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원목사 설교

2025년 8월 24일 대구동신교회

마이코 2025. 9. 22. 13:06

나그네로 살아가는 영성 (1) 흩어진 나그네에게 보내는 편지
베드로전서 1:1-9 | 문대원 목사
2025-08-24
 

오늘부터 베드로전서 강해 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로마 제국의 박해 가운데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편지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서 인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신 산 소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그네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루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아멘.

베드로가 나그네와 같은 이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서 세계 여러 곳으로 흩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자발적으로 간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자발적으로 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외국에서 생활하는 이민자들입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 외국으로 이민을 가신 분들이 있습니까?
가족이나 친지, 친구 중에서 외국으로 이민을 간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해외에서 생활을 했고 다양한 이민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으로 이민을 오신 분들을 만나봤고, 아프리카 우간다, 마다가스카르로 이민을 오신 분들도 만나보았습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경우에 대부분의 목표는 똑같습니다.
일단 영주권을 받는 것입니다. 

영주권을 받으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11 테러 전에는 영주권을 받는 것이 쉬웠는데 이제는 영주권을 받는 것이 많이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영주권을 받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세계 최고의 나라에 사니까 자동적으로 행복할까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미국 생활이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뭐 요즘에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역으로 이민을 한국으로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큰 꿈을 가지고 외국으로 갔는데 막상 살아보니까 내 나라가 더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역 이민을 오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저희 딸은 이제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미국에서 4년 반,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6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와서 5년째 살고 있습니다. 

저희 딸이 제일 좋아하는 곳은 대구입니다.
자기는 대구가 제일 좋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역시 한국 사람은 한국에 살아야 돼 라고 말합니다.
한 60세쯤 돼서 이런 말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이 말이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외국 생활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혹시 청년들은 외국 생활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곳에 가서 이방인으로 사는 건 결코 쉬운 일 아닙니다.
특별히 몸이 아프거나 뭐 교통사고라도 나면요. 아무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아무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 곳에서 지내는 것은 늘 긴장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도 저의 딸의 말에 동의합니다.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타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핵심 키워드가 나그네라고 했죠.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절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가파도기아, 아시아와 비도니아의 흩어진 나그네, 

 

소아시아 지역, 지금의 터키 지역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영어로 나그네를 뜻할 수 있는 단어가 몇 가지가 있거든요.
필그림, 엑사일, 스트레인저가 있습니다.

 

필그림 하면 순례자이고, 엑사일 하면 추방자, 망명자입니다.
스트레인저 하면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그 어떤 단어도 헬라어 원어의 의미를 잘 살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나그네를 뜻하는 헬라어가 파레피 데모스인데요.


이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다른 사람의 집에 함께 사는 이방인입니다.
다시 말해서 본국이 아닌 타국에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들은 그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지 못했고 외국인의 신분으로 일정 기간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영어로 표현하면 Resident Alien(레지던트 에어리언) 이라고 합니다.
한국어로 하면 영주권자이거든요. 

미국 시민권자가 있고 영주권자가 있죠.
시민권자는 미국의 정식 국민이고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투표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영주권자는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 가지 혜택이 있지만 미국 국민은 아닙니다.

영주권자는 다른 나라에 속한 타 국민 이방인입니다.

 

베드로가 소아시아에 흩어진 성도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영주권자들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국적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영주권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똑같은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죠.
우리는 이 땅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주권자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늘의 법과 문화를 따라갑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것은 이 땅의 기준이 아니라 하늘의 기준입니다.

무엇이 성공인지 규정하는 것은 이 땅의 가치관이 아니라 하늘의 가치관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나그네'라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나그네라는 단어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스스로를 가리켜서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3장 4절에 보니까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그네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의미도 있고 영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아브라함은 나그네가 맞았습니다.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가나안 땅에서 평생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에도 아브라함은 나그네가 맞았습니다.
그는 이 땅을 자신의 본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하늘의 본향을 생각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원했으면 자기의 고향으로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땅을 본향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늘을 본향으로 생각하며 살아갔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5절 16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아멘. 아브라함은 자기 본향을 떠나서 일평생 나그네로 살아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았고 하늘에 있는 본향을 바라보며 살아갔습니다.
이와 같이 나그네라는 단어에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이방인으로 살아갔습니다.
이 땅의 법과 문화를 따르지 않았고, 하늘의 법과 문화를 따라갔습니다.

 

미국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머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다시 길을 떠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 하는 말씀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모험에 참여하도록 부르신다 .가는 길, 고비마다 놀라운 일과 마주치게 되는 여행길에 나서라고 초청하신다"라고 적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주님과 함께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냥 지금 있는 곳에서 평안하게 머무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 순종해서 그분과 함께 떠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도록 우리를 만듭니다.
이 땅에 터를 닦고 집을 짓고 영원히 살도록 오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예가 있습니다. 

