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은 자기를 과도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으십니까?
자신이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 어디에서든지 VIP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으십니까?
현대 사회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나르시시즘입니다.

나르시시즘이란 부풀려지고 과장된 자기 이미지에 빠져서 자신이 아주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심리적인 왜곡입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자신만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은 문제입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부풀려지고 과장된 이미지에 빠져 있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자기를 공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희 딸도 유치원 다닐 때 공주 드레스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도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자기가 공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르시시즘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키소스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소년은 외모가 출중했는데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름다운 자기 모습을 사랑한 나머지 계속해서 물속을 쳐다보다가 그만 물에 빠져서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나르시시즘은 비정상적인 자기애입니다.
자신이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우월 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말세의 징조입니다.
성경은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이 말씀을 보면 성경이 얼마나 진리인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 21세기 현재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진리를 떠난 포스트모던 사회는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시대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랑하고 교만하고 비방합니다.
부모를 거역한다는 말은 이 세상에는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감사하지도 않고 거룩하지도 않습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과장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넷째, 자신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분노와 수치심을 느낍니다.
사회생활하다 보면 우리가 뭐 지적받을 수도 있고 비판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에 대해서 지적하실 수 있고 비판하실 수 있습니다.
뭐 그런 이야기 들으면 저는 그것이 타당한 비판인가 돌아볼 것입니다.
사실에 근거한 타당한 비판이라면 자신을 돌아보고 시정하면 됩니다.
하지만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에 대해서 분노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데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면서 화를 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묘사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허영입니다.
허영은 실체가 없는 영광, 헛된 영광을 뜻합니다.
빈 껍데기 같은 화려함을 쫓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을 가리켜 헛된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은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에 대해서 말씀이 나오고, 그 이후에 헛된 영광을 구하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6절 함께 읽겠습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아멘.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헛된을 영어로 하면 empty가 됩니다.
헛된 영광은 빈 영광, 가짜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허영을 '지속될 수 없고 알맹이가 없는 엉터리 영광'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알맹이가 없는 빈 껍데기 같은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 신문에서 본 기사가 있습니다.
월급 250만 원을 받는 청년이 BMW를 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외제차를 타고 싶은데 능력이 안 되니까 리스를 했습니다.
리스 비용이 한 달에 130만 원이라고 합니다.
보험료 20만 원, 기름값 40만원 하면 대략 한 달에 200만 원이 나간다고 합니다.
월급이 250만 원인데 그중에 200만 원을 차량 유지비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외제차를 타면 기분이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입에 비해서 과도하게 차량 유지비를 지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착실하고 책임감 있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그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는 우리에게 책임감 있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가져라라고 말할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권리가 나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지면 행복할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친구에게 자랑한다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심리를 가리켜 허탄한 자랑이라고 부릅니다.
실체가 없는 자랑, 껍데기뿐인 자랑이라는 뜻입니다.
야고보서 4장 1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아멘.
성경은 허탄한 자랑이 악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알맹이가 없는 삶, 껍데기뿐인 삶은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다른 사람의 동경을 받으며 우쭐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입니다.
허영에 빠진 사람은 모래성을 자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러분 모래성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모래성은 빨리 만들 수 있습니다.
몇 시간만 노력해도 근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래성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빨리 무너질 수 있습니다.
빨리 만드는 만큼 빨리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면 가우디 성당이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이 성당은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1882년에 착공했는데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하게 설계했으면 144년이 지난 올해 비로소 외관 공사가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내부까지 해서 최종 완성은 2030년대 중반에 가능하다고 합니다.
가우디가 한 유명한 말이 있죠.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자연의 선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것은 뾰족한 직선이 아니라 부드러운 곡선입니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그런 곡선과 유기적 형태를 활용해서 이 성당을 건축 설계했습니다.
복잡한 기하학적 구조를 도입해서 부연 벽 없이 건물이 스스로 하중을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이것을 짓는 데에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빨리 결과물을 내고 빨리 성공하기를 원했으면 이러한 대작을 만들 수 없습니다.
진정한 걸작품을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인내하고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오늘 오랜 인내와 헌신에 가장 큰 방해물이 있다면 바로 허영입니다.
