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교회의 비전인 생명 사역에 대해서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5대 사역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교육과 훈련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훈련의 목표는 성경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연단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는 그 연단의 시간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전문가가 순금을 테스트해서 공인해 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고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오늘은 봉사와 사역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봉사는 뭐 그렇게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편안하게 지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봉사를 좋아하시는 분 계십니까?
주일날 내가 교회에 와서 봉사할 생각만 하면 마음이 너무 기쁘신 분이 계십니까?
올해부터 차량 위원회에서 여성 봉사자들께서 그 보행 안내를 하고 계십니다.
본관과 비전관 사이에서 수성대학교 입구에서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지나갈 수 있도록 안내를 하고 계십니다.
오시면서 보셨지요?
빨간색 망토를 입으시고 너무나도 열심히 섬겨주십니다.
우리 교회 아이들이 많은데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갈 수 있도록 귀하게 섬겨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이 그분들을 보고 한 가지 질문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알바하시는 거예요?
시간당 얼마나 받나요? 라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전문적으로 일을 하시면은 돈 받고 일한다고 이제 생각을 한 거죠.
봉사하시는 분이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저희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질문한 사람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나갔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현실이지요. 돈을 주지 않으면 일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려면 무조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원해서 봉사하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이제 가장 흔하게 쓰는 호칭이 집사님입니다.
많은 경우에 교회에서 서로를 집사님하고 부르죠.
그래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이 집사라는 칭호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집사라는 그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요즘 청년들은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을 집사라고 부르는데 무언가를 키운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집사를 영어로 deacon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 헬라어 디아코네오에서 봤는데 그 의미는 '섬기다'입니다.
디아코네오라는 단어의 뜻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 함께 읽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이때 사용한 헬라어가 바로 디아코네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의미를 담은 단어가 바로 집사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서로를 집사님하고 부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섬기기 위해 오신 그 예수님을 닮아서 섬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지
신앙생활에서 봉사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마음에 내키면 하고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바로 봉사입니다.
오늘은 신앙생활에서 봉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베드로의 편지입니다.
당시 로마에 흩어져 있는 신앙생활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베드로가 보낸 편지입니다.
부활의 소망 대신 그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거룩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어떤 믿음으로 행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부터 8절 함께 읽겠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아멘.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합니다.
역사의 끝 종말이 가까이 왔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일류의 구원을 위한 모든 필요한 구속 사역이 다 완성되었기 때문이지요.
창세 전에 작정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마지막 때 종말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왔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다 멈추고 산에 가서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차피 예수님 오시면 이 땅의 일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다 그만두고 산에 가서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2천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안식교, 몰몬교 모두 다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우리가 정통 교단에서 안식교, 몰몬교를 이단이라고 부르지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19세기에 시작된 이 교단의 교주들은 잘못된 종말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그 날짜를 특정하면서 산에 가서 흰 옷을 입고 주님을 맞이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과연 그날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셨을까요?
만일 그랬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안식교와 몰몬 교회는 그 시작부터 잘못된 신학을 가졌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를 언급하면서 하던 일을 그만두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영어로 보니까 clear minded & self-controlled 라고 되어 있습니다.
침착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자신을 절제하라라는 의미입니다.
건전한 마음으로 상황을 올바로 바라보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방탕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해서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서로에게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께 다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선포하면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나의 짧고 제한된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관점으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기도함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행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뜨겁게 사랑하라고 했는데 이제 원어에 보면은 변함없이 사랑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의 강도로도 표현할 수 있지만 사랑의 지속성으로 더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스포츠 팀을 응원할 때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팀이 잘할 때 막 우승하고 성적이 좋을 때 열정을 다해서 응원합니다.
그러다가 팀이 잘 못하면 그때는 또 응원을 안 하는 사람들이 있죠.
팀 성적이 떨어지면 관심도 함께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성적과 상관없이 잘하든지 못하든지 지속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찾아보니까 삼성 라이온즈가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것이 2014년도라고 합니다.
그 이후로 10년 동안 우승을 못 했네요.
여러분 그럼 누가 진짜 라이언즈 팬입니까?
막 우승했을 때만 열광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우승하지 못해도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응원하는 사람입니까?
