이제 ‘대우 맵시나’라는 차였는데요. 
맵시 별로 안 났어요. 근데 차 이름이 ‘맵시나’였어요. 새차 받았는데요. 
그러니까 우리 윗 선배들은 배가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요. 비만 안새지, 뭐 거기서 거기거든요. 
그런데 그 비 안 새는 바람에 몇 년 더 탔고, 나는 금방 새차 몇 달 만에 바꿨고,
1년도 안 돼서 바꿨고 그랬는데, 그때 참 행복하더라고요. 
새 차 끌고 다니니까 참 행복했어요. 차 참 많이 바꿨어요.
 
저는 작년에 은퇴했습니다. 은퇴하면서 교회에서 찾던 차 반납하고 아내가 새 차 사줬어요. 
여기서 아실려나? '기아 k9'인데 그거 괜찮은 차예요. 상당히 괜찮은 차예요. 
그래도 지금 제가 꽤 행복하겠죠? 그건 한도 끝도 없는 일이니까. 
어느 선에서 끝내야 돼요. 그 이상 탄다고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에요.
 
저희가 초등학교 다닐 때 가난했었잖아요. 아주 가난한 나라였잖아요. 
학교에서 생활환경 조사사라는 걸 했었어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어요. 
얘가 어떤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나 알아보기 위해서 질문을 했는데 그 질문이 웃겼어요. 
라디오에 있냐? 선풍기 있냐? 냉장고 있냐? 텔레비전 있냐? 전화 있냐? 이런 거 였어. 피아노 있냐? 
뭐 있으면 부자였게요. 그냥 뭐 아무거나 있으면 부자예요. 그 다음에 뭐 있으면 거기에 해당하는 게 있으면 부자였어. 
그거 대부분 나는 라디오 한 대 밖에는 체크할 게 없었어요. 
여러분, 우리가 전화 놓고, 냉장고 놓고, 사는 게 상당히 오랜 후에 얘기에요.
 
제 나이에서는, 그러니까 그런 거 선풍기 하나 살 때는 정확히 기억해요.
선풍기는 74년도에 샀어요. 텔레비전은 75년도에 샀어요. 전화는 78년도 79년인가 그때 샀어요. 
냉장고, 그건 잘 기억 안 나요. 근데 그때마다 참 행복했어요. 
지금은 뭐 있으면 행복할까요? 그게 아니에요.

중국에서 조선족 신학생들을 꽤 오래전에, 동안교회에 있을 때 초청했어요.
한국 연수시키려고, 어떤 분이 차 타고 오는데 숙소에 '전화' 있느냐고? 
'기가 막혀가지고. 한국에 전화 없는데 없어 전화 다 있어' 그랬더니
'중국은 전화 있으면 부잔데요'. 그래서 좀 미안하더라고요. 괜히 잘난 척해가지고. 
그래서 우리도 그랬었어. 우리도 전화있으면 부자 있는 때가 있었어, 그랬어요.
 
근데, 한국은 뭐 있으면 부자예요? 묻더라고요. 그때 근데 그때 제가 대답을 못 했어요.
여러분, 한국은, 미국은 뭐 더 말할 거 없지만 뭐 있으면 부자예요?
차 있으면 부자라는 말을 이제는 한국도 못해요. 
무슨 차가 있느냐?까지 얘기를 해야 밥 먹고 사는구만 하지.
그냥 차 있어. 그 뭐 그래서 뭐 차 있어 하는 말로는 그 사람의 상태를 파악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옛날엔 우리가 우리 말로 '못 산다'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거의 차가 있거든요.

이건 우리가 꿈도 꿀 수 없었던 세상을 사는 거예요. 
한국이 소득 100불 미만이었던 세계 최빈국이었던 때가 있어요.
제가 그때 태어났어요. 지금은 거의 2만 6천 불 3만 불 시대를 살아요. 
근데 그 구매력이나 이런 걸 통하면 한국은 3만 불을 넘어섰어요.
실제로 제가 꽤 많은 나라를 다니는데요. 한국의 생활 수준이 미국보다 나으면 낫지 못하지 않을걸요?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한국 사람이 지금 다 행복하겠죠?
 
