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초등학생에게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하나님은 "누가 재미있게 지내나 맨날 감시하다가 결국은 훼방을 놓는 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도덕'이라고 할 때 꽤 많은 이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합니다.
즉, 도덕이란 무언가 간섭하는 것, 여러분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하도록 막는 훼방꾼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도덕 규칙이란 인간이라는 기계를 잘 움직이게 만드는 지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도덕 규칙은 이 기계가 움직이다가 고장나지 않게 하려고, 또 기계에 무리가 생기거나 마찰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존재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처음에는 이런 규칙들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계속 간섭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어떤 기계든 사용법을 배우려면 "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돼요"라는 지도교사의 지적을 줄기차게 듣게 마련인데, 그것은 여러분의 기계 사용법이 자신의 눈에는 괜찮아 보이고 자연스러워 보여도 실제로는 기계를 작동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도덕 규칙보다는 도덕적 '이상'에 대해, 도덕적 순종보다는 도덕적 '이상주의'에 대해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도덕적 완벽함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상'임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종류의 완벽함이든 인간에게는 하나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운전사가 될 수 없으며, 완벽한 테니스 선수가 될 수 없고, 완벽한 직선을 그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볼 때 '도덕적 완벽함은 이상'이라는 것은 우리를 크게 오도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 남자가 어떤 여자나 집이나 배나 정원을 '나의 이상'이라고 할 때, 그것은 다른 사람도 전부 자기와 똑같은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말이지요).
그런 부분에서는 우리 각자 다른 취향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따라서 각자 다른 이상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률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이상이 높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 표현은 도덕적 완벽함이란 개인의 사적인 취향으로서, 나머지 사람들도 그것을 공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해는 큰 피해를 불러옵니다.
완벽하게 행동하는 것은 완벽하게 기어를 조작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의 속성상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완벽한 기어 조작을 이상으로 삼게 되어 있듯이, 인간의 속성상 인간이라면 누구나 완벽한 행동을 필수적인 이상으로 삼게 되어 있습니다.
또 자기가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좀 덜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음란한 짓을 절대 하지 않으며(음란한 짓을 좀 덜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횡포를 부리지 않으려고(횡포를 심하게 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한다고 해서 스스로 ' 이상이 높다'고 여기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목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스스로 그런 '이상주의'에 대해 칭송받아 마땅한 특별한 인물로 착각하게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자기가 계산을 할 때마다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니까 칭송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숫자 계산을 완벽하게 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의 이상'입니다.
계산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계산의 각 단계를 정확히 하려고 애쓴다고 해서 특별히 훌륭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바보스러운 일이지요.
실수를 저지르면 결국 자기가 불편해지는 것이니까요.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실수를 저지르면 나중에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불편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상'이나 '이상주의' 대신 규칙과 순종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 사실을 스스로 상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봅시다. 인간이라는 기계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잘못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들이 각기 따로 놀거나 충돌함으로써 서로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로서, 속임수를 쓰거나 횡포를 부릴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다른 하나는 각 개인의 내부에 무언가 문제가 생기는 경우, 즉 한 개인을 이루고 있는 서로 다른 부분들 (각기 다른 기능과 욕구 등) 이 각기 따로 놀거나 충돌하는 경우입니다.
인간이 편대를 지어 항해하는 선단(船團)에 비유하면 이 점이 더 명확히 이해될 것입니다. 항해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배들이 서로 충돌하지 말아야 하며 다른 배의 항로를
방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각각의 배들은 항해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양호한 엔진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사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만약 배들이 서로 충돌을 거듭한다면 머잖아 항해에 적합한 조건을 상실할 것입니다.
반면에 각 배의 조타장치에 이상이 생기면 배들은 충돌을 면할 도리가 없겠지요.
또는 인류를 어떤 곡을 연주하는 악단에 비유해도 좋습니다.
연주가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 합니다.
즉, 각 연주자들의 악기가 잘 조율되어야 하며, 각각의 악기는 다른 악기들과 잘 융화될 수 있도록 정확한 순간에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고려하지 않은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단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디인가, 이 악단이 연주하고자 하는 곡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아무리 악기들이 전부 잘 조율되어 있고 정확한 순간에 소리를 냈다고 해도 춤곡을 연주해야 할 상황에서 장송곡을 연주했다면, 그 연주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또 선단이 아무리 순조롭게 항해했다 해도 뉴욕에 가야 할 배들이 캘거타에 도착했다면, 그 항해는 실패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도덕은 세 가지 사항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 번째, 도덕은 각 개인이 서로 공평하게 처신하며 조화를 이루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 번째, 각 개인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정돈, 또는 조화시키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세 번째, 인류의 삶 전체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목적, 즉 인간은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는가, 선단이 가야 할 경로는 무엇인가, 악단 지휘자가 연주하려는 곡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대인들이 거의 언제나 첫 번째 사항만 생각할 뿐, 나머지 두 가지 사항은 잊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신문에서 "기독교적 도덕 기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대개 국가와 계층과 개인이 서로 친절하게 대하며 공정하게 처신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즉, 첫 번째 사항만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떤 일을 하고 싶을 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아니니까 괜찮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오로지 첫 번째 사항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옆 배와 충돌하지만 않으면 자기 배의 내부 상태야 어떻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사실 도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때, 첫 번째 사항인 사회적 관계부터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 부분에서 벌어지는 부도덕한 짓들은 식별하기도 쉬울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매일 우리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이지요.