당연히 성적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응원하는 사람이 진짜 팬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의 강도가 아니라 사랑의 지속성에 있습니다.
한 번 반짝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신실하게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정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일평생 고아와 가난한 자들을 섬겼던 마더테레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동하는 기도는 사랑이고 행동하는 사랑은 봉사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말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상관없이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행동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죠.
어떻게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 관념적으로만 아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행동하고 실천할 때 그때 의미가 있습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관념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기도로 인해서 발생하는 행동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로 인해서 발생하는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중요하게 사랑이 있습니다.
기도를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되겠죠.
하나님의 본성을 사랑했기 때문에 기도를 오래 하면 그 결과는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 역시 관념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랑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행동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행동은 바로 봉사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사랑으로 이어지고 사랑은 봉사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마더테레사가 한 말의 의미입니다.
사랑은 불타오르는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행동입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기뻐할까 생각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섬기는 봉사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자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를 기쁘게 하는 봉사를 다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봉사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봉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입니다.
더 나아가서 봉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일부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배를 뜻하는 단어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경배하다라는 뜻을 가진 프로스퀴네어이고, 또 하나는 섬기다라는 뜻을 가진 라트리오입니다.
프로스퀴네어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엎드려서 그분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높이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배로서의 예배입니다.
또한 라트리오는 우리 몸을 들여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말이 있죠.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라.
이 말은요, 우리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섬김의 의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존경을 드리는 경배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섬김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예배를 worship service 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이 봉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아주 중요한 방편이 됩니다.
그냥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온전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봉사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더욱 필요한 것이 있다면 봉사와 섬김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아멘.
아시는 것처럼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주 길게 부활의 역사성과 신학적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모든 수고가 결코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라고 선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부활과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끝이 다가온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나태해지거나 염세적으로 살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부활과 천국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오늘도 우리에게 맡겨진 그 사명에 한결같이 충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와 사랑에 대해서 강조한 베드로는 환대에 대해서 또 이야기를 합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환대, 영어로 하면 hospitality 인데요.
아주 중요한 명령입니다.
성경은 손님 대접에 대해서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아멘.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3명의 손님들을 잘 환대하고 영접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이었습니다.
천사들이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선물을 주었는데, 그의 아내 사래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손님을 그저 잘 섬기고 환대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서 나그네를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십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 함께 읽겠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아멘.
우리 주변에 아주 작은 형제 혹은 나그네 혹은 외국인을 대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선지자를 영접한다면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성경에서 환대는 이렇게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 역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환대를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베드로 당시에는 교회 건물이 없었습니다.
건물이 없으니까 개인의 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매주 여러분의 집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20명 30명의 성도들이 집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어려운 일일까요? 당연히 어려운 일이죠.
일단 집을 정리하고 치워야 합니다.
요즘이야 청소기가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도 없으니까 일일이 사람이 다 치워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음식도 준비해야 합니다.
요즘이야 배달 음식 시키면 되겠지만 옛날에는 다 일일이 사람이 음식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번거롭고 수고로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누군가가 집을 오픈하지 않으면 모여서 함께 예배드릴 장소가 없었습니다.
환대와 대접은 초대교회에서 이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말하기를 '서로 대접하기를 힘쓰되 원망 없이 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봉사하는데 원망하는 마음 없이 이 일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청소하는 것, 음식 준비하는 것, 육체 노동하는 것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원망 없이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원망하지 않고 이 일을 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성령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은사를 받은 대로 은혜를 받은 대로 봉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아멘.
여기에서 은사가 헬라어로 카리스마입니다.
우리가 카리스마 하면 보통 남자답고 사람을 휘어잡는 강력한 리더십을 말하는데 사실 카리스마는 성령의 은사를 뜻합니다.
그런데 charisma가 charis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발음이 비슷하지 카리스는 은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은사는 은혜에서 유래한 단어인 것입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아무런 갑 없이 공짜로 주신 선물입니다.
은사를 주신 이유는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여기서 봉사하다라는 단어가 섬기다라는 의미를 가진 diakonia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사용하는 집사라는 직분이 바로 이 단어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은혜, 은사, 봉사, 집사는 하나로 쭉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 한 분도 빠짐없이 하나님께 은사를 받은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착해서 똑똑해서 기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을 주셨습니다.