난 그게 그렇다니까요. 지금, 지나가는 100사람한테 물었어요.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라고 물었어요. 뭐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았게요?
‘그럭저럭 삽니다’ ‘마지못해 삽니다’ 3등 뭘까요? ‘죽지 못해서 삽니다’ 
사실 그 이상을 넘어갈 수가 없어요.
그건 100불 시대에 물어도 그렇고요. 3만불, 5만불 시대 사람에게 물어도 답은 똑같아요. 뭐 거의 차이 없어요.
그게 뭘 의미하는가 하면, 사람은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존재라는 거예요.
그 이유가 '하나님이 사랑하셔서천하보다 크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다윗이 시편 16편 2절에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이 말을 문자적으로 하면요, '복은 주 밖 에는 없다'는 거예요.
그럼, '주 어디에만 있어요?  '안’에.
근데 사탄이 우리가 '주 안에 있는 걸 좋아해요?' '주 밖에 있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끌어내려고 그래요. 근데 안 나와요, 사람들이. 왜? 복도 없는데 내가 왜 나가냐?
그러니까 사탄이 우리를 속이기 위해서, 가짜 복을 만들었어요. 가짜.
근데, 가짜를 가짜처럼 만들었께요? 진짜처럼 만들었께요? 완전 진짜처럼 만들었어요.
이걸 ‘짝퉁복’이라고 내가 그랬어요. ‘유사복’ ‘가짜복’ ‘짝퉁복’
 
제가 진짜 복과 가짜 복을 얘기할 테니까 구별해 보세요.
발음도 비슷해서 조심해서 들어야 돼요.
제가 비교적 발음이 정확해요.
‘평안과 편안’ 대체 구별이 어느 게 진짜일까요? ‘평안’이에요.
‘편안’이 나쁜 건 아닌데요. ‘편안’은 ‘복’이 아니에요. ‘평안’이 ‘복’이에요.
 
고3 때 국어 선생님이 오셨어요.
너희 소원이 뭐냐? 우리 개구쟁이 친구 한 놈이 이랬어요.
‘예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자는 겁니다.’하도 못 잘 때니까 그래서 선생님 그러시더라고요. ‘이 자식들아 대학 떨어져서 사흘만 자 봐라,쥐약 생각난다.’
제가 대학에 떨어졌어요. 그러니까 뭐 창피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 와서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자고, 문 닫고 그랬어요. 두문불출
정말 사흘을 잤어요. 나가기 싫어서. 사흘이 되니까 미치겠더라고요.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낮에 다 자 가지고 잠이 안 와요. 여러분 불면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하루 24시간이 그렇게 긴 건지 몰랐어요. 시간을 보낼 수가 없으니까. 그게 아마 감옥에 가면 그럴 거예요.그렇죠? 감옥에 가면 할 게 없으니까.
나가긴 싫고, 그러니까 신문을 읽었어. 시간을 보내려고 글자 하나도 안 빼놓고 읽었어요.시간 보내려고.
그때 어른들이 기억나실 거예요. 그 두 줄짜리 광고가 있었어요. ‘엄마가 아프다 돌아와라’ 뭐 이런 거 있었어요. 그것까지 다 읽었어요. 근데 시간이 안 가는 거예요. 아, 그때 생각나대요. 쥐약 생각. 먹지를 않았지.
예 편안했죠.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잤는데 편안했는데, 편안은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어요.
 