전쟁과 가난과 부정부패와 거짓말과 비열한 짓들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첫 번째 사항에 관한 한, 사람들의 의견이 갈릴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인간은 서로 간에 정직하며 친절하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모든 시대 거의 모든 인간들이 동의해 온(이론적으로는) 바이니까요.
그러나 첫 번째 사항부터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무리 자연스러운 일이라 해도, 도덕에 대한
생각이 이 지점에서 멈추고 만다면 아예 생각을 시작하지 않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도덕의 두 번째 사항-각 인간의 내면을 정돈하는 일-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사실상 조종이 불가능할 정도로 배들이 낡은데다가 결함투성이라면, 아무리 충돌을 피하는 조종법을 가르쳐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바처럼 사실상 우리의 탐욕과 비겁함과 못된 성질과 자만심 때문에 규칙을 지킬 수 없다면, 아무리 사회적인 행동을 위한 규칙을 작성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 저는 사회, 경제 제도 개선에 관해서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열심히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하는것이 절대 아닙니다.
제가 정말 말하고 싶은 바는, 각 개인의 용기와 이타심 없이는 어떤 제도도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아무리 사회적, 경제적 개선책을 찾은들 다 뜬구름 잡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현 제도하에서 자행되는 특정한 종류의 부정부패나 횡포를 없애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여전히 부정직하며 횡포 부리기를 좋아하는 한, 새로운 제도하에서도 예전에 하던 짓을 계속할 새로운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법으로는 인간을 선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선해지지 않는 한 사회는 좋아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두 번째 사항, 즉 각 개인의 내면에 있는 도덕에 관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두 번째 사항까지만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주에 관해 어떻게 달리 믿느냐에 따라 행동도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굳이 거기까지 갈 것이 없이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만한 데까지는 말하는 것이 그야말로 지각 있는 행동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종교는 사실에 관한 일련의 진술, 즉 참이거나 거짓일 수밖에 없는 진술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그 진술들이 참이라면 인간이라는 선단의 바른 항해가 무엇이냐에 대해 일단의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물론 그 진술들이 거짓이라면 아주 딴판의 결론이 나오겠지요.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은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경우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는 주변에 있는 다른 배에 손상을 입혀서는 안 된다는 점은 잘 이해하고 있지만, 솔직히 자기 배는 자기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배가 그의 소유냐 아니냐에 따라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내가 내 몸과 마음의 영주냐, 아니면 진짜 영주에게 그것들을 빌린 소작인에 불과하냐에 따라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만약 누군가가 다른 존재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나를 만들었다면, 내가 단순히 내 것일 경우에는 부과되지 않았을 많은 의무를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기독교는 모든 인간은 영원히 산다고 주장하는데, 이것 역시 참 아니면 거짓입니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사는 존재라면, 겨우 70년 정도 살다가 죽을 존재일 경우에는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아주 많은 것들을 놓고 고민해야 합니다.
예컨대 지금 나의 못된 성질과 시기심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합시다.
이것은 점차 진행되는 일이므로 70년이 지난다 한들 눈에 확 뜨일 정도로 심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100만 년 동안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지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기독교가 진짜 참이라면, '지옥(hell)'이야말로 이 상태를 정확하게 꼬집어 주는 용어라 할 것입니다.
인간이 불멸한다는 믿음은 또 다른 차이도 만들어 내는데, 이 차이는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차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각 개인이 겨우 70년만 살다가 죽는다면, 아마 천 년 동 안은 계속될 국가나 민족이나 문명이 개인보다 더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참이라면 영원히 살 인간에 비해 국가나 문명의 생명은 겨우 한 순간에 불과하므로, 각 개인은 국가나 문명보다 단순히 더 중요한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격상됩니다.
이처럼 도덕에 관해 생각할 때에는 이 세 가지 분야를 모두 생각해야 합니다.
즉, 인간과 인간의 관계, 각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들, 인간과 인간을 만든 힘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 번째 분야에서는 우리 모두가 협력할 수 있습니다.
불일치는 두 번째 분야에서 생겨나 세 번째 분야에서 좀 더 심각해집니다.
바로 이 세 번째 분야에서 기독교의 도덕과 비기독교의 도덕 사이에 주된 차이가 생겨납니다. 저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제3부의 나머지 부분을 진행해 나가면서, 기독교가 참일 경우에 펼쳐지는 전경(全景)을 조망할 생각입니다.
'C.S. 루이스_순전한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3-3 사회도덕 (0) | 2024.07.17 |
---|---|
3-2 기본 덕목 (0) | 2024.07.17 |
2-5 실제적인 결론 (0) | 2024.07.08 |
2-4 완전한 참회 (1) | 2024.07.08 |
2-3장 충격적인 갈림길 (1) | 2024.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