은사의 목적은 딱 한 가지입니다.
서로 봉사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이 직분을 담당하는 사람을 가리켜 집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서로 서로 집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단지 예의를 차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정체성을 불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봉사하는 사람,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라고 서로서로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봉사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봉사를 통해서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있던 그 진리가 전 인격으로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것이 머리에만 있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진리가 우리 안에 체득되어서 우리의 전 인격 속 사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우리가 봉사할 때 이러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단체,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그런 단체입니다.
90년 전에 이제 미국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 세계 180개국에서 200만 명의 사람들이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현존하는 중독 치료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프로그램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참가자의 27%는 1년간 술을 끊게 되었고 24%는 5년 동안, 13%는 10년 동안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역의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이 프로그램은 온라인으로 하지 않고 실제로 만나서 진행합니다.
교회에서 만나거나 사회 기관에서 직접 만나서 대면으로 진행합니다.
접수할 때도 이메일로 하면 안 되고요. 최소한 전화 통화를 통해서 접수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온라인 시대 AI 시대를 말하고 있지만 진정한 변화는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안전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에 있습니다.
비슷한 아픔과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술을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실패한 경우가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서로 정죄하거나 나무라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용납해 주고 격려해 줍니다.
이렇게 안전한 공동체를 경험할 때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이 12단계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마지막 단계에서는 반드시 다른 중독자를 돕는 봉사를 해야 합니다.
11단계까지 잘 끝냈다 하더라도 이 마지막 12단계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다시 술을 마실 확률이 크다고 합니다.
마지막 12단계를 수료해야지 알코올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단계는 다른 중독자를 돕는 일입니다.
이제 막 1 2단계에 들어온 신입 회원들을 돕는 봉사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내가 바로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지도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실천하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 관계적인 책임, 제가 이전에 말씀드렸던 accountability 가 형성됩니다.
나는 더 이상 혼자의 나가 아닌 거죠.
나와 다른 사람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잘못하면 나만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다른 사람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절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봉사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돕고 섬길 때 내 안에서 진정한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이 일을 했는데 정작 변화된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러한 간증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새 가족 위원회, 제자 양육원에서 교사로 봉사하시는 분들, 많은 평신도 리더들이 계십니다.
그분들께서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 신앙생활, 오랫동안 쉬다가 다시 오신 분들을 섬기는 것이지요.
내 시간을 드려야 하고 기도와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일입니다.
모두가 바쁘게 사는 시대인데 귀찮은 일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렇게 봉사하시는 분들의 간증이 있습니다.
이 봉사와 섬김을 통해서 나의 신앙이 더욱더 깊어졌다라는 간증입니다.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 신앙생활하다가 오랫동안 쉬셨던 분들을 다시 섬기면서 자신이 은혜를 받고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봉사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그 은사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을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하시고 얼마나 신실하신지 봉사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실 때 제일 먼저 그 사실을 깨달았던 사람은 바로 물 떠온 하인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그 주님의 마음을 우리가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은사를 통해서 봉사와 섬김을 행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청지기라는 제 직분이 나옵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잘 관리하고 집안일 전반을 감독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이 청지기를 영어로 하면 steward 라고도 하고 아니면 manager 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영어로 manager 를 하면요. 일반 회사에서 부장 직급을 의미합니다.
한 부서를 책임지고 이 관할하는 그 역할을 맡은 거죠.
인사를 추천할 수도 있고 아니면 탈락시킬 수 있는 결정권이 부장에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청지기는 아주 중요한 직분입니다.
시키는 일만 하는 일반 종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지요.
주인이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청지기로 세웁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보디발은 요셉을 청지기로 세워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맡겼습니다.
여러분 혹시 누군가에게 여러분의 모든 재산을 다 맡길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신뢰해야지 전 재산을 다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 정도로 우리를 신뢰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모든 것을 다 맡기셨습니다.
그분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맡기셨고 그분이 가장 사랑하시는 교회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청지기 직분의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청지기 직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2절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아멘.
주님께서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를 찾고 계십니다.
여기서 '진실하다'라는 단어는 '믿을 수 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청지기를 찾고 계십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 사람을 찾으면 그분의 모든 소유를 다 맡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후에 44절 보니까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길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진실하고 정직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집을 맡기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집을 관리하는 그 청지기 직분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과 청지기라는 이 단어 사이에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집을 헬라어로 오이코스라고 하고요. 청재기를 헬라어로 오이코노마스라고 합니다.