돈는 우리를 편안하게 할까요? 평안하게 할까요? ‘편안하게 해요’. 돈 있으면 조금 더 편히 지낼 수 있어요. 조금 더 넓은 집. 조금 더 좋은 집. 조금 더 편리한 물건. 조금 더 큰 차.
여러분, 큰 차를 타면 평안할까요? 편안할까요? 큰 차 타고, 참 평안하네, 이 차는. 이거 2세가 얘기하는 거예요. 한국말 잘 모르는. 그렇죠? 그건 단어를 잘못 쓴 거예요. 그건 '편안'한 거예요. 좋은 차는 편해요. 안전하고 편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평안할 수는 없어요. 이게 돈이 주는 한계예요.
 
진짜 복과 가짜복 또 하나 있어요.
‘기쁨’과 ‘재미’ 어느 게 진짜예요? ‘기쁨’ 재미는 유사품이에요.
지금 라스베가스 제대로 걸려 왔는데요. 여기는 편안함과 재미가 극치를 이루는, 그걸 추구하는 세상이에요. 옛날에 우리 아이들, 요즘 아이들은 다 이 스마트폰 갖고 하겠지만 옛날에는 전자오락을 하려면 전자오락실이라는데를 가야 했어요.
동전 주면 가서 그거 집어넣고 하는데, 그 애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하겠어요?
애들이 전자오락실에서 밤을 새고, 이렇게 얘기할 수는 있어요.
야, 전자오락 참 재밌다. 이건 정확한 말이에요. 근데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여러분의 자녀들 중에 그렇게 말할 놈 있을 거예요. '야, 전자오락으로 하니까 참 기쁘다.'
이게 기쁨과 재미의 차이예요.
 
그런데 여러분 기쁨하고 재미는 달라요.
인간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 잘 살게 하는 것은, 재미에 있지 않고 '기쁨'에 있고요. 편안함에 있지 않고 '평안함'에 있어요. 그런데 '세상은 돈은 그 어떤 것도 재미는 줄 수 있어도, 기쁨은 줄 수 없고, 편안은 줄 수 있어도, 평화는 줄 수 없어요'. 그러니까 뭐 재미는 다 나쁜가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재미도, 하나님이 주신 것 중에 하나지만, 제가 얘기하는 건 궁극적인 게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거기에 머물면 결국 인간은 행복하지 못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불편하게 사는 게 뭐 좋아요? 편안하게 사는 게 좋지.
그런데 편안이 복인 줄로 생각하면 이제 바보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것뿐이에요.
이 평안과 기쁨은 뭐가 주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그 학교 다니면서 읽은 책 중에 제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 아주 귀한 영향을 준 책이 몇 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에릭 프럼’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소유냐 삶이냐’라고 하는 책이에요. 거기서 사람을 두 유형으로 나누어요.
하나는 ‘소유형의 인간, having mode’ 대부분 우리가 거기에 속해 있어요. 이게 뭔가 하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소유, to have에 두고 사는 사람이에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그러니까 기쁨이 아니라, 재미와 편안함을 추구하는 삶에 있는 걸 ’소유형’이라고 얘기했어요. 소유는 그것을 우리에게 해결해 주니까. 그런데 에릭프럼이 얘기한 ‘존재형’은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인간답게 'to be', 존재하는 데 두고 사는 사람을 ‘존재형’이라 그랬어요.