바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엄청난 추수를 거둔 부자는 모든 것이 풍성했습니다.
기존의 곳간에 싸울 수 없도록 모든 추수한 곳이 많자 새로운 곡간을 만들어서 모든 양식을 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오랫동안 먹고 마시고 즐기자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20절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내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내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뭐라고 부르십니까?
'어리석은 자여'라고 부르십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왜 어리석은 자입니까?
엄청난 부자이고 재테크도 다 잘했는데 왜 이 사람이 어리석은 자입니까?
자기 인생이 제한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표현대로 우리는 본국이 아닌 타국에 잠시 거주하는 나그네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2004년에 미국에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나왔습니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준 책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책을 쓴 사람은 목회자였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영어 제목은 Your Best Life Now 입니다.

 


한국에서는 '긍정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책을 평가할 때 공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그 책이 가진 강점과 약점 모두를 말해야 합니다.

이 책의 강점은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전부가 아니라 그 상황이 변화될 수 있다고 말을 해 줍니다.
생각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면 고난을 듣고 일어나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이 책이 전 세계에서 800만 권 팔렸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가 썼다고 하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 약점은 책의 제목에 나와 있습니다. 

yur best life now, 당신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지금이다라고 말을 하고 있죠.

 

여러분 성경 어디에서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니까 먹고 마시라는 구절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딱 한 군데에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에 나옵니다.
그 외에는 성경 어디에서도 지금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이 땅을 최고의 낙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영원한 하늘의 본향을 바라보며 살아갔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아갔습니다.


미국에서 존경받는 존 맥아더 목사님은 인생 최고의 순간은 지금이다라고 말하는 이 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이 땅에서 최고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천국이 필요 없다. 천국이 필요 없는 사람은 예수님도 필요 없다. 하지만 성도에게 있어서 최고의 삶은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난 이후에 시작된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제한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 없습니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베드로의 권면대로 이 땅에서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삶은 본국이 아닌 타국에 잠시 거주하는 나그네와 같음을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쇠하지 않는 유혹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이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유업이 있습니다.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입니다.
본문 4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잊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아멘.

저는 쇠하지 않는 유업이라는 이 표현이 제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성경에 보면 쇠하는 것과 쇠하지 않는 것을 대비한 구절이 있습니다.
시편 73편 26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 

 

아멘.

여러분, 무엇이 쇠약합니까?
우리의 육체와 마음은 쇠약해집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육체도 쇠약하지만 우리의 마음도 약해집니다.
젊었을 때에는 웬만한 일로 마음이 상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 작은 일에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으면 60대가 다르고 또 70대가 다르다고 합니다.
한 해 한 해 육체가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 또한 덩달아서 약해질 수 있습니다.


미국식 표현 중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파티는 계속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생에서 놀라운 성공은 계속되지 않는다라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고 해도 계속해서 신기록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고 해도 계속해서 베스트셀러를 쓸 수 없습니다.


인생에는 에이징 커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에이징 커브라는 표현 들어보셨죠?


원래는 스포츠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야구, 축구 같은 스포츠에서 최고의 기량은 20대 후반에 나타납니다.
보통 26세에서 30세 사이에 최고의 정점을 찍고 서서히 내려옵니다.
손흥민 같은 최고의 축구 선수도 나이가 들면 스피드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최근에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미국으로 이적을 했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운동 선수뿐 아니라 모든 전문직에도 이것이 해당됩니다.
의사, 변호사, 교수도 최고의 정점을 찍는 나이대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기량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벤처 투자자로부터 1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받는 창업자가 주로 30대 초반이라고 합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변화와 혁신에 능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나라 최고의 설교자에게 직접 들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분이 50대 때에는 성경을 읽으면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었다고 합니다.
특정 단어들이 막 본문에서 나오면서 야 이렇게 설교하면 되겠다라는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60대가 되니까 그런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설교 준비를 하신다고 합니다.
그 이전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 두 배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이분의 솔직함과 겸손함에 놀랐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존경을 받는 분도 이런 경험을 하시는구나.
모든 사람에게는 에이징 커브가 있고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더 노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의 육체와 마음은 쇠약해집니다. 

하지만 영원히 쇠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업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하늘의 상급과 유혹은 영원히 쇠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썩지 않고 닳아서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이 땅에는 도둑이 있지만 하늘에는 도둑도 없어서 누가 훔쳐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혹을 예비하셨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유업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업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협을 받기 위해서는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그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하나님의 상속자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 2절 말씀을 보시면 

 

빨간색으로 된 단어, '흩어진 나그네'와 저 뒤에 가면 '택하심을 받은 자들' 이 두 단어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한글 성경에는요. 