허형은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껍데기 화려한 껍데기를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허영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시기하게 됩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청년 무리해서 외제차를 타는 청년의 경우에 자기보다 더 좋은 차를 타는 사람을 보면 시기하게 됩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동경을 받는 것인데, 더 좋은 차를 타는 사람에게 부러움의 시선을 빼앗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허영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노력은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 보게 됩니다.
뭔가 있어 보이고 뭔가 멋져 보이는 것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실제 모습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를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일본, 프로야구, 미국 메이저리그를 모두 경험했던 선수가 한 말이 있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 리그 중에서 훈련량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요?
미국 메이저리그라고 합니다.
어느 날 메이저리그 올스타 내야수가 경기 중에 에러를 했다고 합니다.
땅볼 타구가 왔는데 백핸더로 잡다가 실수했습니다.
뭐 누구든지 경기에서 실수할 수 있죠.
그런데 그 선수가 다음 날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다른 선수들보다 2시간 일찍 나와서 백핸드로 땅벌 잡는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일반 선수도 아니고 올스타 선수가 이렇게 열심히 훈련을 합니다.
하지만 허영에 빠진 사람은 이러한 숨은 노력은 보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타고난 조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시기하게 됩니다.
허영, 영어로 vainglory는 헛된 영광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알맹이가 아니라 빈 껍데기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허영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인 죄입니다.
여러분과 저 모두 허영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우리는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뭔가 근사해 보이는 사진과 영상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소셜미디어만 보면 모두가 다 럭셔리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평범하죠.
우리는 평범한 음식을 먹고 평범한 옷을 입고 평범한 일을 합니다.
이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내가 원래 해야 하는 평범한 일에 충실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에서 평범하지만 충실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렇게 충실한 하루하루가 모일 때 우리는 본질을 가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화려한 껍데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알맹이가 있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헛된 영광 허영에서 돌이키는 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허형의 문제를 다룰 수 있습니다.
첫째로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아멘.
예수님께서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 2장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은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십자가를 진다 하는 것은 나의 정욕에 대해서 죽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갖고 싶은 것에 대한 욕심을 다 내려놓는다라는 의미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시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살겠다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자주 바뀐다 하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에는 부와 성공을 원합니다.
가족에게 조금 소홀하더라도 빨리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이 가족이 더 중요해집니다.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들, 특별히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아이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관계가 소원해졌고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변화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따라가면 일관성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정욕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정욕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영원한 정욕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맛집, 전 세계에 있는 맛집을 탐방하는 것이 인생의 낙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소화 기능이 떨어지게 됩니다.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없게 되는 거죠.
젊었을 땐 잘 먹었는데 나이가 들면 먹고 싶은 음식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뷔페 식당 가는 것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외모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었을 때 그렇게 아름다웠지만 나이가 들면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게 됩니다.
물론 요즘은 워낙 좋은 시술이 많아서 관리를 잘 받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목 주름, 손등주름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제가 신문에서 보고 알았습니다.
나이가 드는 것을 숨기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죠.
영원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정욕은 영원하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2장 1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아멘.
이 말씀은 제가 정말로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제 묘비명으로 삼고 싶은 말씀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는 줄로 믿습니다.
헛된 영광, 허영에서 돌이키는 길은 나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허용해서 돌이키는 길은 성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으로 행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2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아멘.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과 성령으로 행하는 것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 보면 18절에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신앙의 초보를 뜻합니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는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어느 길이 좋은 길인지, 어느 길이 안전한 길인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신앙생활에서 이런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케어를 받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신앙이 자라나게 되면 우리는 훈련을 받게 됩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훈련을 받게 됩니다.
성령으로 행한다고 할 때 사용된 헬라어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고 할 때 사용된 헬라어는 서로 다른 단어입니다.
성령으로 행한다고 할 때 사용된 단어는 스토이 케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그냥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열을 맞춰서 행군한다는 뜻입니다.
훈련된 군인이 절도 있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은 인내와 절제를 배운 사람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목자를 따라가는 양의 모습이 아닙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은 훈련되고 연단된 사람입니다.
최고의 군인은 무의식 중에도 훈련받은 것이 그대로 나옵니다.
어떻게 은폐하는지, 어떻게 총을 쏘는지 수없이 훈련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수없이 훈련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나와야 합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이 자동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세상이 화려한 껍데기를 자랑하라고 해도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가 훈련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시기하거나 노하게 하지 말고 온유한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훈련받은 제자의 모습입니다.
훈련의 완성은 실천입니다.