92년도 올림픽이 끝난 후에 그 미국에서 목회하는 선배 목사님이 오셨어요.
나하고 같이 점심을 먹는데, 한국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주 깜짝 놀랐던 것 같아요.
92년도면, 25년 전인데 한국 가난할 때였거든요. 아직 이제 막 좀 일어서려고 하는 때였는데,
한국 아이들이 100불이 넘는, 십만 원이 넘는 운동화들을 신고 다닌다. 깜짝 놀랐어요. 여러분 미국 아직도 100불이면,
괜찮죠? 신발. 저는 그 미국 자주 다니면서부터는요 한국에서 신발 산 지 오래됐어요.
여러분 한국의 보통 구두, 일반 보통 사람들이 신는 구두가 대개 얼마 정도인지 아세요? 얼마 정도일까요? 지금
백화점이나 이런 데 가면 구두가 대개 가격이 어느 선일까요? 한 20만 원 선이 평균이에요.
그보다 조금 덜한 것도 있고, 세일하면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는 거고, 근데 가격표는 대개 20만 원 선에 맞춰져 있어요.
더 비싼 것도 물론 많고. 그런데 미국은 싸더라고요. 비싼 데도 많겠지만 대개 그런 데서 신발 안 사시죠?
싼 데서 사지 않아요? 무슨 우리 말로 ‘마샬’ 뭐 이런 데 가면 맞아..
가면 멀쩡한,좋은 신발도 굉장히 나와서, 제 신발은 거의 대부분 거기, 그래서 거기서 백 불이면 제일 좋은 거 사오고, 보통 60불 정도 구두 제가 신는 것 같아요. 그러면 한국에서 20만 원짜리는 못 사요. 안 사죠. 그걸 왜 바보같이 사겠어요?

지금도 100불이면 만만치 않은데, 그런 데서 운동화 애들 골라주면 4~50불이면 대개 골라가거든요.
근데 여러분 그게 지금이 아니라 25년 전 소득 만불도 안 되는 한국에서 애들이 100불짜리를 신는다면
이게 미국에서 목회하는 목사가 이해가 되겠어요? 야, 너 새끼들도 그런 거 신고 다니냐? 난 우리 애들이 그런 거 모르죠. 뭐 신고 다니는 건 둘째 치고, 그런 신발이 있는 줄을 몰랐을 때니까.
 
집에 와서 물었어요. '너희도 그런 것이, 세상에 그런 운동화가 다 있냐?' 그게 무슨표 농구화가 십만 원이 넘는다 그러더라고요. 또 물어봤어요. '너희 학교에도 그런 거 신고 다니는 놈들 있냐?' 그랬더니 '우리만 빼놓고 다 신어.'
그래서 제가 영락교회에 있었는데요, 영락교회가 부자 교회가 돼서 그랬는지는 모르나 굉장히 부자 동네 아파트를 얻어 지었어요. 개포동이라는데. 개포동이 왜 개포동인지 아세요? 개도 포니는 안 타는 동네가 됐어요. 옛날 아재 개그예요.
그런데 진짜 거긴 부자 동네거든요. 어마엄청 부자 동네거든요. 그래서 애들이 다 신고 다닌다는 거예요.
자기들만 안 신는다고, 너는 왜 안 사달라 그랬냐? 그랬더니 '사달라고 그래봤자 뭐 안 사주실 건데요' 뭐. 제가 웃었습니다.
 
제가 교회 사무실에 와서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제가 편지 쓰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
애들에게 ‘그런 비싼 신발 사달라고 조르지 않아서 고맙다’ 하는 편지를 썼어요.
그리고 왜 그런 신발을 신으면 안 되는가를 설명해 주었어요. 답은 간단해요. '쓸데없다 쓸데없다'.
그때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예요. 황영재 선수에게 코오롱이라는 회사가 '1억원'을 들여서 ‘마라톤화’를 만들어줬어요. '운동화가 1억짜리'였어요. '마라톤화'가. 그러니까 개발하느라고 발에 맞는 소재 개발하고, 연구하고 해서 1억짜리 운동 나는 그거는 괜찮다고 얘기 얘기했어요.
왜? 그거는 낭비가 아니다. 세계적인 선수가 발에 맞는 운동화를 신어서 기록을 단축하고,
메달의 색깔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투자하는 게 맞다.