하지만 헬라어 성경을 보면 이 두 단어가 바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택하심을 받은 흩어진 나그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그네는 나그네인데 그냥 나그네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우리는 흩어진 나그네이겠죠.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세상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문화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서 비방을 당할 때도 있고 공격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정차 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그런 나그네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의 정체성입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께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입니다.이야기하겠습니다.

성경에서 택하심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있죠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약속, 

온 세상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고난이 와도 이 정체성을 간직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다라고 믿으며 소망 가운데 인내했습니다.
과거에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혹시 언제 멸망했는지 기억하십니까?
AD 70년에 멸망했습니다. 

로마 제국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멸망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다 무너지고 모든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이후에 이스라엘이 언제 다시 세워졌는지 혹시 아십니까?
1948년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AD 70년에 망한 나라가 1948년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1880년 동안 나라가 존재하지 않다가 다시 세워지는 거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스라엘은 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다른 민족, 다른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어떻게 자기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그 믿음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처럼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 9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 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멘, 

믿음으로 말미암은 모든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기 때문에 그와 함께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유협을 우리 또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늘의 유혹을 우리도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의 소망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약해집니다. 

우리의 마음도 약해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유업은 영원히 쇠하지 않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도 이와 똑같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아멘,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집니다.
몸도 약해지고 우리의 기억력도 약해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위협에 점점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구원이 점점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작가 이엠 포스터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죽음은 한 인간을 파괴한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인간을 구원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인생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때 그때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것, 돈, 명예, 성공, 여러분 이것이 과연 그 정도로 중요한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죽음 앞에서 생각해 볼 때 과연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도 인생은 나은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노래 있지 않습니까? 

제가 굳이 부르지는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세상 사람들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택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자녀 삼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유업을 예비하셨습니다.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위협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쇠약해지지만 영원히 쇠하지 않는 유업을 예비하신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은 나그네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도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도의 삶에 고난과 시험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본문 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아멘, 

이 땅에 속하지 않은 나그대로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지금 이 시대에도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서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 이슬람 국가에서 박해를 당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물리적인 박해를 당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신앙으로 인해서 비방을 당하고 조롱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주변에서 그러죠. 야 요즘 같은 시대에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있냐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2008년도 영국에서는 무신론자들이 버스 광고를 했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무신론자 리차드 더킨스도 이 캠페인을 후원했습니다.
그 버스 광고의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There's probably no god. Nopw stip worring and enjoy you life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말로 하면 아마 하나님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걱정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세요라는 문구가 영국의 시내버스의 광고로 붙었습니다.

 

여러분 이 문구는 두 가지 면에서 신성 모독입니다.
첫째로 분명히 존재하시는 그 하나님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인격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여러분이 존재하는 것을 무시하고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모욕입니다.
문대원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데 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면 그것은 저에 대한 모독이죠.
그러므로 이 문구는 하나님에 대한 인격 모독입니다.


둘째로 이 문건은 마치 하나님이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로 인해서 우리 인생이 더 힘들고 더 고달픈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하나님 때문에 힘들었던 적 있습니까?
하나님의 존재가 여러분의 행복에 방해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까?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이 방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죄를 지을 때입니다. 

내 마음대로 죄를 짓고 싶은데 하나님 때문에 내 마음이 불편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인생을 더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은 죄밖에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 부끄러움 없이 그냥 죄를 즐길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죄를 죄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인해서 세상에서 비난과 조롱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우리가 받을 영광을 비교하면 영광이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기간과 우리가 받을 영광의 기간을 비교하면 영광의 기간이 훨씬 더 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베드로와 동일한 고백을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신앙생활에 고난이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가운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않죠. 아이로 인해서 포기해야 할 것도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로 인해서 받는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이로 인해서 하게 되는 수고에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우리가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보다 더 큰 기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1장 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보여주면 내가 믿겠다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보았지만 믿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지만 주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눈으로 예수님을 본다고 믿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인 줄로 믿습니다.
오직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믿음의 확실함을 주시면 그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기쁨은 인생이 평안하고 모든 것이 풍족해서 느끼는 기쁨이 아닙니다.
여전히 고난과 어려움이 있지만 예수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면서 느끼는 기쁨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기쁨,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의 확신, 그 믿음의 확신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저는 동신교회 모든 성도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기쁨을 충만히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사람은 제한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타국에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나그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삼으셨고,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유업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영원한 유혹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하는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난보다 더 큰 기쁨을 허락하시는 그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UI53Zx-PN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