전도 훈련을 받았으면 실제로 전도해야 합니다. \
MIP 기도 훈련을 받았으면 실제로 기도해야 합니다.
실제 우리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훈련의 완성입니다.
얼마 전 삼일교회에서 설립한 미셔널 신학연구소에서 강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능하면 외부 강의나 설교를 잘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다만 제가 꼭 가야 한다고 생각될 때만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일교회에서 부탁한 강의 주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교회의 훈련 사역과 선교적 삶' 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처럼 훈련을 열심히 하는 교회가 별로 없습니다.
동시에 우리 교회처럼 선교를 열심히 하는 교회도 별로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교회에서는 단기 선교 가려면 LMTC 선교 훈련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12주 동안 선교 훈련을 받아야지만 단기 선교 갈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어떻게든지 단기 선교 더 보내기 위해서 문턱을 낮추는 것이 현실입니다.
12주 훈련을 받아야지 단기 선교에 갈 수 있는 교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훈련을 제대로 받아야지 훈련받은 만큼 선교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성령으로 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군사로 훈련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인내하고 절제하게 됩니다.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님께 순종하여서 그분의 승리에 동참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허영은 헛된 영광이라고 했죠.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면 안 되고 진정한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진정한 영광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어두운 데 빛이 빛이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아멘.
자기 자신을 올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 가운데 거할 때에 그때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 온전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말세의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헛된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 원리를 교회적 차원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교회 동신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지나치게 교회를 자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것과 자기 교회를 자랑하는 것은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누리지 않고 나에게 자신에게 영광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나의 영광은 헛된 영광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진정한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자기 영광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교회 건물을 자랑하고 교회의 예산을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가 자랑할 것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자랑하고 우리가 기뻐하고 우리가 나타내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제 외부에서 설교할 때에 우리 교회를 소개합니다.
뭐 우리 교단에서는 동신교회가 유명하지만 뭐 타 교단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잘 모를 수도 있죠.
얼마 전 미국 어바인에서 설교할 때에도 동신교회를 소개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소개할 때 성도가 몇 명인지, 예산이 얼마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동신교회 소개할 때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합니다.
우리 교회 파송 선교사님의 숫자를 이야기합니다.
그 한마디로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선교적 교회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선교적 교회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선교적 교회는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자신의 유익, 자신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되는 것은 하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 CTS 기독교 방송에서 우리 교회에 취재를 왔습니다.
캠퍼스 선교회 아름다운 모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취재하러 왔습니다.
캠퍼스 선교가 어려운 이 시대에 전교생의 3분의 1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학교가 있습니다.
바로 대구 교육대학교입니다.
학생 6명과 교역자 1명으로 시작된 기도 모임이 3년 만에 500명이 모이는 예배로 부응했습니다.
우리 이에 대한 뉴스 영상을 함께 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올려드리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대구교대 사역을 위해서 매년 7천만 원의 재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역자를 파송하고 봉사자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교회의 청년은 5명밖에 없습니다.
7천만 원의 예산을 사용하는데 우리 교회 청년이 5명밖에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오직 선교적 교회에서만 이런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자주 인용했던 윌리엄 템플의 말이 있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 멤버가 아닌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이다' 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세상 모든 공동체와 다릅니다.
세상 모든 공동체는 자기 멤버의 유익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자기 멤버가 아닌 사람들,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진짜 선교적 교회에서는 하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일이 우리 교회에 어떤 유익이 됩니까?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 일이 하나님 나라에 어떤 유익이 됩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대구교대의 사역을 지원할 때 어떤 장로님도 이 일이 우리 교회에 어떤 유익이 됩니까? 라고 질문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유익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대구 교대에 우리 교회 청년 5명밖에 없지만 교육 현장에서 다음 세대를 책임질 예비 교사를 말씀으로 세우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대구교대 뉴스를 보신 한 목사님께서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이분은 서울에 있는 학원복음화협의회 공동대표이십니다.
지난 10년 15년간 전국 어느 대학에서도 이러한 일을 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대구에서 시작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기를 기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사역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진정한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헛된 영광, 사람의 영광 껍데기뿐인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제대로 보려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눈을 돌려야 한다.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에 빠져서 자신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영광의 빛을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온전한 시각으로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헛된 영광, 허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영광을 사모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 세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받고 성령으로 행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nClmwHxV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