그런데 너희들이 10만 원짜리 운동화를 신는 이유는 뭐냐? 기록을 단축하기 위함이냐? 국위를 선양하기 위함이냐?
그게 아니라, 뽐내고 자랑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냐? '이거 10만 원짜리야.'
이게 '나는 10만 원짜리 운동화를 신는 사람이야. 얘들아 조금만 생각해봐라. 그거는 자랑이 아니란다. 사람이 오죽 변변치 않으면 자랑할 게 없으면 신발을 자랑하겠냐? 내가 10만 원짜리가 안 되니까, 10만 원짜리가 자랑스러운 게 아니냐? '
간단하잖아요.내가 100만 원짜리라면, 이거 자랑하겠어요? 제가 아이들한테 얘기했어요.
"너희는 평생 살면서 신발 자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너희의 사람 됨을 자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거라."
5학년, 3학년, 1학년이었어요. 우리 아이들. 말귀 알아들었을까요? 못 알아들었을까요? 알아들어요.
어른들은 애들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줄로 알아요. 그렇지 않아요. 말귀 다 알아들어요.

자기를 위한 말이라는 것도 알고, 옳은 말이라는 것도 아는데, 문제는 이것들이 말을 들어요? 안 들어요? .왜 안 듣는지 아세요? 난 애들한테 문제가 있는 줄 알았어요. 그 자식이 중2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에요.
어른들이 말을 잘 할 줄 모르더라구요. 우리 어른 부모 선생들은요,
'옳은 말, 좋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은사가 있어요.'  그러니까 애들이 기분이 나쁘면, 말은 맞는데 왜 말을 그런 식으로 하세요? 너무 강압적으로 얘기하고, 명령하고, 그러니까 기분 나빠서 그런 거.
내가 애한테 '고맙다고, 아주 정식으로 예의 가르쳐서 하니까' 애들이 알아듣고, 그 편지가 아이 키우는 데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 되었어요.

사람은 잘 살고, 못 사는 게, 소유 가치에 있는 줄로 알아요. 너희 집 얼마짜리야? 몇평이야? 너희 차 무슨 차 타?
근데, 그게 아니에요. 소유 가치가 높은 게, 신발이 비싼 신발 사는 게, 잘 사는 게 아니라,
이 존재 가치가 있을 때 그가 잘 사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때 행복해요. 사람은 그때 정말 행복한 거예요.
이 존재 가치가 중요한데요. 존재 가치는 소유로 만들 수는 없어요.
아무리 부자도 그게 잘 사는 건 아니니까, 우리를 잘 살게 하는 것은 '존재 가치'인데 '존재 가치'는 어디서나 이거는 예외가 없어요. '모든 존재의 가치는 목적'에서만 와요.
 
여러분 이 마이크는 가치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이 마이크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하면 목적에서 와요. 이 마이크의 존재 목적은 뭐예요? 작은 목소리를 확산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마이크는 지금 목적대로 존재해요? 안 해요? '해요.'
그러니까 가치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어느 날, 이거 고장나요. 고장났다는 건 뭐예요? '목적을 상실'했다는 거예요.
목적을 상실하는 순간 동시에 상실하는 게 있어요. 뭘까요? '가치'예요. 그럼 이거 내다 버려요.
 