또 비슷하지요.
청지기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집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집은 무엇일까요?
1차적으로 교회이겠죠.
예수님께서 유년 시절에 성전을 가리켜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이야기 아시잖아요.
요셉과 마리아가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깜짝 놀라서 한참을 찾다가 성전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제가 제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을 왜 모르셨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집 아버지의 집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휴지가 떨어져 있으면 주우십니까? 안 주우십니까?
뭐 주울때도 있고 안 주을 때도 있고 그러겠죠.
그러면 여러분의 집에 휴지가 있으면 떨어져 있으면 주우십니까? 안 주우십니까?
당연히 좋죠.
우리 집을 내가 치워야지 누가 치우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집이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집도 중요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니까 또 내 집이죠.
저는 항상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집을 깨끗이 하는 것처럼 교회를 깨끗이 하고자 노력합니다.
우리 집을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처럼 교회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전도사로 처음 사역할 때 제가 꼭 했던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금요 기도회를 마치고 교회를 청소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일을 꼭 했습니다.
보통 이제 미국 교회에서는 금요 기도회 마치고 커피 타임을 가졌습니다.
커피와 도넛을 준비해서 함께 커피를 마셨죠?
그럼 교회 아이들이 있으니까는 막 간식을 흘리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와 아내가 마지막까지 남아서 교회 청소를 하고 왔습니다.
아무도 저희에게 그 일 하라고 시키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 집 청소 내가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집을 청소하는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그때 막 저희 딸이 태어나서 갓난 아기일 때였는데 그래도 끝까지 남아서 청소하고 교회 문 잠그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할 때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깨끗이 하는 그 일을 섬길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방과 청소로 섬기시는 분들, 주차 안내로 섬기시는 분들 모두 다 같은 마음입니다.
교사와 순장으로 섬기시는 분들, 찬양대와 재정 부원으로 섬기시는 분들 모두 다 동일한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집을 가꾸는 그 기쁨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만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모든 세상이 하나님의 집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 전체를 가꾸고 돌보는 것 역시 우리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넘어서 이 세상 전체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천은 창조 세계 보호를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세상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가꾸고 돌보는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가정 주부들은 잘 아시겠지만 집안 일에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집안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딱 한 번 안 하면 그때 티가 납니다.
여성분들만 웃으시잖아요.
여러분 밥 먹고 설거지하는 거 당연한 일이죠.
밥 먹고 설거지하면 티가 날까요?
안 날까요? 별로 티가 안 납니다.
근데 설거지를 안 하면 티가 납니다.
청소도 마찬가지이고 빨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쓰, 음쓰, 재쓰 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혹시 일쓰, 음쓰, 제쓰가 뭔지 아시나요?
일반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줄임 말입니다.
여러분 쓰레기를 비운다고 해서 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쓰레기를 비우지 않으면 티가 납니다.
집안 일은 끝이 없기 때문에 온 가족이 다 같이 해야 됩니다.
집을 깨끗이 하는 일, 그리고 집을 관리하는 일을 한 사람이 한다고 하면요.
너무너무 힘들고 고된 일입니다.
모든 식구가 함께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집이 깨끗하게 유지됩니다.
하나님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성도가 함께해야 합니다.
집안일이 끝도 없는 것처럼 여러분 교회 일도 끝도 없습니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도 있고, 매주 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 일은 한두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목회자만 순장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온 성도가 함께 해야지 하나님의 집이 아름답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봉사의 영역을 넓혀서 우리가 지역사회를 섬기고 이 지역에 있는 연약한 교회들을 섬기는 것도 우리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이곳을 가꾸고 돌보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은사를 받은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회사로 따지면 최소한 여러분 모두 다 부장이십니다.
부장은 시키는 일만 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은사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집을 잘 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이 드러나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이 드러나는 것을 뭐라고 말하냐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집을 섬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내 힘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를 감당하면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더 분명하게 나타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은사를 잘 사용해서 교회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봉사와 사역을 통해서 우리를 섬기기 위해 오신 그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GidlIeYxTRw