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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_순전한 기독교

1-3장 이 법칙의 실재성(C.S. 루이스_순전한기독교_1장 옳고 그름_우주의 의미를 푸는 실마리)

by 마이코 2024. 6. 26.

이 법칙의 실재성

이제 1장 끝부분에서 다루었던 문제, 즉 인간에게는 두 가지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로 돌아가 봅시다. 
첫째, 인간은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행동, 즉 공정한 처신이나 예의나 도덕이나 자연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종류의 행동이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제가 왜 이것을 기이하다고 말하는지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보일 수도 있지요.
특히나 제가 인간에 대해 지나치게 냉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굳이 '옳고 그름의 법칙 내지는 자연법을 어겼다'고 표현하는 그것은, 단지 인간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인간에게 완벽함을 기대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듭니까?
 
제가 이 책을 통해 하려는 일이, 남에게 기대하는 행동을 스스로 못 했을 때 얼마나 비난받아야 하느냐를 따지자는 것이라면, 이것은 좋은 반응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하려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비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진리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어떤 것이 불완전하다는 생각,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할 모습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이 생각이야말로 중요한 개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 아닌 다른 돌이나 나무 같은 것은 그야말로 돌이나 나무일 뿐, 그것 아닌 다른것이 되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떤 돌이 자기 집 바위 정원에 걸맞지 않을 경우 '모양이 틀렸다' 고 한다거나, 어떤 나무가 원하는 만큼의 그늘을 제공해 주지 못할 때 '나쁜' 나무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다 보니 자신의 목적에 쓰기 편한 돌이나 나무를 만나지 못했다는 뜻일 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면 그것을 이유 삼아 그 돌이나 나무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나무가 자신에게 주어진 날씨와 토양에서는 그렇게 자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나쁜' 나무라고 말하는 것도 '좋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해당되는 자연 법칙들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지 않습니까? 
이제 나올 말은, 우리가 보통 자연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 예컨대 날씨가 나무에 작용하는 방식은 엄밀한 의미에서 진짜 법칙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표현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돌은 언제나 중력 법칙을 따른다"고 말할 때의 법칙'은 '돌이 늘 하는 일'이라는 뜻에 불과합니다.
공중에 던져진 돌이 땅에 떨어지라는 명령을 갑자기 떠올려서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지 돌을 던지면 떨어지게 마련이라는 뜻에서 "돌은 중력 법칙을 따른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지요.
달리 말하자면, 여러분은 사실들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즉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과는 별도로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 일에 관한 법칙이 따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돌이나 나무에 적용되는 자연법칙이란 단지 '자연이 실제로 늘 하는 일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 본성의 법칙'이나 '바른 행동의 법칙'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이때의 법칙은 확실히 '인간이 실제로 늘 하는 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많은 인간들이 이 법칙을 전혀 따르고 있지 않으며, 단 한 명의 인간도 완전하게 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력 법칙이 말하는 바는 어떤 돌이든지 위로 던지면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본성의 법칙'이 말하는 바는 어떤 인간이든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지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인간의 문제를 다룰 때에는 현실의 사실들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끼여듭니다. 
사실(인간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 외에 무언가 다른 것(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이 더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우주에서는 사실 외에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전기와 분자의 경우에 는 일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일정한 결과를 일으킨다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 그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인간들이 그와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너무 독특한 특징이므로 어떻게든지 잘 해명해서 빠져 나가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그는 지금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이 돌은 모양이 틀렸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썼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즉, 어쩌다 보니 그 사람의 행동이 당신에게 불편하게 느껴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기차를 먼저 탔기 때문에 창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나 내가 잠시 등을 돌린 사이 내 가방을 치우고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똑같이 나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나는 나중 사람은 비난해도 먼저 사람은 비난하지 않습니다. 
실수로 나를 넘어뜨린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발끈 할 수는 있어도 화를 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일부러 발을 걸었을 때는 설사 넘어지지 않았다 해도 화를 냅니다. 
먼저 사람은 내게 상처를 입혔고 나중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해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내가 나쁘다고 말하는 행동이 내게 불편을 끼치기는커녕, 정 반대로 이익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쟁중에 상대편에 배신자가 생기는 것은 아주 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그를 활용하고 보상도 하지만, 속으로는 인간 버러지로 여기지요. 
이처럼 다른 사람이 어쩌다가 우리에게 유용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바른 행동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자신만 보아도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행동이 곧 바른 행동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3파운드를 받을 수 있는데도 3실링에 만족하거나 쉽게 부정행위를 할 수 있는데도 정직하게 공부하는 경우, 
여자에게 구애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거나 안전한 곳으로 도망갈 수 있는데도 위험한 장소에 남아 있는 경우, 
약속을 지키고 싶지 않은데도 지키는 것이나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진실을 말하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바른 행동을 한다고 해서 특정 개인이 특정 순간에 유익을 얻는 것은 아니더라도, 인류 전체로 볼 때에는 유익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별로 신기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분별력이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정정당당하게 처신하는 사회에서만 진정한 안전이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바르게 행동하려고 애쓴다' 는 것이 그들의 견해입니다. 
물론 개인과 계층과 국가가 서로를 정직하고 공정하며 친절하게 대할 때에만 안전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맞는 말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진실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어떤 것을 '옳게' 느끼거나 '그르게' 느끼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왜 나는 이기적이 되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에 "사회에 유익을 주려고"라고 대답할 경우, 
"왜 개인적으로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을 때에도 사회의 유익에 신경을 써야 한단 말인가?" 라는 질문에 "사람은 이기적이 되면 안 되니까"라고 대답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것은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대답입니다.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논의를 진전시키지는 못하지요. 마치 "풋볼을 왜 하는가?" 라는 질문에 "점수를 따려고"라고 대답해 봐야 별 의미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점수를 따려고 노력하는 것은 경기 그 자체일 뿐, 경기를 하는 이유가 못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대답은 사실 "풋볼은 풋볼" 이라고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옳은 말이긴 하지만,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유익을 주려고" 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대답이 못 됩니다. 
사회에 유익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 다시 말해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사회' 란 결국 다른 사람들' 이라는 뜻이므로) 자체가 바른 행동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대답은 그저 "바른 행동은 바른 행동" 이라고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간은 이기적이 되면 안 된다"는 말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입니다. 
저도 여기까지만 말해야겠습니다. 
인간은 이기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공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실제로도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니며 기꺼이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한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기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중력 법칙은 단순히 무거운 물체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사실에 불과하지만, '도덕률' 곧 '인간 본성의 법칙' 은 단순히 인간이 행동하는 방식에 대한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공상도 아닙니다. 
인간은 이 생각을 도저히 없앨 수가 없으며, 혹시라도 없앨 경우 우리가 인간에 대해 언급하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모두 헛소리가 되고 말 테니까요. 
또한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우리에게 편한 행동을 해 주길 바란다는 뜻의 말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불편한 행동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쁘고 불공정한 행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우리에게 편한 행동인데도 나쁘고 불공정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옳고 그름의 법칙' 혹은 '인간본성의 법칙' 은 여야튼 실재하는 것,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것 - 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실제로 한 행동을 사실이라고 부를 때 사용하는 일상적 의미의 사실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가 한 종류 이상의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된 것 같군요. 
즉, 이 특별한 사례를 볼 때, 인간의 행위라는 일상적 사실들 너머에는 아주 명백하게 실재하는 무언가 
- 우리가 만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압박하는 실재적 법칙 -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해야겠습니다.  

 

https://youtu.be/hgBKCLMnU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