모든 존재의 가치는 존재의 목적에서만 와요. 그러니까 잘 살려면 무엇을 찾아야 되는가 하면 '내가 존재하는 목적은 뭘까?'를 찾고 '내 존재를 거기다 맞추는 작업을 해야 돼요' 이해되셨죠?
그러면 존재 목적에도 여러분 원칙이 있어요. 한 분만 예외예요.
하나님만 예외예요.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어요. 그 사람이든, 생명이든, 물건이든, 다 마찬가지예요.
모든 존재의 목적은 존재로부터 말미암지 않아요. 이건 굉장히 중요한 원칙이에요.
마이크의 존재 목적은 마이크가 정했어요? 마이크를 만든 사람이 정했어요? 마이크를 만든 밖에서 주어졌어요.
여러분 이 시계는요, 시계를 만든 사람 이거는요,
김동호의 존재 목적은 김동호가 정해요? 김동호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정하세요? 여러분은요?
그러니까, 우리가 잘 사는 것은 우리 욕심대로 우리 생각대로 우리 뜻대로 사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거예요?
그런데, 왜 여러분 욕심대로 살려고 그러세요? 여기서 어긋나는 거거든요.
여기서 어긋나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가 굉장히 중요한 기도예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를, 우리는요, 내 뜻을 하나님을 통하여 이루려고 내 욕심을 하나님을 통하여 채우려고 믿는 경우가 많아요.
그걸 꼭 틀리다고만 얘기할 수는 없어요. 하나님이 그러라고 그러셨으니까. 구해, 달라, 그래 내가 줄게. 그것도 있으니까. 맞아요. 그러나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 위에 있어요.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나를 꺾어서 기도해서 쳐서 복종해서 여기다 맞춰서 말씀과 삶이 하나 되는 삶. 그러면 가난할 수도 있으나 그는 잘 사는 사람이에요.
그 마음에는 기쁨이 있어요. 평안이 있어요.
이런 삶을 산 사람들이 성경에 있어요. 그게 뭔가 하면 우리가 추수감사절에 늘 잘 읽는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이에요.
'무화과 나무의 열매가 있거나, 말거나, 외양간에 소가 있으나, 없으나' 
있으면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하바국은 외양간에 소 있는 거 되게 싫어하는 분이죠. 아니예요. 있으면 좋지.
무화과나무 열매 있으면 감사하지. 그런데 나는 없어도 괜찮아요. 그러면서 뭐라 그러는가 하면은요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구원의 단어를 쓰는데요. 예수 믿고 구원 얻었더니, 사슴과 같이 자기를 높은 곳에 다니게 하셨다는 표현을 써요.
사슴과 같이 높은 곳에서 보니까, 그 세상의 조건은 뛰어넘는 거예요.
가난할 수도 있지만 난 잘 사는 사람이잖아. 내가 존재 가치가 있잖아.
그러니까, 늘 기뻐하고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삶이 드디어 열리는 거예요.
밥 뭐 먹을까? 뭐 먹을까? 너 무슨 차 타냐? 나는 이러는데 이런 데만 살면은요,  항상 기쁠 수 없어요. 대게 항상 슬프지.
어쩌다 기쁘지. 차 바꾼 날만 기쁘지. 그런데 이걸 바꿔놓으면은요 '항상 기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요,
하나님의 뜻과 내 삶을 일치시키는 거예요.
 
아내가 지금 같이 와 있는데요 전 77년도에 결혼을 했어요.
결혼하기 전에 편지 많이 썼어요. 저는 서울에 있고 우리 아내는 인천에 있어서 자주 만나기 어려웠으니까.
편지를 쓰는데 제가 글이 악필이에요. 근데 한 번도 불편하다는 생각 안 해. 난 다 읽을 수 있는데, 뭐 근데 연애를 하니까, 글씨가 마음에 안 드는 게 그날 내가 보려고 쓰는 글이 아니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면 글씨도 이왕이면 이쁘면 좋겠다 싶은데 난 이쁘게 글씨를 쓸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글씨를 다시 배웠어요. 글씨 쓰는 거를 연습했어요.
 
저는 글씨체가 그때 바뀌었어요.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보통 보니까 노트 필기하는 것보다 편지 쓰는 글씨가 다섯 배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리고 앉았으니까, 정성껏 쓰는 거예요. 정성껏. 그래서 제가 글씨의 피랍이 되게 높아졌어요. 힘 줘서, 정성껏 하나하나 보니까 힘이 가해지고, 아주 떡 쳤어요. 저, 방위 갔었는데 글씨 잘 쓴다고 내가 '궤도병 '했어요. 궤도,
글씨 쓰는 사람. 그렇게 노력했었어요.

제가 늘 시를 쓰고, 지금 시를 좋아하는데, 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시를 쓰고 싶었는데, 좋아한다고 다 쓰는 건 아니더라구요. 저는 쓰는 글, 쓰는 식,이 그거하곤 전혀 달라서 이제 거의 포기 상태인데, 연애를 하니까 시가 쓰여지더라고요.
그때 '편지'라는 시를 시가 쓰여졌어요. 그냥 쉽게 쓰여졌어요. '편지'라는 시를 써서 편지로 아내에게 보냈더니
우리 아내가 그 편지 읽고 시집 오셨어요. 한번 읽어드릴까요?
 

<편지>
깨끗이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한 자 한 자 정성껏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
진실이고파 아름답고파
썼다간 지우고 또 썼다간 지우고
마음같이 써진 편지 마무리하다.
그만 잘못 써진 글씨 하나 쭉쭉 두 줄 그어 지워버리고
계속 쓰면 될 것을, 다시 손 씻고 와
처음부터 쓰는 편지, 당신께 쓰는 편지

 
 
시집 올 만하죠? 그 편지 받고도 안 오면, 그건 바보지. 진심이었어요. 진심이 그게 왜냐하면, 내가 편지를 그렇게 썼거든  뭐 글씨 하나 틀리면, 그냥 이렇게 안 썼어요. 구겨버리고, 다시 저는 결벽주의자가 아니에요. 그런데 그때는 무슨 성경 필사하는 사람처럼, 손에 땀나는 것도 싫어 가지고, 땀나면 손 씻고 와서 앉아서 정결하게 썼어요. 내 삶이 아내에게 쓰는 편지 같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살았어요. 그날 신학생이니까 이제 곧 졸업할 신학생이었으니까, '내 삶이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그때 가졌어요.
 
오늘 여기 고린도후서 3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라는 말을 썼어요.
나는 같은 말인 줄 알았어요. 비슷한 말인데 다른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내가 얘기한 건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고요, 바울이 얘기한 건 ‘그리스도의‘ 편지예요.
둘 다 좋은 거예요. 근데 어느 게 더 좋은 거예요? '그리스도의 편지'가 더 좋은 거예요. 뭐가 다르게요?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는 내가 쓰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편지는 그리스도가 쓰는 거예요'.
'내가 편지라는 건 내용은 똑같아요. 내가 편지예요'. '그리스도께서 쓰는 편지도 내 삶이 편지에요. 그리스도의 편지의 내용도, 내가 편지예요'.
 
나를, 편지를 써서 누구한테 보내나? 세상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때, 야 김동호 보면, 나 알 수 있어. '쟤가 내 뜻이야 나하고 똑같아.' 이건 어마엄청난 거 아니에요? 그러면 드디어 내 삶이 '말씀이 육신'이 된 거 아니에요?
그럴 때 존재 가치가 높아지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무화가 나무의 열매 있으면 좋고 없으면 괜찮고, 외양간에 우리가 있으면 좋은 거고, 감사한 일이고, 없어도 문제없는 거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삶' 살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우리 교회 생활을 하는데, 많은 분들이 '교회 생활'에만 열심을 해요. '교회 생활'하는 거 굉장히 중요해요. 근데 교회 생활만 한다고 '구원 얻는 게 아니에요.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 거예요.'  예수를 좀 잘 믿어야 되겠다는 소원을 갖고 살아야 돼요. 근데 예수 믿고 사는 게 쉬워요? 어려워요? '어려워요. 정말 어려워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원죄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어긋났어요. 이게 다 이해가 안 가요. 죽을 것 같아요. 바보 같아요. 망할 것 같아요. 그래서 말씀을 듣고도 나가서 살면 따로 살아요.
 
제가 처음 담임 목사 됐을 때, 설교를 하도 원칙적으로 하니까, 연세 많이 드신 어른 한 분이 굉장히 신사적인 분이에요.
사람이 참 신사적이신데, 말 함부로 안 하시는 분인데, 찾아오셔서 아주 조심조심스럽게
'목사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거 다 압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을 너무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하면 장사할 수 없습니다. 가게 문 닫아야 됩니다. 그 설교 그렇게 하시면 교인들이 교회 못 옵니다. 부담스러워서 목사님 1년에 한 세 번만 하시지요.'제가 아무 소리 안 했어요. 그 다음 날 그 설교 또 했어요.
나도 어지간하죠? 그 본문 제목 또 했어요.
그날 그분 장로님이셨는데, 장로님 또 오셔서 그러셨으면 나 한 번 더 할 작정이었어요.
또 오시면 그만둘 작정이었어요.
 
조금 너무 강하게 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원칙은 지금도 같아요.
제가 그때 마음이 뭔가 하면, '장로님 내가 세상을 가르치려고 목사 됐습니까?
세상은 장로님이 가르치셔야죠. 난 세상에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잘 모릅니다.
근데 세상을 배우려면 뭐하러 교회 오십니까? 세상을 나가시면 되지. 하나님 배우러 온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나는 세상 모르지만, 하나님이 옳다고, 하니까 이대로 살아야 세상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정직히 말씀하셨어요.
'생명으로 인도하는 분은 좁다 험하다. 나 따라오려면 십자가는 져야 된다. 자기를 부인해야 된다. 근데 그게 길이다. 그게 길이다. 생명이다.‘
우리는 너무 힘들다고 손쉽게 타협하고 손쉽게 포기해요. 근데 그러지 말고 힘들어도 나를 꺾고 말씀대로 살았어요.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 여러분을 이 라스베가스에 보내신 게 뭘까요?
지금 여기서는 그런 사람 찾기가 정말힘들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정말 잘 사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부러워하고, 그것을 흠모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요.

여러분 예수 믿기 제일 힘든 사람들이 누군 줄 아세요?
'바르게 사는 사람, 정직하게 사는 사람' '야 너나 잘 믿어라' 이러기 참 쉬워요.
근데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도 누가 예수님 잘 믿고 쫓았는 줄 아세요? '세리. 창기' '인생 막장'에 있는 사람들이,
거기가 끝이기 때문에요, 그들이 알아요, 그들은 이미 알아요. 이 세상의 한계가 뭔지? 쾌락의 끝이 뭔지?
그것처럼 잘아는 도시가 이 '라스베가스' 말고 어디 있겠어요? 그들이 거기에 그냥 휘말려 돌아가지만,
쉽게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이 삶이 잘못되고 희망 없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여기 있는 사람들이라고요, 맞아요? 틀려요?
그런데, 여기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힘들고, 바보 같은데도, 하나님처럼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부자로 사는 사람 말고, 정말 잘 사는 사람을 만나면 영향을 받겠어요? 안 받겠어요? 받겠어요? 안받겠어요? 받죠?
그게 하나님이 여러분을 여기에다 심으신 저는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그 역할을 감당하라고 그 선교적인 삶을 살라고 여러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거기서 바르게 살면, 그들이 처음엔 우습게 생각해.
이 바보 같으면 좀 모자라는 거 아니야? 쟤 뭐 잘못된 거 아니야? 왜 저렇게 살아?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시간이 지나면은요 '알아요'. 그 사람이 훌륭하다는 거야. 그래서 정말 어렵고, 정말 죄악 생각날 때가 얼마나 많겠어? 이 동네 사람들. 그럴 때는 찾아와서 누구한테 하소연을 하고, 상담을 하려고 그러면 누구 찾아오겠어요?
여러분 찾아오지, 그래서 여러분, 그런 삶 사시는, 이 라스베가스에서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아가는 우리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https://youtu.be/1PxYmqNWmp8?si=rjVo4bHfvX1JqQjn

 

 

<원본영상보기>
https://youtu.be/1PxYmqNWm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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